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風水地理)는 자연환경과 사람의 길흉화복을 연관지어 설명하는 전통적 지리이론, 기본논리는 일정한 경로를 따라 땅속에 돌아다니는 생기(生氣)를 사람이 접함으로써 복을 얻고 화를 피하자는 것으로 도성, 절, 집, 무덤 등을 만드는데 있어 지상(地相)을 판단하는 이론이다.
풍수지리는 山,水, 방위(方位), 사람(人) 등 4가지 요소를 조합하여 구성하며 주역(周易)을 주요한 준거로 삼아 음양오행(陰陽五行)의 논리로 체계화하였으며 지리(地理),지술(地術) 또는 감여(甘與)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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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신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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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12월 광주군청을 중부면 산성리에서 경안리로 이전하였다. 그로부터 92년이 지난 지금 최신식 건물로 웅장하게 건립하게 된 것이다.
광주시청 신청사는 송정동 570번지에 사업비 875억(부지매입비포함)을 투입 연면적 26,917m2 지하1층 지상 10층 규모로 2007년 3월 착공해 2009년 4월 완공됐다.
광주시청 신청사 건립과 함께 광주시의회 건물 역시 새롭게 건축됐고, 회의장으로서 손색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냈다.
광주시는 경기도내의 중앙에 위치한 시로서 동서간 27.88km 남북간 30.26km로 전면적인 430.96km2에 달한다. 동으로 여주. 이천에 접하고 서로는 성남시, 남으로 용인시를 이웃했으며 한강을 격하여 남양주 양편군과 하남시를 상대하고 있다.
조선후기 영조27년(1751)에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이 쓴 택리지에 광주는 사람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쓰여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터에 끌려가서 모진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님들이 목숨 바쳐 지켜온 내 고장을 잘 보존하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생활환경을 만들어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준비를 해야 한다.
신청사 좌향(座向)은 임자(壬座), 병향(丙向)으로 좌청룡은 칠사산, 앵자봉이며 우백호는 맹산, 문형산이고 북현무는 군월산, 남주작은 국수봉, 백마산을 안산으로 하고, 태화산, 원적산이 멀리 자리하고 있다.
원래 광주에는 악산이 없고 유하고 부드러운 산이 많은데 그중 앵자봉이 해발 667m로 가장 높은 산이다. 사방으로 산이 둘러싸여 아늑한 곳이다.
경안천은 서쪽으로 용인에서 득수하녀 동쪽 팔당호로 흘러가니 물이 들어오는 곳은 보이고 나가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산맥이 높은 곳에서 흘러오다 물을 만나서 혈이 멈추는 곳에 명당이 생긴다)
그동안 구청사가 비좁아서 여러 곳에 별관을 마련하여 대민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공무원이나 민원을 보러 오는 주민이나 불편하기가 그지없었다.
<소몰이 노인과 무학대사>
조선 건국 초 송도 수창궁에서 등극한 이태조는 조정대신들과 천도를 결정하고 무학대사에게 도읍지를 찾아 달라 청하였다.
무학대사는 옛 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알려진 계룡산으로 내려가 산세와 지세를 살폈으나 아무래도 도읍지로는 적당치 않았다. 발길을 북으로 옮겨 한양에 도착한 스님은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이튿날 뚝섬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니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음 땅이 넓고 강이 흐르니 과연 새 왕조가 뜻을 펼만한 길상지로구나” 사방으로 지세를 자세히 살핀 대사가 그 곳이 바로 새 도읍지 적소라고 생각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이 놈의 소는 미련하기가 꼭 무학 같구나 왜 바른길로 가지 않고 굳이 굽은 길로 들어서느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무학대사의 귀가 번쩍 뜨였다.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니 길 저쪽으로 소를 몰고 가는 한 노인이 채찍으로 소를 때리며 꾸짖고 있는 것이었다. 대사는 얼른 노인 앞으로 달려가 물었다. “노인장 지금 소더러 뭐라고 하셨는지요?” 그러자 노인은 “미련하기가 꼭 무학 같다고 했소” 대사는 “그건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요?”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아마 요즘 무학이 새 도읍지를 찾아다니는 모양인데, 좋은 곳 다 놔두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니 어찌 미련하고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무학대사는 노인이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공손히 합장하고 절을 올리며 말했다.
“제가 바로 그 미련한 무학이옵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곳이 좋은 도읍지라고 보았는데 노인장께서 일깨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좋은 도읍지가 있으면 이 나라 천년대계를 위하여 일러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노인은 채찍을 들어 서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10리를 더 들어가서 주변 지형을 자세히 살피도록 하시오”
“노인장 참으로 감사합니다” 무학대사가 정중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순간 노인과 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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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도읍지 한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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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는 걸음을 재촉하여 서북쪽으로 10리를 걸어 당도한 곳이 바로 지금의 경복궁 근처였다. “과연 명당이로구나!” 삼각산, 인왕산, 남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땅을 보는 순간 무학대사는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만면에 미소를 띤 대사는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여 도성을 쌓고 궁궐을 짓기로 했다.
원래 무학대사는 경복궁을 지을 때 좌(座)를 인왕산으로 하고 향(向)을 동대문 쪽으로 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무학대사의 뜻과는 달리 조정의 정도전 일파는 이를 반대하고 삼각산을 좌(座), 남산을 향(向)으로 할 것을 강경히 주장했다. 태조는 결국 정도전의 뜻을 따랐다. 그리고 조산(朝山)인 관악산이 화산(火山)인 관계로 광화문에 해태상을 세워서 불을 막았다고 한다.
전에 노인이 무학대사에게 10리를 더들어가라고 일러준 곳은 갈 왕(往)자와 십리(十里)를 써서 ‘왕십리(往十里)’라고 불렀다. 일설에 의하면 소를 몰고 가다 무학대사의 길을 안내한 노인은 바로 풍수지리에 능했던 도선국사의 후신이라 한다. 이런 유래로 왕십리에 속했던 일부지역이 도선동으로 분할됐다. 도선동은 1959년부터 행정동명으로 불리다가 1963년 법정동명이 됐다.
*무학대사(1327-1405) 조선초기의 고승, 성은 박씨, 호는 무학(無學) 도선국사 다음으로 풍수지리에 능했던 인물
이재경(광주시 의정동우회장, 제2대 민선군의원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