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가 무서운 고양이
딸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외로우니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며 구해달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린시절 고양이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아서 애완견이나 묘(猫)에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때로 집에 홀로 있을 때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키우기 시작한 고양이가 벌써 십 여년 가까이 되어갑니다.
확실히 아기 고양이때 부터 키운 고양이는(단이) 순한 편이며 겁도 많은 녀석입니다.
(우리 집 고양이 단이)
몇해 전 어느 날! 딸아이가 홀로 있었을 때 직접 본 목격담입니다.
아이 말에 의하면, 딸아이와 고양이만 있었던 상황이라 합니다.
어쩌다 부엌에 생쥐 한 마리가 출몰했다고 합니다. 생쥐 녀석이 어떻게 집안으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집 고양이는 그때 쥐라는 녀석을 처음 본 것입니다.
쥐와 마주친 고양이는 부엌쪽으로 가지를 못하고 도망을 치는 모습에 딸 아이는 기가 막혀 웃었다 합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고양이에게는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딸 아이가 쥐 모양의 장난감 인형을 사다가 고양이에게 보여 주었다 합니다.
테잎을 감으면 굴러가는 쥐 인형이었는데, 생쥐에 충격을 받은 우리집 고양이는 쥐 인형의 출몰에 또 한번 놀랐던가 봅니다.
한동안은 두려움이 컸던지 쥐 인형이 등장하면 애써 모른척 그쪽을 외면하던지 다른 곳으로 피신해 버립니다.
그러더니 근래에는 쥐 인형을 쫓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본 딸 아이는“그래도 이제는 좀 고양이 같아 지려고 하네”하는데 웃었습니다.
온실속의 화초로 자란 고양이에게 야생의 쥐 잡기를 기대했던 것은 무리였나 봅니다.
제가 어린 시절 콩 볕 가리 속에는 유난히 들쥐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도 많은 쥐들로 인하여 어머니는 고양이를 키우셨습니다.
당시의 고양이들은 간식이나 사료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었고, 어쩌다 생선 대가리(?)같은 것을 얻으면 정말 게글스럽게 먹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날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콩 볕 가리 속에서 큰 들쥐 한 마리와 싸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기 몸집 보다 배나 큰 들쥐와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였는데, 결국 고양이가 쥐의 목을 물고서 이기는 모습에 고양이의 존재감을 느꼈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야생에서 살던 고양이가 이제는 집안에서 사람들을 집사로 부려(?)먹으며 호사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안락함과 편안함이 체질조차 바꾸어 버렸다는데 있습니다.
쥐를 사냥해야 할 고양이의 본성이 쥐를 만나면 못 본척 하면서 피하거나 두려워서 도망을 친다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집 고양이 이야기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하늘의 전쟁에서 미가엘에게 패하고 땅으로 내쫓긴 옛뱀 곧 마귀 사탄은 오늘도 성도들을 미혹하게 하고자 우는 사자같이 삼킬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그러한 사탄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서 마귀와 대적해야 합니다.(엡 6장)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성도들이 과연 마귀와 대적할 준비나 마음가짐 또는 자세가 되어 있느냐입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훌륭하고 세련된 설교 말씀과 분위기 좋은 예배에만 익숙해져 있기에, 신앙의 선조들이 거센 풍랑이는 광야같이 거친 환경을 헤치며 지켜 왔던 신앙의 지조와 믿음을 계승하라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염려가 될 때가 있습니다.
간교하고 교활한 사탄 마귀는 오늘도 성도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사탄을 대적하려면 성도가 지녀야 할 기본적 자세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에베소서4:26-27)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야고보서4:7)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지난 십여년간 오월이 되면 관내 마을의 어르신들께 생화 카네이션을 선물해왔습니다.
국가적으로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어려움이 크지만,
올해에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녀들이 찾지 않는 어르신들 가정에 카네이션을 선물했으면 합니다. 혹시라도 이 일에 물질로 섬겨 주실 분은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