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합본입니다.
단체이름 : 책갈피
☞성명 : 송언수
생년월일 : 690213
책 이름 : 통영은 맛있다
주소 : 경남 통영시 용남면 대곡길 12 청구 아파트 203-702
지은이 : 강제윤
출판사 : 생각을 담는 집
통영, 그곳은
[통영은 맛있다] 를 읽고
송언수
나그네라는 그를 나는 휴석재에서 처음 보았다. [섬을 걷다]로 먼저 만난 작가의 감성은 친근한 것이었으나 고양이를 좋아라하고 술을 달게 마시는 그의 눈빛은 낯설었다. 눈빛엔 날이 서있고 어투는 뾰족했고 몸짓도 투박했다. 저런 사람에게서 그런 감성이 나왔다고? 의아했다. 길에서, 섬에서 두어 번 더 지켜본 그의 하루는 삶의 여유나 여흥이라기보다 글감을 얻기 위한 ‘작가’의 수고로운 일상이었다. 직업으로써의 삶이 만들어 낸 고운 글 타래.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서 천진한 웃음을 보았다. 선한 눈매와 생기가 가득한 얼굴엔 모나거나 뾰족한 가시 없이 둥글둥글한 순박함마저 보였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였던 그 날 그들 곁에서, 뾰족하고 투박함으로 무장한 그의 내면에 숨은 감성을 보았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대하는 그 감성으로 쓴 통영 이야기, [통영은 맛있다]. 그의 글도 맛있다.
나그네에게 통영은 그저 지나는 곳이다. 3년을 살았고, 앞으로도 당분간 이곳에서 살겠지만 어느 날 어디론가 훌훌 떠날 수도 있는 곳이다. 여행자의 입장과 주민의 입장은 다르다. 곧 떠날 사람에게는 머무는 곳의 모든 것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신기하고 특별하다. 그가 사랑하게 된 통영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통영에 이사 와 산지 벌써 9년이다.. 첫눈에 호감을 느끼고, 그에 대해 알고 싶어지고, 하나씩 알아가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연애의 대상으로써의 통영. 통영은 내게도 특별한 곳이다.
통영은 느리다.
인천과 서울, 수도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시간은 금이다. 성질도 급하다. 일분일초를 다투며 살던 사람으로서 통영에서의 첫 며칠은 모든 사물과 내게 주어진 시간이 갑자기 천천히 움직이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도무지 급할 것이 없는 느긋함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집에서 시내에 나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두어 대뿐이었고, 지정좌석제가 아닌 두 개의 극장엔 웬만한 개봉작들은 걸리지도 않았다. 갑자기 활동범위가 좁아지고, 해야 할 일이 줄었다. 그렇게 조급했던 마음에 제동이 걸리고 슬로우 비디오로 돌아가는 세상에 합류하는 것. 나쁘지 않았다.
통영은 예쁘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다다. 동암 갯가는 해안선 따라 찻길이 조성되어 있지만 그 길을 통행하는 차는 그리 많지 않다. 길에서 만나는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위로 왜가리와 백로가 나는 풍경은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통영은 아기자기한 섬이 푸른 바다위로 올망졸망 떠 있는 한가로운 곳이다. 아이들 등굣길엔 누런 황소가 달구지를 끌고 가고, 근처 밭에서는 엄마 젖을 빠는 송아지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아침이면 새소리에 눈을 뜨고, 논에 우는 개구리 소리가 밤을 채우는 곳. 굽이굽이 돌아설 때마다 또 다른 그림이 펼쳐지는 곳. 시장 골목마다 빨간 대야에 푸른 채소들이 담기고, 살아 숨 쉬는 물고기가 펄떡였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배가 지나고 그 바다를 배경으로 한 나지막한 산들은 사철 푸르다.
통영은 있다.
버스가 중앙시장 정류소에 섰는데, 앞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일어나 기사에게 좀 기다리라 하고는 내리더니 길가에서 콩나물이며 반찬거리를 사들고 올라오셨다. 물론 버스 기사는 지켜보기만 할 뿐 재촉도, 안 된다고도 하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타면 자리에 앉을 때가지 지켜보다가 출발하는 기사를 나는 그 때 처음 보았다.
통영엔 통영을 사랑하는 통영 사람들이 참 많다. 식당이나 집 벽엔 어김없이 통영의 사진이 걸려 있다. 스스로를 통영환자라 부르는 이들. 그들에게 통영은 세계의 중심이자 우주의 중심이다. 단순히 고향을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는 지역사랑이다. 그런 이들이 있다는 건 통영이라는 이 작은 도시의 축복이기도 하다.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와 문화예술이 근간이 되어 예술의 DNA를 타고 난 수많은 예술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는 곳.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가고자 애쓰는 곳이 통영이다.
통영은 없다.
그럼에도 통영은 뭔가 이상한 곳이다.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많은 문화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을 활용하는 폭이 너무 좁다. 조선시대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근대문화의 흔적들을 부수고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유서 깊은 극장을 천연덕스럽게 부숴버린다. 조명해야 할 예술인이 너무 많아서 어느 누구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다. 문화예술은 또 어떠한가. 예향이라면서도 제대로 된 문화예술 공연장이 없고, 콘서트나 뮤지컬 등의 공연을 보려면 근처 대도시로 가야 한다.
도로 옆에 당연히 있어야 할 인도가 뚝뚝 끊기는 어처구니없는 곳이다. 학생들 통학로가 엉망인 곳이 통영이다. 서비스 정신 또한 미약하여 손님에 대한 예우가 무엇인지 모른다.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하면서도 그 바다에 쓰레기 버리는 것 또한 너무 당당하다.
통영이 맛있다?
봄의 도다리 쑥국과 겨울의 물메기탕 그리고 사시사철 복국의 맛은 내가 보기에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통영사람들이 때마다 찾아 먹는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무만 넣고 끓인 물메기탕을 꼽겠다. 제일 시원하고 개운하다, 도다리보다는 아귀로 끓인 쑥국이 더 맛있다. 물론 나는 미식가는 아니다. 그냥 이십 년 된 주부다. 시장에 할머니들이 들고 나오는 싱싱한 먹을거리들에 행복한 것은 주부의 특권이다.
채식주의자이면서도 미식가라 자처하는 그는 통영에서 나는 싱싱한 해산물이며 채소에 감탄한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싱싱한 해산물이 통영에만 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통영의 것이 유독 맛있다는 그의 입맛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그러나 같은 것을 먹고도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먹었는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음식의 맛이 아닐까. 사랑하는 이와의 박주산채가 싫은 이와의 진수성찬보다 좋은 것처럼.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 아무래도 그는 통영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모양이다.
☞성명 : 박미옥
생년월일 : 1961. 1. 29
책 이름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
주소 : 경남 통영시 용남면 대곡길 12 청구 아파트 101-1202/010-3594-6990
지은이 : 포리스트 가터
출판사 : 아름드리미디어
당신의 신발을 신고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고)
박미옥
‘사랑의 의미를 어쩌면 이토록 내가 느끼고 받아들이기 쉽도록 잘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미처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해 놓쳤던 부분들을 어떻게 이렇게나 친절하고 섬세하게 가르쳐 주는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끝이 뭉툭한 4B연필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연필심 끝으로 글의 행간을 누비며 곳곳을 걸어 들어갔다. 마치 모카신을 신고 발끝을 세워 어머니의 대지 모노라와 교감을 나누며 산과 함께 걷는 작은나무처럼.
어느 한 문장도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마음에 품고 새기며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첫 장부터 책장을 덮는 마지막 순간 까지 자연의 외경과 가르침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작은나무, 윌로 존이 나누던 사랑이 말없는 울림이 되어 되살아났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답고 슬프지 않은 것이 없었다. 책이 주는 마음의 위로가 너무 지나쳐 내내 울었다. 그런데 행복하게 울었다. 무엇보다도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은나무의 할머니이신 보니 비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 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것은 신도 마찬가지다.”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스스로에 대한 반성문을 뜨겁게 썼다.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특히 남편에 대해서 유독 이해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참 뒤늦은 후회고 고백이어서 더 가슴 아팠다. 남편은 결점 투성이인 나를 언제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한결 같이 사랑하며 존중한다.
나는 남편의 자랑스러운 점만, 존경할 만 할 때만 인정하고 좋아한다. 남편의 말과 행동이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실망스러워만 한다. 미리 그런 상황이 올까봐 늘 조마조마해 하며 남편을 챙기기에 바쁘다.
아니다. 그건 나를 챙긴다고 표현해야 맞는 말이다. 어쩌다가 남편이 하는 말과 행동이 나를 창피하게 만들거나 곤란하게 만들기라도 하면, 남편을 부끄러워하고 불편한 존재로 여기며 감추려고만 든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않는다.
‘그렇게 하는데 어찌 감히 사랑이라고 말 하겠는가?’
보니 비는 남편이 책을 읽을 줄 몰라도, 습관처럼 욕설을 하거나 말도 되지 않는 억지를 부릴 때도 그냥 모르는 척 눈 감아 준다. 가만히 할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얹거나 등 뒤에서 감싸 안으며 말없는 깨달음의 시간을 주고 또 줄 뿐이다. 그런 사소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많은 장점들만 더 크게 기억할 뿐이다.
나는 그게 안 된다. 그건 이해라는 게 전제 되지 않았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건 사랑도 아닌 거다. 그게 몹시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새로운 다짐도 한다. 작은 실천도 시작하고 있다.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되어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바로 내 주변에서 그들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싶다.
발 빠른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려 하기 보다는 작은나무가 되어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자라고 싶고,
할아버지가 되어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정말 필요한 것들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배우도록 돕겠고,
지혜로운 할머니 보니 비가 되어 누구에게나 따뜻한 위로와 사랑이 되고,
윌로 존이 되어 아득하게 깊고 반짝이는 눈으로 한 존재를 바라보며 돕고,
파인 빌리가 되어 누군가 슬픈 일을 겪을 때 진심으로 같이 아파하는 사람이 되고,
등짐장수 와인 씨가 되어 기술 보다는 변하지 않을 가치를 더 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겠다.
그리고 할머니 보니 비처럼 이해에서 나오는 사랑의 마음으로 남편에게 말하겠다.
“이제는 당신의 신발도 신어 볼게요. 그 신발을 신고 걸음마를 배우듯 한 걸음씩 걸어 볼게요. 그리고 제법 먼 길도 걸어가 볼게요.”
☞성명 : 박계수
생년월일 : 1967. 3. 2
책 이름 : 김약국의 딸들
주소 : 경남 통영시 용남면 대곡길 12 청구 아파트 106-503/010-4730-4836
지은이 : 박경리
출판사 : 나남
김약국의 딸들을 읽고
박계수
책을 손에 잡고 읽기 시작해서 하루에, 한꺼번에 다 읽어 내려갔다.
귀동냥과 학습된 얇은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내용을 묻어버리고, 숨죽이고 단번에 읽기를
마쳤다. 필이 꽂힌 소설을 읽는 재미이기도하다.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는 왜 내가 이 대단한 작품을 진작 읽지 못했을까하는 후회보다는 지금이라도 제대로 읽게 되어 다행이라는 마음과 오히려 지금에 읽어서 내용에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책은 3대에 걸친 한집안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전체적인 것은 김약국 김성수가 어떠한 부모를 두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지, 그 부모를 잃고 어떻게 성장하는지, 성장하여 어떤 배우자를 만나서 어떤 자식을 두게 되고, 그의 삶과 그 자식들의 비극적인 삶들이 한바탕 어우러지고, 그는 병들어 죽음을 맞게 된다. 그 죽음이 이집안 비극의 끝이라는 단정은 없지만, 남은 자들의 새로운 날들에 대한 계획과 기대로 마무리 된다.
주된 내용은 격동의 혼란기를 살아가는 그의 다섯 딸에 대한 이야기다.
첫째딸 용숙은 이른 나이에 결혼해 아들하나를 두고 청상과부가 된다. 둘째딸 용빈은 영특하여 서울 전문학교까지 다니고 졸업하여 교원이 되지만 정혼자의 배신과 정혼자 집안의 외면으로 파혼을 당한다. 셋째딸 용란은 뒤어난 미모를 가지긴 했지만 집안머슴과 놀아난게 발각되어 난폭하고 아편쟁이인데다 성불구자인 남편과 살게 된다. 결국 미치광이가 된다. 넷째딸 용옥은 묵묵히 집안 살림을 살뜰히 보살피지만 자신의 언니를 마음에 두었던 남자와 결혼하게 되고 궁극엔 늙은 짐승에게 그 치욕을 당하고 남편을 찾아 나섰던 길에 배가 침몰하여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아이를 끌어안은 채 생을 마감한다. 다섯째 용혜는 어린나이에 가세가 기우는 것과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과 아버지의 병든 죽음을 겪고 언니들의 불행한 삶을 보고 자라는 안타까운 성장을 하게된다.
이 시대 여인들의 삶은 거의 이러지 않았을까? 당당한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는 삶이 아니라 주위와 관습에 이끌려 아무 말 못하고 무조건 따라야하는 수동적이기만 한 삶을 살아내야 했을 것이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시키는 결혼, 아들을 낳지 못해 집안의 대를 잇지 못한 죄로 남편에게 바깥에서 자식을 낳아오기를 권하기도 하고 첩을 두어도 못보고 안들은 척 해야 하고 남편의 이유 없는 구타와 무시에도 침묵해야 하는 인생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용숙의 돈에 대한 집착이 조금은 이해되기도 한다. 타고난 이기심도 한 몫 하긴 하지만 그 시대에 아들 하나를 데리고 그 젊은 나이에 청상으로 겪어 살다보니 믿을 건 돈밖에 없었을 것이다. 믿고 기대어 살 수 있는 남편의 부재에 그녀는 돈을 믿고 돈에 기대어 돈이 주는 안정에 빠지고 집착했을 것이다. 그녀를 욕심 많다고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살아 내야 했으니까.
용빈은 굉장히 자존심 강하고 이성적이다. 정혼자 홍섭과의 파혼은 긴 여정의 인생에서 살피면 어쩌면 잘된 결정일지도 모른다. 홍섭의 그릇은 용빈의 그릇과 맞추기 힘들듯 하니까. 나중에 결혼하게 되는 사람은 용빈과 많이 닮은 강극이 아니라 따뜻하고 정많은 사람을 만났길 바란다.
용란은 한돌과 놀아난 게 발각 되었을 때 차라리 그때 신분의 벽이나 주위시선들에 눈감고 둘이 도망이라도 갔었으면 그런 불행한 결혼생활은 없었을 텐데. 아니면 나중에 한돌이 다시 찾아와 만났을 때 고개에 피신집을 집을 구하지 말고 아예 먼 곳으로 도망해서 자신의 사랑에 좀 더 용기를 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용옥은 착하기만 한 답답한 사람이다. 남편 기두에게 섭섭한 마음을 한번 표현이라도 해보지. 악마 같은 시아버지를 피해 부산으로 향하는 뱃길에 오르지 말고 차라리 친정에 있었으면... 부산을 가서 남편을 만났더라도 남편에게 시아버지의 만행을 이야기 하지도 못했을 성격 같은데. 그러면 죽음을 당하는 참사만큼은 막을 수 있었을까?
한없이 무덤덤하고 맡겨진 현실에 무감각하며 타인에 대한 한없는 무관심으로 스스로의 고독을 자초한 김약국이 다섯 딸을 바라보는 속내는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분명 겉으로 보여지는 무덤덤 무감각 무관심이 전부는 아녔을 것이다. 부모가 떠나고 흉가가 되어버린 집을 자주 찾아 멍하니 앉았고, 뒤에 그 집에 자신의 살림을 앉히고. 비록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부모였지만 그는 그 부모가 그리웠을 것이다. 부모의 정을 그리워만하다 부모가 됐으니 부모노릇이 서툴렀을 것이다. 자식들을 아끼고 안타까워 하는 마음을 표현함이 서툴러 오히려 방관자 같은 역할에 머물렀는지도 모르겠다. 그 속은 오죽 했을까? 잠시 그를 위한 변명을 해본다.
☞성명 : 이영란
생년월일 : 1974. 7. 7
책 이름 : 문명의 배꼽 그리스
주소 : 경남 통영시 용남면 대곡길 12 청구 아파트 103-803/010-4133-3291
지은이 : 박경철
출판사 : 리더스북
행복한 시지포스가 되기를 꿈꾸다
-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읽고
이영란
어떤 수식어가 필요 없는, 사람이 느끼는 직감이란 게 있다. 의사 박경철은 표정을 숨길 줄도, 없는 말을 더 보탤 줄도 모르는 경상도 사람의 대표주자처럼 생겼다. 웃으면 눈이 작아져서 더 선해 보이는 사람이다. 생각이나 세포 하나하나 까지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다. 그는 퉁퉁해 보이는 몸, 순박해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영리함과 인생에 대한 넓은 스펙트럼을 갖춘 사람이다. 경제에도 관심이 많아 주식 관련 책도 여러 권 쓴 사람이고, 의사 생활도 참으로 인간적으로 해 나간 사람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니코스 카찬차키스라는 인물에도 관심이 있다는 걸 연결 짓기 힘들다. 그를 20년도 넘게 가슴에 품고 살았다니 그게 말이 돼? 물론 박경철은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왜 개미투자자들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지, 불합리한 경제 구조 속에서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지에 관한 책을 쓴 것으로 알고 있다. 안 읽었기 때문에 선명하게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왜? 나는 주식에는 먼지만큼도 관심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날 자신의 가슴 속에서 들려오는 먼 북소리를 듣고, 온 짐을 싸서 유럽으로 향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실제로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뒷일은 많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계산 없이 움직인 보람은 컸다. 로마, 그리스 등을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살면서 그는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등 명작을 써 냈다. 아니, 설령 그런 명작이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다지 아쉬울 건 없다. 어떻게든 그의 영혼 속으로 들어간 것들은 어디에서 나와도 나올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하루키가 쓴 그리스의 아토스 반도 탐방기에는 그곳에는 도저히 인간이 살 수 없는 벼랑 끝에 지은 수도원이 즐비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섬엔 절대로 여자는 들어갈 수 없고, 동물도 암컷은 못들어 간다고 한다. 그런 읽기경험을 단서삼아 눈에 단박에 들어온 신문의 종교면 연재에서도 보면 수도원 입구에는 평생을 수행하며 보낸 수도사들의 해골이 가득 쌓아져 있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 들어온 그리스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는 조금씩 나아져 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뭐라고 한마디로 단정 짓기는 쉽지 않지만, 또 다시 정리하기 위해서는 한참이나 낑낑대다보면 써 내려 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리스인 조르바>. 나의 그리스 읽기 준비운동은 그 쯤이었던 것 같다.
카잔차키스를 오랫동안 품고, 그 그리움에 떠밀려 떠난 사람이 써 내려간 이야기!
온갖 삼류 스캔들 같은 이야기, 근친상간 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저속한 이야기들로 가득찬 그리스 신화이다. 그리고, 유적지도 제대로 보존 되어 있지 않고, 이정표나 간판은 엉터리로 된 것들이 많아 골탕 먹기 일쑤고, 바가지 요금, 나태한 서비스 정신, 그러한 총체적인 부실함으로 인한 재정위기가 국가경제 파탄 등으로 얼룩진 나라이지만, 사람들은 그리스를 두고 ‘후진국입니다. 형편없는 국가입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나 또한 소화되지 않은 자투리 이야기들로 그런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본래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장소의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명도 낯설고, 사람 이름도 누가 누군지도 헷갈려서 영 와 닿지 않는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만, 한달 넘게 가지고 다니며, 하루에 2~3페이지 읽는 날이 다반사였지만, 책과 정이 들어서였을까 나중에는 카잔스키의 숨결을 느끼며 의사 박경철과 함께 그가 절친하게 지내던 다른 철학자들까지 불러내어 이야기를 들으며 여행지를 걷는 기분이었다.
‘행복한 시지포스를 상상하라’
‘아무리 밀어올려도 결국엔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는, 영원히 반복되는 무의미한 노동’은 신이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런 형벌 중 하나였고, 그것은 인간의 끝없는 절망의 상징이었다. 이 절망적 상황은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까뮈는 그 형벌은 결코 무의미하고 무익한 노동이 아니라고 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태엽을 감고, 같은 일을 반복하며 가끔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한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권태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 앞에서 궁극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매일 매일 바위가 굴러 떨어지더라도 우리는 끝없이 도전해야 한다. 그것만이 진실이며 거기에서 역설적인 행복은 느껴야 한다. 시지포스의 노역은 지금 우리의 삶이고, 시지포스는 바로 우리인 셈이다. 오늘도 나는 굴러 떨어진 바위 앞에서 한숨 쉬고 있다. 저걸 언제 다 올려다 두나?
카잔차키스는 그런 바위를 끝까지 밀어 올리는, 보통 사람들은 중간에 주저 앉고 말았을 가파른 오름길을 지치지 않고 끝없이 올라가는 의지를 가진 사람을 영웅이라 칭했다. 영웅이라...... 영웅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밀어올리기보다는 자신의 내부적 힘에 의해 밀어 올리다보니 영웅이 되는 것이리라.
벼랑 끝 수도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절벽에 매달린 저 수도원. 신에게 한발 더 다가가기 위해서일까? 세속에서 더 멀어지기 위해서일까? 그곳에 은거한 수도사들은 섭리를 거스르고 과연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지은이는 감추지 않는다. 나 역시 아직 이해하지 못한 일이다. 세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신부님과 수녀님의 삶 또한 내게는 아직 그러하다.
카잔차키스는 여러 종교에 탐닉한 사람이다. 종교의 정형화된 규율이나 일상과 유리된 수도사들의 수행이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인 것 같다. 수도사들은 구원의 길을 찾았다고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구원의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런 이단적인 생각으로 종교계와의 갈등도 빚었고, 실생활 속에서의 인간을 위한 정치나 관료생활에 힘을 많이 쏟은 인물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예수를 사랑하고 존경한 인물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그리스의 신
중,고등학교 때의 세계사 시간에는 중세 이후, 그리스 로마 시대로의 인간정신의 부활이라는 르네상스 운동이 나온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리스, 로마 시대 정신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현실적이었고, 신을 숭배했으되 무조건 따르지는 않았다. 신이 정해준 운명에 끝없이 도전하며, 스스로가 신의 반열에 오르고자 하였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인간이 곧 신이었고, 신이 곧 인간이었다.
그런 그리스인의 후예라서 그럴까? 카잔스키는 신도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고 함께 추구하며 위기를 맞기도 하고 스스로 투쟁에 휘말리기도 한다고 한다. 인간사의 일들을 두고 굳이 목적을 알려고 할 필요가 없이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을 뿐더러 깊은 심연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임무는 신에게 요청하는 대신 자신의 주먹을 불끈 쥐고 상승의 길, 오름길을 묵묵히 올라가는 것이라고.
중년의 사내가 배낭을 짊어매고, 낯선 타지 그리스를 구석구석 누비며 문명의 흥망성쇠를 읽고, 온갖 전쟁과 고난들로 얼룩진 그리스 역사를 읽고, 오늘날의 그리스가 처한 위기를 다 이해 한다는 것은 이방인으로서, 아니 이방인이 아닌 자국민으로서도 모두를 이해할 길이 없다고 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또한 사람이나 우리나라의 일이나 현실을 모두 해석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늘도 굴러떨어진 바위를 힘겹게 절망하며 밀어올릴 것이냐, 어제는 서너개 피었던 벚꽃 꽃망울이 오늘은 팝콘 튀기듯 여기저기서 팡팡 터진 함성들에 감탄하며 오늘 또 하루가 시작되었구나 하며 하루를 맞는 행복한 시지포스가 되느냐가 아닐까 싶다.
☞성명 : 현정희
생년월일 : 1970. 9. 7
책 이름 : 김약국의 딸들
주소 : 경남 통영시 무전동 한진로즈힐 101동 503호
지은이 : 박경리
출판사 : 나남
20년... 김약국의 딸들과 우리들의 딸들
현정희
서재의 책장을 뒤진다. 박경리의 토지 전집과 시장과 전장... 젊은 날 읽었던 장편 류의 소설집들은 보이는데 김 약국의 딸들이 보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주인이 찾아주지 않았던 책장은 성이 난 듯 문을 열어주지 않기도 하고 겨우 연 하나의 문은 틀이 털컥하고 내려 앉아버린다.
에고... 요즘 하나하나 손을 보는 내 몸 같은 책장. 미안한 마음으로 하나하나 손을 보던 중 김 약국의 딸들을 두 번째 책장 제일 윗칸 구석에서 겨우 찾는다. 덕분에 먼지 앉은 책들을 어루만질 수 있었다.
표지를 연다.
1993. 8. 31. 충무에서. 정희.
20년 전 이 책을 읽었나 보다. 다음날이면 개학날. 그즈음 나는 책 한권을 하루에 읽었으니 아마 하루 밤 새 읽었을 것이다. 여러 감정을 갖고 용빈이가 된 듯한 마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통영이라는 후미진 고장에 홀로 지내면서 박경리는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박경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명을 반가운 마음으로 읽으며 어디쯤일까 가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통영이라는 어쩌면 세월에 멈춰버린 듯한 고장에 발령을 지원한 것은 어린 시절 미해결과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원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렇듯 박경리의 소설은 세련되지는 않으나 익숙한 무엇인가가 있다.
이 소설에서 김 약국의 어머니가 비상을 먹고 자살하는 대목에서 비롯되는 비극의 씨앗은 결국 김 약국의 딸들이 하나하나 몰락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많은 사례에서 여러 명문가를 비롯한 가족들에서 불행을 감추지만 그 비밀의 기운이 되물림 됨을 발견하곤 한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행의 기운이 몰아치는데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 불행의 시작은 어디일까?
김약국 어머니의 자살, 큰어머니 송씨의 저주어린 말들과 태도.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불행감을 가득 안고 자랐을 성수는 참 외롭고 관계에 대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통영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사냥터에서 독사에 물려 사망한 봉제의 뒤를 이어 김 약국의 주인이 된 성수는 자신의 삶에서 행복한 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다. 성수는 딸 다섯을 두게 되고 전혀 지식이 없는 어장 사업에 손을 댐으로써 가산이 조금씩 기울게 된다. 어진 한실댁이지만 그 시절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네는 어떤 심정으로 살아야 했을까... 자신에게 정을 주지 않는 차가운 남편을 두고 사는 여인네는 어떤 심정으로 살았을까... 잘 자라리라 불안한 마음으로 키운 딸들의 불행을 보는 어미는 어떤 심정으로 살았을까...
욕심 많고 심술 맞은 장녀 용숙은 일찍이 과부가 되는데, 아들 동훈을 치료하던 의사와 불륜을 맺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다. 하지만 성수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미움을 받아 용숙의 성품이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욕심 많은 용숙은 결국 돈을 많이 벌게 되고 가산이 기울어진 김 약국에게 복수를 하는 심정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 용빈은 교육을 받아 똑똑하여 교원이 되나 애인 홍섭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된다. 기울어져가는 김 약국의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하는 용빈은 이 가정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힘 있는 존재이지만 힘겹게 느껴진다. 셋째 딸 용란은 뛰어난 미모를 갖추었으나 품행이 얌전하지 못하고 머슴과 놀아나는 바람에 지탄을 받고, 부모가 억지로 맺어준 남편은 아편쟁이에 폭력적이어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결국 다시 나타난 머슴 한돌과 함께 있다가 남편인 연학에게 발견되어 한돌과 어머니 한실댁이 연학에 의해 살해당하는 비극적 결과를 맞게 되고 용란도 정신이상자가 되어 집안을 더욱 더 불행하게 만든다. 지금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 자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혼인을 맺는 것과 신분에 따른 이야기들. 이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네 어머니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넷째 딸 용옥은 애정이 없는 남편 기두와 별거하다가 뱃길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데 어린 시절부터 착한 딸로 온 집안의 궂은일을 묵묵히 해오던 용옥의 불행한 삶은 가슴이 아리도록 더욱 더 안타깝게 한다. 계속되는 집안의 몰락을 지켜보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김 약국도 위암으로 죽는다. 결국, 용빈과 용혜는 통영을 떠나면서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데 이 불행의 고리를 끊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소설은 비극적이다. 그래서 더욱 더 몰입해서 볼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그리고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과 우리 딸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이 소설 속의 딸들의 어머니 시절의 유약하고 적극적이지 못한 딸들의 모습인 것 같지만 지금 우리네 모습들의 단편이기도 하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여 물질에 탐욕하게 되는 용숙이.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똑똑하게 자라나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고 짊어져야 하는 고단한 용빈.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말썽꾸러기 용란. 어질고 착해서 끝없이 주변을 챙기고 보살피나 제대도 된 보상 하나 받지 못한 불쌍한 용옥. 아마 이런 집안을 보며 힘들었을 용혜
지금 내 주변에 있는 딸들의 모습은 이 중의 하나를 닮아 있기도 하고 시대가 다르기에 모습은 다른 변형을 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용빈의 모습, 용옥의 모습, 용혜의 모습을 골고루 섞어놓은 것 같다. 똑똑한 딸로서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 착한 딸로서 집안을 보살펴야하는 역할, 좀 떨어져서 가슴 아프게 지켜보는 역할. 부모의 역할이 불행하고 힘들면 딸도 힘들다. 그 집안의 흐르는 기운은 내 삶의 지배적인 기운이 된다. 익숙함으로 내 삶을 지배하기 쉽다.
난 우리 딸이 건강한 부모 밑에서 건강하게 자라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행복한 기운이 많은 익숙함으로 앞으로의 삶이 행복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20년 만에 덮는다.
내 청춘의 순간을 함께 했던, 김 약국의 딸들. 안녕~~~
☞성명 : 이영란
생년월일 : 1968.12.9
책 이름 : 통영은 맛있다
주소 : 경남 통영시 무전동 무전동 일성르네상스 101-901/010-6861-3233
지은이 : 강제윤
출판사 : 생각을 담는 집
티베트어에서는 인간이란 말이 ‘걷는 사람’ 혹은 ‘걸으면서 방랑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바다와 숲은 바람의 도움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첫댓글 수고많으셨네요. 영란 샘 덕분에 우리 책갈피언들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