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는 스위스의 알렌이라는 사람이 전쟁의 비참함을 몸소 체험하고 만든 단체로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인도주의 적인 면에서 부상자들을 도우며, 정치적이나 종교적인 장벽을 뛰어넘어 전세계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라고 우리는 어릴적부터 배워왔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십자에 대해 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남북적십자단체간의 활동이나 헌혈등의 사회활동은 적십자의 선한 이미지를 더욱더 좋게 포장하는데 큰 역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 적십자사의 현실은 어떠할까? 얼마전 내부고발에 의해 밝혀진 대한 적십자사의 현실은, 정말이지 다신 헌혈을 하고 싶지 않아질 정도로 문제가 많다.
아래는 심층 분석 기사들의 모음. 길다고 '읽었다 치자;' 하지 말고 꼭 읽어보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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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잃고도 외양간 안 고쳐?
감사원 감사 이후에도 혈액관리 여전히 ‘구멍’ … 헌혈 2910명분 B형 간염 검사 없이 공급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가 지난 5년 동안 에이즈와 간염에 양성반응을 보인 7만6000건의 혈액을 각 병원과 제약사에 공급했다는 감사원의 충격적인 감사 결과가 보도된 뒤 적십자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뜨겁다. 각 인터넷 포털사이트마다 탄핵정국에 버금가는 국민적 반발이 잇따르자 적십자사는 4월2일 모든 중앙 일간지에 대국민 사과문을 싣고 “감사 이후 과거 양성 경력이 있는 헌혈자가 헌혈을 하게 되더라도 자동 폐기되는 등 헌혈 전부터 공급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며 해명에 나섰다.
직원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발단 … 복지부에 보고도 안 해
그러나 “신상정보가 잘못 통보된 에이즈 환자 199명의 혈액은 출고된 사례가 없고, 과거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63명의 에이즈 감염이 우려되는 자는 최종 확인검사 결과 이상이 없었다”는 등 적십자사의 사과문은 오히려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꼬박꼬박 딴죽을 거는 ‘반박문’에 가까웠다. 적십자사는 형식적으로나마 사과문에서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주간동아’ 취재 결과 감사원 감사 이후에도 혈액 안전관리가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 감사가 끝난 지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2910명분의 헌혈 혈액이 B형 간염 검사를 거치지 않은 채 각 병원, 제약사에 그대로 공급된 것. 더욱이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는 자신들의 이런 엄청난 실수를 3월 초에야 뒤늦게 발견했다. 2000년 4월 이후 유통 금지된 부적격 혈액을 수술 환자에게 공급함으로써 5명(적십자사는 3명이라고 주장)의 B형 간염 환자를 발생시킨 적십자사가 이번에는 아예 검사조차 거치지 않은 혈액을 그대로 공급한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일단 당시의 상황을 재연해보자.
지난 2월12일 적십자사 남부혈액원 혈액검사과 직원 최모씨(임상병리사)는 B형 간염 검사기가 고장 나자 검사용 혈액 샘플을 모두 C형 간염 검사기에 옮겨넣고 검사를 계속 진행했다. B형 간염 검사기와 C형 간염 검사기는 같은 종류의 검사기계로 입력하는 양성(감염) 판단 기준치(Cut-off값)에 따라 B형 간염 검사기로도, C형 간염 검사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즉 B형 간염의 감염판단 기준인 0.05를 Cut-off값으로 입력해놓으면 B형 간염 검사기가 되고, C형 간염의 감염판단 Cut-off값인 0.4를 기준으로 설정하면 C형 간염 검사기가 되는 것이다. C형 간염 검사기의 양성판단 기준값을 0.4에서 0.05로 바꾸어놓으면 B형 간염 검사 결과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했다. 최씨가 B형 간염 검사용 혈액 샘플을 C형 간염 검사기에 넣으면서 기준치를 B형 간염 검사기준으로 변경하는 것을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검사 안 거친 혈액 유통에도 “수혈감염 사고 우려 없다” 발뺌
이날 C형 간염 검사기로 검사한 561명분의 B형 간염 검사용 샘플에서는 당연히 B형 간염 양성반응자가 단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B형 간염의 양성판단 기준치는 0.05인데 검사기에 입력된 기준치는 그보다 8배나 높은 C형 간염의 양성판단 기준치 0.4가 입력돼 있으니, 설사 B형 간염 환자의 혈액을 넣었다 하더라도 검사 결과는 전혀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오게 된다. B형 간염 환자의 Cut-off값은 아무리 높아도 0.4를 절대 넘을 수 없다. 561명의 혈액 검사가 끝나는 동안 최씨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고, 고장 난 B형 간염 검사기는 수리를 위해 외부로 보내졌다.
최씨는 다음날도 C형 간염 검사기의 기준값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 채 B형 간염 검사를 C형 간염 검사기에서 그대로 진행했다. 이날 하루 들어온 1612명분의 헌혈 혈액 샘플에서도 B형 간염 양성반응은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틀 동안 무려 2173건의 혈액이 B형 간염 검사를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시중에 유통된 것이다. 사흘째에는 최씨가 아니라 다른 직원인 이모씨가 최씨 대신 헌혈 혈액에 대한 B형 간염 검사를 진행했다. 이씨는 기준치 입력이 잘못됐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또다시 713명분의 혈액이 B형 간염 검사를 받지 못한 채 병원과 제약사에 공급됐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나흘째 고장 났던 B형 간염 검사기가 수리가 끝나 돌아오면서 중단됐다.
하지만 최씨와 이씨는 그때까지도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정상대로라면 B형 간염 검사기가 수리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그 대용으로 사용했던 C형 간염 검사기의 기준값을 C형에 맞게 바꾸기 위해 점검을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기준값을 변경하지 않고 B형 간염 검사를 엉터리로 한 사실을 발견해야 했다. 그렇게만 했어도 병원과 제약사에 보내진 혈액 중 그때까지 사용하지 않고 보관 중인 혈액을 다시 수거해 폐기하거나 재검사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이들의 실수는 3월18일 적십자사 수혈연구원의 검사시약에 대한 시험평가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이미 공급된 혈액은 모두 병원과 혈액원에서 사용된 뒤였다. 적십자사는 최씨를 즉각 해임하고 이씨와 검사과장, 혈액원장을 각각 중징계하는 선에서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 모두가 적십자사 산하 16개 혈액원 중 유일하게 ISO(국제표준규격) 인증을 받은 남부혈액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검사과정 없이 유출된 혈액들의 B형 간염 감염 가능성이다. 보통 우리 국민의 5~8%(바이러스 보유자 포함)가 B형 간염에 노출돼 있고, 평상시 검사 혈액의 평균 2~5%가 B형 간염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이는 것을 고려하면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25명분의 B형 간염 감염 혈액이 유출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또 1명분의 혈액이 혈장과 혈소판, 적혈구로 원심분리된 후 수혈용과 혈액제제 원료로 공급되는 점을 감안하면 그 피해의 정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더욱이 유출된 혈액 속에는 1차 B형 간염 검사에서 양성이 나와 재검사가 요구된 24명의 혈액이 포함돼 있어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 적십자사측은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냉동 보관된 2500여건의 문제 혈액 검체(검사를 위해 보관해둔 시료)에 대한 B형 간염 검사를 재실시한 결과 단 한 건도 양성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며 “수혈감염 사고의 우려는 절대 없다”고 밝혔다. 적십자사는 또 “검체 조사 과정에서 약한 양성반응이 나온 5명의 혈액이 성분별로 9개 팩(unit)으로 나눠져 병원으로 출고됐으나 전혀 이상이 없는 혈액”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적십자사측은 검체에 대한 검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감독기관인 복지부는 ‘징계를 했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반응.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적십자사는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조사하고 ‘죄는 있어도 피해는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이와 관련, 부패방지위원회는 이번 사건 또한 적십자사의 조직적인 ‘부패행위’로 판단해 자세한 진상조사에 나서는 한편 국무총리실에 이를 보고했다.
과연 “수혈감염의 우려가 전혀 없다”는 적십자사측의 해명은 사실일까?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은 이제 감사원의 감사자료를 넘겨받아 수사에 나선 검찰(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의 몫이 됐다. 감사원의 감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 적십자사가 검찰수사 과정에서도 그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Tips
Cut-off값
건강한 다수의 데이터를 기초로 산출한 수치로서 검사 수치가 이 값보다도 높은 경우 양성, 즉 해당 질병에 걸린 것으로 여긴다.
■ ‘도덕성 해이’ 이만하면 챔피언!
‘비영리’ 말뿐, 사업자 등록 내고 피 장사 … 적자에도 간부 자리 늘리고 유급휴직 6개월 ‘선심’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날인 3월13일 오전,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는 각 언론사에 ‘헌혈 급감으로 혈액 수급 비상, O형 혈액 재고량 바닥’이란 보도자료를 급히 보냈다. 적십자사의 절박한 호소에 공감한 탓인지 각 방송사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비상사태에서도 이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보도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를 주도한 인터넷 다음의 카페 ‘국민을 협박하지 마라’ 게시판에는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헌혈운동도 같이 하자”는 내용의 게시물이 떠돌아다녔다. 이들의 주장은 수만명이 모이는 집회와 문화 공연장에 이동 헌혈차가 오면 혈액 부족 사태가 한꺼번에 해소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적십자사는 8만명이 모인 광화문에 헌혈차를 단 한 대도 보내지 않았다. 인근 혈액원은 이날 하루 동안 단체 헌혈차를 아예 운영조차 하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과 평일 저녁 7시가 넘으면 근무를 하지 않는 적십자사 혈액원의 관행 때문이다.
혈액 재고 바닥나도 직원들은 ‘칼퇴근’
네티즌들은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음 집회가 있었던 3월20일 다시 헌혈차를 보내오도록 요구했다. 이번에는 ‘탄핵반대를 하면서 헌혈운동도 함께 하자’면서 혈액원측에 ‘광화문 특별 헌혈팀’을 구성할 것도 요청했다. 하지만 13만명(경찰 추산)이 모인 3월20일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도 헌혈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관할 중앙혈액원의 이동 헌혈차는 오전 동안 경기 일원 군부대에서 190명의 군인에게서 헌혈을 받은 후 운행을 중단했다. 그나마 그중 120명분은 수혈을 위해 쓰이지 않고 의약품 원료를 만들기 위한 혈장성분만 채혈했다. 당장 병원에서는 수혈용 O형 적혈구 혈액이 없어 환자가 죽어간다는데 의약품 원료로 쓰이는 혈장성분만 채혈한 것이다. 한술 더 떠 인근 남부혈액원은 ‘주5일 근무제를 시범 실시한다’며 이날 하루 완전히 휴무했다. 헌혈의 집도 마찬가지.
상황이 이런데도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혈액 급감의 원인을 ‘수혈부작용 추적조사 발표(2월25일, 수혈로 간염 감염자 10명 발생)’로 인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 탓으로 미루며, “혈액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화가 난 네티즌들이 ‘헌혈 인구가 많은 토·일요일, 평일 저녁 시간 모두 쉬면서 혈액이 모자란다고 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가 아니냐”고 항의하자, 적십자사는 게시판을 통해 이렇게 답변했다.
“대한적십자사는 대한민국 법체계(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아래에서 설립되어 운영되는 비영리 특수 법인체이므로 당연히 대한민국 노동법을 준수해야만 합니다. 오는 7월부터 실시되는 고용원 3000명 이상의 사업장, 주 40시간 노동제는 선택조항이 아니라 강제조항이므로 저희 대한적십사 혈액원들도 의무적으로 이를 따라야만 합니다. 이 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과연 적십자사가 구호, 봉사 활동을 목표로 하는 사회단체이자 국가를 대신해 생명이 위독한 환자에게 혈액을 전해주는 ‘비영리’ 특수 법인체일까. 국세청에 확인해보면 이는 동전의 한쪽 면이라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적십자사는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낸 제약업체다. 그것도 혈액이라는 ‘완전 의약품’ 시장을 98%나 장악한 독과점 업체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헌혈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혈액이 아무 대가 없이 생명이 위독한 환자에게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완전한 오산이다. 헌혈을 통해 적십자사에 들어온 1명분의 혈액(전혈, 400㎖ 기준)은 3만5390원에 각 의료기관에 팔려나간다. 의료기관은 이를 환자에게 공급한 뒤 구입가격에 5000원을 붙인 4만570원을 보험수가 명목으로 받아낸다. 물론 이는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지불된다. 만약 이 혈액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려 적혈구농축액(2만3380원), 신설동결혈장(2만4910원), 혈소판농축액(2만8230원)으로 분리하면 가격은 2배가 넘는 7만6520원으로 훌쩍 뛴다. 이뿐 아니다. 적십자사는 혈액 중 혈장만을 따로 뽑아 만든 혈액성분 제제의 원료를 제약사에 공급하면서 4만5500원(1명분)을 따로 벌어들인다.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 산하 혈장분획센터에서 만들어진 혈액성분 제제 반(半)제품은 국내 2개 제약사로 공급돼 엄청난 이윤이 붙여져 환자들에게 공급된다. 심지어 외국에서 들여오는 혈장성분 제제의 수입판매 권한도 모두 적십자사에 있다.
적십자사가 수혈용 채혈이 일절 금지된 말라리아 우려지역의 전방 군인에 대해 단체헌혈을 강행하는 이유도 모두 성분제제를 만들 혈장을 따로 뽑아(성분채혈) 제약사에 팔기 위해서다. 적십자사는 수혈용과 달리 성분채혈로 뽑아낸 혈장이 약품 제작과정에서 불활성화 처리에 의해 말라리아균이 모두 죽는다는 이유로 전방 군인에 대한 단체헌혈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배경을 두고 온갖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적십자사에서 혈장성분 제제를 반제품 상태로 제약사에 공급하면서 손실률을 감안해 10% 정도를 더 얹어주는데 제약사로서는 이를 굳이 장부에 기록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약사가 이를 완제품으로 만들어 팔면 그야말로 ‘합법적인’ 비자금을 조성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 제약사 사장은 이것을 가지고 골프장을 짓기도 하고, 적십자사에 대한 로비 자금으로도 사용했죠. 적십자사가 단체헌혈에 매달리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지 않습니까.”(D제약 전 대표 김모씨)
지난해 공짜로 피 뽑아 2238억 수입 … 그래도 적자?
문제는 ‘돈벌이용 성분채혈’에 눈이 멀어 수혈용 전혈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수혈용 전혈은 적정 재고량을 확보하지 못할 때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실제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가 혈액이 부족하다고 발표한 3월13일 이후 나흘 동안 서울 동부혈액원은 6포병여단(말라리아 주위지역)에 헌혈차와 인력을 투입해 450명의 군인에게서 혈장만을 따로 뽑아냈으며, 중앙혈액원은 3월15일부터 21일까지 일주일 동안 군부대와 각 대학, 고등학교에 대한 단체헌혈에 나섰으나 수혈용 전혈은 1530명에게서 받은 반면, 혈장은 2620명에게서 받아냈다. 혈장을 따로 성분채혈하는 시간이 수혈용 혈액을 뽑는 시간에 비해 3배나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적십자사가 얼마나 혈장채혈에 목을 매는지 잘 알 수 있다.
적십자사가 지난해 이렇게 국민에게 혈액을 ‘공짜’로 뽑아 벌어들인 수입은 무려 2238억원. 하지만 어디에 썼는지, 적십자사는 지난해 혈액사업에서 36억원 정도의 적자를 기록했다. 도대체 적십자사는 이 많은 돈을 어디에다 썼을까. 적십자사가 헌혈자에게 주는 것이라고는 음료수와 빵, 과자 부스러기뿐. 적십자사는 이를 구입하기 위해 헌혈자 1인당 3000원의 헌혈 장려금을 따로 비축하고 있다. 그런데 적십자사의 내부제보자들과 적십자사 출신 의사들은 한결같이 헌혈 장려금이 다른 곳으로 새고 있다고 증언한다.
“제약사로 보낼 혈장을 단체 채혈하기 위해 군부대 장교식당에 에어컨과 냉장고를 사주고, 국민의 피로 벌어들인 돈으로 술접대를 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접대를 받은 군 장교들은 헌혈한 병사들 중에서 에이즈 의심자가 있어 자세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아요. 할 수 없이 제가 사비를 들여 군부대에 가서 해당 장병의 혈액 샘플을 받아오곤 했죠.”(인천혈액원 의무실장 출신 전문의 김명희씨)
국민의 피를 뽑아 마련한 적십자사의 살림살이가 이렇듯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 데는 적십자사의 방만한 경영도 일조를 한다. 적십자사는 국민의 공적부조(혈액과 성금)로 운영되면서도 2002년 4월 적십자사 산하 혈액관리국에 혈액사업본부를 따로 만들고, 이의 운영을 위해 16개 혈액원에서 혈액 수익금의 15%를 갹출하도록 했다. 거기다 재정적 권한도 없는 2년 계약직 혈액사업본부장(의사) 밑에 부본부장을 둔 위인설관(爲人說官)식 조직구조를 만들어 또 하나의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일은 행정직인 부본부장이 다 하는데도 본부장에게 판공비와 고급 승용차, 비서까지 제공한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90년대 혈액원이 전국 16개로 늘어난 것도 모두 혈액원장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문어발식 확장이었다”며 “실질적으로 혈액원은 전국에 6~7개면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혈액원장들에게도 영업용 차량이라는 명목으로 자가용을 제공하고 비서도 두게 하고 있다. 심지어 정년퇴직을 앞두고 6개월이나 유급 공로휴가를 주고 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혈액 유출사고의 책임을 지고 3월15일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은 서울 남부혈액원장은 12월이 정년이지만 징계가 결정된 이후 3개월간 병가를 내고 벌써부터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웬만한 공기업을 뛰어넘는 적십자사의 ‘도덕적 해이’ 현상은 부적격 혈액 유출과 수혈감염 사고를 제보한 자사 직원의 징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적십자사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언론에 알려지던 3월29일 곧바로 공익제보자인 직원들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소집했다. 이들이 ‘언론에 잘못된 자료를 흘렸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이후 계속된 공익제보자와 적십자사의 지루한 다툼은 감사원 감사 결과, 공익제보자의 제보 내용이 모두 사실로 드러남으로써 더 이상의 이의가 있을 수 없게 됐다.
더욱이 이미 공직자의 부패행위에 대한 심사기능을 갖고 있는 부패방지위원회도 제보자의 이번 제보가 ‘공익성’이 있다고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적십자사는 제보 직원에 대한 징계 철회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공익 제보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혈액안전관리에 일조했음에도, 직원의 이익을 대표하는 적십자사 노조까지 ‘직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동료 직원인 제보자들의 징계를 촉구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외부인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적십자사는 자신들을 ‘공기업’이라고 부르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적십자사가 기업이 아니라 순수한 사회봉사단체라면 어떻게 세무조사를 받을 수 있겠는가. 국세청은 최근 1949년 적십자사 창설 이후 처음으로 적십자사 산하 각 조직에 대한 전면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적십자사의 자금 운영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심지어 국세청은 이번 기회에 ‘혈액세’를 신설하겠다고까지 밝히고 있다.
잘못을 하고도 시인할 줄 모르는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100년 역사의 적십자사 전체가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 인터뷰 / 혈액사고 무료소송 전현희 변호사
“과실 명확한데 수혈 탓 아니라니”
끊임없이 책임을 회피하는 대한적십자사와 지난 1년간 지루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피해자와 의료시민단체의 중심에는 전현희 변호사(40ㆍ사진)가 있다. 치과의사이자 국제통상 전문변호사인 그는 최근 2년간 오염혈액사고 관련 소송을 무료로 전담하고 있다. 그 첫 소송은 2002년 에이즈(AIDS)에 오염된 의약품(혈액성분 제제)으로 인한 혈우병 환자들의 집단 피해 사례. 시민단체인 건강세상네트워크가 ‘오염 혈액을 유출시켰다’며 적십자사, 보건복지부, 국립보건원(현 질병관리본부)을 상대로 낸 형사소송의 법률자문역을 맡은 것도 바로 그였다. 다음은 전변호사와 한 일문일답.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됐다. 앞으로 진행될 소송은?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 피해자들의 소송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B·C형 간염 피해자들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도 피해자 조사가 끝나는 대로 들어갈 것이다.”
-적십자와 국가를 상대로 싸우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의료사고인 만큼 법률적인 입증이 어렵다는 점이다. 아직도 적십자사는 에이즈나 간염의 전염 경로가 수혈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적십자사의 과실이 명확해진 지금도 역학조사에 소극적이다. 오염된 피의 제공자와 수혈로 감염된 사람의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명확해지겠지만 그 엄청난 비용을 피해자에게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수혈사고에 대한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혈액은 국민의 생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공공재라는 점에서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는 혈액관리를 하는 데 제 역할을 못하고 적십자사에 방치해두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더 주체의식을 가지고 철저하게 관리 감독에 나서야 한다.”
-수혈 감염자에 대한 배상기준이 최고 3000만원에 그치고 있는데….
“국가배상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 과거 에이즈 수혈 사례로 인한 배상액이 대법원 판례로 고착된 점이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손해배상기준을 다시 세워서라도 현실적인 보상이 절실하다.”
■ “혈액원에 전문가 수혈해야”
‘행정직 책임자’ 체제로는 안전성 보장 못해 … 혈액감시단 활용한 ‘혈액원 인증제’도 필요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와 감사원은 수혈사고 파동 대책으로 새로운 전산시스템의 도입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부적격 혈액의 유출과 수혈사고의 원인은 전산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검사의 오류 때문이다. 애초 전산시스템에 잘못된 검사 결과가 입력돼 발생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적십자사가 획기적으로 원인을 밝히고 자기의 잘못을 시인해 이를 발표한 것은 칭찬해주어야 마땅한 일이다. 우려되는 대목은 적십자사가 이번 대책에서 ‘전산시스템을 개선했기 때문에 오류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전산시스템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몇 년 전에 실시한 헌혈의 결과뿐이다. 이 과정에서 해결할 수 있는 오류는 극히 일부분이다. 오히려 전산시스템과 이를 뒷받침한 혈액관리법 시행령이 헌혈해도 괜찮은 건강한 사람을 헌혈하지 못하게 묶어놓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전산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손놓지 말고 더욱 종합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실천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
적십자 혈액원이 오염된 혈액을 공급한 원인은 간단하다. 검사의 잘못이다. 간염에 걸려 있는 사람의 혈액검사 결과가 음성이어서 안전한 혈액인 줄 알고 공급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양성으로 나왔어야 할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원인을 밝혀야 개선할 수 있는데, 이번 발표에는 검사가 ‘왜 잘못됐는가’라는 문제가 빠졌다. 대책은 바로 여기에 집중해 세워져야 한다. 최대한 민감하고 정확하게 검사해 오염된 혈액을 밝혀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검사의 오류를 완벽하게 막을 방법은 없다. 다만 줄일 수 있을 뿐이다. 100% 신뢰할 검사법이나 시약, 기기 및 검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검출 민감도가 99.9%라고 해도 간염 환자 1만명이 헌혈하면 10명은 음성으로 나오고, 혈액원은 이 혈액을 수혈용으로 공급할 수밖에 없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검사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평가(정도 관리) 방법이 도입돼야 한다. 즉 검사에서 오차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이 오차를 발견할 방법을 개발해 이미 실시한 검사 결과가 믿을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적십자사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헌혈자의 과거 헌혈검사 결과와 현재의 검사 결과를 비교하는 방법은 보완책의 하나일 뿐이다.
적십자사는 우선 언제나 ‘잘못’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부터 배워야 한다. 잘못을 인정해야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 하고, 원인을 알아야 잘못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적십자사, 잘못 인정하는 법부터 배워야 재발 막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잘못은 그 존재 자체의 부정으로 인해 덮어지기 일쑤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혈액관리를 포함한 의료 부분에서 발생하는 오류에 대한 대책의 첫 단계는 오류를 수집해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적십자사가 자체 조사를 통해 오염 혈액이 수혈된 사례를 밝힌 것은 그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 어느 의료기관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안전 수혈을 위한 획기적인 혈액관리 개선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또 정부는 장기적으로 혈액원 인증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각 혈액원의 혈액관리 업무를 세부 내용까지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헌혈에서부터 수혈 부작용 유무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전문가로 구성된 혈액감시단(가칭)이 감시토록 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개선책은 혈액 전문인력의 활용 부분이다. 현재와 같이 비전문가인 행정직이 혈액원의 책임자로 있는 체제에선 어느 의료인도 적십자사가 공급하는 혈액의 안전성을 믿지 못할 것이다.
적십자사의 ‘자기반성’에 찬사를 보내면서, 더욱 혁신적인 혈액관리 대책이 나올 것을 기대해본다.
■ 수혈 감염 추적조사는 면죄부용?
한심한 혈액관리 은폐·축소 급급 … 혈액제제 공급 내용·조사 기간 납득 어려워
”저도 수혈에 의해 C형 간염에 감염된 게 확실해요. 어떻게 하면 되죠?”
‘수혈로 인해 10명 이상이 B형·C형 간염에 감염됐다’는 ‘주간동아’의 보도(424호)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런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는 2월25일 보건복지부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수혈 부적격 혈액의 유출로 B형 간염 양성자 4명과 C형 간염 양성자 5명이 발생했다”며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약속했다. 이 내용이 보도되자 ‘주간동아’와 시민단체, 적십자사 홈페이지에는 자신이 수혈에 의해 간염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2002년 3월까지 대학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했다는 김모씨(30ㆍ여)는 “직업 특성상 매년 두 차례씩 검사를 했지만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2002년 4월 출산 전후 한 차례씩 수혈을 받은 후 곧바로 C형 간염에 감염됐다”며 “수혈이 아니고서는 C형 간염에 걸릴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적십자사가 실시한 이번 추적조사 대상에 김씨는 포함되지 않았다. 김씨와 같은 경우가 적지 않자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들은 “적십자사의 이번 추적조사가 방대한 혈액사고 중 극히 일부분만 보여주기 위한 면죄부용 조사”라고 지적한다.
과연 수혈에 의해 간염에 감염된 사람이 9명밖에 없다는 적십자의 발표는 사실일까? 일단 적십자사의 보도자료를 보자.
2000년 4월1일 이후 출고된 혈액 약 1622만건 중 과거 혈액검사 결과 양성반응 경력을 가진 헌혈자가 이후 음성 판정을 받아 출고된 혈액 2550건에 대한 수혈 부작용 추적조사를 완료하였습니다. …수혈자에 대한 최종 조사결과 B형 간염 양성자 4명, C형 간염 양성자 5명을 확인하였습니다(다만 B형 간염 항원 및 항체검사 결과에서 모두 양성으로 나타난 1명과, B형 간염 항원검사 결과 음성이나 중심항체검사 및 외피항원검사에서 양성으로 나타난 1명에 대하여는 간염 가능성은 낮으나 추후 추적관찰이 필요한 상태임).’
자신이 저지른 부조리를 직접 조사하는 ‘행운’을 잡은 적십자사는 추적조사 발표 직전 수혈 감염자 수를 은폐, 축소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적십자사가 보도자료를 내기 직전 작성한 ‘수혈감염 추적조사에 관한 발표문’에는 ‘수혈자 검체 검사 결과 양성반응이 B형 간염 5건, C형 간염 5건 등 10건’이라고 분명히 적시돼 있다.(사진) 적십자사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실 10명이 맞지만 감염자 수를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줄이기 위해 9명으로 적었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마저도 사실이 아니었다. 서울대 의대 조한익 교수와 간(肝)사랑동우회측은 “적십자사가 보도자료에서 ‘간염 가능성이 낮다’며 통계에서 뺀 2건의 경우, 드물기는 하지만 모두 B형 간염”이라고 밝혔다. 즉 총 11건의 수혈감염 사고가 발생한 것을 ‘드문 경우’라는 이유로 1건을 줄인 후 발표 직전 감염자 수를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바꾸기 위해 또 한 건을 감염자 수에서 뺀 것이다. 결국 ‘수혈에 의한 간염 감염자가 10명 이상’이라는 주간동아의 최초 보도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셈이다. 추후 추적조사를 하기로 했지만 앞으로 이들 2명에 대한 배상과 치료비 지급 문제 등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번 추적조사에서 가장 큰 의혹은 혈액 중 혈장 성분으로 만드는 혈액제제에 대한 추적결과가 발표내용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헌혈 혈액이 들어오면 적십자사는 적혈구와 혈소판은 수혈용으로 병원에 공급하고, 혈장은 알부민·면역글로불린·혈우병치료제 등 혈액제제를 만들기 위해 각 제약사로 보낸다. 즉 감염 우려가 있는 수혈 부적격혈액(헌혈유보군·과거 전염병 양성반응 혈액으로 출고가 절대 금지된 혈액)을 수혈용으로 제공했다면 그 혈액에서 추출된 혈장도 혈액제제의 원료로 제약사에 공급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감염 우려가 높은 이 혈장이 적십자사의 혈장분획센터에서 재처리과정(분획)을 거치면서 수천, 수만 명분의 정상 혈장과 합쳐져 전체 혈액제제를 오염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혈액제제는 일반인은 물론 매일 이를 주사해야 하는 백혈병이나 골수이식, 혈우병 환자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의약품이다.
적십자사는 오염된 혈액제제로 인해 수많은 사람의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문제의 혈액이 들어간 혈액제제 완제품에 대한 전수(全數)조사를 포기했다. 적십자사에서 혈장을 받아 혈액제제를 만드는 국내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이후 적십자사로부터 문제 혈장이 들어간 혈액제제 완제품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보받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적십자사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분획과정을 거쳐 제약사로 출고되기 전 검체 상태로 보관된 문제 혈장에 대한 핵산증폭검사를 다시 실시한 결과 모두 음성으로 나왔고, 이중 의심스러운 일부 건에 대해 완제품 검사를 실시했기 때문에 추적조사를 완료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이와 관련, 국내 혈액제제 생산 제약사 두 곳은 2002년 7월부터 2003년 8월까지 1년여 동안 모두 2만1000여 명분의 혈장(제품시가 30억원)을 두 차례에 걸쳐 모두 폐기처분했다. 이유는 이 혈장은 모두 적십자사가 분획 이후 자체 핵산증폭검사를 거쳐 제약사에 제공한 것이었지만, 제약사의 자체 검사결과 그 안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즉 적십자사가 출고 이전 벌인 핵산증폭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왔다고 해서 혈액제제 완제품에 이상이 없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복지부는 도대체 뭐 하고 있나
또 다른 의문점은 적십자사의 추적조사 시점이 왜 하필이면 2000년 4월부터 시작하는가 하는 부분. 적십자사는 “혈액관리법상 ‘헌혈유보군’의 개념이 만들어진 시점이 그때부터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적십자의 한 내부 관계자는 “2000년 이전에도 ‘헌혈유보군’의 개념은 적십자 내부지침에 ‘수혈부적격자’라는 개념으로 존재했다”며 “2000년 이전 수혈 부적격 혈액의 유출이 워낙 많다 보니 그 후부터 추적조사를 시작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1999년 12월 당시 혈우병 환자들의 에이즈, 간염 발생률을 보면 전체 혈우병 환자 1329명 중 48.9%인 650명이 C형 간염에, 3.7%인 49명이 B형 간염에 감염됐고, 에이즈 환자도 무려 21명에 달했다. 전체 환자 중 간염에 감염된 환자만 절반이 넘는다. 혈우병환우회 김성근 사무국장은 “혈우병 치료제가 없으면 당장 죽을 수밖에 없는 혈우병 환자의 절반 이상이 B형, C형 간염에 감염된 상황에서 적십자사가 혈우병 환자를 추적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에이즈에 이어 간염의 수혈 감염도 법적으로 대응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적십자사 발표의 신뢰성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요소는 추적조사에 소요된 시간이다. 적십자사의 보도자료에는 추적조사에 소요된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적십자사가 당초 추적조사 계획을 발표한 시점은 국정감사가 벌어졌던 지난해 10월이었다. 하지만 서류 분석을 마치고 각 혈액원이 2550명의 수혈자와 800여명의 헌혈자에 대한 실제 추적조사에 들어간 시점은 올 1월이었다. 17개 혈액원이 모두 동원됐다 하더라도 쉬지 않고 매일 60명의 사람과 병원, 질병을 추적했다는 결론이다. 국립보건원이 역학조사를 실시했다면 몇 년이 걸릴 분량을 적십자사는 단 50여일 만에 해치운 셈. 또 추적조사 중 분명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거나 주소지 이동 등에 의해 추적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이 있었을 텐데 그에 대한 내용도 전혀 없다. 보건복지부 공공보건관리과의 한 관계자는 “행정자치부의 도움을 받으면 얼마든지 사라진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데 단 한 번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일이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적십자사에 대한 감사 및 관리 권한을 가진 복지부의 혈액 담당 직원의 답변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혈액을 전담하는 부서가 생긴 지 얼마 안 되고 전문성이 없어 적십자사가 보고하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최근 몇 년 사이 일본에서는 수혈에 의한 C형 간염 감염사고 때문에 제약사가 문을 닫고 보건성 장관이 사퇴했으며, 영국에서는 에이즈와 C형 간염 감염 사례 수천여 건을 정부가 직접 밝혀내 1000억원을 들여 배상에 나섰다. 과연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떠도는 ‘에이즈 혈액’ 누구 탓인가
국립보건원·적십자사 총체적 직무유기 … 유통 사실 공개 뒤에도 사태 축소 급급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국립보건원(현 질병관리본부)이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에 에이즈 환자 199명의 신상정보를 잘못 통보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헌혈을 통해 들어온 에이즈 환자의 혈액이 각 병원과 제약사에 공급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적십자사는 지난 10여년 동안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국립보건원은 적십자사가 일부 환자의 정보가 잘못된 사실을 알아내고 확인을 요청해왔으나 이마저도 묵살했다.
이 같은 사실은 감사원이 지난해 11~12월 적십자사를 대상으로 벌인 ‘혈액안전실태’ 감사 결과 밝혀졌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감사원의 적십자사 통보 공문에 따르면 에이즈 환자 신상정보 통보 오류건과 별도로 적십자사는 에이즈나 B형·C형 간염의 감염 우려가 있어 출고가 일절 금지된 ‘부적격 혈액(헌혈유보군, 과거 혈액검사에서 단 한 차례라도 양성반응이 나왔던 혈액)’ 7만5575건을 지난 5년 동안 병원과 제약사에 수혈용과 의약품 원료로 공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중 에이즈가 의심되는 헌혈유보군 헌혈자만 99명. 유통 부적격으로 판명된 이들의 혈액 306건이 시중에 유통됐다는 것이다.
감염자 신상명세 잘못 통보하고도 ‘묵묵’
심지어 최근 국내 최초로 10건의 수혈감염 사고가 확인된 B형과 C형 간염의 경우 1999년 이전 1차 혈액검사 결과 간염 양성판정을 받은 30만명의 헌혈유보군(간염 의심자)을 정확한 재검사 없이 헌혈 가능 대상으로 지금껏 방치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부패방지위원회의 감사 의뢰로 이루어진 이번 감사 결과 ‘주간동아’가 그동안 보도해온 ‘적십자사의 부적격 혈액 유출 실태와 그로 인한 수혈감염 사고’ 관련 기사(366, 401, 403, 405, 424, 425호)가 사실로 최종 확인됐다. 부패방지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주간동아’ 보도에 이어 시민단체의 고발이 잇따르자 감사원에 감사를 의뢰했다.
감사원의 이번 감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국립보건원과 적십자사의 직무유기 부분이 분명히 밝혀진 데다, 규정을 무시하고 부당 유통시킨 부적격 혈액 건수나 헌혈유보군 누락 사례가 워낙 많아 이를 관리 감독하는 보건복지부도 총체적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적십자사에 보낸 통보문에서 “적십자사는 1987년부터 2000년 6월 사이에 국립보건원이 통보한 에이즈 감염환자 명단 중 199명의 신상이 잘못 통보(주민등록번호 불일치 70명, 성명 불일치 115명, 주민등록번호 성명 둘 다 불일치 14명)됐는데도 그중 186명에 대해서는 지난해 말까지 오류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나머지 13명에 대해서는 국립보건원에 정확한 신상정보를 통보해주도록 요청만 한 채 국립보건원이 이들의 신상정보를 통보해주지 않고 있는데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고 밝혔다. 즉 국립보건원은 에이즈 환자의 헌혈 가능성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그 신상명세를 잘못 통보한 실수를 저지른 데 이어, 헌혈 과정에서 이상이 발견된 13명에 대한 적십자사의 확인 요구도 묵살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혈액관리법과 에이즈 예방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명백한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현행 두 법에는 에이즈에 대한 확진은 국립보건원에서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신상정보도 모두 국립보건원에서 관리토록 돼 있다. 때문에 국립보건원은 에이즈 확진환자가 확인되면 신상정보를 즉시 적십자사에 통보하고, 적십자사는 이들을 전산시스템상의 헌혈영구유보군(PI)으로 분류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에이즈 환자의 성명이 잘못 통보될 경우 적십자사 전산시스템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헌혈유보군으로 등재되며 정작 해당 에이즈 환자가 헌혈을 하러 오면 전산시스템은 이 사람이 에이즈 감염자라는 사실을 확인해줄 방법이 전혀 없다. 주민등록번호가 잘못 통보된 에이즈 환자는 전산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켜 아예 헌혈유보군으로 등재조차 되지 않는다. 감사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 적십자사의 전산시스템에는 199명 중 115명(성명 오류)은 다른 사람 이름으로 헌혈유보군에 등재되어 있었고, 나머지 84명은 헌혈유보군으로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헌혈을 통해 자신의 에이즈 감염 여부를 재차 확인하려는 에이즈 감염자의 특성상 199명 중 몇 사람은 다시 헌혈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감사원은 “이들의 혈액이 수혈용 등으로 공급될 경우 2차 감염자가 발생할 염려가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 지난해 8월 에이즈 환자의 혈액을 수혈받은 60대 환자 2명이 에이즈에 감염돼 이중 한 사람이 최근 사망했다
적십자사 혈액본부의 직무유기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적십자 혈액본부 산하 16개 혈액원에서 헌혈 당시 실시한 1차 혈액검사 결과 에이즈 양성반응이 나온 헌혈자를 헌혈유보군으로 등록하지 않고 계속 미루다 부적격 혈액을 그대로 유통시킨 것. 감사결과 적십자사 혈액수혈연구원은 2000년 4월부터 2003년 2월까지 각 혈액원에서 헌혈유보군 등록을 의뢰한 6498명 중 63명을 짧게는 8일, 길게는 3년 5개월간 지정을 미룸으로써 그 기간에 이들의 혈액이 각 대학병원 등 의료기관에 수혈용으로 147건, 제약회사에 의약품 원료로 81건이 공급됐다. 적십자사 혈액본부는 또 2002년 12월26일에서 2003년 5월26일까지 혈액정보관리시스템을 변경하면서 기존 시스템에 있던 헌혈유보군 헌혈자 36명을 신규 시스템으로 제때 옮기지 않아(최대 7개월) 이들의 부적격 혈액이 수혈용으로 53건, 제약회사에 25건이 유통됐다. 결국 적십자사의 직무유기로 에이즈 감염 우려자 총 99명에 대한 헌혈유보군 지정이 연기됨으로써 부적격 혈액이 306건이나 유통된 셈이다.
B형·C형 간염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감사원은 적십자사가 혈액관리법에 헌혈유보군 규정이 마련된 1999년 4월1일 이전, 1차 혈액검사에서 간염 양성판정을 받은 30만3946명의 간염 의심자를 헌혈유보군으로 등록하지 않은 채 현재까지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때문에 99년 4월1일 이후 올 1월까지 헌혈유보군으로 묶여 유통이 금지됐어야 할 부적격 혈액이 각 의료기관에 수혈용으로 4만8551건, 제약회사에 의약품 원료로 2만4317건이 출고됐다. 적십자사 내부의 한 관계자는 “헌혈유보군은 법에 명문화되기 이전에도 적십자 내부 규정상 ‘헌혈부적격자’라는 이름으로 관리되고 있었는데 이를 헌혈유보군으로 옮기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적십자사는 2000년 5월 헌혈유보군을 전산상에서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새로 도입하면서 B형·C형 간염은 제외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5월26일까지 3년 동안 B형·C형 간염의 헌혈유보군 조회가 되지 않음으로써 732명의 부적격 혈액 2232건이 병원으로, 1271건이 제약회사로 각각 공급됐다. 적십자사의 안이한 대응으로 B형·C형 간염의 감염 우려가 있는 총 7만6369건의 부적격 혈액이 유통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유출된 부적격 혈액은 어떻게 되었을까. 적십자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실시한 자체 수혈감염 추적조사에 대한 발표(주간동아 424호 최초 보도)를 통해 “2000년 4월1일 이후 유출된 부적격 혈액 2550건에 대한 조사결과 부적격 혈액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자는 한 명도 없고, B형·C형 간염 감염자만 각각 5명씩 10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결과로 본다면 2000년 4월1일 이후 유출된 부적격 혈액은 적게 잡아도 7만 건이 넘는다. 즉 적십자사의 추적조사가 자의적 선택에 의해 날림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 따른 조치사항으로 혈액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관련자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적십자사는 사과와 반성을 하는 대신 감사결과를 언론에 알린 직원 2명(내부 제보자)을 3월29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적십자사가 과연 구호와 봉사를 위해 성금을 거두고, 국민의 혈액을 무료로 모집할 자격이 있는 기관인지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 수혈로 인한 ‘B형·C형 간염’ 감염 최초 확인
에이즈와 말라리아의 수혈 감염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수혈에 의한 B형 ·C형 간염 감염 사례가 국내 최초로 확인됐다.
대한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측은 2월20일 “에이즈와 B형·C형 간염에 오염될 가능성이 높은 혈액을 수혈받은 2500명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10명 이상이 수혈에 의해 B형·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B형과 C형 간염의 수혈 감염 의혹은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던 문제로서 적십자사측은 최근까지도 수혈에 의한 감염 가능성 자체를 부정해왔다. 대한수혈학회 등 수혈관련 의료계는 논문을 통해 수혈에 의한 우리나라의 간염 감염률이 일본에 비해 50배, 미국에 비해 60배나 높다고 경고해왔다. 이번 적십자사측의 역학조사는 ‘주간동아’의 오염 우려(부적격) 혈액 유출에 대한 고발기사(401호, 403호, 405호)와 국회 국정감사에 따라 이루어진 것. 적십자사는 당초 지난해 연말까지 수혈 감염 우려자 2300명에 대한 역학조사를 끝내겠다고 보고했으나, 현재까지도 발표를 미루며 쉬쉬해온 상태다.
‘주간동아’가 적십자사의 내부 정보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측은 자체 혈액검사에서 B형 간염 바이러스와 C형 간염 바이러스가 발견된 헌혈자가 추후 검사에서 단 한 번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다(음성)는 이유로 해당 혈액을 각 병원과 혈액제제로 마구 내보냈다. 서울대 의대 조한익 교수는 “간염 바이러스가 계속 검출된 혈액에서 1회 정도 검사결과가 음성으로 나온 경우는 간염이 나았다가 재발한 경우이거나, 바이러스 항원의 농도가 낮아 검사의 어려움을 겪은 경우, 아니면 검사결과가 잘못된 것”이라며 “그 어느 경우도 유출이 돼선 안 될 혈액”이라고 밝혔다. 적십자사도 지침을 통해 이런 혈액을 헌혈유보군으로 지정해 혈액 유출을 일체 막고 있으나 현실에선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조교수는 “수혈에 의해 발생한 간염의 경우 만성간염으로 진행해 종국에는 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C형 간염의 경우 현재까지 완치제가 나와 있지 않은 상태로, 특히 ‘수혈과 혈액제제’를 달고 살아야 하는 혈우병 환자의 C형 간염 감염경로가 수혈에 의한 것이라는 의학계 보고까지 나와 있다.
때문에 혈우병 환자모임인 한국코엠회는 “실제 우리나라 혈우병 환자 1600여명 중 700여명이 C형 간염과 B형 간염,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다(‘주간동아’ 366호 보도)”며 대한적십자사와 보건복지부를 지난해 11월 검찰에 고발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강주성 대표는 “수혈 외에 혈액제제로 인한 감염은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전혀 조사되지 않았고 에이즈 수혈 감염이 전혀 없다는 것도 믿을 수 없다”며 “오염혈액 유통에 대한 역학조사를 오염혈액을 유통시킨 장본인에게 맡긴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꼴”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감사원과 보건복지부는 오염혈액 유출에 대한 적십자사에 대한 내부감사를 끝낸 지 한 달이 훨씬 지났는데도 고발인인 부패방지위원회에 그 결과를 이유 없이 통보하지 않고 있어 의혹을 사고 있다.
한편 적십자사측은 “수혈로 인한 간염 외에 에이즈 등 추가로 밝혀진 것이 없다. 현재 검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이 있어 발표를 미루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 “에이즈 날벼락, 국가는 책임져라”
1991~93년 혈우병 환자 20명 집단 감염 … 혈액제제·수혈 등 관리 소홀 배상소송
혈우병. 작은 상처에도 피가 멎지 않아 평생 혈액응고 인자(혈액제제)를 주사 맞으면서 살아야 하는 만성 유전질환. 피 속에 있는 여러 혈액 응고 인자 가운데 제8인자(A형 혈우병), 제9인자(B형 혈우병)가 부족해 발생한다.
현재 2500~3000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혈우병 환자 중 B형 혈우병 환자는 120명. 그런데 이들 중 20명이 에이즈에 감염됐다. 감염시기는 모두 1991년에서 93년. 감염 사실을 통보받았지만 그들은 지난 10년간 아무에게도 감염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당시 에이즈 환자의 매혈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수혈이나 혈액제제에 의한 감염이 의심됐지만 국가도 제약사도 병원도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기 때문. 책임자를 찾지 못했으니 배상이나 보상이 있을 리 없었다. 당시 에이즈에 감염된 혈우병 환자의 대부분은 어린이나 청소년. 설사 어른이라 해도 동성애자도 아니고 에이즈 감염자와 접촉한 사실도 없었다.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영문도 모른 채 에이즈에 걸린 이들 환자와 가족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에이즈 통보를 뒤늦게 부모로부터 들은 한 고등학생은 자살을 선택했지만 이마저도 알려진 바 없다.
“피해자 있는데 가해자 없다니”
하지만 최근 이들 에이즈 감염 환자들이 한데 뭉쳐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에이즈에 걸리게 한 장본인을 찾겠다며 집단배상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 그들이 살아온 10년은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남의 일에 무심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1993년 에이즈 감염을 통보받은 김희동씨(45·가명·경남 창원)는 날벼락을 맞은 듯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아무에게도 감염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결혼해 네 살 난 아이까지 있었지만 차마 부인에게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스무 살 때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를 통해 혈우병 환자인 것을 안 김씨는 91년 혈우병 재단에서 검사를 할 때만 해도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93년 갑작스럽게 병원으로부터 에이즈 판정을 받은 것. 김씨는 “당시 혈액제제를 바꾼 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97년 가족에게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린 김씨는 최근 부인과 이혼하고 아이까지 부인에게 맡겼다. 아이의 양육비로 집과 사업장도 넘겼다. 91년에 당한 교통사고의 후유증(혈액응고)으로 99년에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부인과 아이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기 때문. 김씨는 수술과 관련해 에이즈 환자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수술을 하려고 했지만 각 대학병원에서 에이즈 환자라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했다. 병세가 악화된 그는 결국 오른쪽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부인이 나를 멀리하는 데 견딜 수가 없었다”며 “자식을 잘못 낳았다고 늘 자책하시는 부모님 얼굴을 뵐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이기훈씨(18·가명·경북 구미시)는 태어날 때부터 혈우병을 앓아왔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지금까지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 92년 혈우재단 검사에서 에이즈 감염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군의 부모는 차마 어린 아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이군의 어머니(45)는 “처음 에이즈 감염 사실을 통보받곤 집안이 풍비박산됐다”며 “남편과 헤어져 살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아이를 위해 다시 합쳤다”고 말했다. 이군은 현재 등쪽과 어깨쪽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면서 심한 가려움증을 호소하고 있다. 이군의 부모는 죽을 때까지 아들에게 에이즈 감염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당신 같으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아이에게 말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혈우병에 걸려 피가 나면 죽는 줄 알고, 학교 체육시간에 교실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것에도 상처를 받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는 게 이군 부모의 솔직한 심정. 이군의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일이 막막하지만 10년간의 이 피맺힌 한을 이번 소송으로 반드시 풀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92년 겨울 에이즈 감염 사실을 통보받은 최호준씨(32·가명·인천시 부평구)의 소원은 에이즈가 치료돼 건강한 아이를 갖는 것이다. 그는 에이즈 합병증으로 이미 대상포진과 콩팥 기능 상실, 혈소판 수치 감소 진단을 받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림프선이 자주 붓고 감기에 걸리면 잘 낫지 않는 증세가 계속되면서 한 걸음씩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 치를 떨고 있는 상태다. 최씨는 “처음 에이즈 감염 통보를 받았을 때 어떻게 죽는 것이 편할까, 부모님 모르게 어디 가서 죽을까를 고민했다”며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삶이 너무나 버겁고 힘들다”고 호소한다.
“처갓집에서는 제가 혈우병 환자인 줄은 알지만 아직 에이즈 감염 환자인 줄은 모릅니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는 부인과 결혼은 할 수 있었지만 처갓집에는 차마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최씨는 “가장 무서운 것은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며 아무런 잘못도 없이 오명을 덮어쓰고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뒤늦은 진상조사 성과 없어
그렇다면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사실 국립보건원은 92년 12월 혈우병 환자의 에이즈 집단 발병을 확인하고 역학조사위원회를 구성, 2년 후인 94년 5월4일 조사 최종 보고서에서 “감염원인은 수혈에 의한 것이 아닌, 혈액제제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나 원인 제품의 규명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지난 9월 일단의 의학자 그룹이 국산 혈액제제에 의한 감염설을 제기하면서부터. 하지만 해당 혈액제제를 제조한 제약 회사가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해당 의학자를 고소하면서 이 문제는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됐다.
하지만 이런 눈물 어린 사연을 뒤로하고,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혈우병 환자들을 정작 분노케 하는 것은 왜 피해자인 자신들이 직접 감염 피해에 대한 배상소송에 나서야 하느냐는 것. 이들은 “혈액과 관련한 사항은 국가가 관리하고, 감염 피해에 대한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국가의 몫인데 지난 10년간 집단 감염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실제 이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혈액제제나 수혈에 의한 에이즈 감염이 비단 국내만의 일은 아니기 때문. 일본에서는 80년대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혈액으로 만든 혈우병 치료제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오염된 채 투여돼 1800여명이 감염되고 400여명이 사망했다. 또 프랑스에서도 80년대 초반 1348명의 혈우병 환자가 수혈을 통해 에이즈에 감염돼 625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이들 나라의 대책은 우리 정부와 너무나 달랐다. 일본은 역사상 처음으로 후생성 보건의료국장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고, 국가와 제약회사가 감염자에게 4500만엔씩을 지급했다. 프랑스의 경우도 당시(1985년) 총리와 사회장관, 보건장관이 특별법정에 세워졌으며 보건장관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뿐 아니다. 지난 11월20일 캐나다 경찰은 70년대와 80년대 오염된 혈액과 혈액제제를 주사 맞고 1200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건과 관련, 혈액 수혈 서비스를 담당한 캐나다 적십자사 직원과 미국 제약회사 책임자, 관련 의사들을 법정에 세웠다.
뒤늦게 사건이 확대되자 국립보건원은 지난 9월16일 에이즈 집단 감염에 대한 재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 파악에 나섰지만 지금껏 새로운 성과는 없는 상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도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을 다뤘지만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도대체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이제 정부가 환자들의 이 같은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할 차례다. 정부가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