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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3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요 3:3, 5절).
그런데 이 종은 거듭남이나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 무지렁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열심히 믿으면 되지, 하면서 나의 열심으로 믿는 것이 최선인 줄 착각했던 것이지요.
거기에는 나를 드러내는 나의 의 곧 자기주장의지도 있었고 나의 옛 사람으로 행하는 온갖 거짓과 꼼수 그리고 술수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기주장의지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것도 알지 못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주님의 공의로 심판을 받고 주께서 인도한 무덤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무덤에서 거듭남 곧 창세전 생명이요 아들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일은 성령 안에서 얻는 생명입니다(요 6:63절).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나를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아둔한 어둠속에서 헤매지 않기 원하오니 빛이신 주님 안에서 이 하루도 살게 하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기 원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요 20:19-31
제목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나의 묵상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이 지났다.
안식일이 지나고 첫날 저녁이 되었다.
이미 예수님은 새벽에 부활하셨고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 여인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제자는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느 한 방에 모여 있었다.
그 자리에는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없었다.
이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방에 있는 문들을 다 닫았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이 있는 방 안에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 제자들을 향하여 평강을 선포하신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당신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시자 제자들이 주님인줄 알고 기뻐하였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은 그들에게 평강이 있으라, 선포하시고 그 제자들을 파송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파송의 말씀 후에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너희들이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면 용서를 받게 될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그 죄가 그대로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고 떠나신 뒤에 도마가 들어왔다.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다녀가셨다고 하자, 그는 자기가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 후 8일이 지나서 모든 제자들이 집 안에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 그 방으로 찾아오셨다.
그리고 다시 제자들을 향하여 평강을 선포하신다.
옆에 있던 도마에게 너의 손가락으로 내 손의 못 자국을 확인하고 네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의 창 자국을 확인하라고 하신 후에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당부하신다.
그러자 도마가 말하기를 당신은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다.
이에 예수님이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는 것이냐?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복이라고 하신다.
이제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이야기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행하신 표적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성경(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이 성경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그 이름을 인하여 생명을 얻도록 하려 함이라고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당일 저녁에 제자들이 있는 방에 친히 찾아오신다.
그리고 제일 먼저 그들에게 평강을 선포하신다.
평강을 선포하신 이유는 그 당시 제자들이 얼마나 많이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오신 그 날에만 두 번씩이나 평강을 선포하셨고, 8일이 지난 후에도 찾아오셔서 제일 먼저 평강을 선포하셨다.
평강 곧 평안은 누가 아무리 평안하라고 한다고 해서 평안해 지는 것이 아니다.
평안은 평안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평강을 주실 때 평안해 질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그 주님께서 평강을 선포하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십자가에 죽으시기 이전의 예수님으로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를 통하여 세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그런 마음 말이다.
이는 평강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평강을 선포했다면 이를 아멘으로 받아야 된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으니 그 평강이 임할 자리가 없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결코 억지로 행하지 않으신다.
그의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기다리시는 것이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아직 부활하신 주님을 잘 알지 못하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이제 사도로 파송하신다.
물론 정식적인 파송은 오순절 예수의 영인 성령이 오신 이후에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그들을 파송하시는 것은 그와는 달리 또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들을 파송하시고 그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다.
성령은 이처럼 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내쉬어졌는데, 오늘 본문은 그것을 실제로 형상화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성령을 받은 사람은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
이 권세는 내가 어떤 이의 죄를 용서해 주는 권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잘못을 한 이를 용서할 때 하늘에서도 그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가 절대 아니다.
나는 할 수 없으나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용서도 할 수 있다.
나 자신은 만 달란트를 용서 받은 자와 같이 어마어마한 용서를 받았지만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하는 아주 악한 자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자는 임금이 다시 잡아들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어 놓는 것과 똑같다.
용서는 나의 힘이나 능력으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성령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만이 용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땅에 있는 생명 곧 아담 안에 있는 만들어진 생명으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이는 겉으로는 용서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금세 자기 義를 드러내고 만다.
그래서 그렇게 한 용서는 비참한 결과를 낳고 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행하신 표적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이다(요 21:25).
그런데 그 모든 표적을 다 기록하지 않을지라도 사도 요한이 이렇게 기록한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반드시 기록한 목적을 밝히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오직 그들로 하여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믿어 아들의 생명인 영생을 누리는데 있다.
그리고 실제로 요한과 함께 했던 요한의 공동체가 그 영생의 공동체로 존재하였다.
(요일 1: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나는 주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을 오해하던 자였다.
베드로가 용서에 대하여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는데 이를 인간적으로 행하려고 무진 애를 썼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용서하는 횟수를 세어보기까지 한 자였다.
그러나 몇 번을 용서했는지 채 세지도 못하고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그렇게 나의 힘과 의지로 용서하려고 했던 자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내 마음과 뜻대로 되던가 말이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나의 연약함만 드러날 뿐이다.
무엇보다 내가 용서해야 할 경우보다, 내가 잘못해서 용서를 구해야 할 때가 훨씬 많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나는 내 힘과 의지로 용서를 하는데 왜 나를 용서해 주지 않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넘쳐 났다.
이와 함께 내 안에 내가 용서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의 의 곧 자기주장의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지기만 하였다.
그리고 내가 용서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과 원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여가기만 하였다.
이것이 나의 실상이다.
그렇게 용서를 하는 것과 받는 것 사이에 헤아릴 수 없는 커다란 구렁이 생기고 그로 인하여 나의 신앙은 오히려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물론 겉으로는 거룩한 척 얼마든지 흉내를 내거나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지만, 적어도 나 자신과 하나님은 속일 수 없었다.
이런 나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고, 그 심판이 나를 살렸다.
이 심판을 통하여 모래 위에 쌓았던 나의 의의 집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신실하심은 한이 없으시다.
무너진 그 義의 자리에 주님은 무덤을 지으시고 나를 초청하셨다.
나는 그 무덤이 너무 어둡고 침침하여 견디기 힘들어 하였다.
거기에 제자들처럼 두려운 마음에 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나의 얼어붙은 마음을 두드리셨다.
마치 프랜시스 톰슨의 시 ‘하늘의 사냥개’의 싯구처럼 주님은 빠르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가까이 가까이 추적해 오셨다.
침착한 보조로, 유유한 속도로, 위엄 있는 긴박성으로.....
나를 다루시는 주님의 손길은 너무나 거칠고 고통스러우나 주님의 얼굴은 한없이 자비롭고 자애로우시다.
결국 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된다.
‘제 곁에 그 발자국 소리가 멎었습니다. 저 어두움이 결국 쓰다듬으려고 내민 그분의 손 그림자였단 말입니까?’
그렇게 주님은 심판의 무덤을 통해서 나를 택해 안으시고 눈물 거두어 하늘의 빛살가루를 뿌려 가난한 나의 마음을 채워주신다.
오직 주님 안에 생명이 있다.
그 생명이 나를 부요케 한다.
그 생명은 나의 힘이나 노력 그리고 의지로 되지 않는다.
안 되는 것이 복이다.
도마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이라는 말씀처럼...
주님만이 나의 전부가 되시며, 오늘도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께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말씀을 순종하겠다고 나의 힘과 의지로 행하려 했던 나는 악인이었나이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 죄인 중에 괴수임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렇게 한들 드러나는 것은 나의 의밖에 없는데.....
게다가 때로는 원망과 불평이 가득 채워져 입이 닭 주둥이처럼 튀어나오기까지 했으니 주님의 심판을 안 받고 어찌 배길 수 있을까요?
그런데 주님의 심판이 내게 생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주님의 그 거친 손길이 가장 자애롭고 인자한 주님의 사랑이었다니 말입니다.
숨 막히도록 쫓고 쫓기는 상황이었지만 진작 주님께 두 손 들지 못한 것이 한이 되기도 합니다.
나의 의와 고집으로 주님을 피하려고 했으니 이 얼마나 불쌍한 자인지요?
이제 당당하게 고백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전부요 나의 자랑임을.....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너무 커서 감히 말로 표현할 수도 없나이다.
나를 붙들어 가장 선한 곳으로 인도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영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영생을 얻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천하의 무식쟁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을 주심으로 복음을 깨달아 당신의 생명을 얻어 영생을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우셨으니 내가 할 것은 오직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나를 복음의 도구로, 복음의 나팔수로 사용하옵소서.
나의 입술이 주님을 높이는 찬양의 입술이 되게 하소서.
이 땅에 수많은 주의 종들이 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썩어 없어질 땅의 것에 치심하여 매몰된 이들이 많습니다.
입술로는 복음 복음 하지만 참 복음을 통하여 그들이 먼저 영생을 누리게 하시고 그들도 성령을 통하여 깨달은 이 통합복음을 전하여 주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자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