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81]들깨를 털면서
어제는 내내 들깨를 털었다. 마침 부여扶餘 출신(촌놈이라는 뜻) 전직 교수 친구가 와 일을 거들었다. 농촌 일은 혼자 하면 팍팍하지만, 둘이나 셋이 하면 능률이 오른다. 게다가 줄기가 마른 들깨를 터는 일은 작대기(옛날엔 ‘지게작대기’로 털었지만, 요즘은 플라스틱 도리깨도 있다고 한다)로 두들기기만 하면 되니 재미도 있다. 아무튼, 들깨를 털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광주의 시인 김준태의 <참깨를 털면서>라는 시였다. 그 시를 맨처음 언제 읽었는지, 아마도 대학시절이었을 거다. 몇 번이고 감상하며 탄복을 했다. 그이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됐다. 30년도 더 후에 시인의 사무실에서 직접 인사를 하고, 당신의 시집에 사인을 해주는데 가슴이 떨렸었다. 먼저 그 시를 함께 감상해 보자. 시골 출신이라면 할머니와 함게 참깨를 터는 그 정황情況이 너무나 리얼하게 머리 속에 그려질 것이다.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 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 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 낸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나는 이런 시를 ‘절창絶唱’이라고 부른다.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참깨알이 쏟아지는 소리는 진정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 어려운 쾌감’이 있다는 것을 알면 촌놈이 확실하다. 그리고 '잘 살다보면' '참깨처럼 쏴아쏴아 쏟아지는 것이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다. 시인은 왜 참깨시만 썼지 들깨시를 쓰지 않았을까. 들깨시를 썼다면 어떻게 썼을까. 너무나 궁금하다. 내가 그 대신 패러디라도 해 써볼 수는 없을까(조물주는 나에게 왜 그런 재주를 주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면서, 친구와 막대기로 들깨더미를 사정없이 내리치며(참깨는 가망가망 털어야 하는 게 다르다) 들깨를 털었다. 털부덕 주저앉아 오로지 한 알이라도 더 발가내려고 힘을 쓰다 보면 그 꼬소한 들깨향에 취하게 된다. 힘들어도 나는 이런 일을 하는 게 좋다.
그 다음, 터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들깨를 깨끗하게 골라내는 절차가 남았기 때문이다. 먼저 검불을 대충대충 걷어낸 다음에, 선풍기를 대령하는 게 좋다. 적당히 바람이 불 때 선풍기 바람에 한 바가지씩 들깨를 날리면 날아갈 것들이 날아가기 마련이다. 어지간히 깨끗해졌으면 키질(전북 표준어는 ‘쳉이’이니 쳉이질이 맞다)을 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렵다. 까부른다고 까부르지만, 자꾸 쳉이 안으로 기어들어오는 부스러기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얼마 전 친구부인 세 분이 모여 얘기를 나누는데, 도시 출신인지라 쳉이질만큼은 못하겠다고 해 모두 웃었다. 쳉이질은 대부분 엄마들 몫인데, 우리 아버지는 그 일까지 잘 하셨다. 작년엔 들깨를 털고 깨끗하게 고르는 일을 97세 아부지가 다 했건만, 올해는 요양원에 계신다. 내가 해보니 그 어려움이 실감났다. 친구와 키득키득 어설프게 일을 하다보니, 이웃집 형수가 와 시범을 보이더니 아예 마무리까지 해주셔 무척 고마웠다.
'한 말' 조금 더 나올까. 작년에는 친구에게 한 말을 팔기도 했다. 우리 지역에서는 5kg가 한 말이다. 요즘 1kg이 13000원쯤 간다고 하니 한 말이면 6만원이 넘을 게다. 기름을 짜면 한 말에 보통 소주병 5-6개가 나온다. 동구(동기同氣)에게 한 병씩 앵길(안길)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부턴가 찬지름(참기름)보다 들지름(들기림)이 더 비싸다고 한다. 그러면 됐지, 무엇을 더 바랄까. 동네 형수가 공짜로 준 들깨 모종을 이틀에 걸쳐 온 밭에 다 심어놓고. 풀약 한번 한 후 돌보지 않았으니, 무농약으로 하늘이 키워준 셈. 남들은 농약도 몇 번 했건만, 나는 내방쳐(내버려) 두었으니 게으르고 무심한 가짜 농사꾼이지만, 들깨 한 말을 챙기다니, 그게 어디인가. 일단 창고에 넣어두고, 햇빛 좋은 날, 하루정도 말려 지름(기름)을 짤 것이다.
문득 “아가(환갑이 넘었는데도 나를 부를 때는 항상 ‘아가’였다), 이번에 중국 여행가면 돌아올 때 들깨 좀 사오거라”던 우리 어머이(어머이) 말씀이 들려오는 듯해 뒤를 돌려보니 아무도 없고, 허허로운 가을 저녁바람만 소슬했다. 친구가 찌개용 돼지고기를 한 팩 사와 묵은지를 먼저 볶은 후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이게 또 별미別味였다. 막걸리 한 잔에 피로가 싹 가셨다. 역시 막걸리는 일을 제법 한 후에 한 잔 걸치기에 최고인 '농심農心' 그 자체인 것을. 음치 주제에 <막걸리 한 잔>이라는 노래를 걸판기제 불러제킨, 어제는 보람찬 하루였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