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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인도를 제외한 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국가들은 저개발국가이기는 하지만 많은 인구와 내수시장 활성화로 경제성장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취약한 경제구조와 열악한 환경과 재해, 코로나19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후폭풍 등의 여러 원인으로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각 국가들의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이 경제위기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파키스탄의 임란 칸(Imran Khan) 총리 불신임(2022년 4월), 스리랑카의 디폴트 선언 및 고타바야 라자팍사(Gotabaya Rajapaksa) 정권 실각(2022년 5월), 방글라데시의 IMF 취약국 지원용 기금 신청(2022년 7월) 등 남아시아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고성장 중인 인도를 제외한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3개 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위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파키스탄의 경제위기
파키스탄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와 대외채무 누적으로 인한 재정건전성 악화가 임란 칸 총리의 불신임 및 정권 교체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임란 칸 정부는 친중(親中) 노선을 고수하며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나, 이는 재정적자 심화를 가져왔다고 평가받는다. 친중 노선으로 서방과 멀어지며 국제적 입지가 축소됐다는 평가가 있었던 파키스탄은 일대일로 프로젝트 등으로 부채에 허덕이던 와중에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치며 심각한 경제난을 겪게 되었다. 파키스탄의 대외 채무는 2022년 1,300억 달러(한화 약 156조 원)에 달하였다. 소비자 물가는 20% 이상 급등하며 치솟고 있다.
또한 임란 칸 전 총리는 2018~2022년 총리 재직 기간에 외국으로부터 선물받은 국가 소유품을 헐값에 매입한 뒤 차익을 남겨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빼돌린 국가 소유품의 가치는 1억 4,000만 루피(한화 약 9억 원)로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는 임란 칸 전 총리의 비위를 발표하며, 공직 선거 입후보 자격을 박탈하였다.
파키스탄 신임 총리로 선출된 샤흐바즈 샤리프(Shahbaz Sharif)는 전체 342명의 하원의원 중 174명의 지지를 얻어 총리로 선출되었다. 이에 임란 칸 전 총리와 지지자들은 계속해서 시위를 벌였다. 2022년 11월 3일에는 반정부 시위 도중 총격사건이 발생하여 1명이 숨지고 임란 칸 전 총리 등 7명이 부상을 입으며 정국은 극도로 불안해졌다. 2023년 10~11월 예정된 총선때까지는 계속해서 불안한 정국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임란 칸 전 총리가 축출되고 파키스탄의 대 중국 일대일로 파트너쉽이 변화하면서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China-Pakistan Economic Corridor) 등 양국 관계가 변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 취임한 샤리프 총리는 국가 외교정책 우선순위에 중국을 최우선으로 삼을 것이고 CPEC 프로젝트 또한 지속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2022년 8월 파키스탄 국토 3분의 1이 물에 잠겼던 대홍수(1,700명 이상이 사망하고 76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함) 때에도 샤리프 총리는 중국 정부 지원에 감사의 뜻을 전했고, 중국 정부도 부채 상환을 연기 해주는 등의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대홍수로 인해 파키스탄의 식량 가격이 치솟아 식량위기에 놓인 인구가 1,500만 명 이상이고 그 중 절반 이상은 심한 빈곤에 처하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 복구에 필요한 예산은 총 163억 달러(한화 약 19조 5,600억 원)에 달하고 있지만 파키스탄 루피화의 달러화 대비 가치는 사상 최저치로 폭락한 가운데,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금리 인상 기조로 인플레이션에 부채질을 더하며 경제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최근 파키스탄의 GDP 대비 정부부채는 70%를 웃돌며 대(對) 중국 채무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일정도 밀리면서 파키스탄의 외화보유고는 2023년 1월 말 기준 약 30억 달러(한화 약 3조 6,000억 원)를 기록하였다. 파키스탄 정부의 경제 구조조정 계획 이행이 IMF 요구조건 15개 조항 중 겨우 1개 항목만 충족했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파키스탄 산업계와 국민들이 에너지 부족의 위기에 놓였다. 파키스탄은 통상적으로 연간 전력 수요의 3분의 1 이상을 천연가스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샤리프 총리는 2023년 2월 초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파키스탄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1월말 소비자물가지수(CPI, Consumer Price Index) 기준 연간 인플레이션이 27.5%에 달했다. 이는 지난 5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이다. 파키스탄은 인근 개발도상국과 비교해도 인구증가율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낮은 편이며, 특히 연료와 식료품의 수입의존도가 높아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악영향을 크게 받았다. 정치적 혼란, 재정적자, 인플레이션, 에너지위기, 코로나19, 대홍수로 인하여 식량위기 및 인프라 붕괴 등의 여파로 파키스탄 산업계와 국민의 경제 악화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 바,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경제 위기의 장기화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스리랑카의 경제위기
지난 2022년 5월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스리랑카는 6월 자국 경제의 완전한 붕괴를 시인했다. 내전이 끝났지만 여전한 테러문제와 코로나19로 크게 위축된 관광산업의 영향으로 약 510억 달러(한화 약 61조 2,000억 원) 규모에 이르는 심각한 부채에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스리랑카의 주력 산업인 관광 산업은 2018년 44억 달러(한화 약 52조 8,000억 원) 규모로 국내총생산(GDP)의 5.6%를 차지했으나, 2020년에는 6억 8,200만 달러(한화 약 8,200억 원)에 그치면서 GDP에서 비중이 0.8%로 급감하였다. 2021년 유기농법을 도입하겠다며 화학비료 등의 수입을 금지하는 실정으로 농업생산성이 줄었고,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며 글로벌 식량, 에너지 위기 우려가 커진 것도 스리랑카 경제위기를 가속시켰다. 통화 가치가 80% 넘게 떨어지면서 결국 정부는 디폴트를 선언하였고 가뜩이나 통제 불능 상태였던 인플레이션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전례 없는 심각한 경제 위기에 대규모 시위가 발발하였다.
국가부도 다음 달인 7월 9일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은 군용기로 스리랑카를 탈출했다. 대통령이 몰디브로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시위대는 대통령궁을 점거하여 시위를 계속 이어 나갔다.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궁핍했던 국민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라자팍사 정권에 크게 분노 하며 SNS를 통해 이 사실을 알렸고, 이는 전국적인 분노를 사며 더 큰 시위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라자팍사는 도망 중 이메일로 대통령을 사임하였고 총리였던 라닐 위크레마싱게(ranil Wicremasinghe)가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선출되었다. 도피 중이던 라자팍사 전대통령은 싱가포르, 태국을 거쳐 미국으로 몸을 숨겨 지내고 있다. 동생 바실 라자팍사(Basil Rasapaksa) 전 재무장관도 스리랑카를 떠나 미국으로 도피하였다. 이들의 도피로 수십 년간 스리랑카를 지배해온 라자팍사 가문 시대는 막을 내렸다.
사실 라자팍사 가문은 스리랑카에서 구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던 정치적 힘이 막강한 집안이었다. 고타바야 라자팍사의 형 마힌다 라자팍사(Mahinda Rajapaksa)는 2005년 제5대 대통령에 오르고 5년 뒤 연임에 성공했던 인물로 2009년 27년간 이어져 오던 아시아 최장기 내전을 종식시키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인물이다(이 내전 동안 10만 명 이상이 숨졌으며 실종 14만 명, 난민 수는 160만 명에 달하였다). 그는 내전기간 동안 인도 및 서방국가들이 원조를 중단하자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넘겨야 했다. 중국은 서방 국가들의 경제제재로 인해 고립되어 경제상황이 악화된 스리랑카에 다가갔고 마힌다 라자팍사는 이를 환영하였다. 더욱이 그는 고향인 함반토다 개발에 관심을 가졌고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일맥상통하였다. 2선이나 했던 마힌다 라자팍사는 3선을 가능하게 하도록 헌법을 고치려다가 2015년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Maithripala Sirisena)에게 패배하며 야권으로 머무르게 되었다. 그 당시 스리랑카에서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서 헌법을 좌지우지하려던 라자팍사를 내몰은 것이다. 시리세나는 대통령직에 오르며 마힌다의 정적이었던 위크레메싱게를 총리에 올렸다. 이때 총리직에 오른 그가 7년 후 대통령의 자리 오른 것이다.
시리세나는 친중 노선의 마힌다 라자팍사와는 달리 인도와 서방과의 관계회복,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 그리고 이는 곧 중국의 무역 및 차관 제재로 이어졌다. 사실 스리랑카가 내전을 치르는 동안 가장 큰 도움을 준 국가는 중국이었다. 1991년 1억 달러(한화 약 1,200억 원)의 무기공급 계약을 체결한 후부터 2013년까지 약 20년간 소총, 탄약, 탱크, 전투기 등 20억 달러(한화 약 2조 4,000억 원)의 군사용 무기를 공급했다. 무기공급뿐만 아니라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점차 가시화 됨에 따라 천문학적인 액수 각종 투자 및 차관을 제공하였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간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스리랑카에 50억 달러(한화 약 6조 원) 이상을 빌려주고 고속도로와 항만, 공항 등 기반시설을 건설했다.
2010년대 초반 내전이 끝나고 관광 산업이 부흥하며 스리랑카의 경제성장률은 7%대에 육박했다. 중국과 외국 자본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인프라 건설이 중심이 되며 경제발전이 가속화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중국의 차관 금리는 스리랑카 정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높았다. 더욱이 도입된 차관으로 스리랑카 내수시장이 활성화 되기는 커녕 중국국영기업이 거대사업을 맡아 진행하며 그쪽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갔다. 인력도 중국인, 원자재도 중국산이었기 때문에 스리랑카 내수 경제 활성화는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계속해서 누적되어만 갔고 이윽고 스리랑카는 함반토타항 건설에 투입된 14억 달러(한화 약 1조 7,000억 원)를 상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스리랑카는 2017년 중국 국영 항만기업에 99년 동안 함반토타항 운영권을 넘겨야 했다. 디폴트 선언 전 스리랑카의 외환보유고는 약 10억 달러(한화 약 1조 2,000억 원) 정도였는데 반해, 중국에 상환해야 하는 채무는 국유기업에 대한 대출을 제외하고도 약 34억 달러(한화 약 4조 원)에 달하였다. 중국국영기업 채무까지 합하면 약 45억 달러(한화 약 5조 4,000억 원)이고 총 대외채무는 165억 달러(한화 약 19조 8,000억 원)에 달했다. 빚이 빚을 낳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는 국민들은 라자팍사 가문에 크게 분노하였음은 자명한 이치였다.
위크레메싱게 정부는 510억 달러(한화 약 61조 원)의 외채 구조조정을 위해 2년간 채무 상환 유예 제공을 요청했고 중국은 이를 받아들였다. 중국은 2023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채무 상환 연장 계획을 제시하면서 IMF와 다른 채권국들이 요청한 부채 감축에 대해서는 반대하였다. 중국을 전략적 라이벌로 보고 있는 인도는 지난달 구제금융 계획을 촉진하기 위해 IMF에 보증을 서 줬다고 발표했다. 인도는 스리랑카에 44억 달러(한화 약 5조 2,800억 원)의 긴급 신용을 제공했다. 겉으로 보면 스리랑카의 국가부도사태는 코로나19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변제 능력 밖의 거대차관도입 등 경제위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이지만 기저에는 혼란한 정치상황이 내재되어 있다. 내전을 끝내기 위한 무리한 군비확장, 비인도적인 군사작전, 그로 인한 경제제재가 시작점이고 그 후 마힌다 라자팍사의 독재를 위한 개헌시도, 각종 부정부패, 족벌정치, 끊이지 않는 테러, 종교분쟁, 언론탄압, 무리한 선심성 감세정책, 인종차별 등의 사회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인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경제위기
방글라데시는 약 1억 7,0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국가로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고 빈곤한 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워낙 인프라가 저개발인 상태였기에 6~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고성장을 이어왔고 실제로 향후 3년 내에 최빈개도국 지위를 졸업할 예정이기도 하다. 21세기 들어 고속성장을 하며 2019년 GDP 3,200억 달러를 기록, 1인당 GDP에서 파키스탄을 앞지르기도 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2020/21 회계연도 성장률이 3.5%로 둔화되기는 하였지만 2021/22 회계연도에는 경제성장률이 5.5%를 기록하며 약간이나마 회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방글라데시는 2022년 6월 말 외환보유고 감소세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IMF에 45억 달러(한화 약 5조 4,000억 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요청하였다. 방글라데시는 IMF가 요구하는 각종 경제 개혁 프로그램에 동의해야 하기에 큰 규모의 구제금융이 쉽지 않자, 같은 해 7월 IMF에 회복ㆍ지속가능성기금(RST, Resilience and Sustainability Trust)을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RST는 저소득국가의 기후 변화 및 빈곤 문제 등 중장기 프로젝트 시행을 위해 IMF가 새로 설치한 기금으로 10억 달러(한화 약 1조 2,000억 원) 정도 지원이 가능하다. 방글라데시의 총 대외부채 규모는 약 1,000억 달러(한화 약 120조 원)에 달한다. 대형 인프라 사업으로 인해 부채가 최근 5년 동안 두 배로 증가하여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관광산업이 거의 전무한 방글라데시의 경제위기는 스리랑카와는 결이 사뭇 다르면서도 결국은 코로나19 후유증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크게 작용한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식품, 에너지 가격 등이 급등하면서 대외부채가 빠르게 증가하였다. 특히 방글라데시는 원유, 석탄 등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에너지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화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는 등 각종 문제가 연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달러화 강세로 대외부채가 불어나는 동시에 외환보유액은 1년 사이 100억 달러(한화 약 12조 원)가 감소하는 등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방글라데시 통화인 타카는 2022년 대비 약 20% 하락했다. 이는 수입 원자재 가격 급등을 가져오고 외화가 빠르게 유출되는 것을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에 따른 경제위기 우려 속에 정부가 유가를 50% 인상하며 전국적으로 큰 시위가 발발하기도 하였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번 조치가 인플레이션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180억 달러(한화 약 21조 6,000억 원)로 1년 전 동기 25억 달러(한화 약 3조 원)보다 7배 정도 크게 증가했다. 2022년 11월 방글라데시의 물가상승률은 8.85%, 12월은 8.71%로, 에너지 및 식량 위기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26년 후진 개발도상국(LDC, least developed countries) 지위 종료가 다가오며 많은 혜택을 누렸던 산업에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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