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아이모조선분쟁사 중에서-
답답한 마음에 작가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져옴.
(이 지도는 작가가 중국의 산형도를 어렵게 구해 위도,경도 등을 정확히 맞춰 축적 그대로 그린 것이다.
빗금친 부분이 평야 지역이다. 참고로 남경 이남은 해발고도 0m보다 낮은 곳이 많다. 그래서 지금도
병원성 유행병이 자주 일어 난다. 그 이유는 위도상 보면 알겠지만 일년 사시사철 덥고 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중국을 이해할 때 중원이란 말에 중국이 광활한 평야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사기에서 한나라는 초의 항우를 물리치고 함양을 차지하여 그 인근에 장안을 세운다.
하지만 중원통일왕조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비옥한 산동이 아닌
척박한 고원 산악에 장안을 세운다.
초의 항우가 함양을 불태우고 다시 초로 돌아간 것을 두고
사기는 '금의야행'이라며 비난한다.
하지만 지도를 보면 초는 산동의 비옥한 평야 지대에 있다.
그에게 함양은 비옥한 산동에 비해 척박한 땅일 뿐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돌아갈 수 밖에.
그럼 여기서 의문하나 유방이 함양에 욕심 없음을 나타내려고
험산을 넘어가는데 그 넘어간 산은 어디일까?
중국 사가들의 주장대로 태행일까?
여기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다음질문.
그렇다면 왜 비옥한 산동을 놔두고 다시 척박한 곳으로 돌아왔을까?
참고로 인산산맥의 북쪽은 몽골이고 하란산맥의 서쪽은 돌궐이었다.
사기에서는 초를 무너뜨리고 한이 천하를 통일 한 것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한이 건국되고 200여년이 지난 후에 쓰인
사기 화식전에는 다음의 구절이 있다.
'장안에서 동으로 가면 서초, 북초(제), 남초, 동초가 있다.'라고.
참고로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항우를 '서초패왕'이라고 한다.
그럼 초나라가 망했을까, 아닐까?
지도를 보면 산동과 의주는 바다건너 하루도 안 걸리는 곳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조선정벌때 험산을 넘어 몇날 씩 헤매며 다녔다가
군사를 잃고 기시형까지 당했을까?
과연 조선이 어디에 있었기에.
지도의 하단에 무릉 산맥이 보인다.
모두가 알다시피 무릉도원의 이야기가 있다.
전래된 얘기에 따르면
그들은 진한의 역동기에 그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살았다 한다.
그럼 한나라가 중원을 통일한 것이 맞을까?
한나라에 의해 왜곡된 지금의 중국 역사는
사실이 아니라는게 중국의 민간사학과 한국의 민간 사학의 정설이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현재의 우리네 강단 사학 대부분은 일제가 배출해낸 자들의 후학이다.
그들은 그 잘난 교수라는 직함으로
자신들보다 학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민간사학자들을 배제한다.
그리고 한학생에 한학기 등록금으로 수백만씩 받으면서 하는 일은
중국과 일본의 연구서를 번역하는 정도다.
따라서 그 지경이니 동북공정이니 하는 것에 대한 반론은 꿈도 못꾸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민간사학자가 국가가 정한 박사라는 타이틀이 아니어도
어떤 부분에선 오랜 연구로 특화된 사람들이다.
학교 한번 안다녔지만 독학으로 또는 집안의 환경 덕에
한문학, 어문학에 정통한 사람도 많다.
따지고 보면 강단사학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들이 여테껏 잘못 돼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의 모든 기득권도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은 일반 정서와는 먼 헛소리를 맞다며 사기칠 수밖에.
흔히 '이이제이'가 옛날일이라고 하는데
사실을 알고보면 현재 진행형이다.
조선의 본래 이름, 그리고 최근까지도 조선인들이 경영했던 중국사.
산해경에서 말한 조선천독의 의미.
초나라 왕성이 웅(熊)씨인 이유.
강단이 주장하는 북방에 있던 흉노가 어떻게 남방에 당을 차렸나?등등.
현재로 돌아와
한국의 민족사학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
왜 일본과 중국이 전쟁을 불사하면서 까지 이처럼 영토문제를 급히 서두르는 걸까?
모두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사에서 비롯된 문제다.
어떤 사람은 비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세계 고대사를 누가 장악할 것인가의 문제라면 이해가 갈까?
게시판에 올라오는 말도 안되는 많은 글들을 보며
'사람들은 정말 이런게 궁금하긴 한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답답한 마음에 올려 봅니다.
첫댓글 동료를 보내는 회식을 마치고... 얼콰한 마음에 올리는 댓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본문에 나오는 금의야행... 초의 항우가 (척박한) 함양을 불태우고... 다시 (비옥한 평야지대) 초로 돌아간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요?
항우는 농경사회의 지도자였으니... 목축이나 가능한 지역을 욕심 낼 이유가 없죠.
그런데 그들이 세를 형성하니... 일거에 제압하고... 본거지로 회귀한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무리에게 초원은 황무지나 다름없고,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무리에게 논은 진창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는 종합예술임을 인식한 자들만 다뤄야 할... 고등 문화임을 전하면서... 소금 장수는 소금에 발을 담그지 않아도 된다는 금언을 전하고 싶습니다.
무슨 근거로 서초가 농경 사회일거라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항우는 서초패왕이라는 문구에서도 보듯
항우를 두고 중원 전체로 말하시면 곤란하죠.
항우가 초나라 전체를 대표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참고로 초나라의 왕성은 웅씨랍니다.
항우의 본거지가 산동이 아니라고 주장한 학자가 없습니다... 이제 그 산동이 어디인가만 증명하면 됩니다... 그 산동은 지금의 산동입니다.
@金子 산동 전체라는 말씀인가요?ㅎㅎ
항우는 그저 패땅의 군장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서초패왕이라 불렸던 거지요.
@타임로드 산동은 산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갈석산의 동쪽이 산동으로....,.. 산동은 지금의 북경 근처를 가리키며....... 항우가 최후를 맞은 곳이... 산동이라고... 초한지에 분명히 나옵니다.
@金子 초한지는 소설입니다.
역사서 어디에 그런 말이 나오는지 알려 주시죠.
참고로 갈석산은 중국말로 하면 우리말 '제단산'이 됩니다.
확인해 보세요.
중국인들은 돌석자를 '단'이라 읽습니다.
그래서 천제를 지내죠. 거기서 ... 조선 땅을 바라보면서요.
@타임로드 말꼬리를 돌리지 마시고... 중국문헌에 나오는 산동의 기준이 갈석산입니다... 진시황 정의 만리장성도 갈석산 줄기 하방부터 가곡관까지임은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죠.
@金子 그건 동북공정을 하는 지금의 기준이겠죠.
그럼 초한전이 있은후 이백년 후에 쓰인 사기에 나오는 동초, 남초, 제는 요?
그리고 한무제 때 조선 정벌도 있었고,
북방에는 부여, 고구려도 있었습니다.
대체 무엇을 근거로 산동의 기준이 갈석산이라는 건지....이해가 안되네요.
@金子 초한지가 소설이라구요?... 당연한 얘기지요...어느 역사서가 진실만을 기록했답니까?... 수많은 허구 속에서 진실 한가닥을 찾아내는 것이 역사학도가 할 일입니다,..다행이도 저는 역사학도가 아닙니다.
@타임로드 산해관부터 가곡관까지 시황 정의 장성이 있었다... 이게 동북공정의 기준이라고요?... 번짓수를 잘옷 짚으셨습니다.
@金子 얼큰하신 것은 알겠는데, 나중에 멀쩡할때 다시 얘기 하시죠.
근거와 함께요. 더이상은 의미가 없네요.
@타임로드 왜요? 김삿갓으로 알려진 김병연 선생은... 얼큰한 상태에서 더 좋은 시를 쓰셨는데... 나는 아니라는 말인가요?
@金子 그럼 원문을 올려 드릴 테니 보시죠.
사기에는 만리장성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西起臨洮,東達遼東,越山跨谷,延袤萬餘里,號為萬里長城。
해석해 보세요.
여기 어디에 갈석이란 말이 있는지.
이게 만리장성에 대한 중국 사서의 기록 전부입니다.
이후에 쓰인 것들은 다 그 아류로써 개념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죠.
그나마도 1900년경에 쓰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 보다 더 전에 쓰인 것을 근거로 대시던지
아니면 이 구절 속에서 님이 말씀하신 것을 찾아보세요.
원하시면 그 지역들이 지금의 어디인지도 알려 드리죠.
새로운 사실을 알리려 가입했는데 이게 이 까페의 수준이라면 실망스럽네요.
@타임로드 먼저... 취중에 올린 글이라 님의 감정을 건드렸을 단어가 몇 개 들어가 있으나....본문에도 그런 단어가 들어 있으므로 그건 퉁 치기로 하고...
@金子 타임로드님이 올린 글 중에...동달요동... 동쪽은 요동까지 닿았다... 맞지요?...그 요동까지 도달한 것이 천하제일문이 있는 산해관이잖아요?... 사서는 왜곡할 수 있지만... 변형되었을 수는 있지만 왜곡되지 않은 것이 유적입니다... 천하제일문이 있는 한 장성은 동쪽으로 뻗어 나갈 수 없습니다... 이게 동북공정을 저지하는 논리입니까? 도와주는 논리입니까?
@金子 동달요동... 성의 동쪽끝이 요동입니다... 요즘도 논란이 되고있는... 요하...랴오허 강 동쪽까지 성이 넘어왔습니까 아닙니까?... 넘어오지 않았죠?...그렇다면 사서에 나오는 요하는... 지금의 난하로 해석함이 옳을 것입니다.
@金子 갈석산... 중국의 황제들이...하늘에 제를 올리던 곳입니다... 왜 그들은 수많은 산을 놔두고 하필이면 갈석산에서 제를 지냈을까요?... 그곳이 최일선...변방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쉽게 풀립니다... 신라의 진흥왕도 북한산에 순수비를 세울 때... 틀림없이 국태민안을 소원하는 제를... 북한산에서 올렸을 것입니다...이게 중국의 황제들에게 전통처럼 내려 온 것입니다.......이 정도로 올렸으면... 카페 수준이 한 차원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죠?
@金子 모두 추측성 이군요....
우공추지에 따르면 요동은 청주이고, 청주는 서주입니다.
즉,지금의 강소성을 말하지요.
堯時青州當越海而有遼東也。 ... 周禮》:正東曰青州。其疆域與《禹貢》大異。
鄭《注》雲:青州則徐州地也.
이상하시죠. 왜 만리 장성이 이리로 왔을까?
위의 지도에 그 답이 있습니다.
만리장성은 사실 옆으로 뻗은게 아니라
산맥을 타고 'ㄷ'자 형으로 뻗은 것입니다.
그러니따 당시 진나라 수도 함양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하란산맥, 인산산맥, 여량산맥 이런식으로요.
정확히 말하면 산맥 사이에 장성을 설치 한 거죠.
그래서 동서교역로가 막히자 주변국들이 진나라를 친 것 뿐입니다.
@타임로드 위의 지도 이렇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죠?
사실 중국의 산형도는 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중국얘들도 의도적으로 잘 안 올려요.
그리고 어렵게 구해 올리면 저작권 운운하면서 내리게 하죠.
그래서 저 작가가 산형도를 그린 겁니다.
보고 정학히 이해하시라고
보통 우리나라 백두대간이 높고 험하다 하는 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백두대간 평균높이 600m, 태행산맥의 평균 높이 2000m 입니다.
서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높아지죠.
하란산맥 인근은 고원평야로 해발 800m 입니다.
그렇게 카자흐스탄까지 쭉 가죠.
그냥 척박하다는 느낌하고 틀리시죠?
태행산맥만 해도 인터넷에 자료 많아요. 한번 보세요.
@타임로드 모든 것이 추측이라고요? 천하제일문이 있는 산해관도 제 추측인가요?....... 저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유적과 사서 내용이 일치하지 않을 땐... 유적이 옳은 얘기를 하고있다고...
@타임로드 장성은 시황 정이 전부 쌓은 것이 아닙니다... 시황은 이전에 있던 산성들을 연결하는 공사를 했습니다... 성이 ㅡ자가 아니고 ㄴ,ㄷ,ㄹ, 심지어ㅁ 자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金子 잘못 알고 계시네요.
유적의 왜곡이 더 쉽습니다.
현재 상황을 보세요
사서는 이미 옜날에 각국으로 퍼졌기 때문에 조작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 안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잘 모르죠.
너무 많거든요.
보통 사서 하나가 몇백권씩 되니까요.
그래서 주로 의미를 왜곡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안하는 교수라는 자들은 그들의 말을 번역해 우리에게 소개하죠.
그래서 님이 그렇게 알고 있는 것 뿐입니다.
님의 잘못은 아니죠.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지만 새로운 사실이 나오면 그것을 알아는 놔야겠죠.
그건 님의 몫입니다.
북경도 중국땅이었다.
님이 말씀하신 것들은 다 동북공정에 유리한 반도사관의 아류일 뿐입니다.
@타임로드 관련 문구를 찾아줘도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님 위의 글들 잘 읽어 보시고
지도 한번 잘 보세요.
그리고 님의 말하는 의도를 분명히 밝히세요.
전 님의 의도를 잘 모르겠네요.
@타임로드 유적의 왜곡이 쉽다고요?... 유적은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걸 보고 엉뚱한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 학자나부랭이이며... 그들에 의해 왜곡이 되는 것입니다...이런데도 사서는 왜곡이 없다고 하십니까?
@타임로드 학자들이... 님께서도 인용하셨던 사마천의 사기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여러 사료를 긁어모아... 적절히 짜깁기한 편집을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집대성의 공을 평가한 것이지... 내용의 진실성이 결코 아니라는 걸 아시기 바랍니다.
@타임로드 제 의도는... 역사를 왜곡하지는 말자 입니다...동북공정도 안되지만... 대륙조선설도 안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오래 된 회원들은 모두 아는 내용인데... 님의 질문이 있기에 세삼스레 올립니다.
@金子 전 님의 의도를 잘 모르겠네요.
전 이미 본문에서 한나라가 거짓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근거를 제시했죠.
님은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했고 소위 교수라는 학자들의 말이 그렇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만리장성 얘기도 하셨죠.
전 만리 장성이 지금의 모양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게 기준이 될 수 없다고요.
그리고 근거도 제시했고요.
그런데 이번엔 사료가 안맞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제가 제시한 것은 그들도 제시한 그 책들입니다.
유적 왜곡이 어렵다고 하시는데
님이 말씀하신 지금의 산해제일관은 명나라때야 세운것입니다.
누구나 인정하죠.
@타임로드 그리고 바로 잡아야겠습니다... 나는 항우가 한겨레임을 주장했고... 그의 본거지가 북경인근 산동이니... 북경은 당연히 한겨레의 강역이 됩니다... 이건 님이 바로 잡아야 할 내용이고.
@타임로드 그리고 또 하나... 나는 한을 세우는데 일등공신인... 장량과 한신도 동이족임을 인정한 사람입니다... 이는 단재님도 밝힌 내용이고... 또... 후한이 망한 원인도 산동에서 봉기한... 세칭 황건적의 난이며... 그들의 리더였던 장각 3형제도 한겨레임을 이미 주장했습니다... 누구의 주장이 더 민족적인가요?
@타임로드 그럼 갈석이 어딜까요?
중국인들은 지금의 갈석이 갈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사서 말고 다른 책들에서는
다른 곳이라 하죠.
예를 들어 황하에는 여러 지류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항산으로 나오는 역하逆河 입니다.
이 역하는 위에서 말했듯 청주와 그 북쪽을 가르는 경계입니다.
그 역하逆河를 두고 중국인들은 '니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니하 옆에 갈석이 있다고 합니다.
阜城、獻縣、交河、滄州、青縣、靜海、天津,並屬河間府。
皆禹時冀東瀕河之地,中流與兗分界。
王製》謂之東河。“北播為九河”,其經流《爾雅》謂之徒駭;又“同為逆河,東至碣石入海”,
後世謂之勃海者也。
@타임로드 님은 북경을 포함한 요하까지가 중국땅이라 한것이고,
저는 산동이 원래 조선땅이라 한겁니다.
님은 주로 소설의 얘기를 근거로 새우셨고,
저는 지리지와 사서의 내용을 근거로 했습니다.
@타임로드 나는 원래 중원 전체가 한겨레의 영역이었다고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중국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도 않고...써도 별로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金子 참고로... 나는 하 은까지는 중원 전체가 완전한 거수국이었고... 중원의 극히 일부에서 건국된 주나라가 거수국에서 독립을 꾀했던 최초의 국가라는 사관입니다...... 이런 사관을 기록한 사서가 있나요?... 없으면 소설이라고 비하하지 마세요... 나야말로 신 사관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金子 그런 분이 왜 요하 이동을 갈석이니 하면서 조선과의 경계라고 하시는 거죠?
그리고 제가 언급한 위의 저 책의 내용이 그 내용입니다.
물론 사료까지 다 걸고 하는 말이죠.
더구나 님은 주나라는 아니라고 했는데
그 책을쓴 분의 말에 의하면
주나라도 조선의 아류국이었습니다.
물론 사료도 다 있죠.
더구나 초나라는 한나라족이 아닙니다.
당당한 웅족이었죠.
그러니 그런 한족 운운 하는 말도 삼가해 주시죠.
사기는 한나라가 나라를 열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고대의 중원 역사를 자기 것으로 끌어 온 것일 뿐이죠.
님과 뜻은 같으나 해석의 차이인듯 하니
님과는 이제 그만 논쟁을 해야 겠군요.
@타임로드 끝으로 님이말씀하신 사관, 기록 이런 것 많습니다.
심지어는 사기에도 기록되어 있죠.
단지 그것을 읽는 법과 해석하는 법이 틀렸을 뿐입니다.
제가 타 싸이트에 올린 글들이 있으니 그것을 다시 올려 드릴께요.
그럼 이해가 되실꺼에요.
@타임로드 책이요? 나도 책을 쓴 사람입니다... 주나라가 거수국에서 벗어나려 했던 흔적이 있는데도 눈을 감은 학자 나부랭이 들에게서 뭘 더 바라겠습니까.... 백이와 숙제의 고사를 음미해 보시면 주나라의 정체가 아슴프례하게나마 잡힐 겁니다... 제발 남이 쓴 책에 함몰되지 마시고... 님의 주관으로 판단하세요.
@타임로드 조선의 경계가 요하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만주 전체가 조선이었다는 사실에 눈 감은 학자들을 질타하는 것입니다......그리고... 앞 글에도 적었듯이...사기의 동달요동을 근거로... 지금의 난하가 조선과 명의 경계라고 주장하세요... 그만큼 가르쳐줘도 모르시나요?
@金子 누가 누굴 가르친다는 건지..원..
정말 아는 것 만큼 보인다 하더니....
위에 게시판에 써놓은 것을 보시고 말씀하세요.
님과의 논쟁은 더이상 무의미 할 것 같군요.
그리고 동달요동에서 요동은 지금의 요동이 아닙니다.
옛 요동은 산동 중원 전체를 이르는 말입니다.
옛 요는 태행과 여량산맥을 일컽는 말입니다.
위에 제가 써놓은 댓글 안 보셨나요?
서구 왜구 화교중국 그들의 그 무엇하나 진실이 있겠습니까 / 거짓된 무리일따름입니다 좋은글입니다 cafe.daum.net/gogogow 에도 가끔이라도 글 올려주시길 바랍니다
초와 한이 혈투를 벌일 시절... 그들에겐 민족의식이 없었습니다... 한겨레인 항우에 맞서 싸운 장량. 한신 등도 한겨례이기 때문에 가능한 추론입니다. 그들은 양키의 우산 아래에서 아웅다웅하는 귀태녀와 아베의 경우와 같다는 겁니다.
그러던 중국인들이... 중화족=한족이라는 민족의식이 싹튼 것은...... 손문의 3민주의의 가르침을 받은 이후입니다.
역사를 공부한다면... 최하 이정도는 알고 들어 가야지요.
최후의 승자 유방에게...'한'이라는 국호를 지어준 사람이 한겨레인 장량입니다... 그 장량이 한신이 죽는 것을 보고 숨어든 곳이... 오늘날의 장가계입니다.
정말 답이 없는 분이군요.
왜 장량과 한신이 한겨레인지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사서를 통해서요.
중국 학자들에게 그런 소설의 내용을 들이밀어 봐야 웃음거리만 됩니다.
그러니 사서를 인용하세요. 저처럼.
소설 얘기는 그만 하시고요.
위에 제가 게시판에 추가로 써 놓은 글들을 찬찬히 읽어 보세요.
그들도 못찾았던 우리의 역사가 그 안에 있답니다.
@타임로드 나는 사마천의 소설 사기부터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사기는 완전한 픽션이에요.... 그런 픽션을 근거로 제시하는 분과 무슨 대화가 되겠습니까?............. 끝
@金子 픽션은 아닙니다.
고대의 내용들? 모두 사실이죠.
하지만 편집은 맞습니다.
그런 편협한 사고로는 저들의 역사왜곡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것 하나는 알고 가셔요.^^
@타임로드 장량과 한신이 왜 한겨레인지는...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상고사를 읽어보세요.
@타임로드 사기가 픽션이 아니라고요? 참... 생각의 틀을 깨세요... 사기는 사마천의 창작품입니다... 아니라면 누군가의 글을 베꼈다는 뜻이 되고... 이건 왜곡의 여지가 충분한 것입니다.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