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씨를 심는 정의 미학 - 고동주 수필집 <동백의 씨> -
최원현 nulsaem@hanmir.com
고동주 수필집 <동백의 씨>는 수필이 작가의 내밀한 체온까지 전하는 문학임을 증명한다. 그러면서 고동주의 수필은 늘 눈물이 고이게 한다. 그러나 그 눈물은 슬픔이나 아픔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 오히려 고통을 이겨낸 감사와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다.
수필마다에선 그의 냄새가 짙게 풍겨난다. 고향냄새로,유년의 그리움 내로, 그리고 발이 부르트도록 열심히 맨발로 뛰어온 그의 삶의 길에서 배어난 싫지 않은 땀 냄새이다.
고동주는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1995년 초대 민선 통영시장으로 당선되었고, 1998년 재선의 영광을 안은 목민관이다.198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과 <한국수필> 천료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하였으며,등단하던 해에 수필집 <파도에 실려온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외 여행에세이 <하얀 침묵 푸른 미소>,수필집 <사랑 바라기 >, 연설문집 <행복이 어떤 모양인지를 아무도 모릅니다>와 이번에 낸 수필선집 <동백의 씨>를 출간했다.
선집의 제목인 <동백의 씨>는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품인데 동백의 섬 고향마을을 찾은 이야기로 작가의 어릴 적 고향과 가난과 외로움 속의 성장환경을 눈에 보듯 그리고 있다.
<동백의 씨>에는 34편의 수필이 실려있다. 작품의 면면에 흐르고 있는 정서는 이 날까지 지쳐온 삶의 여정에서 체득한 지혜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에 짙게 깔려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친화와 조화로운 하나됨을 중시하며,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경외심을 갖게 하는 그의 사상은 아픔까지도 정감으로 승화시키는 내면의 힘을 지닌 사랑이다.
'그리하여 진주 층이 눈물처럼 쌓일 때마다 아픔을 배우고 그런 아픔을 이겨내는 진주조개처럼 신비로운 진주 빛 글을 남기고 싶다.'(그 아픈 이야기 중)
작가는 참으로 가슴이 따뜻한 사람임을 짐작케 한다. 특히 수필 <군불>과 <꽃다발>은 숙부에게서 아버지를 느끼게 한다. 그의 가슴에 아무리 추운 겨울밤에도 꺼지지 않은 불씨로 숙부는 작가의 오늘,작가의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와 힘으로 존재한다.
'험난한 세상에 혈혈 단신으로 남은 어린 조카를 거두어 바람막이가 되시고, 비빌 언덕이 되시고, 마음에 지주가 되어주신 어른' (꽃다발 중)
그가 삶의 지게를 지고서 너무나 힘이 들 때, 그래도 잠시나마 지게를 받혀놓고 숨을 돌릴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받침대였고, 정신적 고향 같은 존재였다.
그는 숙부의 따듯한 마음과 손길에 '성상'(聖像) 이란 표현을 쓴다. 민선시장에 취임하는 식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꽃다발을 그는 숙부에게 안겨드린다. 고동주의 수필은 그렇게 그의 인간됨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따스한 정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강이 흘러가게 한다.
고동주의 수필에는 소리가 있다. 가슴에서 가슴으로만 전해지고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귀뚜라미 소리>, <홀로 우는소리>, <그 기적소리>, <대바람소리>, <바람소리>, <종소리>, 그리고 <연주자>, <낙조의 노래를 들으며> 등 제목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소리에 예민해 있는가를 쉽게 알게 된다.
<귀뚜라미 소리>에서는 나만의 특성을 지닌 나만의 소리를, <홀로 우는소리>에서는 지나치면 소음이 되지만 보살피는 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정의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대바람 소리>에서는 잃어져 가는 우리의 옛 소리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리고 있다.
그는 울고싶다고 해서 크게 소리내어 울고 살아오기 보단 늘 속으로 흐느끼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보살피는 정이 없으면 들을 수 없다. 가난이라는 체험이 없어도 들리지 않는다. 사랑이 메마른 가슴은 전혀 들을 수 없고 고독을 모르는 자에게는 더욱 들리지 않는다' (홀로 우는소리 중)고 말한다.
그러면서 늘 '비우며 사는 삶'이요, '마라톤 선수처럼' 사는 삶이었다.
'과감히 가려내고 버리는 용기가 있어야 삶의 향기와 빛깔을 제대로 빚어낼 수 있으리. 비우고 또 비운 자리에 나도 무욕의 호수 하나쯤 가꾸어 간직할 수 없을까.' (비우며 사는 삶 중)
'15만 시민을 대표해서 아베베처럼 맨발로라도 뛰고 또 뛰어야 한다. (중략) 철저한 천치 바보로 되는 한이 있어도 묵묵히 그리고 끈기 있게 뛰고 또 뛰어보리라.'(마라톤 선수처럼 중)
수필은 삶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누구에게건 삶은 주어지는 것이고 나름의 빛깔과 크기와 냄새를 갖기 마련이며 소리와 맛을 지닌다. 각기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기의 삶인 것이다.
문학이 이르는 최종 목적지는 감동으로 이어지는 진실의 세계일 것이다. 감동을 통해 인간은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그것은 다시 작은 창조를 이루어 보다 나은 세계를 열게 하는 것이리라.
고동주의 수필은 먼저 자기 자신을 감동시키는데 성공하고 있으며,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이들에 대한 동질감과 사고(思考)의 동화를 가져오게 함으로써 체험을 공유하고, 나아가서는 작가의 상상의 배에 독자가 동승케 하여 교감을 이룸으로써 작품 속에 독자가 들어오도록 한다.
고동주의 수필은 그렇게 따스한 눈빛, 따스한 가슴, 다정한 목소리를 느끼게 하면서 삶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가를 살며시 알아차리게 해 준다. 그의 큰 장점인 이 수줍은 배려는 수필마다에서 새록새록 정감으로 피어오른다. 그의 수필을 읽다보면 삭막한 현대라는 얼음판 위에서 받아 쥔, 누군가의 체온으로 따스하게 덮혀진 차돌맹이 하나같은, 아니 햇볕 따스한 겨울 오후의 한 때 같은 기분 좋은 나른함을 느긋하게 맛보게 된다.
수필은 인간의 본질과 진실을 향한 탐구와 규명이다. 곧 자기의 맛과 냄새와 분위기를 글로 표현한 것이다. 고동주의 수필이 가슴으로 스며드는 이유도 그가 추구하는 이상성 그리고 사람의 가슴에 자연이 흐르고, 살고, 그 자연 속에 사람이 있게 함으로써 생명력을 얻게 하는 때문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이지만 생명이 없는 조화(造花)보다 수수하고 소박하지만 생명을 품고있는 한 떨기 들꽃처럼 사람들의 가슴에 아름다운 정의 향기를 솔솔 품겨내고 싶음인 것이다.
정목일은 고동주의 수필을 '그는 정과 인연을 무척 아끼는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고독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자신의 삶을 혼자의 힘으로 개척해온 그로서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고싶어하며 그러한 삶을 갈구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인간에게 따스한 체온을 느끼게 하며, 고독하고 외로운 이의 손길을 다정히 잡아주려는 휴머니즘이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고 했다. 그렇다. 고동주의 휴머니즘은 겸손과 넉넉한 포용력이다.
'욕심으로 얼룩지고 순리도 거역하면서 내면을 자신 있게 드러낼 수도 없었던 자신을 뒤돌아본다. 미풍처럼 나무를 즐겁게 해주는 재주도 능력도 없으니 어찌하랴.' (만남의 의미 중)
그의 이런 마음과 삶의 자세는 독자를 편안하게 만들어버린다. 고동주의 수필집 <동백의 씨>를 통해 나도 새로운 삶을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이제까지 발견치 못했던 창(窓)이다. 그리고 '작은 감동이라도 전달할 수 없는 글이라면 차라리 쓰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라는 철저한 '장인정신'이 빚어낸 그의 성실성에 감동한다.
군불, 박꽃, 고향바다, 성묘길, 허수아비 등 그냥 듣기만 해도 우리의 가슴에 정겨움으로 다가오는 단어들, 그의 정서는 이렇게 늘 소박하며 전혀 낯설지 않다. 그만큼 고동주의 수필은 소박미를 가득 품고있는 것이다.
34편의 수필이 보여주듯 태어나서 자란 곳 그리고 그의 삶 내내 울타리를 하고 그곳에서 숙명처럼 사랑하고 봉사하며 붙들고 있는 한려수도에서 그는 일찍 여위고 만 어머니의 가슴처럼 아니 그를 탄생시킨 자궁과도 같은 그곳에서 오늘도 삶을 수필로, 수필 같은 삶을 살기 위해 애쓴다.
'그날 그날의 건반을 어김없이 짚었으면서도 고저도. 강약도, 멋도 없이 그저 시끄러운 단음처리로 꿈인 듯 스쳐 지나간 세월을 뒤돌아본다.'
'이제 연주의 후미 부분이 가까웠는데도 스스로 연주자임을 망각한 채 어처구니없이 마른 강둑에 앉아 길어져 가는 산그늘만 바라보는가.' (이상 연주자의 꿈 중)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삶의 건반을 누르며 또 하나의 소리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랗게 그의 삶이 이뤄지고, 거기서 그의 수필도 태어나는 것이다. 사랑의 씨를 심는 정의 미학으로.
* 더욱 자세한 고동주 수필 및 수필집 평이 격월간 <수필과 비평>지 2001년 1.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편의상 요약한 것입니다. (최원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