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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멸망
왕하 25:1-7
1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2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3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4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가 아라바 길로 가더니
5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그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6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들이 그를 심문하니라
7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왕하 25:1-7 / [예루살렘의 제 2차 함락] 시드기야왕 9년 10월 10일에 애굽 왕 호브라가 바벨론을 공격하여 유리한 전세를 보였다. 그러자 시드기야가 유다의 친애굽파들의 주장에 따라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이 대군을 거느리고 나와 예루살렘 도성을 포위하고 감시망을 구축하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이 싸움은 2) ㄱ) 시드기야왕 11년까지 계속되었다. (ㄱ. BC 587년) 3) 마침내 도성에 비축되었던 식량이 완전히 떨어졌다. 그해 4월 9일에는 4) 바벨론 군대가 성벽을 뚫었다. 유다 왕 시드기야가 이것을 보고 자기의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야음을 틈타 예루살렘의 남동쪽에 있는 성문을 빠져 나가 탈출에 성공하였다. 왕은 동쪽으로 요단강 평원을 향하여 ㄴ) 도주하였다. (ㄴ. 렘39:4절과 52:7절에서 여러 단어를 보충하였다) 5) 바벨론 군대가 즉각 추격하여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를 붙잡았다. 그의 군인들은 모두 뿔뿔이 달아나고 6) 시드기야는 포로가 되어 립나에 주둔해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려갔다. 느부갓네살이 직접 그를 반역한 봉신으로 몰아 처벌하였다. 7)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다 쳐죽인 뒤에 그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묶어 바벨론으로 끌어갔다.
북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멸망당했고 그 후 약 140년 가까이 존속해 오던 남 유다 왕국도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멸망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되다(1-2) 바벨론 느부갓네살은 먼저 라기스와 아세가를 제외한 그 땅의 모든 요새화된 성읍을 빼앗은 후(렘 34:7)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그 성을 포위했습니다(렘 39:1). 이때는 기원전 588년으로 유다가 바벨론의 3차 침략을 받은 때로서 시드기야 즉위 9년 10월 10일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하여 성의 주변에 진을 치고 토성을 쌓았습니다. 토성은 적을 공격하기 위해 흙으로 쌓은 공격용 성루입니다. 토성을 쌓는 것은 성벽을 넘어가거나 상대방을 효율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외부에 흙으로 쌓아올리는 전술입니다. 바벨론의 공격을 받았을 때 시드기야가 애굽에 도움을 요청하여 올라오다가 느부갓네살의 저지에 막히자 다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가 성 안에서 버티자 예루살렘을 거의 1년 반 동안 포위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다(3-7) 포위된 기간이 길어지게 되자 성 안에는 심각한 기근으로 양식이 바닥이 났습니다. 떡을 저울에 달아서 먹고, 물을 되어 마셨지만(겔 4:16) 계속되는 기근으로 백성들은 굶주리게 되었고 자기 자녀들까지 잡아먹게 되었습니다(애 2:20; 4:10).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포위를 당하고 기근이 겹치고 성벽조차 뚫리고 말았습니다. 이에 왕과 군사들과 백성들이 흩어졌고 성은 순식간에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도망치던 시드기야는 여리고에서 잡혔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를 심문하고 그의 목전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습니다. 시드기야는 현장에서 두 눈이 뽑히고 놋 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이는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와 그의 아내들과 그의 자녀들에 대하여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렘 32:3-5; 34:3; 38:23). 에스겔도 시드기야가 바벨론에서 죽으며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겔 12:13).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적용: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에 힘쓰는 모습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야생동물에 비한다면 인간의 근력은 초라한 편인데요. 성인 남자의 평균 악력은 50kg, 침팬지의 악력은 129kg, 오랑우탄은 193kg, 고릴라의 악력은 326kg입니다. 하지만 어떤 동물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지구력입니다. 인간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육상동물도 42.195km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한 일에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실패로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실패는 반드시 어떤 흔적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살다 보면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여러 번의 흔적을 더 찾은 것입니다.
< 설 교 >
남 유다의 멸망
유원선 목사
남 유다가 완전히 멸망하였습니다.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을 잡아가고 대신해서 세운 시드기야는 왕이 된지 9년째 되던 해 바벨론을 배반하였습니다. 이에 바벨론은 전군을 출두시켜 예루살렘을 공격합니다. 시드기야는 잡혀서 그의 가족들은 몰살하고 그는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 갔습니다. 바벨론 군사들은 예루살렘 성에 진입하여 성벽을 비롯해서 거의 모든 집들을 다 부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에도 들어가서 성전의 모든 기구들을 다 가져가고 놋으로 만든 물두멍, 기둥들은 다 깨뜨려서 그 놋을 다 가지고 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고, 예루살렘 성이고 할 것이 없이 완전히 다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 예루살렘 성전,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 성,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쩌면 이렇게 처참하게 파괴되어 버렸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사실 솔로몬이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봉헌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러한 일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열왕기상 9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솔로몬과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성전도 축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축복하시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7)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경고하셨고, 하나님께서 그동안 약 400여년 동안 계속해서 은혜를 주시고, 말씀을 주시고, 기다려 주셨건만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저버렸고, 큰 죄악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경고하신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심으로 예루살렘 성전과 이스라엘은 철저히 파괴되어 사람들의 놀림과 이야기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그분의 영광, 그분의 명예, 그분의 지위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높고 귀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의 이름이 손상되는 것, 그분의 영광이 가리우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십계명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는 것도 죄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일컫는 예루살렘 성전, 그리고 자신의 백성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이렇게 철저하게 드러내시고, 그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징계하셨습니다. 그 징계의 결과가 자신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과 그 명예가 손상되는 결과를 가져옴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성전이 어찌 저렇게 힘이 없이 완전히 파괴되도록 하나님은 뭐하시는 것인가. 자신의 백성이라고 하더니 바벨론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할 힘도 없는 신인가.” 하는 그런 비아냥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명예를 얼마나 실추시키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이스라엘의 죄를 다루시고, 그들을 철저하게 징계하심으로 완전히 모든 것을 다 파괴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사랑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주 지위가 높고 명성이 높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 아들이 평소에 행실이 별로 좋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아버지의 속을 썩이는데, 그러다가 결국 큰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랬을때, 이 아버지가 정의를 이루는 일이나, 자기 자식보다도 자기의 명예와 지위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일을 은폐하고 자식을 외국으로 빼돌리든지 했을 것입니다. 이 일이 드러나면 자기의 지위와 명예에 큰 손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아버지가 정의를 사랑하고, 아들을 정말로 사랑해서 그 아들이 변화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기의 명예와 지위에 손상을 입는 한이 있어도 이 일을 그대로 드러내고 자기 아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이라 하더라도 죄를 지은 것에 대한 분명한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죄는 조금도 용납하실 수 없는 하나님, 죄는 조금도 그냥 넘길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아마 형벌 중에 가장 큰 형벌은 내어버려두는 것일 것입니다. 아예 포기하고 내어 버려두시면 그야말로 끝장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은 내어버려두시기 위한 징벌이 아니라, 회복시키시기 위한 징벌입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해 그들이 다시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오늘 열왕기하 25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징벌이 그들을 내어버려두심으로 끝나는 징벌이었다고 하면, 이 마지막 장은 음울하게 끝이 났을 것입니다. 그들이 징벌을 받아 다 끝장 났다.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한줄기 빛을 봅니다. 회복의 기미를 봅니다. 소망을 봅니다. 이 마지막장 마지막 부분은 전에 바벨론에 끌려 갔던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그동안 포로로 잡혀 고통을 받다가 포로된지 37년이 되자 그의 지위가 회복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를 옥에서 나오게 하고, 죄수의 의복을 바꾸어 왕의 의복을 입히고, 일평생 항상 왕과 함께 음식을 먹게 하고, 그가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여호야긴처럼 그의 지위가 다 회복이 되고, 왕이신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갇힘에서 자유케 되고, 죄수의 의복을 벗고, 그들이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을 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게 될 것을 예시하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멸망해서 다 끝장 나는 것으로 열왕기상하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들의 죄로 인해 형벌을 받아 고난을 당하지만, 언젠가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하는 소망의 메세지로 열왕기상하를 끝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에스라, 느혜미야서에 가면 바로 고레스 왕의 시대에 성전 회복과 예루살렘 성벽회복의 역사가 일어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은 멸망으로 끝나는 징벌이 아니라, 용서와 회복과 행복으로 끝나는 사랑의 징벌이었습니다. 자식을 징계하는 부모는 그 자식을 미워하여 멸망하라고 징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징계를 통해 자식이 깨닫고 돌이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랑으로 징계를 하듯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이 철저한 심판은 그들이 회복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은 죄를 조금도 용납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공의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절대로 포기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죄를 절대로 용납하시지 않는 거룩하신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자 당신의 아들도 내어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는 그 하나님을 경외하며 늘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죄를 조금도 용납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시니 우리 삶에 죄가 들어오지 않도록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한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범죄하면 우리를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우리가 범죄할지라도 우리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고,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변화시켜 큰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상황에도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시지 않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심하고 그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신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절대 진리이시고 거룩하신 공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늘 경건한 사람, 거룩한 삶,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고, 그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남 유다의 멸망의 원인
열왕기하 25:1-30
요시야 왕이 죽자, 살롬, 곧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파라오 느고가 그를 납치해 이집트로 유배를 시켰습니다. 이집트는 그의 아버지 요시야와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승전국의 왕의 허락 없이 왕을 세운 남 유다가 괘심하였던 것입니다. 여호아하스는 평생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집트 왕은 여호야김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북상하여 갈그미스에서 중동의 패권을 놓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겨루었지만, 패배하고 퇴각하였습니다. 퇴각하는 이집트 군대를 추격하며 바벨론 군대가 남하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여호야김을 붙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충성 맹세를 받고 그를 풀어주었습니다. 여호야김은 3년 동안 바벨론에 충성을 다하다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제국으로 발전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당장에 남 유다를 공격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남 유다 주변의 세력들을 동원하여 남 유다를 괴롭혔습니다. 제국을 수습한 느부갓네살은 마침내 대군을 이끌고 남유다를 두 번째로 공격하였습니다. 여호야김은 느부갓네살 왕이 공격하기 3개월 전에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성벽에서 던져져서 낮에는 햇빛에 노출되었고, 밤에는 이슬을 맞아야 했습니다. 당나귀가 묻히듯이 그의 시체는 이름 곳에 묻히었습니다. 아마도 남유다를 괴롭혔던 주변 나라의 군대에 포로가 되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여호야김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지만, 그는 3개월 정도 왕위에 밖에 있지 못했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여호야긴 왕과 함께 싸울 수 있는 자 7천 명과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와 목수 천 명, 그리고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과 정신을 가진 자 2천 명을 합하여 도합 만 명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하나님은 므낫세의 악행으로 남유다를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을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므낫세와 그의 아들 아몬의 57년, 요시야가 개혁 정책을 펴기 전 12년 동안은 암흑기였습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왕들은 그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킬 의무가 있습니다. 이 시기 남유다 백성들은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그들은 영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요시야가 개혁 정책을 펼쳤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막기 위해 회개를 촉구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
계속해서 남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와 남은 자들에 대해 배우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속적으로 말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방의 압제 하에 둘 수밖에 없던 것은 그들의 회개하지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불순종한 백성들을 회개시킨 후 하나님의 때에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남 유다의 멸망의 원인
Part I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시드기야(v1-20)
바벨론의 제 3차 침공과 남유다의 멸망
유다 왕 시드기야 9년 곧 주전 588년 시월 열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습니다. 이는 느부갓네살의 세 번째 침공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여호야김 제 4년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여호야긴 왕이 즉위한 지 3개월 쯤 되는 해였습니다. 바벨론 왕은 유다 왕 시드기야 9년에 그를 배신한 시드기야를 치러 왔습니다.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왕으로서 재위 4년에는 바벨론에 소환당해 가서(예레미야 51:59) 여러 가지 사실들을 모두 보고하고 또 바칠 것을 바치고 돌아왔지만 그 후에 애굽 왕 바로와 비밀히 손을 잡고 느부갓네살 왕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이 대군을 거느리고 와서 최후로 유다를 멸망시켜 버립니다. 588년에 치러 와서 햇수로 3년 동안 성을 둘러쌌는데 그때 성 바깥으로 토성을 쌓아 성을 공격하였습니다. 시드기야 왕 11년에 성에 양식이 떨어지자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마침내 성은 함락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다음 한 28일쯤 뒤에 바벨론의 호위대장 느부라사단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성전에 불을 지르고, 왕국에 불을 지르고, 예루살렘 귀족들의 모든 큰 집을에 다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어 버렸습니다. 그러기 전에 예루살렘의 성전이나 왕궁에 있는 좋은 것은 다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성중에 남아 잇는 백성과 항복한 자들과 무리의 남은 자들을 다시 또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 다음에 갈대아 사람들이 여호아의 전의 놋을 모두 벅셔 가져갔습니다. 느부갓네살 호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여호와의 전에서 쓰는 불을 옮기는 그릇과 주발을 가져갔고 또 금으로 만든 거소가 은으로 만든 것들의 금과 은을 다 벗겨서 가져갔습니다. 또 그는 성전 안에 있는 대제사장과 부제사장과 세 명의 문지기를 잡았고, 또 군사를 거느린 관원과 시드기야 왕의 수종자들 다섯 명 그리고 백성을 모병하는 동원장관의 서기관, 성중에서 만난 국민 60명을 잡아갔습니다. 그들을 잡아 느부갓네살이 머물던 저 유브라데 강 가까이 하맛 땅에 있는 리블라로 끌고 갔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이 사람들을 교활하다 해서 모두 죽였습니다.
예레미야 38:17-20 / “이에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주} 만군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만일 확신을 가지고 바빌론 왕의 통치자들에게로 나아가면 네 혼이 살고 이 도시가 불타지 아니하며 너와 네 집이 살려니와 네가 만일 바빌론 왕의 통치자들에게로 나아가지 아니하면 이 도시가 갈대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들이 이 도시를 불태우고 너도 그들의 손에서 피하지 못하리라, 하매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 사람들에게 항복한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노라. 그들이 나를 그들의 손에 넘겨주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염려하노라, 하였으나 예레미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을 넘겨주지 아니하리이다. 청하건대 내가 왕께 말씀드리는 {주}의 음성에 순종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이 잘되고 왕의 혼이 살리이다.”
Part II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은 자들(예레미야 40장-44장)
남유다의 남은 자들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 땅에 남은 자들을 위해 한 사람을 총독으로 임명을 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그달리야입니다. 그달리야가 총독으로 있을 때는 유다 사람들의 게릴라 부대가 여기저기에 퍼져 있었습니다. 게릴라 대장들을 가리켜 성경은 “들에 있던 군대 대장들과 그에 속한 사람들”(예레미야 40:7) 이라는 말로 표시했는데, 그들이 그달리야에 대한 소식을 듣고서 그가 있는 미스바로 모였습니다. 그달리야는 미스바에서 군대 대장들과 그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 맹세하여 이르되, “갈대아 사람들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거하면서 바빌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잘되리라.”(예레미야 40:9) 그런데 이 게릴라 대장들 중에 왕족인 이스마엘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냐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본인도 왕족이었습니다. 이 사람도 게릴라 대장으로서 자기 부하들을 끌고 그달리야한테 왔습니다. 젊은 새 총독 그달리야는 사람이 덕인이어서 동족이나 애국자들 앞에서 위로의 말을 하고 어떻게든지 이 땅에 잘 거하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예레미야 40-41장을 보면 이스말엘이 그달리야를 제거하기 위해 어떻게 음모했는가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마엘이 혹시 자기가 왕족인 까닭에 다윗의 혈족인 제가 총독이 되어 다스려야 한다는 시기 때문에 그랬는지 그달리야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른 게릴라 부대 대장, 요하난이 그달리야에게 이스마엘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그달리야는 “너는 이 일을 행하지 말라. 네가 이스마엘에 대하여 거짓으로 말하느니라, 하니라”고 해서 대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마엘이 측근 열 명과 함께 그달리야를 방문했을 때도 그달리야는 미스바에서 그들을 손님으로 대접을 하며 같이 앉아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한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도중에 갑자기 이스마엘은 그 부하들과 함께 일어나서 그 자리에서 그달리야를 죽였습니다. 그때 만찬 석상에서 같이 앉아서 밥을 먹던 그달리야의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바벨론의 호위병들까지 모두 죽었습니다. 말이 새어나갈 것을 염려하여 시체를 구덩이에 넣고 흙으로 다 덮고서 자기는 아무 일도 없는 체하였습니다. 그때 멀리서 불타고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슬퍼하러 오는 순례자들이 있었는데 그 틈 속에 끼어들어 저도 순례자의 한 사람이 체하였습니다. 80명의 사람들 중에서 70명을 죽이고 10명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의 재물을 받고 살려주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이 사건을 속이려고 했지만 그가 행한 악행은 들통이 났습니다. 이런 일이 유다가 망하던 해 7월에 일어났는데 예루살렘이 망한 것이 4월 9일이므로 석 달도 채 못 되어서 일어났습니다.
예레미야 41:10 이하를 보면 이스마엘의 악행을 알게 된 요하난이라는 게릴라 부대 대장이 이스마엘을 토벌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의 동지 게릴라 대장이 추격대를 편성하여 이스마엘 일당을 뒤쫒았습니다. 이스말에은 대적할 길이 없어지자 백성들을 인질로 잡고 가다가 나중에는 측근들만 데리고 암몬 자손 속으로 피하고 말았습니다.(41:10-15) 이스마엘을 토벌하기 위한 게릴라 대장의 대표자 요하난과 그의 동지들은 버려둔 백성들을 이끌고 베들레헴 근처까지 왔습니다. 비록 느부갓네살 왕이 임명한 총독 그달리야를 자기들이 암살한 것이 아니지만 바벨론의 보복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발길을 돌려 애굽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예레미야 42:1-3 / “그때에 군대의 모든 대장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모든 백성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가까이 나아와 대언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 앞에서 드리는 우리의 간구를 받으시고 우리 곧 이 모든 남은 자를 위해 {주} 당신의 [하나님]께 기도하소서. (당신의 눈이 우리를 보는 바와 같이 우리가 많은 사람 중에서 조금만 남았으니) {주} 당신의 [하나님]께서 우리가 걸어갈 길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이들이 이집트로 내려가기 전에 예레미야를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그들이 걸어갈 길과 해야 할 일을 구합니다. 이들은 참으로 믿음이 있어 보입니다.
예레미야 42:5-6 / “그때에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만일 {주}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보내사 이르시는 모든 것대로 우리가 행하지 아니하거든 {주}께서 우리 사이에 참되고 신실한 증인이 되시기를 원하나이다. 우리가 당신을 {주} 우리 [하나님]께 보내오니 일이 좋든지 나쁘든지 우리가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리이다. 우리가 {주} 우리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면 잘되리이다, 하니라.”
이들은 심지어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향을 주시더라도 순종하겠다고 예레미야 앞에서 약속합니다.
예레미야 42:18 / “만군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 분노와 내 격노가 예루살렘 거주민들에게 쏟아진 것 같이 너희가 이집트에 들어갈 때에 내 격노가 너희에게 쏟아지리니 너희가 혐오거리와 놀랄 일과 저주와 수치거리가 되리라. 너희가 다시는 이곳을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이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남 유다에 남아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라고 하나님께서 방향을 주셨습니다.
예레미야 43:2 / “이에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교만한 자들이 예레미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거짓으로 말하는도다. {주} 우리 [하나님]께서 너를 보내사, 이집트에서 머무르려고 거기로 들어가지 말라, 하고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러자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들을 뿐입니다. 예레미야에게 찾아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어떤 방향이 나오더라도 순종하겠다고 한 그들의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이미 이집트로 내려가고자 하는 방향이 서 있었습니다. 이들의 본 모습은 그대로 들어났습니다. 예레미야를 거짓 대언자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이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43:5-6 /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군대의 모든 대장이 유다의 모든 남은 자들 즉 쫓겨나서 함께 거하던 모든 민족들로부터 돌아와 유다 땅에 거하려 하는 자들 곧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과 왕의 딸들과 호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사반의 손자요, 아히감의 아들인 그달리야와 함께 남겨 둔 모든 사람과 대언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데려가니라.”
이들은 심지어 자신들만 가지 않고 예레미야와 바룩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더 의지하였습니다. 바벨론보다 더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바벨론의 복수가 두려워 이집트로 도망간 것입니다.
예레미야 44:7-8 / “그러므로 이제 {주} 만군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너희 혼을 해하며 또 유다로부터 너희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먹이를 끊어 버려 너희에게 남은 자가 없게 하려느냐? 어찌 너희가 너희 손으로 만든 것들로 내 진노를 일으키고 너희가 거하려고 들어간 이집트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여 너희 자신을 끊어 버림으로 땅의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저주와 수치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이집트로 내려가서는 이집트의 신에게 분향하며 우상을 섬겼습니다.
예레미야 44:23 / “너희가 분향하고 {주}께 죄를 지었으며 {주}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분의 율법과 그분의 법도와 그분의 증언 안에서 걷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앙이 이 날과 같이 너희에게 일어났느니라, 하니라.”
예레미야는 이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대언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남 유다 백성이 얼마나 죄에 깊이 물들어 있었는지를 잘 말해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의 죄를 답습하여 우상을 섬기는 것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대언자의 말에 불순종하였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자신의 생각을 따라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언자들을 보내시고, 말씀을 주셨지만 그들은 돌이키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돌이키기 위한 방법은 이제 이방의 포로로 잡혀 가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다시 하나님을 찾게 하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7:51 /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않은 자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역하되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행하는도다.”
오늘 우리는 남 유다의 멸망되는 사건으로 열왕기 상하를 끝냅니다. 우리가 열왕기 상하를 통해 배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우상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산당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시대 이런 믿음은 우리가 성령에 의지해서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생각을 불어 넣어 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불을 끄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환한 불을 비추어주시지만, 우리가 순종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생각을 고집하고 나갈 때, 우리가 성령의 불을 끄는 것입니다. 더 적극적으로는 귀를 닫고 적극적으로 죄의 길로 달려가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우리가 열왕기 상하에서 배운 북 이스라엘, 남 유다의 경우와 같습니다. 스데반은 이런 죄를 성령을 거역하는 행하는 죄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님을 의지해서 순종하고 그 인도하심에 우리를 맡길 수 있어야겠습니다. 비록 나와 생각이 다를지라도 성령님의 생각과 계획에 온전히 순종해야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열왕기 상하를 통해 우리가 결론적으로 배운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