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 사건의 실체(2)
민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방금 들은 그 말 속에는 분명 ‘너와 연관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게 뭔가요? 도대체… 그게 뭔가요?”
“네가 8살 되던 해, 대학교수 한 분이 이곳에 들어와 대웅전을 시끄럽게 한 적이 있다. 자식과 남편을 잃고 들어왔었지. 그 날, 네가 누군가의 잔상을 처음으로 말했고.”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대웅전을 어지럽히는 그 여자에게 소리친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누군가의 잔상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 전까지 사람들의 눈에서 본 잔상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그 날의 잔상은 강하고 무서웠기에 자기방어기재처럼 참지 못하고 밖으로 토해냈던 것이다.
“그 사고 현장도 잔상으로 봤을 게다.”
민의 손은 떨렸다. 그거 역시 분명히 보았다. 대학교수였던 그 여자의 눈에 비친 사건 현장과 죽어 있던 남편과 아들의 모습. 괴로웠다.
“그것이 첫 번째 사건이다. 넌 갇혀 있어 잘 몰랐겠지만 그 사건은 사건으로 사회가 꽤 시끄러웠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
“… 압니다, 뭔지….”
민은 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무슨 운명이 이렇게 기구할까. 남들은 꿈도 꾸고, 절망도 하고,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며 평범한 인생을 즐겁게 혹은 힘겹게 살아간다. 지극히 평범한 인생으로는 살 수 없는 걸까. 파도가 강하게 이는 바다에 빠져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야 그제 서야 구원의 손 하나가 보인다. 다시 사는 법을 알려주고 또 다시 바다로 매몰차게 밀어버린다. 누구의 삶이든 그럴까. 7년 만에 귀국해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4년의 레지던트 생활과 3년의 군의관 생활이 민에게 사는 법을 알려주었다. 매일 보는 사람들의 눈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민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게 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눈이 점점 멀어져가는 사람도 있었다. 눈이 멀어져 가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어찌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았다. 불 속에 있던 승아도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오전 진료를 마치고 차로 내려와 음악을 틀었다. 의자를 젖히고 차 안으로 들어오는 햇볕에 몸을 맡겼다. 숨을 고르게 쉬었다. 분홍색 꽃신. 꽃향기. 맞춤법 틀린 메모. 원피스. 승아의 모습이 생각나 미소를 지었다. 비 오는 운동장에서 처음으로 마주했던 여자의 눈. 예뻤다. 승아의 코도, 눈도, 입도, 자신을 쓸어주던 손의 촉감이 아직 생생하다. 행복했던 시간.
“승아야~ 오빠 왔다!”
4월 5일 전후의 승아 기일. 안인바다를 따라 달리던 윤이 창문 밖으로 소리쳤다. 민은 윤을 보며 슬쩍 웃고 만다. 바다는 여전히 아름답다. 8살 때 보았던 바다는 더 아름다웠다. 오전 10시에 떠오르는 햇살을 그대로 받은 바다에서는 빛이 났다. 반짝이는 빛들이 바다 전체를 휘감았다. 그 빛이 좋아 겨울에도 바다를 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몇 시간이나 바다를 바라 봤는지 모른다. 인생에서 몇 안 되는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늘 바다를 볼 수 있었던 그때가 아닐까 싶다. 그 추억이 운치가 있을 수 있었던 건 바다 때문이 아니었을까. 바다는 잔상을 남기는 법이 없으니 눈을 감을 필요도, 마음이 불편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가만히 말해주었다. ‘괜찮아, 괜찮다.’라고.
“승아는 부모님이 안 계셨나? 늘 와도 한 번 뵌 적이 없는 것 같네.”
“계시다면 꼭 한 번쯤은 만났었겠지.”
민은 안인바다 해변가를 걸었다. 파도가 잔잔하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승아를 보내주고 싶었다. 떠난 사람을 마음에 오래 두면 그 사람이 오래도록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라도 자신의 곁에 있다면, 분홍색 꽃신을 신고, 붉은 원피스를 휘날리며.
“가자.”
“먼저 가”
“안 가?”
“응, 하루만 더 있다 갈게.”
“병원은?”
“휴가 냈어.”
“이맘때면 늘 그러네.”
“그러게.”
“에라, 모르겠다.”
윤도 안 간다는 민이 곁에 앉았다.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민의 눈에서 ‘기다림’을 본 적이 있다. 노을을 기다리고, 자신의 하교 길을 기다리고, 스님의 목탁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많은 것을 기다린 민이를 꽤 오랫동안 봐왔다.
“어!”
윤은 민을 바라보다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는 민을 따라 일어났다.
“보살님!”
박 씨 보살이었다. 어렸을 적, 민과 윤의 식사를 빠지지 않고 준비해 주신 분이다.
“민이하고 윤이가 여긴 웬일이냐?”
“누구 잠깐 보내려고요. 웬일이세요?”
“절에만 있기가 답답해서.”
절에서 여기까지 거리상으로는 얼마 안 되지만, 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꽤 많이 걸어야 한다. 절에 있었을 때도 이곳에 오기 위해서는 큰 결심을 해야 했다. 박씨 보살님의 정확한 성함은 알지 못한다. 그저 주지스님이 ‘박씨’라 불렀고, 자연스럽게 보살님으로 불리게 되었다. 구체적인 나이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이쯤 어딘가에서 늘 만난 것 같다.
“매번 봐도 참 좋구나, 너희들은.”
박씨는 윤과 민의 팔을 번갈아 쓸어주셨다. 키가 아주 작았다. 처음 알았다. 늘 회색 법복을 입고 계신 모습만 보았다. 평상복 차림은 처음이다. 절이 아닌 다른 곳에서 뵈니 젊었을 때는 마음 고생 없이 웃으며 살았던 분이라는 느낌이 든다. 못 뵌 사이 눈가 주름이 더 깊어졌다. 눈빛은 밝았지만 어딘가 피곤해 보인다.
[ 교수님을 부축하는 모습. 교수님과 함께 납골당 안으로 들어서고. 누군가의 사진 앞에서 우는 모습. 나이든 남자 사진, 남자 아이 사진, 여자 아이 사진을 차례로 돌아보는데. 여자 아이의 사진이!!! ]
돌아서서 걸어가는 박씨 보살의 팔을 잡았다. 박씨 보살의 눈을 다시 한 번 깊게 바라 보았다. 그녀의 잔상은 늘 평범한 것이었다. 단 한 번도 박씨 보살의 잔상에서 그 아이의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승아를 알고 계신가요?”
윤은 그런 민의 팔을 잡았다.
“야! 보살님이 어떻게 승아를 아셔? 뭐하는 거야?”
박씨 보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의 팔자 주름이 조금 깊게 패였다가 자리를 찾았다. 힘들어 보인다. 참 어려운 말을 꺼내는 것처럼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다시 한 번 민을 바라본다.
“내 눈에서 무엇을 봤니?”
이번에는 민이 오른손을 살짝 쥐었다 폈다. 손에 땀이 찬다. 민은 말을 아꼈다.
“윤아, 민이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박 씨 보살은 윤에게 양해를 구했다. 윤은 민을 쳐다보았고, 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윤이 저만치 걸어가자 민과 박씨 보살은 바다를 보며 나란히 앉았다. 침묵이 필요했다. 민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승아는 죽은 게 확실했다. 그녀의 잔상이 승아는 죽었다고 말하고 있었고, 납골당에서 승아의 사진을 보았다. 왜 그런 잔상이 박씨 보살님에게서 보였을까.
“참 어려운 이야기다.”
민의 인생에 쉬운 얘기는 단 하나도 없었다. 어렸을 때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아 혹 사람을 만날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이 누구든지 우선 상대의 말을 들었다.
“많은 얘기는 할 수 없다.”
민은 잠자코 들었다.
“25년 전, 대학교수가 절에 들어오기 몇 년 전, 내가 이곳에 왔다. 마음이 복잡한 시기였다. 남편이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지. 비슷한 시기에 난 남편을 잃었지만 그 친구는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지. 그래서 내가 데리고 왔다.”
민은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세상의 이치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바다 끝에서 물이 밀려들어오면 해변가 가까이까지 들어왔다가 또 다시 저만치 밀려가며 멀어졌다. 지평선 끝이 손에 잡힐 것 같다가도 돌아서서 다시 보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그때 알았다. 너의 비범한 능력을. 너는 네 눈 때문에 삶을 비관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네 눈이 참 부러웠다. 나는 내 모자란 능력 때문에 많은 것을 잃었다. 내 마음 하나 챙기느라 돌아보면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많이 잃었다.”
“전… 방금 승아를 보았습니다. 보살님 눈에서.”
첫댓글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더욱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네요.
열심히 읽을게요. ^^
감사합니다. 무혜님의 힘을 받아 열심히 촘촘하게 써내려가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6.09 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