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대 1의 경쟁률, 3차에 걸친 테스트.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선발된 한국청소년오지탐사대 65명의 대원은 그야말로 취업대란에 파묻힌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얻은 행운의 주인공들이었다. 그 주인공들 속에서 산이라고는 그저 취미생활로만 여겨왔지만 이번 탐사를 통해 산이 너무나 좋아진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대부분의 청소년이 학업에 치우치는 일상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 또한 그랬고, 인생에서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대학 4학년의 여름을 산에서 보내는 것이 과연 현명한가에 대해 수없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탁월했다. 분명 20일 동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결실이 있었다.
위험천만한 순간들, 똘똘 뭉쳐진 16명의 대원
- ▲ 멀리 와욘 산장이 보이는 위험천만한 바람이 부는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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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프랑스와 스페인의 접경지역을 지나가는 순간 창문 너머로 멀리 만년설이 보이기 시작했다. 16명의 대원은 일제히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고, 생각보다 웅장한 산세에 탄성을 터뜨렸다. 멀리서나마 피레네산맥의 존재를 확인하자 내 몸의 세포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비행에 지친 대원들은 마드리드에서 7시간 동안 버스로 이동해야만 우리가 탐사해야 할 피레네산맥의 들머리인 사옌트 데 가예고(Sallent de Gallego)라는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얼굴에 깊은 피로감을 보였다.
산행 이틀째. 가이드와의 첫 만남 이후 첫 산장에서 환상적인 밤을 보내고 점점 피레네산맥에 대한 매력에 빠져들고 있을 때쯤 우리에게 반갑지 않은 사고가 생겼다. 목적지인 와욘(Wallon) 산장이 보이는 내리막길 절벽을 걸어가고 있을 때쯤 순식간에 강한 바람이 불어닥친 것이다. 100m 정도 높이의 아찔한 절벽 아래 바닥은 전부 뾰족한 돌로 가득 차 굴러 떨어지면 목숨조차 장담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구간이었다. 뒤따라오던 이경태(24) 대원이 가장 큰 피해자였다. 떨어지기 직전까지 아찔한 순간을 연출했고, 넘어지면서 팔꿈치를 돌에 강하게 부딪혔다. 약 20분간 움직임조차 없었고, 계속되는 통증에 서둘러 응급처치를 해야 했다.
와욘 산장에 무사히 도착한 후 김인백(46·현대인재개발원 전문교수) 대장이 휴식을 취하기 전에 회의를 진행했다. “왜 유독 이경태 대원만 심하게 넘어졌을까?” 결론은 ‘음악’ 때문이었다. 이 대원이 유일하게 mp3로 음악을 듣고 있었고 그로 인해 몸의 오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임복(26) 대원이 팀원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등반 중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 풀소리, 바람소리, 산에서만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가 나를 산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처음에 들었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경태 대원을 통해 16명의 대원이 다시금 긴장하고 산행의 안전에 대한 의식을 다질 수 있었다.
- ▲ 비뉴말 정상에서 환호하는 대원들. 피레네의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피레네산맥 탐사기간 중에 생일을 맞이한 팀원이 있었다. 이두영 부대장과 이안나 대원의 깜짝 생일파티가 열렸다. 유럽 선진산악지역을 탐사하면서 가장 안락한 시간이 바로 이날 산장에서 보낸 정겨운 밤이었다. 모두가 쉬쉬한 깜짝 생일파티였기 때문에 그 기쁨 또한 배가되었다.
생일파티의 하이라이트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축하였다. 마침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어 준비한 생일파티가 산장 전체의 파티로 바뀌면서 스페인과 프랑스 사람들 모두 우리 테이블로 찾아와 축하 메시지를 전달하자 이두영 부대장과 이안나 대원의 눈가에 어느덧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피레네산맥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산맥이다 보니 탐사 도중 만난 사람들의 국적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스페인 사람들과 프랑스 사람들의 생김새 차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팀원들의 머릿속은 항상 복잡하기만 했다. 더욱이 피레네산맥은 두 국경지역을 정확하게 표지판으로 표기하고 있지 않아 산장에 도착해서야 그 지역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팀원들의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스페인 지역과 프랑스 지역의 산세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산행 초반에 접했던 스페인 지역 피레네산맥의 특징은 산세가 험준하고, 곳곳에 흐르는 계곡물 사이에 눈 쌓인 골짜기와 깎아 놓은 듯한 절벽들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고, 봉우리 곳곳에 눈 덮인 구간들이 즐비했지만 아이젠까지 착용할 필요 없이 스틱만으로도 충분히 지나갈 수 있었다.
인상적인 구간은 무엇보다 곳곳에 숨어 있는 호수였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인해 오래전부터 눈 덮인 구간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들이 호수의 수심을 깊게 만들고, 물의 온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하지만 허홍 대원과 천우용 대원은 제일 먼저 호수에 뛰어들면서 뜨거운 햇살을 피해 더위를 식혔다.
- ▲ (위)해발 2,380m를 지나서 눈길을 오르는 구간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계속해서 빙하가 녹고 있다고 한다. (아래) 멀리 보이는 호숫가를 배경으로 환호하는 필자.
- 하루 10km! 이젠 끄떡없다
프랑스 지역 피레네산맥의 특징은 평온함이었다. 2일째 묵은 산장에서 접했던 양 떼의 전경은 평생 잊지 못할 장관이었다. 선착장에서나 들을 수 있는 “뚜~우” 하는 소리와 함께 수십 마리 양 떼가 쏟아져 내려오면서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주인이 서 있는 주변을 메우며 먹이감을 찾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넓은 초원과 잔잔한 계곡 그리고 황량한 봉우리와 언덕만이 즐비했던 스페인 지역과 달리 양팔로 감싸안아도 한 아름이 넘는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이루는 프랑스 지역은 가족들이 손을 잡고 정겹게 트레킹하는 모습을 제일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처음 오지탐사대 일정을 받아든 모든 대원의 표정은 어두웠다. 하루 평균 10km의 강행군으로 20kg의 배낭을 짊어지고 평균 9~10시간의 산행을 해낼 수 있을까? 짐을 꾸릴 때에는 20일 동안 사용할 옷가지와 장비를 최소화하려 애를 써야 했다. 피레네산맥의 산세가 어떤지도 알 수 없었고, 코스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던 우리로서는 산행 내내 긴장의 연속이었다.
초반 2,668m 높이의 라푸차 고개를 넘어가면서 가파른 언덕에 덮여 있는 눈을 보고 긴장해야 했고, 2,704m의 돌고개를 넘어가면서 강한 돌풍과 때 아닌 추위에 옷을 껴입으면서 앞으로 펼쳐질 장관에 기대를 안고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산행 5일 만에 막내 백승화(20) 대원은 카사 데 파이드라(1,630m)라는 산장에서 출발함과 동시에 내성발톱 증상이 시작돼 약 4일 동안 염증과 물이 차는 고통 속에서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린 어느덧 처음으로 3,000m가 넘는 봉우리를 향하는 일정에 다다랐다. 고리즈(2,160m) 산장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으면서 다음날 콜실린드로(3,074m)로 가기에 앞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산을 오르는 사이 호수 왼쪽으로 3,325m 높이의 실린드로 암봉이, 오른쪽으로 길게 3,355m의 페르디도산이 솟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실린드로 고개를 올라서자 그야말로 봉우리들이 쭉 늘어서며 장관을 이루었다. 하산길에 바라본 베이스캠프 앞쪽 오데사 협곡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마침내 다가온 비뉴말 정상에 오르는 그날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정상 등극 당일 아침, 우리 대원들의 눈길은 모두 창문으로 쏠렸다. 날씨 때문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날씨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비뉴말봉 정상 부근에 구름이 끼어 있는 것 빼고는 훌륭한 날씨였다. 2,151m 산장에서 3,298m 정상 부근으로 올라가는 길은 그리 험준하지 않았다. 단지 계속된 오르막길에 팀원들이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강하게 파이팅을 외치며, 정상을 향한 그 마음가짐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최고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2,730m에서 가이드와의 마찰이 시작된 것이다. 함께 했던 가이드는 16명이라는 많은 인원을 가이드한 경험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계속 안전에 대한 자신의 입장 표명을 확실히 했고, 정상을 남겨 두고, 우리와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가 봐도 올라가는 데 있어서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결국 가이드와 헤어진 채 우리는 정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결국 16명의 대원은 쾌감을 맛보게 되었다.
정상에서 대원들의 기분은 최고였다. 멀리 보이는 전경이 내 마음속의 답답한 구석까지 뻥 뚫어주고 있었다. 해냈다.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