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박스 골프 입문생, 유동근
1984년의 유동근을 기억하는 사람.
별로 없다. 그 시절의 나는 무명 연기자였기 때문이다.
무명 연기자와 골프를 연관시키기는 힘들지만, 내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당시 무명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해전인 83년 심하게 교통 사고를 당했는데 그 후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고, 다시 사는 인생을 치열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골프를 시작하라는 선배의 권유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늘 기다려야 하는 '시간 많은'무명 연기자였기 때문에 골프를 할 수 있었다.
방송이 생길 때까지, 언제 생길지 모르는 촬영 스케줄에 항상 대기해야 했다. 그때 기다림의 장소가 된 곳이 KBS 별관 근처의 연습장이다. 그곳에서 하루에 한 박스 이상의 볼을 치는 '기다리는 연기자'가 됐다.
'한 박스'라는 것은?일반 골프 볼 박스가 아니라 배추 20포기는 너끈히 들어가는 노란 플라스틱 배추 박스였다. 배추박스는 오전에 가서 연습장 문닫을 때까지 치고 또 쳐도 남는 분량이다.
지금이야 탤런트 실의 신인 연기자들도 대부분 골프를 배우고 있지만 그 때만 해도 골프를 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쉽게, 여유 있게 골프를 친 것은 아니다.
남들이 보면 골프 연습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호화로운 기다림'같았겠지만 사실 그 때 나는 연습장이 끝난 다음에 연습 생들과 볼을 같이 수거하는 것으로 얇은 주머니를 대신해야 했다.
'삶에 대한 애착+기다림의 미학+여유롭지 않은 주머니'가 어우러진 남다른 골프입문이었던 것이다. 그 때 몸이 힘들어질수록, 정신은 더없이 맑아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 헝그리 골프는 시작한지 1년 뒤 79타로 첫 싱글 스코어를 기록하게 해주었다.
역시 '헝그리'는 예나 지금이나 무서운 열쇠이다. 그때의 배추박스를 생각하면 지금 연습장 박스가 얼마나 작아 보이는지 모른다.
나는 요즘도 연기 때문에 체중감량이 필요할 때는 그 배추박스의 볼을 찾는다. 그러면 며칠 안에 5㎏정도는 쉽게 빠지기도 한다.
배추박스로 시작된 골프 입문.
호화로운 시작은 아니었지만 오기와 인내, 기다림의 의미를 알려준 그 젊은 날의 골프가 나는 더 없이 자랑스럽다.
탤런트 유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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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자유로운 이야기
♣정담♣
유동근의 헝그리 골프 인생론(펌)
푸른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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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2.18 21:0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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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잘 살아 보세 ♬~
헝그리 정신은 송강호가 짱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