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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케니 달글리시 리버풀 감독 기간 : 헤이젤 참사 후 85년 5월 선수였던 34세의 달글리시를 선수 겸 감독으로 임명.
89년 4월에 있었던 힐스보로 참사의 스트레스로 91년 2월(39세) 감독직 사임.
5시즌 동안 올해의 감독상 3회. 리그 우승 3회. 리그컵 우승 2회 커뮤니티실드 4회 등.
(2008년 가디언지, 2009년 데일리메일 기사입니다. 당시 사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 구글 검색하다가 기사 두개 골라서 번역해봤습니다.
예전 기사이지만 그냥 인터뷰 기사라 올려도 될 듯 해서 번역했는데 혹시 문제가 된다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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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러쉬 :: 어느 누구도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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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에버튼을 상대로 구디슨 파크에서 4-4의 멋진 경기를 했습니다.(FA컵 2차전, 1차전은 안필드 0-0)
우리는 4번이나 그들에게 골을 넣었고 그들도 우리에게 반격했죠. 그건 정말 환상적인 경기였어요. 그 밤에 케니는 떠날거라는 어떤 사인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틀 뒤 그는 감독직에서 사임했습니다(당시 달글리시 나이 39세)
그 일은 아침에 일어났어요. 우리는 모두 훈련하러 와 있었는데 드레싱룸으로 오라고 들었어요.
케니가 안으로 걸어들어왔고 그는 떠날거라고 말했어요. 그건 엄청난 충격이었고 정말 놀랐어요.
그는 많은 말을 할 수 없었어요.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거든요.
그는 선수들을 관리하는 능력이 정말 뛰어났어요. 그는 선수들이 가진 쌓여있는 부담감을 없애주었고 스스로 그걸 처리했어요.
지금 그 때를 돌아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그 속에 혼자 쌓아두고 있었던 건지 볼 수 있어요. 당시에 그는 누구에게도 그걸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 것은 빅 클럽의 감독을 할 때 큰 타격을 줘요. 그리고 그는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에 대처해야만 했어요
-그는 힐스브로 참사의 모든 장례식에 참석했어요.하지만 그는 그런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왜 그가 그랬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어요.
그가 사임한 일은 선수단에 엄청난 충격을 줬지만 우린 계속 나아갈 수 밖에 없었어요. 그건 축구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우리는 단지 드레싱룸에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로니 모란(코치)이 말했죠.
"OK. 훈련하러 나가자." 그리고 우리는 코치를 따라 나섰죠.
모든 사람들이 그의 사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왜 그가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유를 몰랐고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 예상하지 못했었어요.
만약 그가 단지 1년동안만 감독직에서 잠시 나가서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해서 돌아왔다면 정말 좋았을거에요.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건 확실했어요..로니 모란은 우리의 다음 경기에서 팀을 맡았고 우린 루턴에게
패배했어요. 하지만 그는 팀을 완전히 맡고 싶지는 않다는 것을 분명히 했어요. 몇 주가 지나고 앨런 한센도 모두에게
은퇴하고 일자리를 구할 거라고 말했어요. 사람들은 농담일거라고 생각했었죠..(현재 방송에서 활약. MOTD 패널로도 참여중)
얼마 후 그레엄 수네스가 감독으로 왔을 때 난 기뻤어요. 난 그와 함께 경기를 했었고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죠.
하지만 내 생각에 그는 팀을 너무 빨리 변화시키려고 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당시의 리버풀은 감독일을 하기에 쉬운 클럽이었을 거라고 말합니다(매년 우승하니까)
하지만 그건 제대로 준비된 선수들이 있어야만 하고 그런 선수들의 제대로 된 경기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에요.
케니는 그런 점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기술이나 전술을 잘 지도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선수의 관리가
전술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man-management : 인재 관리)
많은 감독들은 선수들에게 두려움이 있어도 그냥 그들을 경기에 내보내버려요. 그리고 그들은 전술에 대해
잘 아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선수를 잘 관리할 수 없다면 어디에서도 완전한 성공을 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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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달글리쉬 사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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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글리시는 약 1년 후 2부리그의 블랙번의 감독으로 돌아왔고 1995년 블랙번의 프리미어리그 3번째 시즌에 블랙번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1부 승격 -> epl 4위 -> 준우승 -> 우승 후 블랙번 감독 사임)
그 후 2000년 셀틱에서 반년 동안 임시로 잠시 팀을 맡았던 것이(리그 2위, 리그컵 우승) 달글리시의 마지막 감독직이었습니다.
출처 :: http://www.guardian.co.uk/football/2008/feb/23/newsstory.sport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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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달글리시의 리버풀 감독직 사임의 이유 :
http://www.dailymail.co.uk/sport/football/article-1169023/HILLSBOROUGH-REMEMBERED-20-years-Trauma-horrific-day-lives-Dalglish.html (사임 원인에 대해 이안 러시의 기사에는 제대로 안나와있어서 조금 추가합니다. 기사에서 부분 번역)
달글리시는 힐스보로 참사의 희생자들 장례식을 하루에 네번까지 참석하고 있었고 결국 그 해 가을에는
참사 목격에 따른 불안증세와 스트레스로 인해 대상포진에 걸렸습니다.
그는 감독직을 그만두기를 원했지만 계속 클럽에 남아 있어 달라고 설득당했습니다.. 그리고 리버풀은 참사가 있던
89/90 시즌 마지막으로 리그 우승을 했습니다.
그리고 몇달 후, 1991년 2월, 몸과 마음이 산산조각나 버린 것 처럼 보이던 달글리시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사임을 했습니다
사임 전 날 경기가 끝나고 그를 축하해 주었던 친구들은 그에게서 사임에 대한 어떤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10대에서 지금은 TV저널리스트가 된 달글리시의 딸 켈리는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전날 밤에 오직 어머니에게만 사임에 대해 말하셨어요. 그는 감독 일을 더 이상 해나갈 수 없었어요.."
"그는 힐스보로 참사에 대한 모든 스트레스와 감정, 책임감. 이 모든 것의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고, 힐스보로는 아버지가
더 이상 감독직을 해나갈 수 없을 정도로 그를 비탄에 빠뜨렸어요."
첫댓글 케니옹 ㅠㅠ
ㅜㅜ 그런데도 돌아왔다는건 이사람은 진짜 리버풀을 좋아하는구나
참사로 시작해서 참사로.. 다난한 감독 생활이셨군요.
멋지네 블랙번 우승시켜놓고 사임이라니.
헐..이런일이있었던거군요.. 힐스보로 참사가 없었더라면.. 장기집권을 했을지도 모를일이네요
깜짝이양.......
22
33 깜짝놀람 ㅠㅠㅠㅠㅠㅠㅠ
444444 ㅠㅠ
55555555진짜 뒤에만 보면서 깜짝놀람ㅜㅜ
666 덜컥..이게 뭔일이래 ㅋㅋ
제가 글을 뒤에서 부터 읽는다는 걸 알게됨..
안타까운 일..
와....이런일을 겪고나서; 정말 힘들어셨겟어요 다시돌아오신모습보면 정말 킹케니!
참사에 대해 무지하게 많이 스트레스를 받으셨나보네요...
힐스보로 참사가 어떤건지 알려주실분..?
이 사건으로 경기장 입석이 폐지되고, 92년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는 계기가 됐죠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 수만큼 리버풀에서 우승컵을 들긴 힘들고... 리그 우승부터 받칩시다...
헤이젤 참사는 알겠는데 힐스보로 참사는뭐지..?
너구리님// 술 취해서 몰려서 그런거 아닙니다. 경찰이 당시 술 취한 리버풀 팬들의 잘못이라는 식으로
기사를 내서 큰 문제가 되었고 결국 질서 유지를 하지 못한 경찰의 책임이 컸습니다. 내용 추가했으니 위에 봐주세요.
사람들은 당시의 리버풀은 감독일을 하기에 쉬운 클럽이었을 거라고 말합니다(매년 우승하니까) // 와 과연 지금 맨유처럼 매년우승하는팀에 다음감독들도 이런생각할수나 있을까
결국 팬들이 자초한샘이군요...
그렇지 않아요..내용 추가한거 봐주세요...
그건 힐스보로보다 헤이젤이..
대단한 감독..
그리고 뒤이어 온 리버풀의 레젼드 그레이엄 수네스.... 그가 감독에 취임하게 되는데...
계속하셧으면......ㅠㅠ
34살의 나이로 최고의 명문팀 감독직 부임. 거기다 첫시즌은 선수로 직접 뛰면서 우승시켜버리고(FA컵까지 더블달성).... 5년 부임동안 리그 3회 우승(나머지 두번도 준우승이었음)... 5년동안 쓸어간 트로피만 9개임... 이건 무리뉴도 한수 접고 들어가야 하는 포스. 힐즈보로만 아니었으면 자칫 지금의 퍼거슨도 없었을 지도 모르는 일...
2222 블랙번도 우승시켰으니 이건 뭐 말 다함
케니옹쩐다...........
다음시즌진짜기대되네요 ...!!;
나 진짜 깜짝 놀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타깝네요.. Daniel Pacheco Lobato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 누르고 가요.
당시 입석이랑 현재 프리미어리그의 차이가 뭐죠??
프리미어리그 출범 전 리그와의 차이를 말하시는건가요? 그냥 프리미어리그로 이름을 바꾼 것 말고는 별 차이는 없어요.
80년대 후반에 점점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타 유럽 축구 리그가 더 발전되어 나가니까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거죠.
입석은 힐스보로 참사 전부터 문제점이 많았는데 참사로 인해 완전 드러나서 모두 좌석으로 바꿨죠..
입석이랑 좌석의 차이점을 몰라서리...;ㅋㅋ
아 입석은 그냥 의자 없이 바닥에서 서서 보는거고..좌석은 지금처럼 의자 쭉 놔서 앉아서 보는거구요,,
아무래도 아무 장치도 없이 몇천명 되는 사람이 모여서 서서 응원하고 뛰고 이러다 보니 안전에 대한 문제점이 많이 드러났던 것 같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