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4보 - 나는 꺼거(형님) 학생
“저 쪽에 계시는 두 분 한국인입니까? 둘은 부부인 것 맞죠? 이 쪽 남성도 한국인인 것 같은데 어떤 관계인지요?”
“아, 저······ 이 분은 제 동생입니다. 친구 같은 동생 말입니다.”
“아, 그럼 당신은 이 분의 꺼거(哥哥,형님)이군요.”
“하하하하하!”
수업 시간에 쉬(许)선생님이 우리 쪽을 향해서 한국 사람들끼리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말을 걸어 왔다.
쉬 선생님은 35세의 여 선생님이다.
나는 벗씨와 짝꿍을 하고 앉았고, 내 오른쪽 옆으로 또 나와 닮은 전라도 출신의 42세의 장일성이란 분이 앉아 있었다.
우리 두 남자가 구분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둘이 옆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혹시 형제간이냐고 물어 온 것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가 형이라고 말을 해 버렸다.
그랬더니 쉬 선생님은 나를 향해 <꺼거 학생>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모든 학생들은 그 말이 재미있었는지 까르륵까르륵 하고 웃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나는 여기서 꺼거 학생이다. 한국식 나이로 49세이고 만으로는 아직 47세다.
벗씨가 나보다 한 살 적고, 그 아래에 42세의 장일성이란 분이 있지만, 나머진 30대, 20대, 그리고 10대 학생들이다.
우리 반 학생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한국 학생이 5명, 일본 학생이 5명, 인도네시아 학생 3명, 이란 학생 2명, 영국 학생 1명, 미국 학생 1명, 필리핀 학생 1명, 그리고 태국 학생 1명 등 총 19명이다. 이중에서 남학생은 6명밖에 안 된다.
(반 편성 1주일 후 교실문에 붙은 우리반 학생 명단. 10명에서 14명으로 니중엔 19명으로 증가)
그 이후로 수업 시간에 쉬 선생님이 나를 불러 발표를 시킬 때는 자꾸 꺼거 학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면 나는 졸지에 대빵(?) 형님이 되어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일념 하에 바짝 긴장하고 발표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발표를 할 때는 어린 10대의 일본 학생들은 눈을 반짝반짝 거리며 나만 빤히 쳐다본다.
이 늙은 꺼거가 제대로 발표를 하는지 아닌지 유심히 살펴보다가 조금만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 까르르 하고 웃어댄다.
원래 10대들이란 굴러가는 나뭇잎에도 까르르 하는 것이지만 이 일본 학생들은 더 심한 것 같다.
이 여학생들은 만난 지 며칠이 안 되어서 내가 반가운 마음에 일본어로 인사를 했더니, 자기네 말이 들리는 것이 신기했는지 그 이후로 내하고 눈만 맞아도 까르르까르르 한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이곳으로 어학연수를 온 터라 한국 나이로는 아직 19세였다.
내 둘째 아들이 올해 대학에 들어갔는데 마찬가지로 열아홉 살이라고 했더니 유난히 눈을 더 반짝거리며 나를 응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반은 맨 처음 편성 되었을 때는 10여 명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 수가 늘어나더니 급기야는 지금의 숫자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막상 수업하는 시간이 되면 지각하는 학생도 있고 결석하는 학생도 있어서 최고로 많이 참석할 때는 15명 정도이고 보통은 13명 정도가 참석한다.
이곳 상하이에 오기 전에 벗씨 친구 중에 대구 경상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최은영이란 영어 선생님과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분은 경북대학교 중국어과 교수인 남편을 따라 상하이에 왔다가 1년 코스인 어학연수를 받은 경험이 있었기에 한 수 지도를 받았던 것이다.
이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본인은 수업시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열심히 다녔단다.
하지만 같이 배우고 있는 어린 10대와 20대 학생들은 수업 빼 먹는 것을 밥 먹듯 하더란다.
그래서 선생님 된 입장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충고를 해 주었단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을 한 번 생각해 봐라. 너희들 유학 보내 놓고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시겠니? 앞으로 수업 빼먹지 말고 열심히 배워라. 그래야 부모님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는 것이 아니겠니?"
그래도 이 학생들은 여전히 수업을 빼먹기가 일쑤였고 나중에는 최 선생님 눈치까지 슬슬 보더란다.
(쉬 선생의 수업 모습. 자리가 텅텅...)
그런데 웬 걸.
시간이 흐르고 수료증 받을 때쯤 되었을 때 막상 중국어 실력을 보니 그 어린 학생들이 본인보다 더 좋더란다.
이 학생들은 수업은 안 들어와도 중국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살아있는 진짜 중국어 실력을 갖추고 되었고,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수업만 열심히 들은 본인은 여전히 더듬거리고 있더란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일체 어린 학생들한테 수업 열심히 들어라 하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 머리 속에 이 말이 꽉 박히는 바람에 여기 와서 같이 수업 듣고 있는 한국 학생이든 외국 학생이든 수업에 결석하고 빈둥거려 보이는 학생이 있어도 일체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일부 언론에 보면 한국 학생들이 외국에 나가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끼리끼리 모여 다니면서 안 좋은 것만 배운다는 얘기를 많이 전하고 있다.
하지만 최 선생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고, 오히려 대부분의 학생들이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도 여기서 난 아직 친구 하나 사귀지 못 하고 있지만 수업에 만날 빠지는 어린 학생들 중에는 벌써 현지 친구를 다섯 명이나 사귄 학생도 있었다.
거기서 벌써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어쨌든 우리 반 학생 19명 중 대빵 꺼거인 내가 처신하기가 어정쩡하다.
반장하겠다고 손들고 나서기도 뭣 하고, 매번 발표 때마다 뒤로 빠지기도 그렇고, 반 분위기를 띄우려고 나서기도 그렇고, 안 나서고 가만히 있으면 내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씩은 영국에서 온 28세의 앤드류란 남학생이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하지만 듣고 있는 모두가 아직 영어가 서툴러 조용하기만 하다.
(이 날은 19명 중 12명이 수업 참석. 쉬는 시간에 찰칵...)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 세계로부터 중국을 배우겠다고 몰려들고 있는 현장에 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만 하다.
불과 이곳에 오기 한 달 전만 해도 중국이 어떻고, 세계화가 어떻고 하는 기사를 신문지상에서나 접하기만 했는데, 막상 세계인이 모여 있는 현장에 와서 보니 정말 모든 것이 실감난다.
중국의 힘이 블랙홀처럼 강해져서 세계인을 끌어들이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나라에도 중국만큼은 아니더라도 각 대학마다 외국 학생들이 들어와서 공부하고 있으니 세계가 하나가 되어 돌아가는 커다란 톱니바퀴 같다고나 해야 할까.
대학에도 들어오지 않은 어린 학생들과 대학도 아닌 대학원을 졸업한 늙은 꺼거가 함께 하는 중국어 기초1의 5반 학생들.
그래도 수업한 지 3주가 흐르고 나니 이제 서로 얼굴도 알고 집안 내력도 알게 되어서 얼굴에 조금씩 개나리 같은 봄꽃이 피는 것 같다.
나는 모방송국 개그콘테스트에 나오는 <동혁이 형>처럼 인기짱인 사람은 되지 못 하더라도 불편한 꺼거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하는 각오를 새삼 다져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열심히 책에다 4성의 성조 표시를 하고 있는 나에게 쉬 선생님이 또 발표를 시킨다.
"꺼거 학생! 가족 소개 한 번 해 보세요. 다 들을 수 있게 큰 목소리로 발표해야 합니다."
"네···! 저···는 김지욱이라고··· 합니다. 우리 가족은··· 네 명입니다. 마누라와 아들··· 두 명입니다. 저는··· 연구원이고요. 마누라는 전···업···주···부···입니다. 우리 아들··· 둘은 대학생입니다. 응, 그, 저······ (더 이상 배운 말이 없어 얼굴을 붉히며 그냥 가만히 서 있다.)"
"페이창 하오! 페이창 하오!(참 잘 했습니다! 아주 잘 했습니다!)"
꺼거 학생은 오늘도 더듬거리며 겨우 발표를 마쳤지만, 항상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는 쉬 선생님의 교수법에 또 넘어가서는 입이 찢어지도록 좋아하고 있었다.
2010년 3월 28일
멋진욱 서.
첫댓글 꺼거학생! 적응하느라 애쓰는 모습이 눈에 선하여 자꾸 웃음이 나네요. ㅎㅎㅎ
늙은 꺼거입니다. 히히.
꺼거학생! 쉬선생님 참 잘났습니다. ㅎㅎ
장윤자 단우님 사진 예쁘게 나왔습니다. ㅎㅎ
쉬 선생님보다 더 예쁜 또 다른 선생님이 계시는데... 비교하면 안 되는데... 둘 다 예쁩니다. 히히.
졸업쯤엔 영어 일어도 일취월장이겠군요.
이제 영어가 쪼매 들리고요. 일어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합니다. 못 듣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김상경 군한테서 배운 일어 실력입니다. 말은 해도 듣지는 못하는... 상경아, 미안... 히히.
정말 페이창 하오! 입니다. ㅎㅎㅎ 쉬선생님 디기 미인이네요~^^ 인사 전해주이소~ㅋ
상하이 오시면 접선을... 히히.
비밀 보장 됩니까? ^*^
여름에 갈 때 한국으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히히.
웃는 표정이 변함이 없어요........
우리 아들 다래한테 서비스 잘 해 주셨다며? 시에시에... 히히.
참말로 대단하네여. 급우들의 면면이랑, 연령대를 감안하면... 그 속에서 부대끼며 "꺼거" 호칭에 맞게 행동하려 애쓰는 그대 모습에 감탄의 박수를 보내요. 그래도 그대들이 누궁교??? 대구 흥사단의 주력멤버 ---실력으로 참다운 꺼거가 되시기를...
히히. 맞아요. 제가 생각해도 우리 둘이 제일 잘 하는 것 같아요. 농담... 히히.
학생이라 두분이 무척 젊어 보여요...".페이칭 하오" !!...^*^
ㅋㅋ 페이창하오~! 이거 자꾸 '픽션하오'로 들렸다는...지금도 마찬가지...^^
꺼거 학생 잘했어요^^ 장윤자학생도 얼굴보니 잘 지내는것 같네요.
잘 계시죠? 주말만 다가오면 엄청 생각나요. 어디 같이 나들이 나가야 하는데 우린 여기 따로 있으니... 봄인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