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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
거꾸로 사는 인생이야기
렘1:11-19
영화 가운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화가 있습니다.
2009년 미국과 영국의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각각 3관왕씩
총 6개의 상을 받고 각종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수상한 유명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벤자민 버튼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벤자민은 갓난아기로 태어나지만 80세의 늙은 남자의 모습으로 태어나
양로원 앞에서 버림을 받게 됩니다.
다행히 좋은 양부모를 만나 양로원에서 자라게 되는데
양로원에서 자신의 외모와 신체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벤자민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젊어지고 자신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최고의 정점에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하게 되지만 점점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헤어지고 맙니다.
거꾸로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그린
영화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입니다.
이 영화는 인생을 정상적으로 살지 않고 거꾸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매스컴을 통해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도 거꾸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자녀를 부모의 손으로 죽이기도 합니다.
난지 얼마 되지 않은 자녀를 죽이기도 하고 다 성장한 자녀들을 죽이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생매장을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의붓아버지가 아니라 친 아버지가 사랑하는 친딸을 성폭행하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멀쩡히 길을 가는 사람들을 무참히 죽이는 자가 있는가 하면 등산로에서 성폭행을 하고 죽이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거꾸로 사는 인생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부름 받는 소명장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대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시드기야의 11년 말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다섯 왕들을 거치면서 선지자 활동을 하게 되는데,
예레미야 애가는 예루살렘 함락을 보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지었던 시입니다.
유대의 말년에 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로 말씀을 전했던 눈물의 선지자가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사명을 받을 때 나이가 약 20세였습니다.
이때부터 시드기야 왕 11년까지 약 40년 동안 그의 나이 60세까지 선지자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예레미야 선지자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애굽으로 피신한 유대 백성들의 죄악을 책망하다가 돌아 맞아 60세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을 때 하나님은 두 가지 환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살구나무 가지의 환상과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환상입니다.
이 두 가지 환상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이런 세상에서 활동하기 위해 선지자가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가를 잡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 환상을 통하여 부름받은 우리가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생각해 볼 환상은, 북쪽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환상입니다.
이환상은 14절에 나오는 대로 유대백성들을 북쪽에 있는 나라를 통하여 심판하시겠다는 심판의 환상입니다.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14절)
이 환상은 유대백성들에게 임한 무서운 심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대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완전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살아남은 자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무려 70년 동안을 종살이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이 왜 많은 심판 중에서 끓는 가마의 심판을 보여주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가마에서 펄펄 끓는 것이 물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액체든지 간에
끓는 것이 부어진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뜨거운 물에 화상을 당한 경험이 없다고 해도 정말 상상만으로 얼마나 끔찍한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러한 끔찍한 모습으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여호와께서 이런 무서운 심판을 행하신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16절 말씀을 보면,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유대백성들이 범한 죄 때문에 징계하신다는 것인데요,
이들의 죄악은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우상에게 절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하시는데 끓는 가마의 형벌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유대의 죄악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 가마의 불을 더 뜨겁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가마솥을 걸고 물을 끓일 때 처음에는 물이 데워지지 않습니다.
장작이든지 나무를 넣고 계속해서 불을 피우면 조금씩 물이 데워지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펄펄 끓는 물이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가마솥도 처음에는 이렇게 펄펄 끓는 물이 아니었습니다.
이 물을 펄펄 끓는 물로 만든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하나 둘씩 쌓여갈 때 그 죄악의 불쏘시개로 인하여 가마솥의 온도는 점점 더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마솥의 온도는 100도를 넘어 펄펄 끓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죄악이 자기들에게 덮치고 임할 심판을 더 뜨겁게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더욱 많은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다른 신들과 우상들을 섬기고 죄를 짓는 데는 열심히 있었고
뜨거웠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로서 당연히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뜨겁고 열정이 있어야 하고 우상을 대하는 일에는 차가워야 하는데
이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거꾸로 사는 인생이 되었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을 보면 항상 이런 패턴을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인간의 지으심을 한탄하사 홍수로 심판하실 때
노아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은 성경의 표현대로 보자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들면서 심판의 날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세상일에는 열정적으로
뜨겁게 살았지만 하나님을 향해서는 냉정하게 식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든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살면 심판하신다고 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관심과 열정은 세상일에만 있었습니다.
사람의 모양을 한 천사 두 명이 소돔과 고모라를 방문하자 발견한 롯이 자기 집으로 모셔드립니다.
한참 저녁 식사를 할 때에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너희 집에 온 손님들을 우리에게 이끌어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과 상관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상관하겠다는 말은 성관계를 말하는데 이들은 처음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방문한 사람들입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끌어내라, 성 노리개 감으로 삼아서 이 밤을 즐기겠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거꾸로 살아도 한참 거꾸로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이들은 쾌락을 즐기며 자기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집에 온,
전혀 알지도 못하는 손님을 이끌어내라고 소리를 치고 열심을 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이런 인생을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 두실 수가 없어서 결국 홍수로 뜨거운 불과 유황으로 심판을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과 형편은 어떤지 깊이 생각하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행여 세상 살아가는 일에는 집중하고 열심을 내고 관심을 기울이는데,
하나님의 일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냉냉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너무 돈에 몰두하고 있지는 않는지, 너무 세상 재미만을 탐닉하고 있지는 않는지,
너무 명예 권력만 외치고 있지는 않는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상을 섬기는 거꾸로 사는 인생입니다.
이런 자들을 향하여 부활하신 주님은 회개하라 네가 열심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계3:19)
이런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심판은 마지막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마지막 최후의 심판을 통하여 분명히 나타나게 됩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하나님은 악한 자를 영원한 불로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은 부자가 ‘나사로의 손가락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간구할 정도로 뜨거운 심판입니다.
여러분, 끓는 가마의 심판은 거꾸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심판의 두려움을 알고 이 심판을 받지 않도록 절대 거꾸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 예레미야가 보았던 또 한 가지 환상은 살구나무 가지의 환상입니다.
이 환상의 의미를 12절에서는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살구나무는 히브리어로 샤케드라는 말인데 지켜준다는 말도 샤케드입니다.
살구나무와 지켜준다는 말은 발음상 거의 비슷합니다.
하나님은 이 어려운 시절에 자신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예레미야를 지켜주신다는 의미에서
살구나무의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살구나무를 영어성경에서는 아몬드로 번역하고 있는데요,
유대나라에서 살구나무는 겨울철이 지나면서 제일 먼저 꽃이 피는 나무입니다.
유대나라는 겨울철이 11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이며 이 때 비가 오는 우기입니다.
기온이 6-7도 정도 되는데 이 기온도 그들에게는 추위를 느끼게 합니다.
아직도 매서운 추위가 가시지 않는 겨울 끝자락에서 제일 먼저 피는 꽃이 살구나무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매화나무가 겨울 끝에 맨 먼저 꽃을 피우면서 맨 먼저 봄이 올 것을 예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직도 춥습니다. 아직도 찬바람이 쌩쌩 붑니다.
골짜기에는 아직도 눈이 덮여있지만 그런 가운데 살구나무는 꽃을 피웁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이런 살구나무와 같습니다.
현실을 보면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신들을 섬기고 우상숭배에 열을 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대해서는 냉냉합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이런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심판을 선포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고 핍박을 각오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런 상황에서 살구나무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추위를 무릎 쓰고 어려움을 각오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예레미야의 삶을 통하여 생생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고향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습니다.
감옥에 갇히는 일도 여러 번 당하고 심한 매를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핍박이 더 심해져도 홀로 살구나무처럼 꽃을 피웁니다.
여러분, 예레미야의 사명은 모두가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며
불법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는 그런 상황에서
자기 혼자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레미야의 인생도 거꾸로 살아가는 인생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레미야처럼 인생을 거꾸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돈과 섹스와 동성애에 빠져 살아갈 때 의인 롯은
홀로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거꾸로 살아갔습니다.
모두가 세상일에 열심을 내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가운데서도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홍수가 나서 인간이 멸망당할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200년 동안 방주를 짓습니다.
혼자 거꾸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용서해달라고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를 본받아 스데반도 돌로 맞아 죽어가는 속에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하는 아들 두 명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자기 아들을 삼았습니다.
모두가 다 세상과는 다른 거꾸로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의 사명이었고 오늘 우리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싸움은 거꾸로 사는 인생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바르게 살고 세상에 대해서는 거꾸로 사는 싸움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열심을 내고 세상에 대해서는 냉냉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최선을 다해 순종하고 세상의 풍속과 말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 대해서는 냉냉하게 살며 세상에 대해서는 열심히 살아갑니다.
모두가 돈돈하며 모두가 출세, 출세하며 모두가 부동산 증권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거꾸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백성들 앞에서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십니다.(18절)
북으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환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죄악을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살구나무 가지의 환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지켜 주심을 믿고 세상을 향하여 거꾸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3.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