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게송을 해석함(總說分)]
[1. 《게송》 장문을 나눔(分《偈》章門: 五念門)]
【왕생론주】
偈中分為五念門,如下長行所釋。
第一行四句偈,含有三念門:上三句是禮拜、讚歎門,下一句是作願門。
第二行論主自述「我依佛經造論,與佛教相應」,所服有宗。何故云此?為成「優婆提舍」名故,亦是成上三門、起下二門,所以次之說。
從第三行,盡二十三行,是觀察門。
末後一行,是迴向門。
分偈章門竟。
【번역】
게송을 오념문으로 나누는데, 아래 장항에서 해석한 바와 같다.
첫 번째 줄의 네 구절 게송에는 삼념문이 포함되어 있는데, 위의 세 구절은 예배문과 찬탄문이고, 아래 한 구절은 작원문이다.
두 번째 줄은 논주가 스스로 “내가 불경에 의거하여 논을 지어 부처님의 가르침과 상응한다.”라고 마음에 새겨 잊지 않는 교법이 불경의 요지에 근거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어째서 이 게송을 말하였는가? “우바제사”라는 이름을 성취하기 위한 까닭이고, 또한 위의 세 문을 성취해 주고 아래 두 문을 열어주기 때문에 다음으로 이 게송을 설한 것이다.
세 번째 줄부터 스물세 번째 줄이 끝날 때까지가 관찰문이다.
마지막 한 줄은 회향문이다.
게송에 대한 장문(章門) 나눔을 마친다.
[2. 예배문 찬탄문 작원문]
【왕생론】
世尊我一心,歸命盡十方,
無礙光如來,願生安樂國。
【번역】
세존이시여, 저는 일심으로
온 시방(세계를 비추는 데 장애가 없는)
무애광여래께 귀명하오며,
안락국토에 왕생하길 발원하나이다.
【왕생론주】
「世尊」者,諸佛通號。論智,則義無不達;語斷,則習氣無餘:智斷具足,能利世間,為世尊重,故曰「世尊」。
此言意歸釋迦如來。何以得知?下句言「我依修多羅」。天親菩薩在釋迦如來像法之中,順釋迦如來經教,所以願生;願生有宗,故知此言歸於釋迦。若謂此意遍告諸佛,亦復無嫌。
夫菩薩歸佛,如孝子之歸父母、忠臣之歸君后。動靜非己,出沒必由;知恩報德,理宜先啟。又,所願不輕,若如來不加威神,將何以達?乞加神力,所以仰告。
「我一心」者,天親菩薩自督之詞。言念無礙光如來,願生安樂,心心相續,無他想間雜。
【번역】
“세존”은 제불의 공통된 칭호이다. 지혜를 논하자면 의리(義理)가 통달하지 않음이 없고, 끊음을 말하자면 습기를 남김없이 끊었으며, 지혜의 덕(智德)과 끊음의 덕(斷德)을 구족하여 능히 세간에 이익을 주고 세간에서 존중받는 까닭에 “세존”이라 부른다.
이곳의 “세존”은 오로지 석가여래만을 가리킨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아래 구절에서 “제가 수다라에 의지하여”라고 말하고 있다. 천친보살이 석가여래의 상법시대에서 석가여래께서 설한 경전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에 극락왕생을 발원한 것이다. 왕생발원에 근거가 있는 까닭에 “세존”은 오로지 석가여래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이 뜻을 제불께 두루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말해도 역시 무방하다.
보살이 부처님께 귀명하는 것은, 마치 효자가 부모에게 귀순하고 충신이 군주와 황후에게 귀순하는 것과 같다. 행동거지를 자기 생각대로 정하는 게 아니고, 출입에는 반드시 분부에 따라야 한다. 은혜를 알고 보답하려면 당연히 먼저 (부처님께) 아뢰어야 한다. 더구나 소원이 가볍지 않아 여래께서 위신력으로 가피를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실현할 수 있겠는가? 불력의 가지를 빌기 위하여 우러러 고한 것이다.
“제가 일심으로”란, 천친보살이 자기 스스로 독촉하는 말로서, 무애광여래를 염하고 안락세계에 왕생하길 발원하며 마음과 마음이 상속하여 다른 생각을 섞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왕생론주】
問曰:佛法中無我,此中何以稱「我」?
答曰:言「我」,有三根本:一是邪見語,二是自大語,三是流布語。今言「我」者,天親菩薩自指之言;用流布語,非邪見、自大也。
【번역】
묻기를: 불법에서 무아를 말하는데, 여기서 어찌하여 “나”라고 부르는가?
답하기를: “나”라는 말에는 세 가지 근본(세 가지 주요 함의가)이 있으니, 첫째는 사견어(邪見語)요, 둘째는 자대어(自大語)요, 셋째는 유포어(流布語)이다. 지금 “나”라고 말한 것은 천친보살이 자기를 가리키는 말로서, 사용한 것은 유포어이지 사견어나 자대어가 아니다.
【왕생론주】
「歸命盡十方,無礙光如來」者,「歸命」即是禮拜門,「盡十方無礙光如來」即是讚歎門。
何以知「歸命」是禮拜?龍樹菩薩造《阿彌陀如來讚》中,或言「稽首禮」,或言「我歸命」,或言「歸命禮」;此論長行中,亦言「修五念門」,五念門中,禮拜是一,天親菩薩既願往生,豈容不禮?故知「歸命」即是禮拜。然禮拜但是恭敬,不必歸命;歸命必是禮拜。若以此推,歸命為重。偈申己心,宜言歸命;論解偈義,泛談禮拜:彼此相成,於義彌顯。
何以知「盡十方無礙光如來」是讚歎門?下長行中言「云何讚歎門?謂稱彼如來名,如彼如來光明智相,如彼名義,欲如實修行相應故」。依舍衛國所說《無量壽經》,佛解阿彌陀如來名號:何故號阿彌陀?彼佛光明無量,照十方國無所障礙,是故號阿彌陀;又,彼佛壽命及其人民,無量無邊阿僧祇劫,故名阿彌陀。
【번역】
“온 시방(세계를 비추는 데 장애가 없는) 무애광여래께 귀명함”에서 “귀명”은 곧 예배문이고, “온 시방의 무애광여래”는 곧 찬탄문이다.
“귀명”이 예배인지 어떻게 아는가? 용수보살이 지은 《아미타여래찬》 속에서 때로는 “계수례”라고 말하였고, 때로는 “내가 귀명함”이라고 말하였고, 때로는 “귀명례”라고 말하였다. 이 논의 장항(長行) 속에서도 “오념문을 닦는다”고 말했는데, 오념문 중 예배가 그중 하나이다. 천친보살이 왕생을 발원한 이상 어찌 예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귀명”이 곧 예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배는 단지 공경일 뿐이어서 꼭 귀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귀명하면 반드시 예배할 것이다. 이것으로 추단컨대 귀명이 더 은중하다. 게송에서 자기 마음을 표명하기 위해서 마땅히 “귀명”을 말해야 하고, 논에서는 게송의 뜻을 해석하고 있으므로 광범하게 “예배”를 말한 것이니, 서로를 성취해 주어 뜻이 더욱 잘 드러나게 해주었다.
“온 시방(세계를 비추는 데 장애가 없는) 무애광여래”가 찬탄문인지 어떻게 아는가? 아래 장항 속에서 말하기를 “무엇이 찬탄문인가? 이를테면 저 여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저 여래의 광명지혜의 모습과 같이, 저 명호의 의의와 같이 여실한 수행과 상응하고자 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사위국에서 설한 《무량수경》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아미타여래의 명호를 해석하기를 “저 부처님을 무슨 이유로 아미타라 부르는가? 저 부처님의 광명이 한량없어 시방국토를 비추는 데 아무 장애가 없는 까닭에 아미타라 부르느니라. 또한, 저 부처님의 수명과 그 나라 사람들의 수명이 무량무변한 아승지겁인 까닭에 아미타라 부르느니라.”라고 하였다.
【왕생론주】
問曰:若言「無礙光如來」「光明無量,照十方國土無所障礙」者,此間衆生何以不蒙光照?光有所不照,豈非有礙耶?
答曰:礙屬衆生,非光礙也。譬如日光,周四天下,而盲者不見,非日光不周也;亦如密雲洪霔,而頑石不潤,非雨不洽也。
【번역】
묻기를: 만약 “무애광여래의 광명이 한량없어 시방국토를 비추는 데 아무 장애가 없다”면, 이 세간의 중생은 어찌하여 광명의 비춤을 받지 못하는가? 광명이 비추지 못하는 곳이 있는 한 어찌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답하기를: 장애는 중생에게 속할 뿐, 광명에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햇빛이 사천하를 두루 비추는데, 눈먼 이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햇빛이 두루 비추지 않아서가 아니다. 또 예컨대 잔뜩 낀 구름 속에서 큰비가 쏟아부어도 돌멩이를 침윤(浸潤)하지 못하는 것은 빗물이 축축이 적시지 못해서가 아니다.
【왕생론주】
若言一佛主領三千大千世界,是聲聞論中說;若言諸佛遍領十方無量無邊世界,是大乘論中說。天親菩薩今言「盡十方無礙光如來」,即是依彼如來名、如彼如來光明智相讚歎,故知此句是讚歎門。
「願生安樂國」者:此一句是作願門,天親菩薩歸命之意也;其安樂義,具在下觀察門中。
【번역】
만약 “한 부처님이 삼천대천세계를 주관한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성문의 논에서 설한 것이고, 만약 “제불이 시방의 무량무변한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대승의 논에서 설한 것이다. 천친보살이 지금 말한 “온 시방세계를 비추는 데 장애가 없는 무애광여래”가 곧 저 여래의 명호에 의지하여 저 여래의 광명지혜의 모습과 같이 찬탄하는 것인 까닭에 이 구절이 찬탄문임을 알 수 있다.
“안락국토에 왕생하길 발원하나이다”란, 이 구절은 작원문으로, 천친보살이 귀명한다는 뜻이다. 그중 “안락”의 뜻은 아래 관찰문에서 상세히 설명하겠다.
【왕생론주】
問曰:大乘經論中,處處說衆生畢竟無生如虛空,云何天親菩薩言願生耶?
答曰:說衆生無生如虛空,有二種:一者如凡夫所謂實衆生,如凡夫所見實生死。此所見事,畢竟無所有,如龜毛,如虛空。二者謂諸法因緣生故,即是不生,無所有如虛空。天親菩薩所願生者,是因緣義;因緣義故假名生,非如凡夫謂有實衆生、實生死也。
【번역】
묻기를: 대승경론 곳곳에서 중생은 허공과 같이 필경 무생이라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천친보살은 원생(願生)을 말하였는가?
답하기를: 중생이 허공과 같은 무생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범부가 말하는 “실제 중생”과 같고, 범부가 본 “실제 생사”와 같다. 이런 일들은 거북의 털과 같고 허공과 같이 필경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일체 법이 인연으로 생겨난(因緣生) 까닭에 곧 생겨나지 않음(不生)이고 허공과 같이 없는 것이다. 천친보살이 왕생을 발원한 것은 인연의 뜻이고, 인연의 뜻인 까닭에 실체가 없는 것에 임시로 “생(生)”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서, 범부가 말하는 실제 중생과 실제 생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왕생론주】
問曰:依何義說往生?
答曰:於此間假名人中修五念門,前念與後念作因。穢土假名人、淨土假名人,不得決定一,不得決定異;前心後心,亦復如是。何以故?若一,則無因果;若異,則非相續。是義《觀一異門》論中委曲。
釋第一行三念門竟。
【번역】
묻기를: 무슨 뜻에 의지하여 왕생한다고 말하는가?
답하기를: 이 세간의 가명인(假名人)이 오념문을 닦아 앞생각이 뒷생각의 원인이 되어준다. 예토의 가명인과 정토의 가명인을 동일(同一)하다고 단정 지어서도 안 되고 상이(相異)하다고 단정 지어서도 안 되며, 앞의 마음과 뒤의 마음 역시 이러하다. 무슨 이유인가? 만약 동일하다면 인과가 없을 것이고, 상이하다면 상속하지 않을 것이다. 이 뜻은 《관일이문(觀一異門)》론 속에서 자세히 밝혔다.
게송 첫 번째 줄에 포함되어 있는 (예배, 찬탄, 작원) 삼념문에 대한 해석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