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음을 지게에 진 남자 ***
“조카야, 잘 지내냐?”
전화를 받으면 꼭 그렇게 시작하신다.
아흔둘이신 고모는 요즘도 더러 전화를 주신다.
“그럼요, 고모. 고모는 어떠세요?”
“나야 뭐, 아직 숨 쉬고 말하는 거 보면 살아 있는 거지. 근데 말이야, 형제자매끼리는 의좋게 살아야 혀. 알겠지?”
“그 말 또 하시네요.” "칠순이 넘은 형에게도 잘하고, 누나들한테도 한사코 잘 해야한다.
" 그래야 복이 오는겨~" "또 그 말씀"
“허허, 안 하면 내가 고모냐?”
나는 웃고, 고모도 웃는다.
그 웃음 속에서,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고숙. 고모의 남편.
내겐 유일한 막둥이 고숙이었다.
“고모, 고숙 이야기 좀 해주세요. 예전처럼요.”
“아이구, 그 사람? 그 양반은… 지게랑 결혼한 사람이었지 뭐.”
고모의 말 끝에, 작게 웃음이 붙었다.
“지게랑 결혼이라뇨?”
“그래, 그 사람은 지게를 벗은 날이 없었어. 밥만 먹으면 지게부터 찾았다니까.”
고모의 목소리는 어느새, 먼 시절을 건너가 있다.
그 시절, 이름이 "‘막둥이’라고 호적이 되어있어서 영원히 막둥이었던 사람,
고숙은 환갑이 지나서도 막둥이로 불리웠고 그 느낌이 왠지 미숙한 사람의 이미지였다.
“결혼도 우습게 했어. 그때 동네에선 다들 ‘막둥이 노총각’이라고 불렀거든.
가난해서 장가도 못 갔지. 근데 말이다, 이웃집 영감이 그 사람을 부르더니 그랬다는 거야.”
“뭐라고요?”
“‘막둥이 자네, 이번 장날 내가 딸 가진 사람 하나 데려올 테니, 막걸리를 준비하게.
잔을 비우지 말고 계속 따라드리고, 그리고 자신있게 말해. 따님 주시면 고생 안 시킨다고.’ 그랬다하더라고.”
“진짜요? 그 작전이 통했어요?”
“통했지. 허허. 술기운도 있었고, 고숙이 말도 곱게 했지만 사람 마음을 녹이는 미소가 있어.”
나는 키득거리고, 고모도 다시 웃었다.
“결혼하고는요?”
“결혼하고 나선 뭐, 그냥 일만 했어. 그 사람은 지게와 한 몸이었거든.
소죽 끓이고, 풀 베고, 논 갈고, 밭 맸지. 나무 하러 산에도 갔고. 허리가 휘도롣 지게질을 했지 ”
“쉬는 날도 없이요?”
“쉬는 날? 그런 게 어딨어. 기운 떨어져서 밥 먹다 말고 숟가락 물고 그대로 누워 자는 날도 많았어.
다음날 보면, 잠자던 자리에 흙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지 뭐.”
고모는 한참을 조용히 있다가, 덧붙였다.
“그렇게 노동에 눌려 살면서도, 항상 웃었어. 그 웃음이 참… 아직도 귀에 맴돌아.”
"무슨 웃음거리가 그렇게 많았어요?"
그 사람한테는 꽃이 피는 것도 웃음이고, 바람불고 비오는 것도 웃음이었어.
송아지가 자라는 것도 웃음, 열매가 영그는 것도 웃음이야.
그 사람좋은 그 웃음이 바보스러울때도 있었지.
사는 것은 가난에 찌듣었지만 웃음으로는 갑부였지.
“힘들지 않으셨어요?”
“힘들었지. 근데 어쩌나. 힘들다가도 웃어주니 그게 참 고맙더라. 가난도, 지게도, 그 웃음이랑 같이 있으니까 덜 무거웠어.”
"난 그이가 지게에 한짐가득 웃음을 지고 있다고 생각할때가 있었어.
"논에도 뿌리고, 새에게도 나눠주고, 곁에 있는 이웃들에게도 퍼주고, 짐승들에게도 먹이고"
"그 사람은 지게질하고, 웃기 위해 테어난 것 같았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들이 너무 따뜻해서, 너무 무거워서.
“지금도 그 사람 생각하면, 고마워. 남겨준 건 작은 오두막이지만, 자식들 잘 컸고… 그리고 내 마음엔 그가 남겨준 그 웃음이 있어.”
고모는 여전히 소탈하게 산다. 먹는거 입는게 마주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 평안한 얼굴로 사신다.
나는 안다.
고숙이 남겨준 것이 돈도, 집도, 물건도 아니란 걸.
그가 남긴 건, "지게를 지고도 웃을 수 있었던 한 사람의 넉넉한 마음이었다는 걸"
꽃은 한 철로 시들지만, 그의 고난을 극복하게 한 웃음은 여러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위안이 되었다는 것을~
웃음을 잃어버리는게 진짜 가난이라는 것을 ~
봄꽃이 다 지기전에 고모님을 뵈러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서 웃음의 씨앗을 챙겨와야지.
첫댓글 우후~ 재밌네요! 처음엔 새로운 소설을 쓰시나? 했는데..
노란쌤 본인의 이야기 였군요~ 마치 소설처럼 재밌네요!
"웃으면, 복이 와요" 힘든 지게를 지고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그 분!
그 분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건지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던 듯~ ㅎㅎ
오늘도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머무는 그런 하루가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