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22: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가라사대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 회개하기를 거부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절대로 맛볼 수 없음을 엄숙히 선고하는 말이다. '속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파르'는 본디 '덮다', '가리다'는 뜻이다. 구약 시대에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뿌려진 황소와 염소의 피는 백성들의 죄를 없이 하지 못하고 다만 일시적으로 가리울 뿐이었으므로 해마다 반복될 필요가 있었다.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제물로 바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심으로 이 같은 필요가 소멸되게 된 것이다.
[사 22:15]"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궁을 차지한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그 국고를 맡고 궁을 차지한 셉나 - 직역하면 ' 이 국고 맡은 자, 그집 위에 있는 셉나'이다. 셉나의 직위가 소개된다. 그는 '집 위에 있는 사람', 즉 왕궁을 다스리는 궁내 대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왕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라 불렀다. '소켄'은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며 그 여성형인 '소케네트'가 다윗 왕을 수종든 젊은 여자 아비삭에게 적용되었다.
그 앞에 붙은 지시 대명사 '이'라는 말 속에 경멸적인 어감이 함축되어 있다. 이것은 '셉나'란 이름 앞에 '...의 아들'이라는 소개가 생략된 것에서도 확인된다.
[사 22:16]"네가 여기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 내었도다...."
높은 곳에...처소를 쪼아 내었도다 - 2인칭에서 3인칭으로 전환된다. 셉나의 헛된 야망의 높이를 상징하는 '높은 곳'은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이란 말에서 보여진 것처럼 열왕들의 묘실을 기리킨다. 이들 무덤들은 예루삼렘 주변 산들의 경사진 곳에 바위를 뚫어 만들었는데 이는 침해를 방지하고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사 22:17]"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속박하고 장사 같이 맹렬히 던지되..."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속박하고...던질 것이라. 그러나 예루살렘 높은 곳에 왕들처럼 묻히고자 하는 셉나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그는 단단히 속박된 채로 공처럼 말려져 광막한 지경에 던져질 것이다.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거기 있으리라 - 원문상 '그 곳'이 2번 쓰여 강조되고 있다.
그것은 의미상으로 16절의 '여기'와 대조된다. 후자가 고귀한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면, 전자는 수치스러운 이국 땅을 뜻한다. 이국 땅에서 최후를 맞이함은 유대인들에게 최고의 불행으로 간주되었다. 셉나의 영광은 곧 왕궁의 부끄러움이다. 그 같은 인물을 등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왕궁은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영달을 좇아가면 욕과 멸시가 그 뒤를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이치이다.
[사 22:18]."정녕히 너를 말아 싸서 공 같이 광막한 지경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 있으리라...:"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속박하고...던질 것이라. 그러나 예루살렘 높은 곳에 왕들처럼 묻히고자 하는 셉나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그는 단단히 속박된 채로 공처럼 말려져 광막한 지경에 던져질 것이다.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거기 있으리라 - 원문상 '그 곳'이 2번 쓰여 강조되고 있다.
그것은 의미상으로 16절의 '여기'와 대조된다. 후자가 고귀한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면, 전자는 수치스러운 이국 땅을 뜻한다. 이국 땅에서 최후를 맞이함은 유대인들에게 최고의 불행으로 간주되었다.. 셉나의 영광은 곧 왕궁의 부끄러움이다. 그 같은 인물을 등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왕궁은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영달을 좇아가면 욕과 멸시가 그 뒤를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