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는 참으로 복잡한 삶의 고뇌들이 많습니다. 경제적인 공황상태에서 평생을 업으로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을 구하기도 쉽지가 않고 직장 생활을 하여도 금전적인 여유 자금을 가지는 게 빠듯하고 개중에 특출한 사람들 자영업자나 돈을 벌 수가 있는 여건이 잘 조성된 전문직들에게 한정된 모습이기에 그것도 잘 될 때 말이고 돈 벌 수 있는 기회들이 예전에 비해 많이 사라진 것을 피부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그래서 그런지 유튜버도 보면 너무 쓸데없는 프로그램들도 많고 정부 기간 공무원 채용은 상한가로 치솟고 있습니다. 행여나 남북 통일이 된다면 뽀족한 수가 나오겠다는 기대를 가져 볼 수도 있지만~).
조기 은퇴자나 은퇴를 하신 분들의 모습에서도 은퇴 자금을 어떻게 잘 활용을 해야 되는지 장난이 아닐테구요.
몸으로 할 수 있는 3D 업종들도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주변에 사람들만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이 시대가 고통을 안겨 주고 있으며 누구의 잘못도 아닌 시대적 변화는 물결의 현상들일 뿐 적응을 하면서 혼자 사는 법에도 익숙하게 살아가는 자연스러움으로 일어서야 할 개개인들의 삶의 과정들이 이렇습니다.
결혼해서도 이혼율이 증가하고 여러 원인들로 결별하는데 성격적인 문제도 있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빡빡하니 서로가 힘 들어서 헤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재혼)은 서두르면 아니 된다고 저는 보는데요. 모든 조건들이 잘 맞아떨어지고 두 사람이 합쳐서 시너지 효과가 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사는 것이 백번 났습니다. 예전에 부모님들 시대야 중매로 서로가 잘 안 맞아도 애 낳고 투들 거리면서 살았다면 지금은 어림도 없는 것은 결혼생활은 장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믿음 생활 신앙심을 강조한 이유들인데요. 기독인들은 믿음 생활로 서로가 상처 주고 상처받고 어리석은 모습을 피하려면 지혜로운 신앙생활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 입어야지만 합니다.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서 스스로 믿음 생활로 일어서서 사는 은혜와 진리 가운데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이 역시도 노력하고 안 하고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구태여 이렇게 할 이유가 있는가 하고 대충 생각하고 나는 나의 방식대로 눈 맞아서 비슷한 사람 만나서 살면 되는 걸 하고 그렇게 살 수도 있고 살아가는 방식들은 세상과 별다르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왕이면 신앙으로 승부심을 걸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찰떡같이 붙어 있으면 결혼을 안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 고통과 외로움과 고뇌를 극복하시는 능력 체험을 성경 말씀으로 다 찾아서 가르쳐 주시고 위로를 하시는데 그보다 더 큰 은혜는 없기 때문에 그러한 은혜를 사모하는 싱글 크리스천 믿음의 형제 사랑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자이시고 창조자 이십니다 성인 남.녀(아담과 하와)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몸둥아리는 하나님께서 지배하시고 심장이 박동하도록 다스리시며 이 땅에서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소히 우리들이 생각하는 예쁘다는 기준 잘생겼다는 기준이 뭐 일까요?
예쁘든 잘생겼든 내 사람이 아닌 이상은 피조물의 한 사람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 예쁜 여자와 그 잘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면 그 사람들이 내 여자로 또는 내 남자로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기준들이 뭐라는 것이죠? 단지 자기 기준에 나는 너라면 좋고 억지 주장으로 내 사람을 만들려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도 성숙한 연인들의 사랑을 바라보지 못하고 혼자만의 잘못된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타까움에 있는 것입니다(어쨌든 성인 남. 여는 인간관계성으로 사회 적응력을 가진 사람이어야만 한다).
단지 내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호기심으로 그 사람들과 함께 할 수가 있나요? 제가 보는 관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 사람도 아니지만 그냥 한 여성으로 한 남성으로 우리들이 사는 세상 속에서 피조물의 아름다움으로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히 여기고 삶의 가치관과 신앙생활이 맞고 대화가 잘 되는 사람으로서 진지하게 소통이 잘 될 때라도 우리들은 진실되게 나아가야지만 인격적인 만남의 과정이들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마음 바탕에서 시작을 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성경적인 진실 된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님이 주가 되시고 남.녀 사랑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을 하는 주 된 목적이 주님으로 개개인을 다스리며 살 때 서로를 책임 질 수있는 사랑을 하라고 강조를 하십니다.
예수님 보다 더 서로를 사랑하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먼저 주인 됨으로 모시고 그다음으로 서로를 책임질 수 있는 연인의 모습으로 주를 사랑하는 사랑으로 열애를 하면 깨질 염려가 없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치십니다(에베소서 5:21-33).
아무리 잘 만나도 불화음이 있는 만남은 결국 다투고 싸워서 헤여지게 마련입니다. 사전에 이런 불미스러운 모든 것들이 잘 해결이 될 때에 주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할 수 있는 성숙함으로 만남을 가질 때를 알고서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십니다.
엔조이는 불을 가슴에 품고서 불일 듯 서로가 육체의 정욕을 못 잊는 것입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은 열등의식에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죄의 소원이 가득해서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창세기 4:6-8). 행여나 엔죠이로 바라보는 경향들이 많이들 있다면 우리들은 성경적인 바른 이성관으로 음행을 피하고 서로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알 때 몸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고린도전서 6:17-20).
죄의 욕망들은 죽이고 싸우고 다투는 분노를 하면서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경향들이 있다면 그러한 시기 질투심을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는 믿음의 능력으로 다스리시고 창조자의 지식까지 새롭게 함을 바라보는 인간관계의 성숙함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골로새서 3: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