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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학과 빛의 산책 원문보기 글쓴이: 신의식
남편과 나는 농사짓기를 정말 좋아서 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것 보다 근본은 어떻게 하면 정말 좋은 농산물을 지어서
우리를 믿고 먹거리를 맡기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공급해 줄까 하는
농부로써의 기본적인 좋은 마음을 가지고 좋아서 하는 일이 농사이다.
그렇기에 사람에게나 자연에게나 서로간에 피해를 주지 않고
상호 공존하면서 욕심 내지 않고 또한 자연에 순응 하면서
농사하는 것에 자부심이 있고 늘 좋은 마음이 있어 어찌하면
더 좋은 농산물을 지어 낼까 궁리하며 공부도 하고 좋은 거름이나
액비나 영양제나 그런 것에 신경을 쓴다.
그런데 우리가 몇년 동안 땅을 잘 가꾸어 온 좋은 옥토가 있었는데,
그것이 남의 땅이었다.
우리는 그것이 남의 땅이라 생각 안하고 잘 가꾸며
농사해 왔는데 갑자기 봄에 그 땅을 내 놓으라는 주인의 통지를 받았다.
언젠가는 남의 땅이니 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적잖이 황당하여 급하게 땅을 알아 보러 다녔다.
우리 내외가 원하는 세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 첫째는 단맛이 나는 땅이었다.
옛날 그 옛날 세종대왕께서 우리부부와 같은 마음으로 신하들과 직접 집필하신 책이 있는데
그 책 이름이 "농사직설"이다.
지금은 역세권 땅이나 도시의 어디메 땅이 제일 비싸겠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과 땅값 멕이는 방법이 달랐다.
그 책에 보면 농지의 가격을 정할 때에 땅을 1m 정도로 파서
그 땅의 맛을 보아서 단맛이 나면 좋은 땅, 비싼 땅으로 하고,
쓴맛이 나는 것은 안 좋은 땅으로 했는데
지금 이 시대에 과학적으로 검증을 해 보니
단맛이 나는 땅은 호기상태이며, 생물의 다양성이 있고,
순조로운 물질순환이 이루어 지며,
산화물이 적절했다고 한다.
반대로 쓴맛이 나는 땅은 혐기상태이며,
미생물의 불균형과 양분의 불균형, 금속성분이 과다과다하고
물질성분도 과다한 땅이라 햇다.
두번째 조건은 호박고구마와 토종감자를 심을 땅이었기에
황토땅이 필요했다.
밤고구마는 마사토가 잘 되고 호박고구마는 황토땅에 해야
제맛이 나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황토가 여러모로 우리몸에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정말로 너무나 좋은 점이 많았다.
수 많은 의서에도 황토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일반인도 잘 아는 동의보감은 물론이고 ,
금방말한 농사직설, 본초강목 동의학사전등 수 많은 책들과
관련 자료에서 황토의 쓰임새와 좋은 점은 정말 끝도 없었다.
황토는 태양에너지의 저장고이며, 공기중의 비타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 너무도 많은 부스럼에 중금속해독에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두루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이 황토이다.
황토속에는 카라타제 라는 활성효모물질이 다량 함유 되어 있다.
이 물질은 우리 몸속에 있는 노화를 촉진시키는 괴사물질을 해독하고
분해하며 인체에 유익한 생리활성물질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여러가지 좋은 점이 끝도 없이 많지만 그 다음 좋은 점은
황토속에 있는 원적외선이 우리 피부 3-4cm까지 침투
하여 세포를 촉진하여 체온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는 것에
완전 필이 꽂혔다.
우리의 몸 체온이 1도만 높으면 거의 모든 병에 면역체계가 생기고,
또한 체온1도만 높으면 우리몸이 알카리화가 되어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세번째로 우리가 찾는 땅의 조건은 땅에 농약이나 제초제를 치지
않은 땅이었다,
고구마나 감자 무우 등의 땅속식물을 농사할 것이기 때문에
땅속상태가 무엇 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그런 좋은 땅을 구하려 사방 다니다가 이 세가지 조건을
딱 구비한 좋은 땅을 만났다.
집에서 좀 멀기는 하지만 고향마을과 가까운 강변에 그런 땅이 있다는
친구의 제보를 받았다.
몇년동안 콩과 수수 농사를 했기 때문에 약을 칠 필요가 없었고
전에 농사하던 사람도 약 치는 것을 안좋아해서 밭은 풀이 무척 많을 거라고
그것이 좀 걱정이라고 했다.
당장에 달려가서 땅을 보니 정말 맘에 들었다.
마침 그 땅을 도지로 내놓은 주인을 찾아가 보니 우리의 선배 엄선생님 땅이었다.
도지세가 좀 세기는 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원하는 건강한 감자며 고구마며 무우등을 농사지어 낼 수 있다는
자부심에 얼마나 설레이며 계약을 하고 선금도 드리고 농사를 시작하였다.
황토땅도 황토땅이지만 돌도 별로 없는 포실한 황토였다.
남편과 나는 춤을 추었다.
거의 10년 동안 농사하며 우리가 신물을 낸 것은
강원도 땅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 늘 비탈밭에 돌투성이 인데
돌도 별로 없었다.
4월에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감자심기 였다.
감자도 그냥 감자가 아니고 토종감자였다.
재작년에 우연히 알게 되어 씨를 좀 얻어 심었는데
봄까지 저장도 잘 되고 봄에 깍아 생으로도 먹고
구어도 먹었는데 지인들이 무슨 이런 감자가 다 있느냐고
놀라워 했다.
감자가 감자가 아니라 고구마처럼 단맛이 난다는 것이다.
분은 또 얼마나 잘 나서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그래서 올해 농사 지어서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 처음 시작을 이렇게 좋은 황토땅에서 하는 우리의 마음이
어땠을지......
남편도 그랬지만 나는 며칠을 황토밭고랑에서 흙강아지로
뒹굴어도 힘든 줄을 몰랐다.
그렇게해서 7월에 일부의 일부의 감자를 캐 팔았으나
가격이 너무 없어 좀 힘들기도 했다.
아무튼지 그 때 심은 일반감자는 7월에 캐 팔았으나
토종감자는 덜 여물었다.
그래서 씨를 주신 분에게 여쭤 보았더니 늦게 캘 수록 좋다고 했다.
토종감자는 그래서 8월을 지나고 9월, 10월을 땅속에서 지냈다.
속으로 저 많은 감자를 다 썩여 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 스럽기도 했다.
지난주에 여주에 밤고구마를 캐고 드디어 호박고구마 캐기가 시작 되었다.
중간에 캐 먹어 본 바로는 정말 이제까지 농사하던 가운데
가장 맛있는 고구마가 나왔다.
우리집은 남편은 목이 콱콱 맥히는 밤고구마를 좋아하고
나는 속이 노랗고 달콤한 호박고구마를 좋아한다.
그래서 봄에 농사할적에 꼭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더 심으려고 싸움 아닌 싸움을 한다.
남편과 다른 남자분 한분이 호박고구마의 덩굴을 걷어 내는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날씨가 추워져도 덩굴을 걷어 놓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비닐을 걷어 내는 것도 남자셋이 하루가 걸렸다.
왜냐하면 풀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밭을 두번이나 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논풀인 피가 얼마나 많은지
장마철에 반은 못 매 주고 그냥 두었더니 그것이 엉켜서
도대체 비닐이 걷어 지지를 않았다.
거기에서 1차 장애가 나타났다.
예상치 않았던 힘듬이다.
애초에 남편의 예상으로 여자 다섯명에 남자 본인 포함 셋
그렇게 해서 하루면
다 캘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런데다가 이번에는 캘 수 있는 장비로 포크레인 은 물론이고
고구마 캐는 기계를 기술센터에서
빌려 왔기에 그렇게 하루면 다 캐리라고 시작을 하였다.
나는 허리가 좀 안좋아서 걱정을 했더니
그냥 따라와서 점심과 새참준비만 해 주고 단도리나
해 주면 된다고 걱정 말랜다.
아침과 저녁 날씨가 추워져서 새벽에 일을 나갈 때는
두꺼운 옷을 입었다가 하나씩 벗어 놓은 모양새다.
한 낮에는 20도를 넘어가고 새벽에는 5-6도까지
내려 가니 낮에는 모두들 한짐의 옷 무더기가 쌓여 갔다.
저녁때가 되면 다시 반대로 하나씩 줏어 입는다.
첫날 한시간 정도는 순조로왔다.
고구마 모양도 우리가 지금까지 농사한 중에 제일 양호하게 나왔다.
이것이 고구마 캐는 기계인데 우리가 속해 있는 영월의 농업기술센터에는
농기계은행이 있어서 다양한 농기계를 저렴한 가격에 빌릴 수가 있다.
이 기계도 새로 구입하였다는데 가서 가져 오면 하루 쓰는데
만원이면 되니 거저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이 좋은 기계가 질은 황토땅이라 제대로 작동도 안되고
작동이 된다해도 깊이 박히는 성질이 있는 호박고구마를
죄다 잘라 놓았다.
바로 이런 모양새였다.
그러니 캐면 무얼할꼬 모두 상품성 없이 되어 버리니.....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좀 늦기는 하지만 조금은 안전한 포크레인이 동원되었다.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을 고향 분들은 얻었는데
이게 만만한 것이 코흘리개 때부터 보아온 나 금자이다.
왜 이렇게 질땅에다가 농사를 지어서 남편을 고생을 시키냐고
야단이었다.
왜냐하면 포크레인이 못 들어 가는 곳에는 호미나
곡괭이로 캐야 하는데 얼마나 깊이 들어 앉았는지
고구마 한포기 캐려면 시간도 시간이고 완전 무우구덩이 파듯이
한참을 파 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다가 일하러 오시라고 말씀 드릴적에
기계로 캐니까 그냥 따라 다니면서 줍기만 된다고 해 놓고서는
기계로 파 주면 진흙이 얼마나 많이 달라 붙어 있는지
주먹만한 고구마 하나를 떼어내면 진흙 한바가지는 떨궈내야하니
시간이 보통 걸리는 것이 아니었다.
일의 진도는 안 나가고 앞 사람은 나가는데
빨리 못 따라 가니까 어떤이는 고구마를 그냥 묻어 두고
가 버리기도 한다.
그런다고 일하시는 분들에게 알뜰히 하라고
잔소리를 할 수도 없다.
힘들어서 일 안한다고 가 버리시면 우리만 손해다.
요즘은 일 오려 하는 사람이 잘 없어서
최대한 비위를 맞추어 드려야 한다.
그런데다가 고향 분들이니 뭐가 섭섭하면
죄다 우리 엄마나 아버지 흉이 되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두고 보다가 남편이 나에게 일을 지시하기를
표시 안나게 뒤를 따라 다니며 큰 덩어리만 좀
다시 캐 보라고 했다.
요것이 그 중에 많은 것이 나온 한포기이다.
갯수로 세어 보니 열아홉개나 달렸다.
이것이 그냥 땅속에 묻혀 빛도 못 보고 사그라 들뻔 했다.
그렇게 더뎌져서 고구마는 일곱명의 사람이 꼬박 나흘을 해도 다 못했다.
그냥 허드레 일만 하루 하면 된다는 남편의 말과는 달리
내가 제일 바쁘게 되었다.
사람들이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것은 모두 내차지가 되었다.
무구덩이 파듯이를 수도 없이 하고
이런 힘든 땅을 도대체 돈을 주고 왜 얻었냐는 핀잔도 말도 못하게 듣고,
또 이런 황토질땅에 고구마며 감자를 누가 심느냐고
나름 10년이나 된 농사경력까지 더불어 무시되어도
남편과 나는 깨갱 소리도 못했다.
다행히 점심은 고향동네에 사시는 하늘아래님이
며칠째 해다 주셔서 그 시간만큼 일을 더 할 수 있었으나
나는 농사하고 처음으로 힘들어 못 하겠다고 사흘째는
밭고랑에 벌렁 들어 누웠다.
그렇게 가슴 설레던 황토땅도 신물이 나 간다.
이 많은 인건비는 또 어쩔 것인가
계산을 하다 말고 집어 치웠다.
보나마나 고구마 다 팔아서 인건비와 맞 바꾸어야 할 것이다.
집에서 밭이 멀으니 일곱시도 안된 시간
남편이 나올 때 따라 나와야 하니
저녁에 별 보고 집에 가니 집에는 설겆이며 빨래도 쌓여가고
늘 일꺼리가 천지이다.
때를 따라 담그어야 하는 장아찌류나 발효액들도
모두들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친정엄마는 밭에 나갈적에 얼굴 안타게
화장하고 다니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는데, 화장은 커녕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밭으로 나와 앉았다.
아침과 저녁 새참도 골고루 챙겨 드려야 한다.
요즘은 라면도 별로이다.
다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고구마는 매일 쪄 드려도 모두들 좋다고 하신다.
강물에 고구마를 씻어서 밭가에 가져다 쪄 놓는다.
막걸리 한잔에 속 노란 호박고구마를 먹으며
일하시는 분들의 불평도 어느새 잠들어 버린다.
맛있는 것으로 다 용서가 되는 것이다.
사흘째 되는 날 남편이 고구마박스를 들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아직 할 일이 많고도 많은데 밭가에 들어 누웠다.
남편이 일을 못하면 모든게 올 스톱이다.
괜시리 그 넘의 황토땅에 고구마를 심자고 했나
자책이 심하게 들었다.
남편이 힘쓰는 일을 못하게 되어서 같이 며칠째 일을 해 주시는
아랫집 아저씨께서 감자를 캐자고 제의 하셧다.
사실 감자는 더 있다 캐도 되나 일꾼을 서로간에 놀릴 수는 없는 노릇.....
긴 시간 동안 땅속에 있었던 토종 감자가 어찌 되었을까
나도 궁금했다.
경운기로 골을 타니 감자가 쏟아져 나온다.
보습 사이로 쏟아져 나오는 굵은 감자들~
침울해졋던 분위기가 금새들 환호성으로 바뀐다.
나는 괜시리 눈물까지 흘러 내린다.
올해 유난히도 힘들게 농사하는 남편과 나~
그것을 보답이라도 하듯 감자와 고구마는 잘 되었다.
고랑에 쏟아져 내린 감자들~
너무나 싱싱하고 이쁜 모습들이다.
어르신들도 오랫만에 토종감자를 본다며
다들 신기해 하고 좋아하신다.
옛날에 강원도에는 이 감자가 주식이나 마찬가지라
지금 시기에 겨울용을 저장 했다가
겨우내 양식을 하고 무우와 함께 구덩이에 저장 했다가
봄에 생으로 깍아 먹은 이야기들을 침 넘기며 이야기 했다.
감자는 생각 보다 잘 되었다.
거의 100박스 가까이 나온 것이다.
썩은 것도 하나 없이 똥굴똥굴 잘도 여물어 땅속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감자 쪄 먹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새참은
당연히 감자와 고구마이다.
분이 쩍쩍나고 단맛이 난다고 다들 씨를 얻어 가시겠다고 야단이다.
여름에 저장해 두었던 옥수수도 한 몫 하고......
남편은 많이 좋아 지기는 하였지만 당분간은 무거운 것을
들지 못 할 것 같다.
고구마 캘 것이 좀 남기는 하였지만 감자를 다 캐서
다행이다.
감자도 고구마도 진짜 주인을 찾아 갈 곳을 기대하며
깊은 숙성의 잠자리에 들어가 있다.
땅속에서 나온 이런 것들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최소 일주일정도 숙성을 하면 치료도 되고 당도도 높아 진다고 한다.
남편은 힘들어서 다시 이 땅에 농사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고 있었지만
색 좋은 호박고구마와 분나는 감자를 쪄다 주었더니 벌써부터 마음 흔들려 하고 있다.
아기를 낳을 때는 다시는 또 낳지 않으리라고 하지만
아기가 자라면서 예쁘고 귀여운 것을 보노라면 또 낳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
남편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올해 농사가 잘 되었든 못 되었든
돈이 남든 모자랐든 우리는 여전히 굶지 않고 잘 먹고 살며
또 새로운 내년을 기대하고
계획 할 수 있는 농부가 나와 남편의 직업이라 다행이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하고 행복한 기도를 올리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첫댓글 아유 두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얼굴만 아름다운게 아니라 마음도 비단 같아요 하하하
농산물에는 화학비료를 주면 수확은 많으나 맛이 없어지고 토양이 망가지지요
저더 18년간 농사를 짓다가 만년에 밖으로 나왔답니다.
글도 잘쓰시고 사진도 잘 찍으시고 참 감사합니다.
애기호랑님이 풍경식구란거 다행이다 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