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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8일(금)
* 시작 기도
주님...
바울 사도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였습니다(고전 15:10).
그런데 저는 주님을 향한 열정도 은혜에 대한 감사도 점점 식어갑니다.
그 열정의 불꽃, 은혜의 불꽃을 다시 일으켜 주옵소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이 가슴을 성령의 불로 다시 태우소서.
한 달 넘게 잿빛 하늘에 안개비가 계속 됩니다.
온 몸이 축 처지고 마음도 무겁습니다.
이런 환경에 지배 받지 않고 그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더하여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십자가 앞에 잠잠히 무릎을 꿇습니다.
주의 피로 날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나를 이끄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16:25-33
제목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나의 묵상
예수님은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일명 다락방 강화인 제자들과의 담론을 계속하신다.
16장을 마치면 그 유명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하시고 빌라도 법정에 서게 되실 것이다.
그의 이 땅에서의 모든 사역을 마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창세전에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아 말씀으로 태어나신 하나님이시다(요 5:26).
아들이신 말씀과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영생을 주기로 약속하신다(딛 1:2).
그 영생을 주기 위해서 창세전에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구세주로 오시기로 작정되셨다(벧전 1:20).
그러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아담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범죄 하여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그로 말미암아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
이러한 아담의 불의로 인하여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언약이 깨지고 말았다.
사람은 불의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실 수 없으시다.
따라서 창세전 언약을 이루시고자 그의 신실함을 나타내 보이시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되 그 아들로 하여금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지은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창세전부터 하나님이신 아들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도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또한 완전한 사람이셨다.
그는 단 한 순간도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잊지 않으셨다.
그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단 한 가지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는 것인데 그 명령은 영생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나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의의 관계가 끊어지고 멀어진 아담을 긍휼히 여기셔서 그에게 세상을 창조하신 이후 최초의 복음을 전해주신다.
그것이 창 3:15절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적인 복음과 창3:21절의 가죽옷으로 예표되는 메시야적 행위로서의 복음인 구속사건이다.
이제 예수님은 메시야로서의 이 복음을 성취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실 때가 되었다.
그런데 제자들과 수많은 유대인들은 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은 하지만 자기들의 육신적 요구를 들어주는 정치 경제 사회적 메시야 곧 민속 메시야로 믿는다.
비록 제자들이 예수님과의 담론을 통해서 소그룹 과외를 받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씀에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으로 인하여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히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요 14:1).
그러시면서 나는 내 아버지 집으로 가는데 내가 그곳에 가는 이유는 바로 너희들이 거할 거처를 준비하러 가시는 것이며 거처가 준비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데리고 그곳에 갈 것이라고 하신다(요 14:3).
주님과 가장 가까이서 함께 했던 제자들과 오늘 이 시대에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결단코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반드시 다시 와서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4:8).
이 약속은 곧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이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할 것이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이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신 후에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할 것이지만, 보혜사 성령께서 오심으로 그 성령은 곧 아들의 영이므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제자들은 울고 애통해 할 것이나 세상은 기뻐할 것인데 이는 세상이 예수님을 이겼다는 승리에 도취되어 기뻐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세상의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긴 것이며 그 십자가 죽음은 곧 세상 임금인 사탄을 심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은 세상이 이긴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승리요, 또한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영생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전략임을 알지 못하는 사탄의 패배인 것이다.
이제 주님은 제자들과의 담론을 결론지으신다.
지금까지는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지만 때가 되면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말씀하실 것이다.
그 날이 되면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것인데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아들이심을 믿었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을 친히 사랑하시므로 그들이 구하는 것을 들어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오셨고 다시금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이 지금 비유가 아니라 밝히 드러내어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그제야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시고 심지어 자기들이 무슨 질문을 하기도 전에 그것을 아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임을 믿을 수 있다고 고백한다(30절).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의 고백을 완전히 뒤엎으신다.
이제는 너희가 나를 믿느냐고 질문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잘 들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올 것인데 이미 왔다”고 하신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당신과 함께 계심을 천명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분명한 선언을 하신다.
“지금까지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너희로 하여금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너희들이 비록 이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할 것이나 거기에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여라. 왜냐하면 내가 세상을 이겼기 때문이다.”(33절).
이제 예수님이 제자들과 헤어질 때가 되심을 아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드러나게 밝히 말씀하시자 그들은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로 받았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이 고백은 온전하지 못한 고백임을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신다(32절).
그러나 지금은 그런 부족하고 공허한 고백일지라도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평안을 선포하시며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그런 현상만으로는 세상이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죽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3일 만에 부활하시므로 결국 주님께서 세상 임금인 사탄을 이길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평안을 선포하신다.
이제 제자들은 주님께서 보내신 사도가 되어 이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그 때 당하는 환난과 괴로움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지만 주님께서 성령으로 늘 함께 하시므로 그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으며 환난 중에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처럼 다 흩어지고 만다.
하지만 그 흩어졌던 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두려워 떨 때에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심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믿되 지식적으로 그리고 관념적으로 믿었던 장본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나에게 전혀 생명이 되지 않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목사가 되었음에도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복음이 아니라 감동을 주는 설교, 교훈적인 설교로 일관하는 자였음을 고백한다.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했지만 그것은 지식 그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내가 주님을 죽인 죄인임을 고백하였으나 그것 역시도 참된 진리 안에서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처럼 표적을 보고 자신들의 주님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때로는 오늘 본문처럼 예수님께서 밝히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주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수준이었다.
제자들의 공허한 믿음의 고백을 들으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버리고 흩어져 떠날 것을 말씀하신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을 향한 원망이 아니라 그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주님으로 인하여 당할 고난과 환난 앞에서 능히 담대하도록 평안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지식과 관념으로 치우쳤던 나의 공허한 믿음의 고백을 아신 주님께서 나에게도 주님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것은 나를 향한 심판이었지만 단순히 죽이기 위한 진멸이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한 징계였으며 그와 함께 복음을 알게 하셨다.
그전까지 나는 어디 가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그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인 영생을 얻었기에 이제는 지식이나 관념이 아니라 담대하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인하여 당하는 환난이나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떠한 환난을 당해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그 환난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기쁨과 평안이 그 고난을 삼킨다.
나는 주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믿는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제자들과 같이 이제는 그런 공허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날 구원하신 복음의 능력을 믿기에 누구에게든지 그리고 어디서든지 기회가 닿는 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기쁨보다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생명을 얻게 하는 것만큼 큰 기쁨은 없다.
또한 그것이 나에게 주신 사도적 사명임을 알기에 오늘도 그 사명을 기쁨과 감사로 감당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현상적으로는 주님의 십자가가 세상에 대한 패배이며 실패처럼 보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세상 임금인 사탄이 쾌재를 불렀을 터이나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그 영적 전쟁을 역전시키셨습니다.
나 역시 복음을 알지 못할 때는 늘 실패와 절망 속에서 패배자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심판 속에서 진리의 복음을 알게 된 후로는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자가 아니라 자랑할 것은 오직 복음밖에 없음을 알고 날마다 그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 살아갑니다.
나를 통하여 이 베트남 하이퐁에 참된 진리의 복음, 생명으로 나아가는 복음을 증거케 하시오니 그 사명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 되게 하시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나 비록 주님의 뜻을 몰라 헤매며 방황했던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사 이제는 오직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주께서 이기신 세상을 나도 이기게 하옵소서.
그것은 나의 옛 사람인 자아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가 되는 것임을 날마다 확인하며 살게 하옵소서.
어지러운 세상, 흔들리는 세상이오나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에 단단히 묶여 오늘도 주님의 그 아름다우신 생명으로 연합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