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22:8]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이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 직역하면 '그가 유다의 베일을 벗기매'이다. '마사크'는 사람의 눈을 가려 보지 못하도록 하는 무엇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무지의 베일로 해석함이 가장 무난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깨우쳐 주심으로 백성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 속에 놓여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이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회개하도록 하는 데까지는 이르게 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병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사 22:9] "너희가 다윗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래 못의 물도 모으며..."
아래 못의 물도 모으며 - 포위당했을 때를 대비하여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아래 못'은 시온 산 서쪽 맞은편 힌놈 골짜기에 아직도 남아 있는 저수지를 가리키는 듯하다.
[사 22:10]"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 성읍 내의 가옥을 계수함은 그것을 헐어내기 위함이요, 그것을 헐어냄은 성벽을 견고케 하는 데 필요한 건축 재료를 얻기 위함이다..
[사 22:11] "너희가 또 옛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를 존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존경하지 아니 하였느리라 - 선지자는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백성들의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행위의 이면에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이 없음을 질책하는 것이다. '앙망하다'와 '존경하다'는 히브리어로 '바라보다'는 뜻이다.
'이 일을 하신 자'와 '이 일을 경영하신 자'는 문자적으로는 각각 '그것을 만드신 자'와 '그것을 빚으신 자'인데, 이는 유다 앞에 놓인 위기를 조성하신 분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하나님께 돌아옴이 없이는 그들이 어떤 자구책을 강구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사 22:12]"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 예루살렘 성읍 앞에서 벌어진 이러한 일련의 위기 상황들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경고요, 부르심이었다. 이것은 백성들이 특별히 깨닫기 어려운 것도 아니며, 올바른 지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능히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통고하며 애호함'은 가슴을 치고 우는 것이니, 하나님을 거스려 범죄하였음을 뉘우치는 행위이다.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띰'은 회개의 외적 증거로서 동방에서 널리 시행되어 온 관습이었다. '굵은 베'는 슬픔의 날에 입는 굵은 삼베옷을 가리킨다.
[사 22:13]"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 그러나 회개에의 기대는 깨어졌다. 백성들은 미래의 재난 앞에서 찰나적인 쾌락으로 일관하였다. 니느웨가 보인 반응과 비교해 보라. 그들의 행위는 미래를 상실한 데서 오는 자기 파멸적 경향성일 수도 있고, 또는 '선지자가 내일 죽는다고 하니 그 말을 존중해주는 의미에서라도 오늘만큼은 실컷 즐기며 놀자'는 조롱의 표현일 수도 있다.
내일은 없으며 따라서 인생에는 영원한 것도, 가치있는 것도 없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은 먹고 마시는 쾌락의 한 순간으로만 존재한다. 그들의 눈에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며 자기 부정과 희생의 길을 걸어 가는 신앙인의 삶은 얼마나 기이하고 또 어리석게 보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