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6일 묵상 본문 : 요한복음 18장 28절 - 40절 - 죄로 물든 인생의 본질을 알고 겸손히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며 생명의 길을 가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변함없는 주의 은혜로 하루를 시작하며 주의 보좌를 향해 나아갑니다.
봄의 기운이 성큼 다가온 날씨가 반갑기도 하지만 봄은 분주함의 계절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계절의 변화를 준비하는 이들이 모습을 봅니다.
성도들에게도 늘 주의 오심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임하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의 음성을 듣는 은혜를 영적 귀를 열어 주시고 하늘의 보좌를 바라보는 자 되길 원합니다.
참 진리를 알고 따르는 삶이 되도록 붙드시고 영생을 누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요한은 예수님이 가야바의 관정에서 있었던 일들은 공관복음에 자세히 기록되었기에 기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이 로마의 관정으로 가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는 일을 기록한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사형을 위해서는 로마의 인가가 필요하였기에 예수님을 로마 총독의 관정으로 데려갔다. 로마의 관정은 평시에는 가이사랴에 있었으나 유대인의 명절에는 소요가 일어날 수 있었기에 예루살렘 서북쪽의 안토니오 성에 머무르거나 헤롯 궁전을 사용했다.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이 관저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기록으로 보면 빌라도는 안토니오 성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율법에 없는 것으로 당시 유대인들이 첨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성에 들어오지 않은 유대종교지도자들과 대화하기 위해 빌라도가 성 밖으로 나가서 그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 빌라도는 유대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그들의 행동에 대해 불신하는 마음이 컸기에 이러한 태도를 보였다.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행악자라고 한 것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사형을 언도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유대인에게서는 사형을 내릴 일이지만 로마법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한 이유를 파악하고 그들의 법대로 재판하라고 넘겨준다. 이는 빌라도가 종교지도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치적 계산에 불과했으며 자기의 직무를 유기하는 태도였다. 또한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다고 한 것은 예수님을 로마법에 의해 처형 받게 함으로써 그 책임을 로마에게 떠넘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대지도자들은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기도 했으며(행7:59) 야고보를 사형(행12:2)시키기도 했다.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한은 이러한 유대인들의 태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한 섭리였음을 제시한다. 결국 예수님의 죽음은 종교지도자들의 음모나 어쩔 수 없는 죽음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실행된 죽음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한 내용은 유대인들을 미혹하고 세금을 내지 말라고 했다는 것과 자신을 스스로 그리스도라고 한 것이었다.(눅23:2) 빌라도는 이중에 3번째 내용을 확실하게 분별하기 위해 예수님에게 유대인의 왕이냐고 질문하게 된다.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예수님은 빌라도의 질문이 자신의 생각인지 아니면 유대인들이 이야기한 말인지를 물으신다. 이는 빌라도의 궁금증은 정치적 메시야에 대한 것이고 유대인들은 예언된 메시야에 대한 궁금증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수님은 빌라도의 생각을 아셨지만 당시 사람들이 오해를 살 수 있는 질문이었기에 빌라도의 의중을 다시 한 번 물으셨음을 보여준다.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빌라도는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기에 유대인의 메시아에 대해 관심이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유대인들이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님을 자신에게 넘겼으니 예수님이 무엇을 했기에 이런 태도를 보이느냐고 반문한다.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나라가 땅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임을 선언하신다. 자신이 땅의 나라에 왕이 되려고 했다면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이 세우려는 나라는 땅에 속한 것이 아님을 드러내신다.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의 말은 예수님이 왕이라는 사실에 대해 긍정적인 놀라움을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빌라도의 말을 인정하시면서 자신이 땅에 속한 나라에 오신 이유와 목적을 밝히신다. 그 목적은 진리에 대해 증거 하기 위함이며 진리를 따르고자 하는 자는 자신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을 선포하신다. 결국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 자신임을 드러내시고 있다.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빌리도가 물었던 진리는 세상적인 진리를 의미하고 예수님이 말한 진리는 유일한 구원이요 진리가 되는 복음의 진리를 의미한다. 하나님과 영적 관계가 성립되지 않은 자는 영적 진리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빌리도의 질문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태도가 아닌 죄인으로 잡혀온 주제에 진리를 논하는 예수님에 대해 비꼬는 태도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빌라도는 이어서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이 로마법에 있어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찾지 못했음을 선언한다.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빌라도는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명절에 죄수를 풀어주는 일을 제시하며 예수님을 놓아주고자 한다. 이는 당시 빌라도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나 그 결정은 군중에게 있었기에 빌라도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바라바는 무력으로 로마의 식민 통치에 대항했던 셀롯당의 지도자적인 인물이었다. 결국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폭력과 살인을 일삼은 바라바를 선택함으로써 그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나의 묵상
예수님은 가야바의 관정에서 심문을 받으신 후 로마 총독의 관정으로 이동하신다.
당시는 유월절 절기였기에 로마의 관정은 가이사랴가 아닌 예루살렘과 가까운 안토니오 성으로 추정되고 그곳에서 총독의 심문을 받으시게 되었다.
사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가지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스데반도 돌로 쳐서 죽였으며 야고보 사도도 처형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로마의 관정으로 끌고 가서 사형을 받도록 한 것은 민심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죽인 책임을 로마인들에게 돌리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들의 지위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고 죽이려는 그들의 태도는 그들이 사단에게 속한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나 결국 자기를 섬기고 세상의 것을 움켜쥐려고 하는 악한 본성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로 만들고 세상의 종으로 살게 만드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잃어버리고 땅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모습은 깊이 뿌리박인 본성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살아가는 모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심판 받을 자로 살아가는 타락한 본성을 버리는 것은 결국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서 영적으로 죽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하신다.
죽음의 고통은 사람의 본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살아갈 때에만 비로써 가능한 길임을 보여준다.
주변에서 범죄 하는 자들을 쉽게 정죄하고 문제를 드러내는 본성은 본문에 나오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태도이다.
물론 모든 인생을 이런 모습으로 살지 않고 주 안에서 변화된 모습을 가지고 살도록 이끄시는 은혜가 주어지기에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임을 고백한다.
그러나 쉽게 바뀌지 않는 본성은 늘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되고 부끄러움이 되며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연약함의 모습이 됨을 고백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인내하시고 기다리시면서 복음에 연합되는 자들이 되도록 이끌어 주신다.
빌라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면서 진리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위와 입장만을 생각하며 진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진리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비웃으며 비꼬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무능과 패역함을 알고 주께 나아가 긍휼을 구하는 것이 인생의 지혜이며 바른 태도이고 진리를 깨닫는 방법이 됨을 고백하게 하신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만함을 버리고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성도의 사명이며 책임이고 나아갈 방향이 됨을 제시한다.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1~5)
오늘도 주의 말씀은 내 마음의 죄와 허물, 교만함과 패역함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또한 그 죄와 허물을 내어놓고 주의 긍휼과 자비, 지혜와 능력을 바라보게 하신다.
그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며 오늘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진리를 따라 고난에 동참하고 주의 일을 감당하는 자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끝까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마저 죽음으로 내모는 자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저의 모습임을 부인할 수 없으며 패역한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주님 앞에 심판받을 자의 모습이지만 오늘도 주님은 주 앞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그 은혜가 한 줄기 소망을 발견하게 하며 어두운 인생의 빛이 됨을 고백합니다.
주와 교제함은 진리를 발견하는 길이며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깨닫는 길입니다.
순간마다 주와 교제하는 삶이 되도록 도와주시고 진리를 알고 따르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하게 하시고 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하옵소서.
주의 사랑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게 하시고 복음에 합당한 말과 행동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날마다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