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금성산 태평사 입구에 도착하여 시영이친구가 ‘서상록 묘’를 구경하잔다. 굉장히 큰 묘인 데 ‘호화묘지’로 논란이 있다가 지금은 사당으로 바꾸었단다. 비싼 돌과 고급나무와 꽃나무로 잘 다듬어놓은 이곳은 ‘묘지’라기 보다는 ‘일류공원’이었다.
비석을 읽어보니, 서상록씨는 나주 봉황출신으로 일제시대인 17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기업을 일으켜 큰 돈을 벌었고, 광복후 귀국해서는 이천전기 등 여러 기업체를 일구어 나주 등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장학사업에 심혈을 기울여 장학금이 자그마치 50억원에 이르고, 수혜액만도 21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아! 사람이 한 평생 살면서 큰기업을 일으키는 것도 하늘이 점지하지 않으면 어렵고,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도 바람처럼, 이슬처럼 사라지게 한 일들이 허다하건만 서상록씨처럼 지역과 나라발전 그리고 장학사업으로 후세를 위한 일은 영세토록 빛날 것이니 머리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고, 가신님의 위업에 그저 존경과 흠모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당을 내려오는 길은 나주의 너른 들판과 노안, 광산지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시야가 확 트였고, 봄철 꽃피는 시절에는 나주는 물론 인근 시군과 광주지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와서 정취를 즐기고 간다고 하니 이토록 지역과 나라발전, 장학사업에 한 평생을 바치신 님의 뜻이 굳건하고,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것이어서 대대손손 향기가 퍼지리라.
첫댓글 우리가 본받아야할 훌륭한 모습을 남기고 가셨군요, 이 시대에도 이런 분들이 많이 있다면 이 어려움도 거뜬히 극복 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