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8:5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 (개역개정판)
악인을 두둔하는 것 자체는
형사고발의 대상이 되지도 않으며
물의를 일으키는 정도에서 끝나곤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것을 선하게 보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그렇게 믿는다.
5.18.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작년 묵상에서도 적었지만
소위 역사적 진실은 집권 세력의 날카로운 편집 과정을 거치곤 한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도 분명한 역사적 진실은
당시 군부에서 쿠데타를 주도했던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을 무시하고 광주에서 학살극을 벌였다는 (최소한 공수부대가 학살극을 벌이도록 유도했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보수적인 교단에서, 보수적인 신앙에서 자랐으며, 성인이 된 이후로도 보수적인 입장에서 떠나지 않아왔다.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보수교단 운운했던 이유는
우리 교단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소위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교회 안팎에서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다.
시대와 눈을 맞추고, 세대와 발을 맞춘다..라는 감성충만한 구호로
불신자들의 입맛에 맞춘듯한 메시지로 다가가는 동안
'우리' 보수진영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왔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5.18.을 주도한 신군부 세력과 당시 학살에 참여했던 진압군을 두둔하는 것은
성경적으로도 옳지 못한 행동이다.
어떠한 의미에서도 악인을 두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북한군의 개입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군사학적으로 보아도
공수부대가 투입된 바로 그곳에 정규군이 아닌 간첩들과 위장요원들이 잠입하여 교전을 감행한다는 것은
영화 시나리오로도 못쓸 어리석은 전술이며
이슬람 테러리스트들만큼이나 자살에 가까운 행동이다.
백번 양보하여 북한군이 실제로 개입했다한들
그 개입의 목적과 의도와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다.
엄청난 학살극이 벌어져도
도시 하나는커녕, 마을회관 하나도 점령하지 못하는 그들의 한계이다.
하긴 6.25. 이후 북한의 도발은 거의 대부분 실패였으...나
북한이 분단 직후부터 지금까지 보여온 수많은 비정상적 행태를 놓고 보면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되긴 하다.
그러니 북한을 두둔하는 것도, 북한을 두둔하는 자들을 두둔하는 것도 결코 성경적이지 못한 행태이다.
결국 비행기를 폭파시키는 등의 미친 짓을 해온 집단이니...
1970년대 후반 신상옥, 최은희의 납북과 고상문 교사 납북에 이어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같은 정신질환적 행태도 있었으며
10.26. 직후인 1980년 3월 한 달에만 서울과 포항, 철원에서 무장공비와 간첩선이 잇달아 출몰하여 민간인들을 살해했을 정도로 군 당국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것도 기억할 일이다.
그 와중에 5.15 서울역 회군으로 인해 부산과 서울 등 전국적인 시위분위기가 가라앉고 있는 가운데
유독 광주는 횃불문화제 등 시위의 기운이 사그러들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5.17. 내란으로 신군부도 마음이 조급했을터
틀림없이 지휘관들과 일반 병사들을 닥달했을 것이며
광주까지 이동했던 공수부대원들의 피로도와 분노 또한 극에 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학살의 면책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싸움 못하는 군대의 나라일수록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탄압한다고 했던가?
6.25. 때 목숨을 걸고 이 나라를 지켰던,
월남전때 미군과 호주군도 인정한 용맹한 대한민국국군은
12.12. 당시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고
5.18 당시에는 시민들에게 총검을 겨누었다.
그날 이후의 학살극은
자유 진영에 속했던 국가들 가운데서 보여줬던 학살 가운데 최악이었다.
지휘관의 발포 명령과 상관 없이
민간인들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
물론
우파 정부였던 스페인 프랑코 정권은 말할 것도 없으며
포클랜드 전쟁 직전 아르헨티나 역시 자국민에 대한 테러와 탄압은 극심했고
1989년까지도 베를린 장벽을 넘으려는 자국민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했던 동독 군인들도 있었다.
1990년대 코소보 내전과 인종청소 시도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슬람권 국가들에서 자국민들에 대한 학대가 이어졌다.
공산국가들이 20세기 자국민들에게 가했던 학살과 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그들이 우리 형제들인 크리스천들에게 보였던 학살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성도들의 환난을 방불케할 정도다.
어떤 이들은 1-19세기까지의 순교자들보다 숫자보다 20세기와 21세기의 순교자들의 숫자가 더 많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북한이 그 가운데서 상당한 몫을 차지할 것 같다.)
지금 이순간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5월의 광주를 연상하게 하는 일이다.
악인을 두둔하는 것은 선하지 못한 일이다.
그것은 역사를 보는 시각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무관심한 가운데 바쁜 자신들의 일상만 살아간다면
악인들 두둔하는 것과 비슷한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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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까지는 아니더라도
학대는 어디에든 나타나며
우리의 눈과 손이 미치지 못하는 현장
곧 아기들과 어린아이들과 노약자들과 장애인들
그리고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는 학교폭력의 현장과
부조리한 시스템에서 건강과 안전의 위협을 받고 있는 근로자들
그 외에 언론에서 주목하지 못한 수많은 약자들에게
그리고 내 주변에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