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금요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생명의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자격없는 자,
예수님 이름을 힘입어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로 덮어주옵소서.
정결한 마음,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본문 주해)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에도 불구하고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그들의 요구대로 바라바를 놓아준다.(막15:15)
1~3절 : 예수께서 채찍질을 당하신다. 채찍질은 십자가형의 시작이다.
그리고 군병들이 가시나무로 면류관을 엮어 예수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힌 후 그를 조롱하며 손바닥으로 때렸다. 이는 왕의 대관식처럼 꾸며 마음껏 조롱하는 장면이다.
4~7절 : 빌라도는 채찍에 맞아 일그러진 예수, 왕으로 조롱당하는 예수를 유대인들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다.
빌라도가 예수를 죽이라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박으라’라고 한다. 이는
유대인들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이자,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하려는, 회피적인 태도이다.
당연히 유대인들은 죄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권리가 없다. 십자가형은 오직 로마 당국만이 집행할 수 있는 사형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고 고발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예수의 주장을 신성모독으로 여긴다. 율법에 신성모독은 돌로 쳐 죽임당해야 했다.
그러므로 예수는 마땅히 죽임을 당해야 할 자라는 것이다.
8~11절 : 하나님을 믿지 않는 빌라도였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언급은 그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주었다.
그러므로 ‘너는 어디로부터냐’(네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는 질문은 예수가 초자연적 존재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질문이다.
‘하늘에서 오신 인자’는 자신의 근원에 대해 침묵하신다.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줄 수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수도 있다는 자신의 권한을 말하자, 침묵하던 예수님은 빌라도의 권위의 기원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한으로서,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아들을 십자가형에 내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자들의 죄가 더욱 크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바로 로마 당국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종교 지도자들이다.
12~13절 : 이 말을 듣고 빌라도는 더욱 예수를 놓아주려고 애쓰지만, 유대인들은 큰 소리로 빌라도를 위협한다.
“만일 그자를 놓아준다면 총독님은 카이사르의 충신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왕이라고 하는 자는 카이사르의 적이 아닙니까?”(12절, 공동번역)
빌라도는 자신의 권력의 유지를 위해 유대인들에게 아첨해야 했기에, 유대인들의 외침을 견디지 못하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재판석에서 앉는다.
(나의 묵상)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고 되어 있지만, 성경 속의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석방을 위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집요하게 주장한다.
빌라도의 이런 행동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빌라도가 예수님에게서 도덕적 깨끗함이나 윤리적 의로움을 느꼈던 것은 아니고, 빌라도의 인격이 훌륭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악에 받친 유대인들의 외침에 비해 예수님은 너무나 잠잠하고 담담하셨다.
세상 속에서 닳고 닳은 빌라도의 시각에서 보니, 예수님은 아무런 위험 요소가 없는 인물이었기에 (로마를 반역할 만한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었기에) 유대인들과 대제사장들의 고발이 그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예수님을 풀어주려는 이방인 빌라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여야겠다고 으르렁대는 유대인들, 그리고 잠잠히 십자가의 길로 가시는 예수님의 3자 구도가 참으로 이상하다.
이는 택한 백성이라는 인간들이 얼마나 죄악이 가득한지를 보여주시고, 또한 그들을 용서하시고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로 행하시는 주님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다.
첫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 이들은 하나님을 죽이려 들지 않는다.
애초에 하나님과 상관없이, 그저 자기 욕심대로, 자기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들, 택한 백성들이라는 자들은 하나님을 계시한 아들이 너무 미워서 아들을 죽이려고 으르렁거린다. 그것은 그들 속에 자리잡은 탐욕과 우상숭배의 마음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들은 빌라도보다 못난 자들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잠잠히 십자가의 길로 가신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뜻을 가장 반역하는 자들은 소위 ‘믿는다’는 자들인 것이다.
창세전부터 이방인인 자들은 처음부터 ‘해당사항이 없음’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이방인인 빌라도가 그렇게 살리려고 애썼던 예수님을, 말끝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입에 달고 살던 유대인들이 지금 못 죽여서 난리인 것이다.
교회는 다니면서, 또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자기 욕심에 이끌려 사는 자들은 다 예수를 못 죽여서 난리를 치는 자들인 것이다. 그러고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자들이다.
나에게는 ‘그때’와 ‘이제’가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넘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그때가 있었다. 행동으로, 말로, 생각으로....나의 만족과 유익과 탐심에 걸리적거리는 십자가를 외면하던 그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빌라도보다 못한 나를 살리시려고 잠잠히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본다.
군병들에게 예수님이 당하신 모욕을 보고 분함의 눈물을 흘리거나, 탐심으로 절어버린 유대의 지도자들의 행동에 분노를 느끼는 일에만 집중했던 때가 있었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분을 내기도 하며 내 감정에 집중했던 때였다.
그러나 이제는 냉철하고도 뜨거운 마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신 아버지의 뜻에 집중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다’고 빌라도에게 잘라 말씀하셨다. 그렇듯이 주님의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게 하신 길이다.
오늘날도 세상에는 크고 작은 일이 벌어진다.
이 모든 일을 가운데 이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수많은 빌라도들이 있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자들이 있고, 잠잠한 양처럼 십자가로 가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주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셔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시니 이제 나는 십자가의 대열에 선 자가 된다.
냉철함과 뜨거움으로 바라보는 십자가이다.
(묵상 기도)
주님,
빌라도보다 못한 자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야단들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그렇게 살리려고 했던 이유는 유대인들의 죄악 또한 얼마나 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그 속에서 천지를 모르고 함께 악다구니를 썼던 자를 끄집어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악몽에서 깨어나니 십자가의 길에 선 저를 봅니다.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이 빛의 길로 나아갑니다.
성령님께서 늘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또 붙들어 주심을 믿습니다.
냉철함과 뜨거움으로 바라보는 십자가,
그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