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0일 묵상 본문 : 요한복음 19장 31절 - 42절 - 종교적 행위가 아닌 복음에 연합되어 진리를 깨닫고 감사와 기쁨으로 믿음의 길을 가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새로운 하루, 한 주를 주의 은혜 가운데 시작합니다.
주님의 은혜는 늘 변함없이 모든 이들에게 베풀어지기에 세상이 유지됨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은혜의 절정은 복음에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영생에 있습니다.
날마다 은혜의 절정에 이르고 감격하며 감사하는 자로 살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 앞에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한 주간의 일정 가운데 함께 해 주시고 주의 진리를 따라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특별히 조집사님 가정을 기억해 주시고 주께서 그 가정에 은혜와 사랑 베푸시길 소망합니다.
생명의 은혜가 임하게 하시고 주께서 특별한 손길로 도우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생명의 능력으로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예수님이 죽으신 날은 유월절 하루 전날로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날이었다. 유월절 어린양을 잡을 때는 뼈를 꺾지 않고 도살했는데 예수님도 뼈가 꺾이지 않고 죽으셨음을 통해 유월절 어린양을 상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월절 절기는 출애굽을 기념하는 날로써 7일간 이어졌기에 유월절이 되기 전에 예수님의 장례를 급하게 진행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유대인들의 요청으로 군인들은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다리를 나무망치로 내리쳐 꺾었으며 그 충격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이유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의 다리를 꺾어 죽음에 이르도록 요청한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은 이기적이며 악한 모습임을 보여주고 있다.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예수님은 심문 과정에서 2번의 채찍질을 당하셨고 밤새 심문을 당하였기에 극도로 지쳐있으셨다. 또한 자신 스스로 영혼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대략 6시간 만에 죽음에 이르셨음을 보여준다. 이에 다리를 쳐서 죽임당하지 않음으로써 유월절 어린양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창으로 찔려 피와 물이 나왔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실제 육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었다. 또한 피와 물은 세례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속죄와 죄 씻음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자신이 이것을 직접 보았기에 자신의 증언이 참된 것임을 밝힘으로써 예수님의 죽음이 진실임을 믿도록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당시 영지주의자들이 가현설을 통해 예수님의 육신적 죽음을 부인하고 있었기에 혼란과 의심하는 자들에게 확증의 근거를 제시했던 것이다.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은 창12:46, 민9:12, 시34:20절의 내용을 근거로 유월절 어린양은 뼈를 꺾지 않고 통째로 먹도록 한 것처럼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뼈가 상하지 않고 온전히 속죄제물로 드려진 것을 상징하고 있음을 증거 한다.
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요한은 본절은 스가랴 12:10절의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해석하여 제시한다. 스가랴서의 구절은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앞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내용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죽인 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게 될 것과 또한 장차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을 선포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의 온전한 성취를 제시하고 있다.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로 은밀하게 행하다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메시아임을 확신하고 자신을 드러내기로 작정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십자가형에 처한 죄인은 시신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 로마법의 관례였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으로 여겨 요셉에게 시신을 내어준 것을 추측한다.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요한은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장례에 동참했음을 증거 하고 있다. 이는 니고데모도 아리마대 요셉처럼 은밀하게 예수님을 따르다가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고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었음을 보여준다. 몰약은 귀한 향로였고 침향은 왕의 장례에 사용되던 값비싼 물품이었다. 100리트라는 34kg에 해당하는 무게로 향품으로는 상당한 양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을 유대인의 왕의 죽음으로 여기고 그에 맞는 장례를 치르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님의 장례를 급하게 진행되었지만 유대인의 장례법을 따라 진행 되었다. 그러나 급하게 진행되는 절차로 인해 시체를 향유로 충분히 씻지 못했기에 여인들은 안식일이 지나서 향유를 가지고 무덤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눅23:56)
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새 무덤은 아리마대 요셉이 준비한 무덤으로 요셉은 자신과 가족들이 묻힐 무덤을 미리 준비했으나 이것을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내어 놓았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요셉의 행위는 이사야 53장 9절의 말씀(부자의 묘실에 장사될 것)을 성취하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42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예수님이 죽으신 시간은 유월절 전날 오후 3시였고 해가 지는 때는 오후 6시 경이었으므로 3시간밖에 여유가 없었기에 장례를 진행하는 일에는 어려움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나의 묵상
예수님은 유월절이 되기 전날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약 6시간 만에 죽음에 이르셨다.
이때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빨리 장사지내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자들의 다리를 꺾어 죽이도록 요청한다.
이러한 요청은 자신들이 시신을 만짐으로써 부정하게 되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여 율법을 어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죽이는 죄악을 행하였으며 하나님밖에는 왕이 없었지만 가이사를 왕을 모시고 있다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인 자들이었다.
결국 자신들의 거짓된 모습과 죄악을 숨기기 위해 겉으로 드러나는 율법을 지키는 것처럼 포장하려고 했으며 철저히 자신들의 죄악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이중적인 인격으로 자신들의 지위와 권세를 지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종교적 형식을 추구하는 자들의 모습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교만한 자가 되며 회를 칠한 무덤과 같이 겉은 깨끗하나 속은 무덤 속처럼 썩어진 모습이 됨을 보여준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이중적인 이스라엘의 모습을 지적하고 계심을 증거 한다.
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사29:13,14)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종교적 열심만을 추구하면 그의 믿음은 왜곡된 믿음이 되며 사람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빠져 지혜를 잃어버리고 어리석은 죄악의 길을 반복하는 자가 된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의 죽음의 과정을 자세하게 증거 하면서 예수님의 모든 말과 행적과 죽음의 모습까지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것이었음을 증거 한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의 죄와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었으며 진리와 언약의 성취를 드러내시는 예수님의 죽음, 그리고 앞으로 주어질 부활과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은 다리가 꺾이지 않았으며 또한 옆구리가 창에 찔렸을 때 물과 피를 쏟으심을 통해 육신의 죽음을 확실하게 증거 한다.
또한 죽음을 통해 물과 피를 쏟으심은 죄씻음과 속죄의 의미가 있음을 증거 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창으로 찌르게 만든 자들은 부활의 예수님을 보게 될 것과 함께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라 선포함으로써 심판의 메시지까지도 증거 한다.
무엇보다 당시 가현설을 통해 예수님의 육신적 죽음을 부인하려는 잘못된 사상들을 물리치고 육신의 죽음을 통해 대속을 이루신 예수님의 구원사건을 확실하게 증거 했던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 당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은밀하게 따르다가 돌이켜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드러내는 자가 된다.
그리고 예수님의 장례를 도우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속죄의 은혜를 깨달은 자들은 주와 연합됨의 모습이 무엇인지 깨닫는 자가 되며 기꺼이 자기의 것을 희생하여 주의 은혜에 동참하는 자들이 됨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음을 발견한 자들이 보이는 태도에 대해 분명하게 증거 하셨다.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13:44~46)
복음의 가치를 아는 자들은 복음을 통해 생명을 얻고 누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것을 기쁨으로 행하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묵상의 행위는 그 자체가 복음이 아니기에 묵상은 때때로 종교적 행위에 머물게도 한다.
그러나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선포하며 복음에 연합되어 살고자 하는 자는 기꺼이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자가 되며 세상의 가치를 버리는 자가 되고 하늘의 기쁨으로 감사하는 자가 된다.
오늘도 주님은 참된 가치는 땅의 것에 있지 않고 복음에 연합되는 것에 있음을 보여주신다.
복음에 연합될 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주의 은혜가 얼마나 깊고 한 없이 부어지는 것인지를 깨닫고 감사하며 사는 자가 된다.
복음에 연합되지 않을 때 묵상의 행위도 종교적 행위로 전락하게 되며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살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다시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복음에 연합되어 죄와 허물을 깨닫고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자로 서기를 소망하며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자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인생의 어리석음은 종교적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착각이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었으며 그 결과는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이 없는 종교적 행위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모습이 저의 모습이며 종교적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과 현현의 모습입니다.
대속을 이루신 그리스도, 언약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알아가게 하시고 그 모든 과정이 복음을 통해 나타나게 되었음을 깊이 깨닫고 고백하는 주의 백성으로 서게 하옵소서.
세상은 갈수록 복음은 멀리하고 종교적 행위로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는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주의 복음에 연합되어 진리를 깨닫고 참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그 은혜를 따라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하시고 기쁨과 감사로 살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