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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6일(목)
* 시작 기도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은 창세전에 아버지의 생명으로 태어나셨습니다(요 5:26).
아버지와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창세전에 사람을 지으시고 그들에게 영생을 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딛 1:2).
그런 주님은 창세전부터 이미 우리의 구주가 되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로 작정되셨습니다(벧전 1:20).
이는 아담과 같은 죄를 지을지라도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 없으시므로 창세전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심을 보여주심입니다.
하여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가 되시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곧 불의한 자요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의인으로 삼기 위함입니다.
내가 받을 형벌을 우리 주님께서 다 받으시고 죄인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의인이 되었기에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는 나의 의를 드러내거나 그 의로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오직 우리 주님의 은혜로 살기 위함입니다.
나는 그렇게 주님과 함께 죽은 자요 무덤에 장사된 자입니다.
따라서 거룩한 불구자로 서서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이 주신 새 날을 주님의 기쁨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18:28-40
제목 :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석을 듣느니라.
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 나의 묵상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들을 보여주실 때 그들이 본 표적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고자 하였다(요 6:15).
하지만 예수님은 이 세상의 임금이 되고자 오신 것이 아니므로 오히려 그런 유대인들을 피하셨다.
하지만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는 결코 피하지 않으시고 성전이나 회당에서 기회가 닿는 대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다.
그처럼 복음을 전하시면서도 연약한 병자들이나 귀신 들린 이들을 고쳐주시는 것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셨는데 이는 병이 떠나가거나 귀신이 떠나가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임을 선포하시기 위함이었다.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이들이기에 병자를 고치거나 귀신들린 자들의 귀신을 쫓아내 주시고 그들이 육신으로 평안을 누리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이런 표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보는 자마다 예수님을 믿었으나 그것은 검증된 믿음이 아니었다.
그들의 믿음은 세상 누구도 하지 못하는 그런 표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자신들의 필요와 욕구를 채워주는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왕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이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실 때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면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며 큰 소리로 외치며 환대하였다(요 12:12-13).
이렇게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 편에 서고 그를 믿는 자들이 많이 나오자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결국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계략이 물거품이 된 것을 알고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요 12:18-19)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그런데 그토록 기대했던 예수님은 정작 자기들의 세상적인 왕이 아니라 죽을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다(요 12:32).
그러자 하나 둘 돌아서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말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만다.
그리고 그나마 있던 믿음조차 다 잃어버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되었다.
(요 12: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한편 가룟 유다 역시 예수님이 자기가 원했던 정치적 메시야가 아님을 알고 결국 그를 은 30에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긴다.
그래서 예수님을 넘기기 위하여 군대와 종교지도자들의 아랫사람들인 성전 경비대를 이끌고 등과 횃불 그리고 무기를 들고 예수님이 계신 겟세마네 동산으로 온다.
그들은 거기서 예수님을 결박하여 맨 먼저 가야바의 장인이며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에게로 끌고 간다.
예수님께 이것저것을 물은 안나스는 예수님을 결박한 채로 가야바에게로 보낸다.
가야바는 자신의 집에서 산헤드린 회의를 열어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를 적용하여 사형을 언도한다.
(마 26:65-66)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모독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하는 말을 들었도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그 후에 가야바는 다시 예수님을 빌라도 관정으로 넘긴다.
예수님이 그 관정에 도착하셨을 때는 새벽이었다.
그리고 이들 유대인들은 그들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월절 식사 참여를 위하여 부정하면 안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이방인인 빌라도의 관정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이 종교지도자들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인위적인 규례를 지키기 위해서 관정으로 들어오지 않자 빌라도가 자기의 관정 밖으로 나와서 예수님을 넘겨 고소하는 이유를 묻는다(29절).
여기에는 정말 웃지 못 할 우스운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사형판결을 받도록 이방인인 빌라도에게 넘겨주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만든 유전은 지키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위선적인 모습을 대조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예수님이 지적하신 대로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유대인들의 위선적이고 외식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마 23:23-24)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한편 빌라도가 관정 밖으로 나와서 유대인들에게 고소 이유를 묻자 그들은 예수가 행악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한다면 당신에게 넘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 빌라도가 너희들이 데려다가 너희들의 법대로 재판하라고 하자 그들은 자기들에게 사형의 권한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에 대해 사도 요한의 설명이 첨부된다.
유대인들이 우리에게는 사형권한이 없다고 말한 것은 예수님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을 그들로 하여금 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이다.
그러자 빌라도가 다시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예수님께 묻는다.
이에 예수님은 질문 형식으로 되물으신다.
“이 질문이 너 스스로 하는 것이냐, 아니면 누가 나에 대해서 너에게 넣어준 말이냐?”
빌라도는 이에 대해서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는데 도대체 네가 무엇을 하였기에 그러는 것이냐?”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약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였다면 내 종들이 그들과 싸워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기지 않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고 묻자 예수님의 대답이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다. 나는 이것을 위해서 태어났고 또한 세상에 왔는데 나는 오직 진리를 증거하러 온 것이다.”고 하셨다.
그 때 빌라도가 “그러면 도대체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물은 빌라도는 예수님의 대답은 듣지 않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말하기를 자기는 예수에게서 어떠한 죄도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유월절에 자신의 권한으로 한 사람을 석방해 주는 전례가 있는데 “너희가 원하는 사람이 누구냐, 너희 유대인의 왕인 예수를 놓아줄까?” 하고 묻자, 유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예수가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요구하였다.
이들이 요구한 이 바라바는 강도였다.
예수님이 사형언도를 받은 것도 거짓 증인들에 의하여 가야바의 관저에서 받았다(마 26:59-66).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어떠한 죄목도 찾지 못하였지만 유대인들의 끈질긴 요구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눅 23:22-23)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처럼 유대인들은 두 얼굴을 가진 자들이다.
자기들에게 유리하면 목숨이라도 내어 놓을 듯이 환대하고, 쓸모없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버리는 아주 악랄한 자들이다.
그런데 내 안에 그런 유대인들의 악랄함이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습성이나 두 마음을 품어 의심하는 자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낙타는 삼키려 하면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는 외식하는 자가 내 안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주님은 이런 나를 심판하셨다.
그런데 그 심판이 복음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심판은 하나님의 의를 세우고 그 의를 통하여 나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짜 주님이 증거하기 원하셨던 진리이다.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 37절에서 빌라도의 물음에 진리를 말씀하신다.
나는 네가 말한 것처럼 왕이다.
내가 이를 위해서 창세전에 아버지의 생명을 받아 태어났고 또한 이를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
이에 더하여 주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그 때 빌라도가 도대체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지만 주님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나가고 만다.
주님이 증거하러 오신 진리란, 곧 복음이요 복음을 통해서 얻는 영생이다.
이 영생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창세전 약속인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아버지의 생명으로 태어나셨고 또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벧전 1: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이 말씀들이 진리요 또한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복음이다.
아들이 오셔서 생명을 주시면 우리가 그 생명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시기 전에 범죄하여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사망을 열매로 얻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불의할지라도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가 없으시다(롬 9:14).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에게 복음을 주신다.
그 복음은 창세기 3:15절인 여인의 후손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적인 복음과 3:21절의 가죽옷으로 예표되는 십자가 죽음과 무덤에 장사됨 그리고 부활과 현현의 복음이다.
바로 이 두 차원의 복음을 믿으면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그 안에 아들의 생명인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
이는 결국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아는 것이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이다.
이는 누가 누구를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나아가 깊이 묵상을 할 때 내 안에 이미 계시는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다.
따라서 이 교제와 사귐은 큰 자나 작은 자나 예수를 주로 믿는 모든 새 언약 백성들이 날마다 행해야 할 조건의 규정이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약속하신 새 언약의 내용이다(렘 31:31-34).
이는 예수를 구주로 믿는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새 언약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로 삼으신 영적 이스라엘이다.
(렘 31: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영적 이스라엘)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주님이 오시기 600년 전에 약속하셨지만 그 언약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성취하셨다.
(눅 22:20b)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나는 주님께서 흘리신 그 피로 인하여 새 언약 백성이 되었고 새 언약 백성으로서 날마다 주의 말씀으로 아버지와 아들 안에서 교제와 사귐으로 영생의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이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나 비록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베드로처럼 주님을 부인하는 일이 현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가 아닌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담대히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담력을 얻었기에 오늘도 파레시아로 나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영혼이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생명이 나의 것임을 믿습니다.
나 여전히 연약하여 주님을 부인하고 죄인의 자리에 앉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보지 않으시고 내 안에 있는 아들의 피를 보시고 아버지의 자녀로 삼으시오니 오늘 하루도 주님의 그 피를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나의 연약함이 오히려 주님의 강함이 되기에 자랑할 것 없지만 나의 연약함을 자랑하는 자로 서게 하소서.
세상은 자기의 있는 것, 지혜와 강함을 자랑하나 나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자랑할 것이 없나이다.
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만 자랑하게 하소서.
내 입술이 닫혀 말을 하지 못하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을 자랑하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표리부동한 자가 아니라 나에게 불리한 일이 있을지라도 주님을 부인하는 자가 아닌 주님과 함께 무덤에 연합하여 생명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참된 종이 되게 하소서.
나의 생명이 오직 주님과의 연합 안에 있기를 원하나이다.
그리하여 어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와도 넉넉히 생명이 죽음을 삼키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