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하면 ᆢ 삼순이 삼돌이가 썸을 타던
물레방앗간도 있지만 ᆢ
내 어린시절 그때 그시절 우리동네 방앗간은 먹고살기 위한 생명의 전투장이 였다
가을에는 고추부터 깨 들께 콩 (콩가루)
쌀가루 등 고사 제사 잔치때 쓰는 곡물들을 빻고 봄 에는 주로 기름을 짜고 명절에는
떡을 만드느라 피댓줄에 감겨 쇠바퀴는
요란한 소리를 내고 돌아갔디ㅡ
명절 며칠 전부터 불린쌀을 소쿠리나 다라에
이고 방앗간을 가면 미리온 사람들로 장사
진ᆢ 줄이 열발은 넘게 서있다 누런 자백이
뒤에는 대소쿠리 대소쿠리 뒤엔 양은 다라
그뒤엔 설겆이 다라 뒤엔 보리쌀씻는 곰보 자백이 은색물통 소여물통같은 나무자백이
등ᆢ 하여간 요즘같이 흔해터진 플라스틱
이나 스텐 소재가 별 없을때라 이고 지고
오기도 무겁지만 질그릇 나무로만든 집안소품들이 많았다
; 민정아 ! 내 집안일 하고오께 단디 줄서
있거라 ᆢ ;
하고 엄마가 가고나면 나는 쌀그릇 옆에
쭈구리고 앉아 줄을 기다린다 전기도
흔치않아 때로는 방앗간 정전이 되면
몇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고 꺼니때를
건너 띄면서도 떡줄을 못 떠난다
어쩌다 줄이 잘못되어 쌀 다라가 바뀌면
그때는 사생결단이 난다
; 아이고 이여편네 좀보레이 ᆢ언제 니 다라가 내앞에 왔노 ᆢ! 이뇬이 눈 빼묵겠네 !;
: 와이카노 ᆢ 니가 내 뒷줄이지 내는 그대
로 있는데 이기 미쳤나 ᆢ!;
결국 입씨름 뒤에는 머리채를 잡아채고 니
죽고 나살자 씩으로 육탄전이 벌어진다
연세 지긋하신 방아간 일세대 할배가 나서서
근엄하게 한소리 하고는 뻘쭘하게 끝이난다쌀을 빻고 찌고 수도꼭지 같은 데서 떡이
줄줄 나오면 작은자 한자 정도로 끊어낸다
어쩌다 한집 끝난 쌀떡 찌꺼기가 나오면
서로 얻어 먹으려고 밀려나오고 떡주인은
가재미 눈을 희번떡 꺼리고는 잽사게 덮어
들고 빠진다
설빔이라고 있는집 애들이야 그때 최고로
치는 골덴 바지와 알록달록 예쁜 쉐타를
입으면 한껏 뽐냈고 한복은 여러해를 입다
작아지면 딴천을 대어서 늘켜 입었디ㅡ
입에 풀칠도 어려운 애들은 정갱이가 다드러
난 옷들을 그냥 그대로 입고 설 추석이 없느
니 만도 못해 버짐이 누렇게 피고 칙칙한
얼굴에 콧물이 누렇게 흘러내렸다
창분네는 떡대신 창분할매가 날마다 술
찌개미를 얻어다 당원을 타서 먹인고로
창분이 볼은 늘 빨겠었다
다음편에 계속
첫댓글 방앗간 남자친구가
방앗간님 아들이라
소실적 덕을 많이 보았지요
스리 슬쩍 어깨힘 줬던생각이
킄 그때 그시절 방앗간 아들은
귀족 같았죠 ᆢ 언니가 자그마하고
귀여워서 남자 애들이 많이 좋아 했을 거에오ㅡ ᆢ 보나마나 ᆢ
재미있게 읽었지만 민정님 세대 이야기가 아닌것 같아요 .
그때 그시절 6.25 직후 이야기 같은데...
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듣는것 같아 옛 생각이 떠오릅니다.
우리 세대 이야기 입니다
분명 내 기억속 이야기 입니다
625가 53년에 끝났으니 55년 생이면
예닐곱살때 보이는 풍경입니다
당원 생각이
납니다.
사카린보다 진일
보한 것이 당원
같아유.
저는 어린 시절
방천에서 소를 많
이 뜯겼습니다.
여기에서 방천은
큰 냇가 제방을 말
하고 뜯기다는 말
은 소에게 풀을 뜯
어 먹게 함을 이릅
니다.
소를 뜯기면서 공
부를 했는데 어디
에서 주워들은 게
단 음식을 먹으면
피로가 풀린다는
말이 있었지유.
나는 소를 뜯기면
서 공부를 해서 피
곤하다고 생각해
서 피로를 푼다고
생각해 낸 것이 단
물이었지요.
여름에 당원과 사
카린을 탄 물을 병
에 담아서 방천에
소 뜯기러 나갔답
니다.
소에게 풀을 뜯기
면서 당원을 탄 물
을 먹고 배아파서
혼이 난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공
부를 해서 당시에
는 대처이고 충북
도청이 있던 청주
시로 청주고등학
교를 입학한 것은
두고두고 자랑스
러운 지난날 얘기
랍니다.
또 방앗간에서
떡을 뺄 때 김이
나는 가래떡 맛
도 잊을 수가 없
는 추억입니다.
당시 방앗간 원동
기는 휘발유를 썼
는데 모터를 돌리
면 휘발유 냄새가
났습니다.
지금도 휘발유 냄새를 많이 좋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휘발유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아프다는데 전
휘발유 냄새가
좋습니다.
우리 아부지 살아
생전 이야기
인데 아부지도
어릴때부터 휘발유
냄새가 좋았다는데
그것을 보면 부전
자전이 아닐까유.
저는 지금도 휘발
유 냄새가 샤넬 향
수보다 좋습니다.
민정친구님
어린시절 추억
가득한 글에 쉬어
갑니다.
병원 갔다가 귀갓
길 시내버스 속에
서 썼습니다.
편안한 시간이 되세요.
.
세상에 저도 휘발유 석유 냄새를
좋아합니다 기름내새 좋아하면
배에 회충이 밇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60년전엔 쌀이 참말 귀했었나봐요 흰 가래떡도 귀했고 몰래 대청끝에 벼보자기에 덮혀 있는
그걸 한뼘정도 짤라가꼬 꽁지가 빠져라 산모퉁이로 도망가 먹었든 기억이 나는 군요 닭고기
몇점 넣어가꼬 끓여냈든 그때 먹었든 떡국맛 고기도 귀했고 쌀도 귀했든 그런 시절 이였지요
사진 설명: 몇년전 송년회날 영등포 ? 웨딩홀 그날 김여사님은 사회를 보셨든 날로 기억됨돠
네 ᆢ 맞습니다 신화여님이 어떤분이
신지 ᆢ ㅎ ㅎ
@김민정 앵경쓰고 빵떡 모자쓴 논네 임니다
집사람과 첫번 데이트로 동반 참석 했었네요
민정님 글을읽으니 영화에서 봤던 시대입니다 나는시골서 안살아봐서 그런 광경은 못봤는데 다큐멘터리 보는거 같애요
저는 시골김해에서도 살았고
부산에서도 살았습니디ㅡ 중학교부터
서울에 왔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8.20 14:51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8.20 14:55
이런 문학적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김민정님, 기억력도 놀랍고요.
선배님 문학절 재능은 없습니다
그랬으면 신준문예 당선 작가의
길로 갔지요 ᆢ ㅎ ㅎ
저희도 기계떡(가래떡)을 뽑으러 갈 때는,
기다리느라 심심하지 않도록 식구들이 다 가서,
어른들은 줄 서서 기다리시고,
우리는 그 옆에서 재기차기 말타기 등을 하면,
그거 보고 웃으시면서 지루함을 달래신 기억이 납니다
떡방앗간은 하난데 몇 백 집에서 떡을 하러 오니 . . .
그랬지요 ᆢ 떡한말에 식구가 두셋이
가는집도 있었습니다 지금처름 떡집이 많고 떡종류 도 다양하지 않았지요
그래도 그때의 떡맛을 못잊습니다
@김민정 그렇지요
그 가래떡 굳은 거 화로에 구운 뒤
꿀 찍어서 먹던 그 맛은 절대 못 있지요 ㅎㅎ
@꿈나그네 밥 반찬비슷하게 소위말하는 왜간장(양조간장) 으로 찍어 먹기도 했습니다
침 ᆢ 꿀꺽 ᆢ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석현..)
죽지도 않고 또 왔네유..ㅋ
몇년전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가수 손담비의 "미쳤어" 라는 가사 일부분이
꼭 저 석현이를 비유 한것 같더라는 ...ㅋㅋ
내가 미쳤어~~♪~내가(셕현이가..) 미쳤어!!..♬......ing
무한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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쫀득쫀득~~달짝지근...
감칠맛 나는 글 솜씨에
정신없이 흠뻑 취해 봅니다...ㅎ
제 개인적으로 사연으로 인하여...
아주 오랫동안 카페 출입을 자제 하면서..
은둔회원(?)으로 지냈지요ㅠㅠ
마음속 한켠에는..
울 카페 몇몇 벗님들의
숨결과 향기가..
엄청시리 그리웠더라는...ㅎㅎ
{그때 그시절} 시리즈와 댓글들을
거의 한시간에 걸쳐
단숨에 읽고나니
제 어렸을적 수많은 추억들과
단상들이 바로바로 눈앞에
펼쳐지는듯 하더이다...ㅎ
늘 건필 하시고...
참으로 타고난 달필가!!....^^
오메 오메 뭔짓이여 ᆢ 워째 그간
콧빼기도 안보였당가 ᆢ 궁금하고
보고 잡았는디 ᆢ 하여간 죽지않고
이렇게 소식 받으니 ᆢ 기쁘고 감사
허요 ᆢ 자주좀 보잔께요 ᆢ
워잿든 반가버요 ᆢ
석현님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햇는디요...ㅎㅎ
이제 다 지나간 옛추억의 단면입니다
지금의 도시화와 속에 그러한 모습은 찾기어렵고 , 조금있으면
추석이 다가오는디, 여기 화순의 농촌에서 조금은 볼것같은 기분입니다
지금시대 사람들은 이해도 안되고
그렀게 살라고하면 난리 날것입니디ㅡ
ㅎ ㅎ그래도 그렇게 살아 왔는데 ᆢ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이 그립고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