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 야훼일까, 야웨일까, 야베일까, 야흐베일까? 여호와일까, 여호바일까, 예호바일까?
누구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불안증’이 있다. 인류종교․문명사에서 하나님은 친근함보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시대마다 모든 사람들이 물었다.
“하나님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어떤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지? 어떤 하나님이 나에게 노하셨는지? 그것을 알아내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또 한편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유화하거나 독점하거나 이용하려는 욕망과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하나님에게 요구하는 삶의 욕망’이다. 따라서 그 삶의 욕망이 드러나는 ‘미래의 하나님의 사건’을 통해서 그 답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모세의 질문에 대한 정답은 ‘야훼하나님의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이다. 야훼하나님은 파라오 노예제국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노예들을 해방하고 구원하셔서 야훼하나님의 사람들로 삼으려고 하신다.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야훼는 거리낌 없이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계시 하신다.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אֶֽהְיֶה אֲשֶׁר אֶֽהְיֶה 나는 존재하는 존재이다. 또는 나는 나다.”
‘에흐예 אֶֽהְיֶה 존재하는 이 또는 스스로 있는 이’ 인류종교 문명사에서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어떻게 헤아려야할까? 수많은 성서학자들이 위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기 위해 세 가지 해석유형을 마련했다. 그러나 위 계시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해 왔다.
첫 번째 유대교전통에 따른 해석인데 ‘그가 창조한 모든 것들을 존재하게 한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풀어서 새기면 모든 역사적인 사건과 자연현상들은 야훼의 뜻과 섭리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이다. 특별히 히브리노예들의 해방과 구원의 사건이야말로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신 야훼의 의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구속사신학이다. 우리말 성서는 이러한 견해에 따라 출애굽기 3: 14절 야훼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했다.
두 번째 현대의미가 묻어나는 해석으로써 ‘나는 나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헬라어 70인 역 성서는 이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에고 에이미 호 온 Ἐγωʹ εἰμι ὁ ὤν 나는 존재하는 존재다’라고 번역했다. 이 번역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예수의 자기계시 ‘에고 에이미 호 랄론 소이 Ἐγωʹ εἰμι ὁ λαλῶν σοι 너에게 말하는 내가 바로 그다’와 닮았다.
세 번째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사용하는 히브리어 동사 ‘에흐예 אֶֽהְיֶה’가 미래단순형임을 전제로 ‘나는 ~ 이든 될 것이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실제로 출애굽기 3:15절에서는 보다 짜임새 있고 알기 쉬운 하나님 이름의 형태를 ‘예흐바 יְהוָה 3인칭 미래단순형’으로 제시한다. 이 이름의 뜻은 ‘그는 ~ 이든 될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기계시에 대한 이 해석의 근거는 출애굽기 3:14절에서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전해줄 하나님의 이름을 ‘예흐바 יְהוָה’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또 야훼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밝히시면서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이다. 나아가 히브리노예들을 해방하고 구원하셔서 자기 사람들로 삼으시고 그들의 삶을 인도하시겠다는 야훼하나님의 의지 때문이다. 실제로 야훼하나님은 히브리노예들과 함께 ‘~ 이든 될 실 분이고 ~ 이든 하실 분’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세 번째 해석이 히브리 노해방예들의 희년신앙 행동에 걸맞은 해석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 야훼께서 나타나심으로써 출애굽 해방과 구원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야훼하나님의 이름이 파라오 노예제국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 해방노예들의 공동체 신앙체험과 신앙고백에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으로써 야훼는 인류종교․문명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괴짜 하나님이라는 것 때문이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해 낸 너희 하나님 야훼이다”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이름은 여호와일까? 야훼일까?
위 질문은 한국교회와 교우들을 괜스레 헷갈리게 한다. 필자는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 이름은 ‘여호와일까, 야훼일까’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하려고 한다. 맨 처음 히브리 성서는 모음 없이 자음으로만 쓰여 졌다. 그것은 아마도 히브리 해방노예들이 히브리 성서를 통으로 외워서 입에서 입으로 전수하며 암송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히브리어 자음알파벳 가운데 ‘요트, 바브’ 등 모음처럼 발음되는 글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1세기에도 유대인들은 히브리 성서를 모음 없이 전통과 관습에 따라 정확하게 을 수 있었다. 따라서 히브리 성서에는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 이름이 ‘요트, 헤, 바브, 헤(יהוה)’라는 자음으로 쓰여 있다. 서구교회는 이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을 ‘YHWH’로 표기해 왔는데 이 표기를 ‘신성사문자 神聖四文字’라고 부른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하신 이름’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이름을 너무도 거룩히 여겼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동안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이름을 직접 부르기 보다는 에둘러서 ‘아도나이 אֲדֹנָי 주님’이라고 읽었다. 마찬가지로 고대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한 헬라어 70인 역 성서도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이름을 ‘퀴리오스 κύριος 주님’이라고 번역했다.
한편 바벨론 포로기 이후 유대인들은 고대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않고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헬라시대의 이르러는 많은 유대인들이 헬라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고대 히브리어는 죽은 언어가 되었다. 21세기 현재 이스라엘에서 사용하는 현대 히브리어는 새롭게 만들어진 언어다. 1880년대에 이르러 유대인들이 수천 년 동안 죽어 있던 고대 히브리어를 밑바탕으로 다시 살려낸 언어다. 현대 히브리어 역시 모음이 없이 자음알파벳만 사용한다.
맛소라 학파와 맛소라 본문
‘맛소라’라는 말은 ‘전통’이라는 뜻이다. 5-10세기까지 히브리 성서를 바르고 정확하게 후대에 전승하려고 노력했던 유대교 랍비그룹을 일컫는다. 이들은 전통에 따라 엄격하게 히브리 성서를 낭독하기 위해 히브리어 자음 위․아래와 자음들 사이에 모음을 붙여넣기 시작했다. 성서학자들은 이들을 ‘맛소라 학파’라고 이름 짓고 이들이 확정한 히브리 성서를 ‘맛소라 본문’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초대교회로부터 종교개혁 때까지 서구교회는 유대교 히브리 성서를 거부했다. 대신에 고대 헬라어 70인 역 성서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 때에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유대교 히브리 성서를 모국어로 번역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이 유대교 히브리 성서 맛소라 본문은 번역대본으로 선택했다.
맛소라 학파들은 유대교 히브리 성서에서 잊어버린 히브리들의 하나님이름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아도나이 אֲדׄנָי 주님’이라는 히브리 낱말의 모음 ‘아, 오, 아’를 빌려서 ‘요트, 헤, 바브, 헤 יהוה 신성문자’의 네 개 자음에 붙여 넣었다. 그런데 히브리어 자음 ‘요트 י’ 는 약자음이라서 완전모음을 붙여 넣는 대신해서 ‘유성쉐바’를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맛소라학파가 되찾은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 이름이 ‘예호바 יְהׄוָה’다. 히브리 성서에서 이 이름이 처음 나타는 곳은 창세기 2:4인데 전체 6천여회 정도 나타난다. 서구개혁교회에서는 14세기부터 맛소라본문에서 되찾은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이름 ‘예호바 יְהׄוָה’를 널리 사용했다. 이 이름을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예호와’이다. 우리말 성서는 영어식 발음에 따라 ‘여호와’라고 표기했다.
한국교회는 왜 히브리 노예들의 하나님 이름을 ‘야훼’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서구교회 종교개혁자들 가운데는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이름 ‘예호바 또는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서학자들도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이름을 ‘예호바’라고 읽는 것이 히브리어법에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성서학자들은 4세기 시리아 안디옥교회 주교였던 ‘테오도레투스’(Theodoretus)가 남긴 ‘출애굽기 질문서’(Quaest)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사마리아사람들이 부르던 하나님 이름을 ‘야베 Ἰαβε’라고 자기문서에 기록해 놓은 것을 찾아냈다. 성서학자들은 ‘야베’라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하나님 이름에서 모음 ‘아, 에’을 빌려와서 ‘야흐베 יַהְוֶה’라는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 이름을 되살려냈다. 그 후 1947년 이집트 쿰란에서 발견된 고대 헬라어 성서 70인 역의 한 사본에서도 ‘야베 Ἰαβε’라고 번역된 하나님 이름을 발견되었다. 그런데 한글은 세상의 모든 언어들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다. 새로운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이름도 ‘야흐베’라고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서구교회에서는 달랐다. 새로운 하나님이름 ‘야흐베’를 독일어식으로는 ‘야붸’ 읽었고 영어식으로는 ‘야웨’라고 발음했다. 그렇다면 왜 한국교회에서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이름을 ‘야훼’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1977년 부활절에 한국개신교회와 천주교회가 함께 에큐메니컬 운동으로써 공동번역 성서를 내놓았다. 이 공동번역성서는 세계교회사에서 오롯이 한국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공동번역 성서를 공식적으로 채택한 교단은 대한성공회와 한국정교회 뿐이다. 이때 공동번역 성서가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이름을 ‘야훼’라고 번역했다. 그것은 서구 종교개혁자들이 되살린 하나님이름 ‘야흐베 יַהְוֶה’를 영어식으로 발음 한 것일 텐데, 왜 ‘야훼’라고 읽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물론 필자는 서구교회 종교개혁자들이 되찾은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이름을 ‘야흐베’라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맛소라 학파들이 되살린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이름도 ‘예호바’라고 읽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히브리 성서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 이름을 ‘예호바, 여호와, 야훼, 야붸, 야흐베 등’ 무엇이라고 읽어도 괜찮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이름들은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을 부르는 발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책에서 이미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는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이름 ‘야훼’를 사용한다. 물론 필요와 쓰임에 따라서 ‘여호와’라는 하나님이름도 가리지 않고 사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교회와 교우들이 한국교회 안에 이미 널리 알려진 히브리노예들의 하나님이름에 대해 소모적인 헷갈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