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에 등장하는 음식은 거의 곤궁기에 해 먹던 음식이다. 먹고살려다 보니 주위에 눈에 보이는 대로 거두어다가 이것저것 조합을 해서 배를 채우다 보니 세월이 흘러 어느새 그 지방의 특색 음식이 된 것이다.
그중 (콩)비지도 마찬가지다. 비지는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다. 단백질과 지방이 다 빠져나가고 섬유질과 수분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비지를 앞에 내놓은 집은 분명 두부를 직접 만든 집이라 보면 된다. 그보다 예전엔 그 '진짜 두부'보다 공짜로 비지를 가져다 해 먹을 수 있어 좋았던 기억이 남는다.
그 비지는 어머니가 가져오기도 하고 심부름으로 내가 가져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가 비지찌개를 맛있게 요리를 해서 배부르게 먹었던 기억도 있다.
지난 8.18 가평의 명지산 방향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운악산 입구에서 두부집에 들어가 점심 식사를 했다. 그 집 앞에 비지가 한 광주리 나온 것이 있어 봉지에 넣어 가져왔다. 그 봉지에 담던 행위를 생각하면서 어릴 때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했던 행위가 무의식적으로 나온 것이었다.
운악산 입구는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두부마을이다. 운악산을 산행하고 내려오면 으례껏 두부에 막걸리는 기본이었다. 거기다 가평 하면 잣 아닌가? 잣 향이 은근히 풍기는 잣 막걸리는 두부와 딱 맞는 궁합인 것이었다.
집에 비지를 가져왔으니 이 추억의 비지찌개를 해봤다. 비지 자체는 아무런 영양이 없고 무미하니 돼지고기를 이용하는데 옛날식으로 돼지비계를 넣어 지방의 풍미를 높여야 맛이 있다.
냄비에 일반 기름을 넣고 참기름을 혼합하여 향을 돋운다. 기름에 고기를 볶다가 신 김치를 넣는다. 다음에 맛술과 까나리 액젓을 투입한다. 찌개 류의 음식은 거의 이 공식이 기본이다. 기름에 재료(고기나 대파 또는 마늘 등)를 넣고 볶다가 물을 붓고 나머지 양념이나 주 재료를 넣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물을 붓고 다진 마늘, 고춧가루,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마지막에 비지를 넣어 걸쭉한 형태로 만든다. 너무 오래 끓이지 말고 맛을 보면서 추가로 대파 썬 것을 투하하면 비지찌개 완성이다.
고기는 돼지 앞다리살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요샌 비계를 많이 제거해버려 찌개용의 잘라놓은 것 말고 통으로 사서 집에서 자르거나 대패삼겹살을 이용해야 맛이 있다.
예전엔 허기를 채우고 부족한 단백질을 돼지고기를 이용해 보충하려는 의도였지만 비만이 걱정되는 현대인에게는 열량은 적고 포만감은 크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훌륭한 다이어트 식품이 된다.
그런데 두부집은 있어도 (콩)비지집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어려웠던 시대를 재현하기가 꺼리거나 싼 음식이라는 선입견이 있어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심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음식의 선호도는 그 사람의 유아기부터 청소년기의 생활상이나 가족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가난해도 먹고살기 위한 치열한 삶 속에서 음식을 골고루 섭취한 사람과 풍족하지만 이것저것 편하게 음식을 가려 먹었던 사람의 차이는 결국 그 사람이 늙어서 자기 몸을 유지하는데 많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지찌개를 먹으며 사람의 환경과 건강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다이어트 음식으로 비지찌개 전문점을 해보면 어떨까?
(그때 비지를 같이 봉지에 넣었던 봉평메밀꽃님은 비지찌개 잘 해 드셨소?)
2024.8.21 천둥소리에 잠이 깬 새벽에
럭키보이
첫댓글 많이 드셔요..막걸리하구요
럭키보이작가님 콩비지찌개 잘읽고 담아감니다 비오는 날 부글부글 공비지찌개 생각나도록하여 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