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80]그래도 가실(가을)은 가실인 것을
예전에는 감나무도 흔치 않았건만, 지금은 흔전만전. 가을(전북의 표준어는 가실. 겨울은 시안)의 ‘한가운데’는 역시 대봉시(대봉감? 장두감? 장도감), 주황색의 물결이어야 제격이다. 산천 어디서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주먹만큼 굵직굵직한 대봉. 신작로 바로 밑 감나무밭을 1년내내 한번도 가보지 않다가, 어제 오후 혹시나 싶어 가보니 고목 20여그루에 매달린 감이 400개는 족히 넘을 듯하다. 지난해에는 태풍이 휩쓸어 거짓말이 아니라 1개도 남지 않았다. 감농사도 제대로 하려면 감꽃(감또개) 필 무렵 등 깎지벌레 방지 농약 등 못해도 서너 번은 해야 정상이다. 농약하는 게 예삿일이 아니어서 일찌감치 포기, 예초질이나 풀약(제초제) 한번 하지 않고 묵혀버렸다. 그런데 400여개라니? 횡재橫財(전북 표준어는 홍자, 영어로 windfall이라 한다던가)맞은 것같아 기분이 좋았다.
뭣도 모르고 친구와 50여개를 따오다, 동네 형님으로부터 쿠사리(야단)를 맞았다. 감은 서리를 맞은 후 따야 맛있다는 것. 몰랐다. 오늘이 상강霜降, 곧 서리가 내리면 따리라 맘먹었다. 그나저나 이 많은(?) 감을 어떻게 할까? 핵가족, 피붙이 그리고 친구를 비롯한 지인들과 나눠먹는 재미는 쏠쏠하지만, 택배비가 만만찮다. 따서 상자작업하는 거야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지만, 10개만 해도 55,000원. 지난번에도 막 찧은 햅쌀을 골고루 나눠주다 보니 근 20만원이 들었다. 그렇다고 동생이, 오빠가, 친구가 쪽팔리게 후불로 보낼 수는 없잖는가. 하하. 그럴려고 시골에 사는 것 아닌가, 자기 위안을 한다. 감따기를 도와주던 친구가 우스갯말을 한다. 일곱 살 외손자가 “할아버지, 밤에 밤 까먹게 밤 좀 보내주세요”라고 했다한다. 고놈, 제법이네. 두운頭韻도 할 줄 알고. 혹시 ‘감 먹고 감(感) 좀 잡게 감 보내주세요’라고 하지 않을까.
소싯적엔 밤도 감도 귀했다. 유실수가 있는 집은 동네부자. 그것 하나 얻어먹거나 몰래 따먹으려 했던 추억들이 누구나 한번씩은 있으리라. 어디 유실수 뿐이랴. 그때는 모든 것이 귀했고, 거의 다 가난한 세상을 살았다. 우리 6학년(60대) 세대는 보릿고개를 심각하게 겪지는 않은 셈이지만. 복숭아(전북 표준어는 복송)를 이고 다니는 행상에게 겉보리를 퍼주고 몇 개씩 사먹던 시절. 엿장수가 동네에 들어서면 새 고무신을 부모 몰래 갖다주고 바꿔먹은 갱엿은 또 얼마나 맛있었던가. 우리도 생각하면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됐거늘, 일제강점기를 건너온 부모세대(80-90대)는 놀라기만 하는 세상이 됐다. 우리 동네 경로회장은 국민핵교 들어가기 전까지 빤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 맨발로 자랐다고 하신다. 입만 열면 말씀하시는 게 “존(좋은) 세상이다. 존 세상”이다. 신천지가 따로 없는 셈이지만, 정말로 ‘좋은 세상’인지 나로선 늘 의문이다.
아무튼, 멸구 폭탄을 맞았든 안맞았든 들판이 점점 비어 간다. 논 추수야 기계가 맡는다해도, 밭 추수는 일일이 해야 한다. 마늘을 심고, 고구마를 캐고, 들깨를 털는 일도 장난이 아니다. 며칠 있으면 양파도 심어야 할 판. 지독히 더웠던 여름날도, 추적추적 장마처럼 내리는 가을비에도 불구하고, 가을은 어쩐지 풍요하다. 그런데 고추잠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한 마리도 보지 못했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고추잠자리가 가을을 마중하고 코스모스가 한들한들거려야 가을이건만, 금세 가을이 짧게 지나고 곧 매서운 겨울이 올 모양이다. 설악산에 첫 눈이 내리고 조석으로 쌀쌀하다 못해 잠바를 꺼내 입어야 한다. 이제 전형적인 사계절, 삼한사온의 온대溫帶는 책 속에서나 존재하는 걸까. 이상기후가 겁나고 두려운 것은, 전쟁 발발만큼이나 우리 후대後代들 걱정 때문이다. 한 갑자甲子나 산 우리야, 농담으로 '지금 죽어도 호상好喪'이랄 수 있겠지만(100시대에 무슨 호상인가?), 아들대, 손자대는 그러지 않지 않는가.
어쨌거나 겨울에 앞선 조락凋落의 계절, 가을은 나를 멜랑콜리하게 만든다. 오죽하면 가수 차중락이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며 가는 가을을 아쉬워 했을까.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라지만, 이상하게 집중이 안되어 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에도 빠지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3년은 너무 길다’는 말처럼 정치政治가 날이 갈수록 수상殊常쩍기 때문은 아닐까. 아지 못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