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으로는 1세대 유럽 유학생 그룹에 속 한다.
전혜린은 1934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그가 경기여고와 서울법대 재학 중 독일 뮌헨으로 유학을 떠난 것은
1955년 가을이었다. 만 21살의 나이였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불투명하게 두꺼웠다.
공기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힐 물기에 가득 차 있었고
무겁고 척척했다."
그 녀는 독일에서 전공을 독문학으로 바꿔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럽작가들의 신간을 신 들린 듯 번역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유학생활 경험과
감상을 섞어 활화산 같은 에세이로 토해냈다.
5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보내고 귀국 후 서울대 강사를 거쳐
성균관대 조교수로 재직하다가 1965년에 자살로 31년의 생을 끝냈다.
짧은 인생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중고생에 이르기까지
넓은 독자를 확보한 팬덤 현상을 낳기도 했다.
"나는 혼자 살고 싶었다.
내 일생을 인식에 바치고 싶었다. 자유롭게…"
그렇게 외치던 그 녀였지만 당시 한국의 실정은
그 녀의 바램과 거리가 멀었다.
그 녀의 유고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1980년대까지 청년들의 마음을 뒤 흔든 베스트셀러였으며,
많은 이들을 독일과 독일어, 그리고 뮌헨으로 인도하였다
불과 31년의 생애 동안
많은 번역과 불꽃 같은 에세이를 써 냈고
사후에는
추모하는 책들이 잇 따라 출간되면서
이른 바 ‘전혜린 신드롬’을 낳았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등
많은 책을 번역했으며
이미륵의 독일어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sst)도
최초로 번역 소개하였다.
그 녀가 한국 문화와 학계에 끼친 영향은
저술 작품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그 녀의 사후 50 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녀를 추모하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뮌헨에 이어지고 있다.
(손관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