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에 김구 얼굴 필요
1902년 인천. 조선 상인의 손에 낯선 얼굴이 그려진 종이 한 장이 쥐어졌다.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 제일은행장이었다.
대한제국이 외국 화폐 유통을 금지하자 일본은 군함 세 척을 보냈다.
그렇게 이 땅에서 처음 돌아다닌 근대 지폐에는 일본인 은행가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보부상들이 배격운동을 벌였지만 소용없었다.
화폐에 얼굴을 새기는 일은 언제나 주권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2024년 7월, 일본은 그 얼굴을 1만엔권 앞면에 다시 올렸다.
화폐는 그 나라가 매일 손에 쥐는 국사 교과서다.
그렇다면 우리 교과서엔 누가 실려 있는가.
이황, 이이, 세종, 신사임당. 넷 다 조선 사람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을 만든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없었던 게 아니다. 지워진 게다.
2007년 11월, 10만원권 도안 인물은 백범 김구로 확정됐다.
그런데 2009년 1월 발행 추진이 중단됐다.
독도가 빠진 대동여지도, 경기침체, 부정부패 우려가 이유로 붙었다.
당시 재정부 장관은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했다.
일본 눈치가 아니었다.
최고액권에 김구가 아니라 박정희를 넣자는 요구가 안에서 터져 나왔고, 정부는 그 충돌을 피하는 쪽을 골랐다.
여기서 얼굴 없는 기념(Faceless Commemoration)이 태어난다.
2025년 광복 80년. 한국은행이 내놓은 기념주화 두 종의 도안은 빛줄기와 발자국과 엠블럼이었다.
사람은 없었다.
각 7천 장, 한 장에 8만 5천 원. 아이 손에 쥐여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반론은 정연하다.
독립운동가는 좌우 평가가 갈리고, 고증이 끝나지 않았으며,
화폐는 통합의 상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평가가 하나로 모일 때까지 기다리자는 이 논리를 합의 대기(Consensus Deferral)라 부르자.
문제는 그 대기에 만료일이 없다는 데 있다.
80년을 기다렸는데 아직 이르다면, 대체 몇 해가 더 필요한가.
게다가 우리는 이미 답을 갖고 있다.
2018년, 한국은행은 평창을 기념해 2천 원짜리 지폐를 찍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기념은행권이었고 230만 장이 나갔다.
법정화폐이되 통용의 부담은 없었다.
정전(正典)을 확정하지 않고도 얼굴을 새기는 길이 이미 열려 있었다는 뜻이다.
못 하는 게 아니다. 안 하는 게다.
삼일절과 광복절마다 백 원짜리 기념은행권을 찍어 아이들 손에 한 장씩 쥐여주는 나라를 상상해본다. 안중근, 김구, 유관순, 윤봉길, 지청천. 해마다 한 사람씩.
아이는 그 종이를 필통에 넣고 다니다 문득 뒷면을 들여다볼 터.
인도 아이들은 간디를,
베트남 아이들은 호찌민을,
튀르키예 아이들은 아타튀르크를 매일 만진다.
긍지는 주입되지 않는다.
손에 만져질 때 몸에 남는 것이다.
무엇을 기념하는가는, 무엇을 소중히 여긴다고 말하는가보다 언제나 정직하다.
일본은 자기네 얼굴을 되돌려 놓았다. 우리는 아직 얼굴을 고르지 못했다.
훗날 우리 아이들이 지갑을 열었을 때,
거기서 누구의 눈을 마주치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