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82]“센 베노(안녕하세요) 몽골”
우리나라를 ‘솔롱고스’라 부르는 나라. 솔롱고는 무지개rainbow라는 뜻. 13세기 아시아는 물론 유럽까지 ‘대통합’을 했던 나라(진시황은 새발의 피, 로마제국보다 영역이 컸다), 칭기즈칸(테무친, 그는 진정한 의미의 ‘밀레니엄 맨’이다)의 나라, 중국과 러시아에 낀 세계 두 번째로 큰 대륙국가(남한면적의 15배, 인구 340여만명)인 초원의 나라, 몽골(MONGOL). 중학교 때에는 ‘몽고’라 배웠는데, 언제부터 ‘몽골’이라고 부른다. 몽고는 비겁하다는 뜻이고, 몽골은 용감하다는 뜻이란다. 물론 한자로는 蒙古몽고라 한다.
아무튼, 친구가 지난해 여름 16명의 도반道伴들과 그 나라를 12일간 다녀오더니, <센 베노 몽골-푸르러서 황홀한 12일간의 인문기행>(유영봉 지음, 작가와비평 2024년 7월 펴냄, 260쪽, 18000원)이라는 책을 펴냈다. ‘인문기행’이라는 부제副題가 색달랐다. 인문人文이라? 여기에서의 ‘글월 문文’은 ‘무늬 문紋’자일 터. 인문은 원래 ‘사람의 무늬’를 말함이다. 12장에 걸쳐 펼쳐지는 그의 여행기는 인문여행의 맞춤이었다. 클래식이나 트로트 등 음악이 있는가 하면 그림도 시도 곳곳에 나오고, 문학 그리고 역사와 인물들도 있으니, 가히 종합예술이라 할까. 장chapter 끝에 주석註釋처럼 부기付記하여 읽는 재미가 쏠쏠한 <몽골몽골 1-12>은 공부한 흔적이 보이는 지식知識인 만큼 우리의 상식과 교양을 넓혀주기에 충분했다. 말하자면 '몽골 알기'에 안성맞춤.
일단 일행은 몽골의 여러 지역을 실제로 돌아다니는 듯, 글의 내용이 몹시 핍진逼眞했다. 그래서 글쓴이의 시선과 시각이 중요한 것이리라. 12일 동안 물경 3440km의 거리를 73시간 동안 훑고 다녔으니 참 웬간한 사람들이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 하지만, 어느 누가 여행을 사서 고생한다고 했을까. 1, 2년새 어떻게든 시간을 내, 책의 순서처럼은 아니래도 1주일여 다녀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들었다. 굿모닝의 뜻인 몽골의 인사말은 ‘센 베노’(안녕하세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별 액센트도 없이 조용하게 ‘센 베노’라고 말한단다. 대학로 연극가에서 지금도 공연 중인 <빨래>라는 연극을 두 번 본 적이 있는데, 책을 읽으며 내내 ‘솔롱고(무지개)’라는 이름의 몽골 청년 노동자가 생각났는데, 일행을 이끌고 다닌 기사들도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데, 한국과 몽골이 합병하면 국가발전의 시너지효과가 클 거라고 했다니 참 엉뚱한 발상이다. 그만큼 몽골의 지정학적 위치가 애매하고 껄쩍지근한 모양이다.
우리는 ‘광활한 만주벌판’을 말하는데, 몽골인의 시력은 5.0이 넘는다던가. 애기 때부터 말을 타고 광대무변한 초원을 치달리는 몽골 소년들은, 그 옛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칭기스칸의 후예일 게 분명한데, 무지개나라인 한국을 선망하며 역사 속에 묻힌 그 꿈을 다시 꾸고 있을까. 우리와 불가분不可分의 나라인 것은, 그들이 우리나라를 6번 침략(초조대장경과 황룡사 9층목탑을 불태웠다), 마침내 1259년부터 근 1세기 동안 고려의 정치현실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고려왕 5명을 사위로 삼았으며, 고려와 연합하여 일본 정벌에 2번 나섰다 실패했다.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시대가 그랬다. 공민왕 역시 원나라 노숙공주와 혼인했으나 개혁을 시도하다 실패했다. 역사의 거대한 침체를 불러온 나라를 예뻐할 수는 없겠으나 ‘고려양’과 ‘몽고풍’이 유산처럼 남겨졌다. 태어날 때 뚜렷한 엉덩이의 푸른 점이 ‘몽고반점’이 아니던가. 최근 읽은 한강의 화제작 <채식주의자>의 한 챕터의 제목이 ‘몽고반점’이었던 것도 생각났다. 저자가 이 인문여행기를 쓰려고 석 달 동안 읽고 공부했다는 책들의 사진을 후기에 올려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는데, 12일간의 몽골여행 소감을 한 편의 운문韻文으로 똑소리나게 정리한 동갑내기 시인 박남준의 <별떼들이 질주하네>전문을 전재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기행시. 그 별떼들을 게르 밖에서 함부로 누워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
어쩌자고 저렇게 대책없는 별들을 퍼부어 놓았을까
앉고 섰다 뒹굴며 함부로 누워 보았다
온갖 느림으로 밑도 끝도 없이 막무가내로 펼쳐지는 말과 양과
염소와 소와 낙타들의 대지
몽골의 하늘에 무단투기 집단방목으로 풀어놓은 별들은
그 슬픈 눈망울에 바다가 담겨 있다는
남고비사막의 고독한 여행자
쌍봉낙타들의 눈물인 줄도 모른다
누군가 저 별들 주머니에 잔뜩 넣어
지리산 자락 섬진강가 뿌려 달란다
그 별들 밤마다
게르의 문을 두드리던 사막의 바람을 부르며
시리고 푸른 몸을 씻으리라
강물은 그리하여 반짝일 것이다
밀려온다 쏟아진다 난무한다
은하 건너 별들의 저 어딘가에도
아이들은 풀밭에 누워
밤하늘을 우러를 것이다
폭죽을 쏘아 올릴 것이다
과녁이 되어 버렸다
가슴마다 화살이 되어 달려오는 별들은
왜 알고 있는 세상의 모든 탄사와
학습되지 않은 욕들을 자아내는가
드디어 칭기스 보드카 병이 쓰러진다
흔들린다 비틀거리며 춤춘다
초원의 바다 그 수평선으로부터
그늘 깊은 사구 너무 지평선까지
길을 잃은 별떼들이 온밤을 마구 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