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이 바람이 불더니 묵호의 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거리는 쥐 새끼 한 마리 없다.
길 고양이들이 돌아다녀서 그런 모양이다.
50 년이 넘은 용궁수퍼 건너편이 보영극장이 있었다.
용궁수퍼는 떼돈을 벌었다.
주인은 지금도 수퍼를 매일 열어서 지나가는 담배 손님을 받고 있다.
80살이 넘었다.
운동 나갔다가 그의 술 자리에 끼어 앉아 소주 한 잔 얻어 먹은 적이 있다.
보영극장이 공터가 되었다.
묵호지구 도시 재생 사업으로 무엇인가 또 지을 작정인가 보다.
내가 사는 원룸 옆에도 정체모를 건물이 2 년전에 지어져서 지금도 놀고 있다.
딱 한번 이벤트를 열고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원룸 뒤에는 150대의 차가 들어갈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발한동 사무소 주차장이다.
하루에 차도 없이 찾아오는 늙은 민원인이 10명이 겨우 넘는데, 주차장이 너무 넓다.
원룸 주차장도 15대가 들어 갈 수 있는데 지금은 7대만 사용한다.
원룸 주변에는 주차장이 넘쳐난다.
내가 매일 운동하는 운동기구가 있는 묵호 건강증진센터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도시를 재생한다는 것을 건물을 짓고 약아 터진 모습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것으로 착각 하는 정부는 정신 나갔다.
김운경 작가의 유나의 거리와 서울의 달을 감명깊게 본적이 있다.
유나의 거리를 보게된 이유는 단 하나이다. 20년전 ‘서울의 달’이란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본 경험이 있는데, 바로 그 작가의 작품이라는 광고를 보고서였다.
20년전 ‘서울의 달’은 서울 달동네 하층민들의 삶의 애환을 실감있게 그렸었다.
박정히 개발 독재시대, 농촌의 빈농들이 마치 잡초 뽑히듯 뽑혀서 서울로 올라와 달동네에 그들의 무허가 터전을 삼았다.
서울의 달은 바로 그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과거 농촌의 따스한 인심은 그들의 끈끈한 공동체에서 출발하였고, 서울의 달에서의 달동네는 바로 그것의 연장이었던 셈이다.
유나의 거리와 달동네 사람들은 노후된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지금, 서울은 구 도심이 개발되어 점점 노후된 건물들이 사라지고 있다.
도시 재개발 사업은 새로 짓고 때려 부수고 내쫒는 것으로만 귀결된다.
오래된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오래된 것은 역사가 스며있고 애환이 있고 슬픔이 있고 사랑이 있고 情이 있다.
묵호의 재개발도 역시 마찬가지다. 쓸데 없는 신축을 하고 필요도 없는 주차장을 만들고 정체 모를 관공서 건물이 들어선다.
재배발 사업과 도시계획이 그 동안 보여준 것은, 부동산 투기와 건설재벌의 이익 뿐이었다.
그들은 도시의 진정성을 모르고 있다. 도시는 항상 깨끗하고 정리된 것으로만 있어서는 안된다. 도시는 더럽고 천박하고 힘 없고 왜소한 것과 같이 있어야 한다.
도시의 풍요로움이 유지되자면 그러한 빈곤한 것들이 같이 있어줘야 한다는 것을 도시계획자들은 모르고 있다.
자본주의 난장판인 도시에서 착취할 것이라고는 도시의 빈민이다. 부자들은 그들을 내쫓고 더이상 누구로 부터 착취를 할 것인가.
이제, 도시계획이란, 부유층과 권력층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수 많은 방법 중에 하나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도시계획은 필요없다.
도시에 단 하나 남은 휴머니티 공동체 달 동네가 사라지면 도시는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로 남을 뿐이다.
멕시코의 콜로니아 프롤레타리아, 페루의 바리아다, 튀니지의 구어비빌, 인도의 부스티, 터키의 게세콘두,베네수엘라의 란초.....모두 서울 달동네의 다른 이름들이다.
마지막으로 바바라 워드의 페루의 바리아다를 연구한 결과를 읽어보자.
이곳에서는 혼란과 붕괴를 찾아볼 수 없다. 폭력적인 경찰 진압에 맞선 공유지 점거는 고도로 조직적 양상을 띠고 있고, 내부에 정치조직이 있어서 해마다 선거를 치른다.
수천명의 주민들은 경찰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공공설비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지만, 질서를 유지하며 더불어 살아간다.
점거 초기에는 짚으로 집을 짓지만, 곧 벽돌 집과 시멘트 집으로 바뀐다.
여기에 들어가는 노동력과 재료를 돈으로 환산하면 수백만 달러는 될 것이다.
취업률,임금,식자율,교육수준은 도심의 스럼보다 높으며, 전국 평균보다 높다. 범죄, 청소년 비행,매춘,도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좀도둑은 좀 있지만, 도시의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것 같다.
나는 희망한다.
사라진 보영 극장 자리의 넓은 공터에 나무를 심고 연못을 만들고 벤치를 만들고 놀이터를 만들어서,
아이들과 사람들이 찾아와서, 과거 보영극장처럼 북적였음 좋겠다.
제발, 쓸데 없는 건물은 짓지 말았음 좋겠다.
신축 건물은 틀림없이 폐허가 될 것이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보영극장 자리 시원한 나무 밑에서 늙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