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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인류로 사신 분들 가운데
스님이 평소 궁금하게 여긴분들에게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남다른 삶, 남다른 생각, 남다른 행, 구름같이 따르는 무리 ...
여기서 남다르다는건 긍정적인 삶을 말합니다.
개인이 아닌 이타와 전체를 위한 삶으로 뭉쳐 있는게 특징입니다.
이렇게 남다르다고 여긴 분들 가운데 많은 경우가
성중님께 확인 결과 보살이나 천왕님의 화신이거나,
그 분들의 보신인 분신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재까지 가장 많은 분들은 '지장왕보살(地藏王菩薩)'님의
화신(化身)들이었고요..
(지장왕보살=대선견천왕(마혜수라천왕,색구경천왕)=시바신)
대제석천왕님의 화신들도 계셨습니다.
아직 소개는 안했지만.. 보살의 진신(보신, 분신)이나..
대제석천왕님의 진신들도 있으십니다.
성중님이 알려주신 바에 의하면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선생은...
보살님의 분신(진신)이신데요..
선생은 보살님이나 천왕님의 화신이나 분신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분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드릴께요..
글이 작성 되는 동안 선생에 관한 영상을 한 번 보십시오...
선생이 보살님의 진신이신 분신이라 여기고
영상을 보시면 많은 의문이 풀리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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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른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그간 알고 있던
이 보살님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이미지를 공유하고 계시는
별도의 보살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간 성중님과의 대화를 통해 의문이 들었던 것은
지장의 화신, 분신(보신)들은 곳곳에 포진하시며
현생인류들을 지켜주셨는데 관음의 화신은 찾은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논리상으로 따지면 사바의 대보살이신 두 어른은
최소한 동일하게 나타나셔야 맞습니다.
하지만 관음께서는 그렇지 않으셨다는거죠.
이게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험담에는 나오신단 말이죠.
(이부분을 성중님께 여쭈니
관음에 관한 수많은 영험담은 모두 당신의 진신이 하신 것이랍니다.
단 한 차례도 사바세계 내부에서는
보신(분신)이나 화신을 나투신적이 없다고 해요.
스님이 뵈었던 해인사 관음전의 보살님
스님이 2012년 뇌출혈로 위험하다가
선몽에서 간호사에게 주사를 맞을 때 등장하신 어른..
모두 관음의 진신이시랍니다.
사바세계 내부에 관음께서 보신 화신을 안타내시는 이유는
내부 일은 모두 지장에게 맡기셔서 그렇데요.
사바의 외부를 수호하시는게 당신의 소임이라
외부에서는 다양한게 분신과 화신을 나툰신답니다.
관음은 북쪽.
남쪽의 보타낙가가 아니고요...
북쪽의 보타낙가랍니다.)
그 이유는 바로 토정선생으로 분신을 나타내신 이보살님 때문입니다.
(이어른이 남쪽의 물을 관장하시는 보살님.
남쪽의 보타낙가라고 할 때 혼용된거라고 해요.
-동해 낙산사 홍련암-관음(해수관음)
-남해 보리암-토정선생으로 분신하신 보살님
-서해 석모도 보문사-토정선생으로 분신하신 보살님
-남해 향일암--토정선생으로 분신하신 보살님
이러다보니 분신하신 보살님은
제대로 명호도 못찾으시고..섭섭하시다고 해요.
빨리 명호를 찾아야겠군요...
여쭤보니 초성이 'ㄷ'으로 시작된답니다. 한자발음.
석자(3)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네요.)
토정선생으로 나투신 보살님은 여성성을 가지고 계시답니다.
아래 영상에서 선생을 백성들의 '아버지'라고 묘사했습니다만
딱 봐도 '어머니'죠.
그렇게 자애롭게 베푸시고 하셨는데 아버지는 뭔가 안맞죠.
이보살님의 분신이나 화신이 직접 나타나신 일은 또 있을 것 같아요.
성중님께서는 관음보살은 화신이나 분신을 나타내신적이 없고요.
영험에 나탄나신 거는 전부 관음의 진신.
그 이유는 우리가 위치한 이곳이 남쪽이라 그렇데요.
관음은 북쪽에 머물고 계시답니다.
사바는 남북으로 천궁이 기둥처럼 길게 뻗아 나와 있는데요.. 남근으로 힌트~
지장은 남, 관음은 북이랍니다.
그 중 남쪽이 위라고 합니다.,
가운데가 비로자불(싹하문이불)...
이걸 보면 천궁은 마치 금강저 같아요..
금강저가 삼고저라면 지장(시바신)이 드신 삼지창은
바로 이해가 되죠.
우리쪽에선 육환장으로 변화.
(성중님께 여쭈니 맞답니다.
금강저가 3고전데 천궁을 상징하고요.
다만 관음이 계시는 북쪽은 뾰쪽하지 않답니다.
부드럽게 반듯하답니다.
탑의 끝인 상륜부도 천궁의 남쪽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상륜부 끝은 반드시 끝이 세 갈래로 갈라져야 하는거죠.
저 맨끝이 세 갈래로 갈라져야 한답니다.
탑자체가 천궁, 상륜부가 지장이 계시는 곳.
그걸 알리려고 들고 계시는 것이 금강저.
시바신은 삼지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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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 선생의 삶을 큰가닥으로 묘사하면
01.토정비결(土亭秘訣)
02.백성을 위한 자애로운 보살
03.솥뚜껑
04.개혁
05.토정(土亭)
06.물(바다, 강),섬,나루,배,나막신,옥,은,소금,바가지,상업,무역
이렇게 표시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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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속에 당신이 보살임을 밝히는 흔적을 남기셨다고 해요.
당시(조선 명종) 이어른이 분신을 나타내신 이유는
우리민족과의 인연보다는
이 한반도와 인연이 깊으시기 때문이랍니다.
한반도에서 여러 화신 부처님이 탄생하셨는데
그 중 한 분과 인연이 있다하셨습니다.
이 한반도를 매우 중하게 여기신다고 해요.
인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안타까워해서
몸을 나투셨다고 합니다.
2번은 기본이죠. 보살이시라면 당연히 갖추셔야할 덕목.
3번 솥뚜껑은 뭘까요??
영상에에서는 아무데서나 밥을 해먹기 위해 솥뚜껑을 썼다고 하는데요..
설마요... ^^...
아니고요...
당신께서 뒤에 스님과 같은 이들이 당신을 알아보라고..
일부러 보살님이라는 증거를 남기셨다고 해요.
총5개를 남기셨다고 합니다.
당신의 행과 주장을 살피면 그 속에 힌트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솥뚜껑은 보살의 보관이랍니다.
내가 보살인데 보관을 쓴 보살이란걸 알려주신거랍니다.
이게 1번이고요..
2번은 '옥(玉)'이래요.
옥구슬을 손에 들고 계신다고 합니다.
포천현감 시절 선생의 상소에 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나올수도 있지만 어쩌면 매우 특이한 언급이라 할수도 있겠죠.
이 옥은 본래 북극성신(검여신,마고)을 상징하는 건데요.
이 보살님도 옥구슬을 들고 계신다고 합니다.
3번은 신수신인데요.
배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따라다닙니다.
나막신도 같은 거로 봐야겠죠.
손과 나막신 모두 기행(奇行)으로 분류 되었는데
분명한 이유가 있는거죠.
배와 나막신은 당신이 타고 다니시는 신수신의 모양.
근데 그 모양이 배처럼 새겼고요..
깃대 모양으로 등에 깃발이 솟아 있답니다.
나머지 2개는 못찾았지만
위에 밝힌 3가지 힌트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또 당신의 정첼 알 수 있는게...
물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는거죠..
물(바다, 강), 섬, 소금, 마포나루...
이걸보면 당신은 물을 주로 다루시는 분이란걸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관음보살과 매우 닮아 있죠...
우리가 기존 인식하고 있던 관음의 이미지와 상당히 겹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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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호가 '토정(土亭)'인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사바는 항상 균형을 맞춰야 해요.. 이진법...
당신이 물이니.. 항상 물을 물답게 만들어줄 흙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토정(土亭)인거죠...
인믿기시나요??
또 다른 호는 '수산(水山)'이라고 합니다.
'물'과 '산'이 있잖아요..산은 당연히 흙이고요..
이상하죠??
보살이 사바의 이진법을 맞춰놓은신겁니다.
다음은 '토정비결(土亭秘訣)'....
아~ 그전에 당신에 대한 모든 기록은 사실이랍니다..
성중님이 확인해주셨습니다.
토정비결(土亭秘訣) 역시 당신이 직접 기술하신 거래요.
사실 이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두고...
스님은 내내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게 예언서라하는데요.. 물론 그건 맞는 말이지만...
그러기에는 정확히 안들어맞는 개념설정이고요....
뭔가 삶의 지침서 같았습니다.
내용에는 너무 좋은 글이 많아요..
그 이유가 있었던거에요.
토정비결..이건 보살의 법문책입니다.
우리에게 남겨주신 당신의 사상서..
이건 다른 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제 당신의 저서들을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보살이 알려주신 올바른 불자로서 시대를 사는 법이거든요.
16세기 글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 글이고요.
21세기인 지금도 그대로 적중하는 말씀입니다.
이게 아무나 가능하겠습니까?
또 보살들의 분신이나 화신들이 행하신걸 눈여겨봐야해요.
그어른들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점(占)이 들어갑니다.
어느점인가는 논쟁 여지가 있지만
분명히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이건 미래 예측인데요.
사바가 이진법과 6의 배수 등 수학적 원칙으로 돌아가기에
그런 예측법이 이미 개발 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개발된 법이 있다면 이건 점이라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예언 개념이 아니라.
정견, 똑바로 보기의 측면에서 정리되어야 한다고 보여집니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주역(周易)'으로 보입니다.
지장신앙의 3회 점찰법도 숫자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사각을 친 목륜 6개에 3가지 숫자를 쓰는데 18까지 써서
3번을 던지죠.
6,3,18 모두 6과 연관 있습니다.
언놈들은 토정비결을 보고 안맞다고 이상한 소리 하는 것들이 있는데..
아니랍니다.
대다수는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시는 당신의 설법이지만..
그 중 20%는 정확하게 적중하게 만들어 놓으셨다고 해요.
20프로라면 절대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보살께서 그 퍼센트를 유지하신 이유가 있겠죠.
보살의 사망 역시 사망하신게 아니라
인연이 다하여 스스로 거두신거랍니다.
형식은 전해 내려오는대로 생지네즙과 생밤의 형식을 취하셨는데요.
앞선 시기에 당신께서 사람을 살리시기 위해 행을 행하시며
안좋은 병이 걸리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치료하는데는 어쩔수 없이 생지네즙을 약으로 사용하셨는데
이또한 독약이라인지라 복용 후 생밤을 반드시 바로 드셔야 한답니다.
이건 육신을 가지신 모든 분신, 화신들에게는 어쩔수 없으신 일입니다.
육체가 존재하는한 질병은 어쩔수 없거든요.
생밤 드시는걸 지켜야했는데 보살께서 분신을 거두셔야 할 시점이라
아시면서도 아전이 나무로 깎은 밤에 일부러 속아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분신을 거두셨는데요.
이유는 임진왜란.
당신이 사망하신 년도는 1578년으로 임진란을 불과 4년 앞둔 시기였습니다.
보살이시라도 어쩔수 없는 일이 있다고 해요.
천지가 피로 물드는 것이 안타까우셔서 나투셨지만
공통의 업장은 어쩔수 없는 일.
침략을 당한 우리 민족의 업장과
침공을 한 일본인들같의 악연...
이건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싹하족(석가족)의 멸망...
어이 없게도 그 사유는 상대를 업수이 여기고
창피를 준 사건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동이족(동호족, 퉁그스족)의 업장은 참 많은것 같아요..
모두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일을 겪습니다.
최근의 집단적 난국은
대한민국(조선)의 식민지와 2차세계대전.
해방 이후 남북분단, 제주 4,3사건, 6.25로
동족간에 엄청난 생명 살상이 있었는데요..
비슷한 일이 같은 동이족 계열인
몽골(외몽골,내몽골), 베트남, 독일, 일본, 티벳, 이스라엘,중국...
여기서 똑같이 일어났습니다.
전부 집단학살과 전쟁, 분단이 일어났지요.
비슷한 시기에 말입니다.
현재도 대한민국, 몽골,일본(사할린 분단),티벳, 중국 등은
아직도 분단국가입니다.
이건 민족적 업장이라고 봐야 합니다.
과거 불교가 소멸할 때도 이런 집단적 악연이 있었다고 해요.
이걸 막으려면 '불교'라는 이름으로
단죄를 하면 안된답니다.
공동체의 이름으로 제압을 해야지
개인, 단체,국가, 종교, 이념 등 개별 집단으로 단죄를 하면
큰 과보가 되어 똑같이 복수를 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동이족이 집단적으로 그런 일을 겪는 것은
과거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죽였고 분단시켰기 때문인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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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토정비결의 일부분인데요...
스님이 연구는 안해봤지만 책에는 총6,480구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위 사진의 예를 그대로 단순 계산하면 체계는
각단에 32구 있으니 32*3=96구가 나오고요.
책의 전체 장수를 곱하면 전체 구의 숫자가 나올 것 같습니다.
해설의 구는 24구구요.
매월은 6구입니다.
12*6=72
뭐가 보이세요??
6의 배수잖아요.
이거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백과사전에 책에는 총 6,480구가 기록 되어 있다고 나오는데요..
계산이 안 맞습니다. 6의 배수가 아니에요.
그건 뭔가 오류가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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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토정선생)은 엄청난 숫자의 명문을 적으셨는데요...
저 자체만 하더라도 엄청난 겁니다.
칠독서의 명문인 천자문(千字文)이 겨우 250굽니다.
근데 토정비결 한 페이지가 96구...
이게 얼마나 가치 있는 글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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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상하군요...
위에거는 '남산당 48구(句)의 원본토정비결 212'고요..
다른 것도 있네요...
우측 상단의 212는 자체 표시 순서입니다.
아래는 '명문당 45구(句)의 원본토정비결'입니다.
이거는
해설구가 18구
매월이 12*6=72구
전체는 90구네요.
6의 배수는 맞는데...
어느 것이 보살(토정 이지함)의 직접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후세에 각색이 있는듯하네요.
원본책을 보니
남산당 48구 책은 책으로는 7페이지부터 150까지이니
총 144장이 됩니다.
그러면 여기는 96*144=13,824구가 되고요
김혁제 45구 책은 3페이지부터 146이어서
역시 총 144장입니다.
여기는 90*144=12,960구입니다.
백과사전의 6,480은요
김혁제의 12,960을 2로 나누어서
즉 8글자를 한 문장으로 친거군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분명히 4글자씩 잘라야 해요.
이부분에 대해 서중님께 여쭸더니
각색을 했는데 보탠게 아니라 줄였답니다.
원본훼손.
또 현재 토정비결을 보는 방법으로는
격려와 신중한 삶을 살으라는 보살의 법문이시지만..
다른 법으로 보면 매일의 일상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그 법은 아무도 모른다고 해요.
보살께서 직접 하셨는데 간단한 책을 만드셨을리가 없는거죠.
토정비결에 관해서는 원래 매우 적중률이 높은 책이었는데
너무 잘 맞아 고쳐놨다는 얘기가 구전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숨겨져버린 제2의 토정비결 보는 법인지도 모르겟네요.
성중님 말씀으로는 보는 법이 두가지고
현재 사라진 법으로 보면 매일의 일상 예측 가능.
또 현재 토정비결은 우너본을 훼손하여 줄여놓긴 했지만
보살께서 숨겨놓은 두번째 법을 찾으면 놀랍게 예측 된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사바가 수학적 법칙으로 움직이기 때문일겁니다.
예를 들면 360도 원의 원리에 의해 돌아가니
12시간, 2진법, 24시간 이게 계속 운행 되는 법이잖아요.
6의 배수로 돌아가니 당연히 예측이 가능합니다.
물호스에 초당 0.1리터의 물이 나오면
1분에는 01.*60=6리터의 물이 고이는 이치와 같죠.
이것이 변함 없는 일이기에
앞으로 몇 시간 뒤에는 얼마의 물이 고인다가 나오는겁니다.
이것은 단순한 예측이 아닌 정견, 똑바로 보기입니다.
탄허스님의 사상을 연구했던 스님이
주역 거론하신 것을 두고 연구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했다고 하던데요.
그 정도로 이사회가 망가져 있는 겁니다.
부처님의 팔정도, 똑바로 보기가 아닌 운세 보기로 전락해버린거니까요.
보살의 분신이신 토정과 화신이신 충무공 모두 어떤 것으로 예측을 하셨는데...
(충무공은 점, 토정은 토정비결과 기타)
이게 어찌 이리 가벼이 취급되게 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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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법문을 제대로 보려면 각색 안된 원본이 있어야 하는데..
있는 자료로 해석을 해보죠...
위 사진에 나온 내용 일부를 적어보겠습니다.
金入鍊爐 終成大器 금입연로 종성대기
(쇠가 용광로에 들어가 새로 만들어지니 마침내는 큰그릇을 이루리라~~
~~
一枝花開 一枝葉落 일지화개 일지엽락
한 가지의 꽃은 피고 한 가지는 잎은 떨어지리라~~
한 해를 앞두고...
이러한 글을 본다면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떨 것 같습니까?
이게 단순한 운세로 보이십니까?
'금입연로 종성대기'에서는 희망을 주고..
격려와 자존감을 높여주신거고...
'일지화개 일지엽락'에서는
인생 살며 즐거움과 아픔이 함께하니
잘 된다하여 함부로 설치지 말고 신중한 삶을 살으시라는 거잖아요.
우리는 이걸 놓치고 있습니다.
더구나... 저 말씀들에 20퍼가 실제화 된다는거.
책 전체가 삶의 지침서지만..
그중 매년 20퍼는 적중 시키고 있단 말이죠.
새롭게 토정비결을 봐야할 것 같아요.
매년 본인에게 해당 되는걸 복사해서
자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매달 어떻게 된다 이게 아니고..
전체를 보고 경계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 민속의 지혜 : "토정비결은 ‘상담적기능’이 있다" -최효찬-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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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 이지함 ☞ 참고자료 ; 원종성 <향싼 종이 향내난다>/ 고세훈, 월간 중앙 1999.1 ☞ 이재익 편집 [인성ㆍ사회교육자료집 9호] 에 실음 ---------------------------------------------------------------------- 1517 중종 12년~1578 선조 11년,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본관 한산(韓山). 마포 강변1)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土亭) 이라는 호가 붙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현령 이치(李穉)의 아들이며, 북인의 영수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이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의 저자. 형 지번 밑에서 글을 배우고 화담 서경덕의 제자가 되었다. 1)서울 마포구 토정동 소재 한강삼성아파트 입구 쪽이 토정이 토담집을 짓고 살던 자리다. 그곳에 표시석이 세워져 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도학과 문장이 탁월하여 천문지리 의약 복서 병서 음양술수 등 제가(諸家)잡술(雜術)에 통한 이인(異人)이었다. 패랭이 대신 쇠 갓을 쓰고 팔도 유람을 한 자유인으로 그의 쇠 갓은 밥을 지어먹는 솥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는 세속적 욕망에 얽매이지 않고 몸과 마음의 평화를 추구한 자유인이었다. 박순(朴淳)ㆍ이이(李珥)ㆍ성혼(成渾) 등과 교유했으며, 당대의 일사(逸士) 조식(曺植)은 마포로 그를 찾아와 그를 도연명(陶淵明)에 비유하고, 율곡 이이는 그를 가리켜 '진기한 새, 괴이한 돌, 이상한 풀'이라고 하였다. 중봉 조헌은 그의 제자이다. 이지함은 정4품 이정랑의 딸과 결혼한 후 처가인 광릉농장에서 1년 동안 학문에 매진하였다. 하인에게 밤에 쓸 등유를 가져오라고 했지만, 장인이 그의 건강을 염려해 등유를 보내지 않자 직접 산에 가서 관솔을 따다가 불을 밝히며 공부를 했다. 스승 서경덕의 영향이었을까. 이지함은 벼슬에는 별로 뜻이 없었다. 마지못해 과거에 나갔지만 답안을 제출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왜 과거를 보지 않느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제각기 좋아하는 바가 있소, 나는 내 좋은 대로 살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안명세 사건2)과 청홍도 사건3)은 이지함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다. 이때부터 그는 처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양반이었지만 손수 고기를 잡고 소금을 만들어 팔아 수년만에 수천 섬의 양곡을 모을 수 있었고, 그 양곡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경험이 실학적인 무역과 상업론의 바탕이 되었다. 2)이지함의 나이 33세 때 죽마고우였던 안명세(安名世)가 사형 당하는 사건이 터졌다. 유능한 사관이었던 안명세는 사관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을사사화(1545) 때 윤원형․이기 같은 소윤 일파가 윤임 등 대윤을 모함해 죽였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윤원형 일파가 절대 볼 수 없는 사초를 보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쓴 안명세를 처형한 것이다. 3)이홍남의 고변사건(청홍도 사건) ; 형제인 이홍남과 이홍윤의 감정대립이 불러온 역모 고변사건이었다. 이홍남은 동생 이홍윤이 왕에게 불충했다고 고변하게 되는데, 이 역모사건의 괴수로 이지함의 장인인 이정랑이 걸려들게 됐다. 이로 인해 이지함의 처가는 풍비박산 났고, 이지함도 연좌법에 의해 양반 신분에서 천민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됐다. 서경덕이 황진이의 유혹을 뿌리쳤듯 제자인 이지함도 여자에게는 조신(操身)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제주도에 세번이나 다녀왔다. 제주의 관원이 그의 이름을 익히 듣고 기생으로 하여금 수청들게 했다. 그리고 기생에게는 이지함의 사랑을 얻는다면 창고의 양식을 모두 상으로 주겠다고 제의했다. 온갖 아양을 떨었지만 기생은 끝내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51세 되던 해 선조가 등극하면서 정국이 쇄신되면서 53세이던 1570년에 이홍남 고변사건의 연좌에서 풀려났다. 이이ㆍ성혼ㆍ조식 등의 학자들을 만나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할 방도도 토론했다. 1573년(선조6년) 58세 때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종6품직을 제수 받아 포천 현감이 되었다. 그가 현감으로 부임하자 아전들이 도임상이란 걸 차렸는데, 그것은 갖은 진미를 두루 갖춘 음식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저도 들지 않은 채, 상을 물리도록 하였다. 놀란 아전들이 차린 것이 부족하여 그런 것으로 알고 다시 엄청난 상을 차려서 올렸으나 역시 그대로 치우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이 고을에는 잡곡밥이 없느냐? 나는 아직 이와 같은 진수성찬을 먹어 본 일이 없어 겁이 나서 물렸다." 하며 분수에 없이 사치하고 낭비하는 풍조를 크게 나무랐다. 그는 현감으로 있는 동안 잡곡밥에 시래깃국을 빼지 않도록 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는 백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조사해 장계를 올렸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듬해 바로 미련 없이 관직을 사직하였다. 그의 사회경제사상은 포천 현감을 사직하는 상소문 등에 피력되어 있는데, 농업과 상업의 상호 보충관계를 강조하고 광산 개발론과 해외 통상론을 주장하는 진보적인 것이었다.4) 4)유리걸식하는 민중의 구제를 최대 목표로 생각하던 이지함은 3대창고론을 주장했다. 3대창고론은 이지함의 사상이 집약된 '국부론'이라 할 수 있다. 첫째가 도덕의 창고인 인심을 계발해 화평한 세상을 만들자는 주장. 사대부들이 마음의 욕심을 버리고 수기치인하며 도덕을 지키면 백성은 경제활동에 힘을 쏟을 수 있다. 따라서 재물은 풍족해지고 그 재물이 균분돼 민생은 윤택해지고 이상적인 대동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재창고론이다. 어느 때에도 인재가 없었던 적이 없는데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도가 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셋째는 재용창고론이다. 육지와 바다는 1백가지로 소용되는 물산을 저장한 창고다. 이 창고에서 나는 물산을 헐벗고 굶주리는 백성 누구나 생산하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당시는 모든 산물을 다만 그 고을에서만 취하여 쓰고 다른 고을에 있는 것은 항상 금지해 취용하지 못하게 하니 잘못된 일이라는 지적이었다. 1578년 4월에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아 아산현감이 되었다.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관내 걸인의 수용과 노약자의 구호에 힘을 쓰는 등 민생문제의 해결에 큰 관심을 가졌다. 늙은 아전하나가 어찌나 백성들에게 횡포가 심한지 여러 차례 시정하도록 일렀으나 버릇이 고쳐지지 않았다. "너 같은 놈은 비록 몸은 늙었으나 마음은 아직 어려서 벌을 받아야 깨우치리라."하고 갓을 벗기어 흰머리를 총각머리로 땋아 놓고, 벼루를 들리어서 종이 곁에 세워 놓았다. 늙은 아전은 제 잘못은 생각하지도 않고 제가 당한 수모에만 앙심을 품어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그러던 토정이 늘 지네(蜈蚣 ,오공)의 생즙을 내어 먹는 즉시 그 자리에서 지네의 독(毒)을 없애기 위해 날밤을 먹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밤 대신에 버드나무로 깎은 가짜 날밤을 준비해 놓았다. 이것을 모른 토정은 늘 하던 대로 지네즙을 마시고 날밤을 찾았으나 날밤이 있을 리 없어, 미처 제독하지 못한 탓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해 7월 그의 나이 62세였다. 1713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아산의 인산서원(仁山書院), 보은의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으로는 <토정유고(土亭遺稿)>가 전한다. 묘는 충남 보령시 주포면 고정리 국수봉 기슭에 소재 토정 일가의 선영에 있다.5) 5)이지함은 1517년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서 아버지 이치(李穉)와 어머니 광주 김씨 사이에 출생했다. 그의 고향 장산리는 1959년 청천저수지를 만들면서 수몰됐다. 한가지 미묘한 것은 그가 토정 외에 수산(水山)이란 호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집터가 수몰된 것과 수산이란 호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