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草 이 종 길 뚜루루루! 뚜루루루! 진혁이 지하철 대합실 게이트를 들어서자 승강장의 열차 도착 신호음이 울렸다.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엔 신문과 승차권을 움켜진 그는 내부계단 2~3칸을 성큼성큼 건너뛰며 승강장으로 올라서니 건너편 승강장 측의 열차가 '우르릉'거리며 진입 하고 있었다. '제길! 또 속았군.'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제해 보지만 입에선 '헉헉' 거리는 소리와 함께 뿜어지는 뜨거운 열기는 자신을 언제나 민망스럽게 하였다. '상 하행선의 열차 진입 착신 음을 구분이 되게 울리면 이렇게 뛰어다니는 일이 없을 텐데' 이러한 일을 제대로 개선(改善)하지 못하는 관련 부서에서는 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 진혁은 항상 불만이었다. 잠시 후 도착한 수많은 아가리를 가지고 긴 몸통의 괴물과도 같은 전동차에 먹이와 같이 꿀꺽 삼킴을 당한 듯한 승객들과 진혁은 아직까지 그리 복잡하지 않은 사람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7인 석(席)의 자리에서 갖가지의 표정들로 앉아있는 이 들의 얼굴들을 짧은 순간에 읽어본다. 책을 보고있는 이, 신문을 이리저리 뒤적이는 여자, 졸고 있는 아저씨, 두 눈을 말똥거리며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하는 학생 등, 각양 각색의 이들 중에서 가장 신속히 내릴 듯한 사람 앞에 서서 기다리는 것이 진혁의 두 번째 전략이다. 첫 번째 열차 착 신음 판단 감지력(感知力)은 대부분 실패 하지만, 두 번째의 직감력(直感力)은 대부분 맞아떨어진다. 지신이 찍은(?) 사람 앞에 서 있으면 두 서너 역만 지나면 승객은 어김없이 일어나 주어 진혁을 기분을 좋게 하고 그리고 자신이 이인(異人)같은 느낌에 대한 쾌감까지 제공해 주는 것이 희열까지 느끼게 하였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터득한 비법이 아닌 거의 십 년 동안을 오직 지하철만을 이용하며 나름대 로의 체험에서 온 진혁 만의 노하우로 생각하는 것이다. 처음 변두리로 이사와서 몇 해 동안은 한 시간 이상을 마냥 서서 출퇴근하는 통근 생활에다 얼마 되지 않은 박봉에 회의를 느껴 몇 번이고 사직서를 써보다가도 별다른 계획도 없고 언제나 적빈(赤貧)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자신에게 속해있는 식구들을 생각해 보면 지레 주눅부터 들었으니 적은 봉급이라도 절약하며 열심히 저축을 해서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1
이사하는 것이 큰 바램이었지만 자신의 저축률은 전세 값의 인상률에 비례하지를 못하고 차일피일 미룬 것이 벌써 십 년째 변두리 생활을 해왔다. 그렇다고 다니는 회사가 잘 돌아가 봉급이라도 듬뿍 올려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그 나마 쫓아내지 않고 근무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감사하는 진혁 이었다. 한 때는 몇 만원만 주면 자동차 회사에서 승용차를 할부로 무작위로 풀어 주고 남들도 거의 가지고 다니는 자가용을 한번 폼 나게 굴려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상상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복잡한 지하철이지만 자리만 잡아 다닌다면 '이것보다 더 편하고 시간 잘 지키는 교통편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할 정도로 이젠 정까지 든 지하철이 아닌가 하고 위안도 해본다. 그러다 보니 진혁은 전동차에 오르기만 하면 짧든 긴 거리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선 앉고 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리 속에 잠재되어 있었으며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끝까지 고수하며 목적지까지 가야 된다는 이상한 자신만의 지론을 갖게 되었다. 진혁의 두 번째 전략이 오늘도 어김없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두 정거장을 지나고 세 번째 역을 향해서 열차가 움직일 때 바로 앞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중년부인이 좌우 창 밖을 두리번거리며 일어서고 있었다. 진혁은 속으로 진한 쾌감을 느끼며 서 있던 자리에서 옆으로 일어서는 승객이 나가도록 살짝 길을 터 주는데 옆에 서 있던 사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진혁의 앞을 가로막으며 먼저 자리에 털썩 앉아 버리는 것이었다. 진혁은 순간적으로 황당했다. '이건 분명 기득권 침해다. 내가 앉아야만 되는 당연한 자리를 양해도 없이 새치기를 하다니 .... 용서할 수 없다.' 진혁은 후끈 달아오르는 자신의 부아를 약간은 억제하며 중얼거렸고 소중한 그 어떤 것을 착취 당하는 기분이 들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가 없었던 것이었다. "아니, 아저씨! 이런 법 이 어디 있어요?" 중년은 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고 진혁의 아래위를 ?f어 보며 "무신 법?...내가 와?....당신한테 머 잘 몬 했나?" "잘 몬 했나?......당신 나를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아니! 새파란 놈이... 니는 행님도 없고 우 아래도 모리나?" "위... 아래? 그래 말 잘했소, 당신은 위라서 염치없이 남의 자리를 가로채는 거요? 당신은 경우도 없고 예의도 없단 말이오?" "뭐 이런 자슥이 다 있노? 니 몇 살 쳐 묵었노? 오데서 당신 당신하고 달기드노? 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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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참! 끝까지 반말이네. 나이만 많이 먹으면 예의를 무시해도 되고 아무한테나 반말하며 큰소리 쳐도 되는 거란 말이요? 나도 소(牛)띠요. 낼 모래가 불혹(不惑)이란 말이오" 진혁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제하지 못하여 경어를 썼다가 말았다가 이성을 잃고 있었다. "야! 세상 썩어 뭉캐졌다. 말세다 참말로 말세데이... 이런 자슥들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니 우짜믄 좋노..." 상대편이 무엇이라 하던 진혁도 끝까지 핏대를 세워가며 대들었다. 전철 안에서 갑작스런 다툼에 사람들은 곳곳에서 목을 길게 빼고 구경할세라 기웃대건만 누구 한 사람 탓하지 않았고 어디에선가 "거 좀 조용히 합시다아~." 라는 불만의 소리와 '싸움이 어떻게 끝날까?' 라는 호기심 어린 눈동자들만이 진혁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진혁의 나이도 설흔 여덟 이라는 세월을 접했지만 얼굴이 동안(童顔)이라 손해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언제나 제 나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자신이 싫을 때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진혁은 나이와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열을 올려가며 흥분하곤 하였지만 그 일에 대하여 금방 후회하는 순진성도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진혁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의 따가운 이목이 자신을 집중하고 있고 사태가 불리해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이를 보나 싸움의 동기를 보아도 자신이 썩 잘 하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철의 자리는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자리요, 더군다나 철도청의 무궁화호와 같이 지정된 좌석도 있는 것도 아닌데 누가 앉던, 새치기를 하던 상관없는 자리가 아니던가? 도덕성 문제야 자신들의 양심과 관련된 것이고 설혹 자기보다 나이가 좀 많은 사람이 않았 기로 시비를 걸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입씨름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진혁의 뇌리 속에 파고들자 그 자리에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고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고 후회가 되기도 하여 30분은 더 가야 함에도 진혁은 다음 정거장에서 피하다시피 내려 버렸다. 진혁의 뒤통수에는 또 한번의 진한 욕설이 쏟아졌다. '........니미!' 앞차를 보내고 뒤따라온 열차를 다시 타고는 벌레 씹은 얼굴로 회사에 들어선 진혁은 탈의실에 들어가 근무 복장으로 갈아입는 중에 같은 부서 과장이 진혁의 곁을 눈치보듯 다가와서는 "김 주임 너무 비관하지 말게 자리란 또 만들면 되고 앉으면 주인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힘을 내게......." 순간 진혁은 자신이 출근길 전동차 안에서 일어난 일을 목격한 회사 동료가 목격을 하였나 싶어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참 소문도 빠르다.' 라고 생각하였다. 3
"자 우리 가서 차(茶)나 한잔하세" "정 과장님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그런데 언제 그 일을 벌써 들으셨습니까?" "응, 내가 어제 김 주임은 퇴근을 하고 나는 잔무를 보고 있던 중 자재과 홍 부장님에게 중역회의에서 결정 난 명예퇴직자 명단에서 우리 과 에 자네가 해당되었음을 알았다네" "네? 정과장님... 오늘 아침 일이 아닌 ... 명예퇴직이라고요? 제 가요?" 진혁은 어이가 없었다 "그럼 제자리엔 누가?......" "글세 확실히는 모르지만 당분간 공석이 될 거라는 말이 들리네, 아니 어쩌면 영원히 치워 버릴지도 모른다네 요즘 회사의 재정이 생각보다 어려운 모양일세." "그렇다고 전임(轉任)도 아닌 명퇴(名退)라니요? 제가 무얼 잘못해서 이러십니까? 전 회사를 위해서 이날까지 몸 받쳐서 일했습니다. 불평 한마디 안 하고 시키는 일 모두 했습니다." 진혁은 눈앞이 깜깜하였다. 진혁은 군 복무를 마치고 지방에서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렵게 공업전문 대학을 졸업하여 처음 으로 입사한 곳이 스치로폼을 생산할 수 있는 금형 틀을 제작하는 회사에 입사하여 현장에 배치를 받았다. 공장의 내부는 이곳저곳에서 하루종일 웽웽거리는 핸드 그라인더의 소음과 '뿌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번쩍거리는 섬광을 발산하는 전기용접에다 간헐적으로 쾅쾅거리는 해머소리에 사람을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일을 하였다. 기름에 얼룩지고 알루미늄의 분진이 찌든 작업복을 입고 법정 근로시간 외 잔업을 한 달에 120 시간씩 하였다. 진혁은 동료의 소개로 입사 후 일 년 만에 아내인 은숙을 만났으며 그도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경리 업무를 보며 매달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의 생활비를 보내드려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에 있는 상태에서 진혁을 만나 두 사람은 무(無)에서 유(有) 창조해보자는 의지와 사랑만으로 결혼을 하여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보겠다고 남들은 기피하는 잔업을 자신은 기를 쓰고 한 것이 회사의 윗사람들에게는 성실성으로 인정받아 5년 만에 주임으로 승진을 하면서 근무지를 사무실로 옮겨 금형 틀의 완제품에 대한 품질검사를 하여 납품하는 업무를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내 구조 조정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여 언뜻 듣기는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그것도 자신이 명퇴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회사를 위해서 오직 앞만 바라보고 오늘날까지 걸어왔고 사무실에 근무를 하니 퇴근시간 늦는 것은 예사였지만 퇴근 지연에 대한 수당 한 번 고려하지 않으니 다른 동료들은 불만의 목소리에 온갖 욕을 하며 길길이 날뛰어도 진혁은 듣기만 하였지 누구에게 불만의 표시도 한번 해본 적 없는 오직 성실 그 자체라고 자부하며 어려운 일도 묵묵히 감당해 왔었다. 4
때론 자신도 화가 나서 불평을 하고 싶었어도 혼자서 삭였고 말주변도 좋지 않아 다른 사람 앞에는 잘 나서지도 못하였고 회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10 년 동안을 공을 들이어 쌓은 탑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에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회사 전체 회식이 아니면 상사나 동료들과 퇴근 후 한 잔씩 하는 그런 술자리는 피해 다녔다. 가지고 있는 재산도 없고 더욱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 뿐이었는지라 여유 라 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야간 작업을 많이 하여 다른 직원들 보다 배(倍) 나 수당을 받으면서도 여럿이 먹는 자리 에는 의도적으로 피하여 김 스크루지라는 별명이 붙도록 알뜰하게 살았지만 나이 사십이 되도록 집 한 칸 없이 남의 집으로 전전하였으며 조금 나아졌다면 사글세 방에서 지금의 반 지하실이지만 방이 세 칸이나 되는 전셋집이다. 어려운 상태에서 결혼한 것이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진혁에게는 전 재산이었기에 동료들과 술 마시고 다니는 것은 상상도 못하였으며 그것은 자신에게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될 수 있으면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 한 푼이라도 더 저축하여 비둘기 같이 작은 아파트라도 하나 장만하여 자식들 건강하게 성장시키고 아내와 함께 욕심 없이 마음 편하게 사는 것 이 진혁과 아내의 소박한 꿈이었다. 그렇기에 지금도 열심히 주택 청약예금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지만 그런 것들을 상사나 동료들은 알 턱도 없고 이해 할 리도 없을 것이다. -다음 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