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와 풀의 공존공영(共存共榮)
통시와 처갓집은 멀어야 좋다는 말이 있음에도
나는 충청도 서천군 판교면 처갓집 땅인
묵은 밭 303평과 야산에 일군 산밭 약 200평을 내 주말농장으로 삼았다.
서천은 한산 모시로 유명한 한산면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서울에서 보면 아주 먼 지역에 주말농장을 마련한 것이다.
주말 농장이 아니라 원정농장이라고 해야 마땅하겠지만
이렇게 된 나름의 사정이 없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일반론으로 친다면 스스로도 미친 작자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 얘기 주제가 감자와 풀의 공존공영(共存共榮)인만큼
그간의 자세한 사정은 다음 기회를 엿보기로 한다.
나는 금년 3월부터 거의 주말마다
서울 용산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로 충청도 판교면에 있는 내 주말농장으로 간다.
판교역에서 한역 더 가면 서천이요.
또 더 가면 예전 장항선의 종착역인 장항이다.
이제는 금강 하구다리를 건너 군산을 거쳐 익산까지 열차가 들어간다.
판교까지 차비는 편도가 12,900원, 왕복 25,800원이다.
걸리는 시간은 오전 6시 25분차를 타면 9시 23분이면 도착하니 약 3시간이다.
판교역에 내려 1시간을 기다리면 버스가 오는데
나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내 주말농장 아니 처갓집으로 가게 된다.
판교역전에서 처갓집까지 도보로는 40분쯤 걸린다.
처갓집에 도착해봐야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3년 전에는 금년에 연세가 90이 되신 장모님이 혼자 계셨지만
3년 전에 치매가 와서 대전 큰 처남이 있는 근처 노인병원에 계신다.
처남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서 산다.
그래서 끼니는 도시락이든 밥을 해 먹던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
집마저 퇴락하여 헛간은 거의 다 허물어져 있다.
손댈 곳이 너무 많지만 시간이 없어 답답하다.
왜 사서 그런 고생을 하느냐고 하겠지만 내 대답은 단순하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딱히 해줄 말은 없다.
내가 하고 싶다 해도 내 사정을 감안하면
주말농장에 자주 가 볼 수 없다는 것이 내 깜냥이다.
그래서 303평 밭에다가 다른 작물보다 덜 돌보아주어도 되는
곶감용 감나무 50주를 이른 봄에 심었다.
귀퉁이 일부 20평 정도의 밭에다가는 감자를 심었는데,
비록 마르고 묵은 잡초지만 거의 가슴까지 차는 망초, 가막사리, 명아주 등과
아래로는 바랭이 따위를 모두 조선낫으로 제거하고 나서
관리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은 초보자
어불성설(語不成說)이요 화중지병(畵中之餠)이라!
2년 정도 농사짓지 않은 묵은 밭이라 굳어진 땅을
순전히 공병삽으로만 파서 뒤집으려니
내 비록 포병출신이라고 해도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들었다.
또다시 파 놓은 땅에다 이랑을 만들고 그 위에 감자를 놓았다.
중간 중간 쉬고도 싶었지만 길게 쉴 수도 없었다.
귀경하는 무궁화호 열차표 시간이 오후 7시 21분이기 때문이다.
도보시간 포함 넉넉하게 오후 7시까지는 판교역에 도착해야하므로
주말농사 작업은 오후 6시까지는 종료해야하는 조급증이 늘 있다.
나는 늘 이 시간대 열차로 귀경을 하곤 한다.
사진1
사진2
1번 사진은 맨 처음 감자를 심었던 사진이고
2번 사진은 감자가 커갈 때의 사진이다.
이론적으로 감자는 거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라고 하지만
맨 처음 감자를 심을 때 나는 거름을 하지 못했다.
시간도 없었지만 확보된 거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무작정 심어 놓고 보자는 심보였다.
그래도 내가심은 감자는 근처에 심은 다른 집 감자처럼 무성하지는 않았지만
2번 사진처럼 잘 자라 주었는데 이때까지 제초작업만 2번 해 주었을 뿐이다.
이후에도 거의 격주마다 주말농장에 가기는 했지만
나중에 고구마라도 심어볼까 싶어 묵은 산밭의 칡과 잡초를 제거하느라
감자의 잡초는 제거는 더 이상 엄두도 못 내고 그냥 같이 자라게 했다.
말 그대로 공존공영(共存共榮)하게 했다. 함께 살아 같이 번영하게 했던 것이다.
실은 내가 참 농부가 아닌 건달농인 탓이 더 크다.
아래 사진 3은 내가 인위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감자와 풀이 공존공영하게 한 결과다.
하지만 공존공영은 아닌 것 같고 풀만 무성한 상태의 사진이다.
사진4는 감자를 캐낸 다음의 사진이다.
2011년 7월 16일에 모두 찍었다.
사진3
사진4
감자수확은 교과서적으로 장마가 지기 전 하지(6월 22일경) 무렵까지는
캐내어야 하지만 내 주말농장은 워낙 먼데다 어영부영 하다 보니
장마가 시작되어 미처 감자를 수확하지 못했다.
3번 사진을 보면 감자밭인지 풀밭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낫으로는 베기로는 엄두가 나지 않아
엔진 예초기로 모조리 베어낸 다음 한 이랑 한 이랑 감자를 캐냈다.
풀밭으로 보일 때와는 달리 굵은 감자, 중간 감자, 새끼감자가 주렁주렁 나왔다.
혼자 4시간 정도 캐내었는데 수확의 즐거움으로 힘든 줄 모르게 작업했다.
대략 전체 무게로 봐서 150킬로그램쯤 되는 것 같았다.
아래 사진 5는 내가 캐낸 감자들을 풀밭에 모아 놓은 것이다.
사진5
감자 무더기 옆에 E-마트 장바구니가 있으니 그 수확량과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E-마트 장바구니로 캔 감자를 날랐다.
내가 심고 캔 감자는 내가 첨부터 의도 한 것은 아니지만 순수 유기농산이다.
2년 묵은 묵밭에 거름도 주지 아니했고 제초제도 뿌리지 않았으며
벌레 잡는다고 농약도 전혀 하지 아니했고
풀과 함께 공존공영하게 자라게 하여 캐낸 감자이기 때문이다.
교과서적으로 감자심기는 이른 봄에(보통 3월 중순) 거름을 듬뿍 내고
로터리를 쳐서 흙을 부드럽게 한 후
그 위에 잡초와 경쟁을 피하기 위한 노동 절감용으로 제초제도 미리 뿌려
이랑을 내어 바로 심거나 아니면 이랑에 비닐 멀칭을 하여 심고
수확은 땅속에 든 감자가 썩는 것을 대비해 장마 전에 캐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하지 못하고 거꾸로 했지만
그래도 면적당 수확량이 그리 만만치가 않았고
금년 같이 지루한 장마를 땅속에서 지낸 감자를 캐내어도 썩은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감자를 맺으려면 태양을 보고 잎이 부지런히 광합성을 해야 하므로
어릴 때 두 서너 번 손으로 대략 성글게 편한 제초작업을 해 주고
그 다음에는 풀과 같이 공존공영하게 한다 해도 하등의 영향이 없을 것 같다.
반드시 하지 전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하는 것도 너무 교과서적이 아닌가 한다.
장마가 오든지 말든지 감자줄기가 다 말라 죽고
땅속에서 감자가 충분히 영글도록 그냥 놔두었다가
풀 속에서 수확한 감자가 질적으로 더 양호한 것 같다.
조기수확한 감자의 표면은 하얗고 매끈한 기생오라비처럼 해끄무레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장마를 지나 캐낸 감자의 외형은 충분히 성숙되어
껍질이 누렇고 거북이 등때기처럼 우툴두툴 그물눈 같은 무늬가 나타난다.
감자를 쪄내면 껍질이 툭툭 갈라져 감자 특유 분같이 흰 속살이 보였던 것이다.
내가 수확한 감자가 그렇다는 얘기다.
감자 심은 내 주말농장이 배수가 잘 되는 토질임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장마철 땅속에 있는 감자가 썩는다는 것은 너무 과장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장마철 강한 폭우로 흙이 휩쓸려 버려 땅속에 묻힌 감자가 노출되면서
프토마인이라는 독소를 품은 녹색 감자로 변할 우려는 있지만
그것도 강원도 비탈땅이면 모르되 미미할 뿐일 것이다.
나의 감자농사법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감자는 잘 썩은 퇴비를 충분히 내고(거름을 주었으면 다수확 예상)
부드럽게 땅을 갈아엎은 밭에다(땅이 굳어 흙덩어리가 많아 새끼감자 많았음)
높고 다소 높고 넓은 이랑을 내어 감자 씨앗을 약간 깊게 놓고
감자 잎이 충분히 햇빛을 보고 자랄 수 있게 대강 성글게 제초작업 두어 번 해주고
감자세력이 주변 풀과 비슷하거나 강해지면 그냥 방치해도 무방하리라고 본다.
이때부터 공존공영(공생)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수확은 감자줄기가 완전 고사한 다음 하는 것이 질적 면에서 좋다는 생각이다.
감자를 캐는데 굼벵이 등 땅속 벌레가 파먹은 감자는 서너 개 보였다.
지렁이는 많이 보였다. 개구리도 세 마리나 도망도 안가고 폴짝거렸다.
예전에 보던 윤기가 돌고 가는 녹색 등줄기와 검은 점무늬가 선명한 떡개구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