됫박고개 - 됫박처럼 가파른 고개 1634년(인조 12) 조성 梵鐘 - 가장 오래된 기록 894년(진성왕 8) 道詵 裨補寺刹로 창건설 壬亂 폐허 1622년(光海君 14) 雪眉 德仁스님 중건 1634년 범종불사 -> 덕인스님 발원 -> 제자 道元 본격적 佛事 - 入寂후 다시 信寬스님에 의해 完成
奉先寺 本末寺略誌 1215년(고종 2) 元眞국사 중창 1388(우왕 14) 無學 三創
英祖가 등극하면서 그 生母 淑嬪崔氏의 墓所를 昭寧園으로 追封하면서 그 願刹로 삼으면서 高靈寺를 普光寺로 개칭 -> 대웅보전 光膺殿 중수. 萬歲樓 창건.
가람배치 서울부근 王室願刹이 가지고있는 공통구조인 十字平面. 큰방채가 東西一字로 놓이고 그 끝을 다시 南北1字 刑으로 막은 구조. 그 남쪽이 누마루 형태의 홍각. 큰 방채 앞뒤로 툇마루가 돌려 있어 홍각과 대청으로 연결. 앞뒤를 미닫이 문이 칸칸 마다. - 조선시대 상궁을 비롯 부녀자들이 법당에 올라가 절을 할수 없었기 때문. 큰방에서 예배하기 위해 이런 구조 (內外法)
大雄寶殿 (有形 83호) 현액 甲子仲秋 玉潤書 (한석봉체. 단아한 명필) 英祖親筆.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계팔작지붕 겹처마 古靈山普光寺上祝序 (1889 고종6년) 5/36 大院君에 의한 대중창 大院君 - 英祖의 玄孫. 소령원 소홀히 할수 없고, 따라서 보광사 각별외호.
三佛兩大菩薩 釋迦 彌勒 彌陀三尊은 고종시대 조성인 듯. 양대보살은 英祖시대 조성인 듯.
1898년 조성. 靈山會上後佛幀畵 (金魚 禮芸尙奎) 가로세로 각 220cm. 칠성탱화(1898) 삼장탱화(1898) 불단왼편 朝鮮末의 禁口. 지름 85.5cm (大皇帝陛下萬萬歲) 괘불함 崇禎七年銘 (1634) 梵鐘 (有形 158호) 인조시대의 건실하고 참신한 분위기 잘 반영. 주조 금어 彌智山 雪華子. 당시 住持는 鞭羊彦機 (1581-1644)
大雄寶殿 外壁壁畵 木版으로 짜여져 그린 독특한 벽화들. 南벽 - 神衆團 (韋太天등) 北벽 - 六牙白象. 水月觀音 등 東벽 - 龍船위에 五位의 불보살. (蓮華往生圖)
英祖의 이런 孝心이 장차 國王이 소령원을 展拜하는 것을 공식 행사화 하기위해 '私墓拜儀註'라는 의례준칙을 만들게 하고 (英祖 15년) 소령원에 石儀를 追設
3. 綏吉園
和順翁主 (秋史의 曾祖母)의 모친인 英祖후궁 靖嬪李氏의 능침.
4. 龍尾里 彌勒佛 (長芝山 龍巖寺) 보물 93호
天然으로 솟아오른 바위절벽을 이용하여 몸체는 磨崖刻法으로 처리하고 머리 목 갓은 별도 조성. 안동 제비원 불상조성양식과 비슷. 큰 불상높이 17.4m 얼굴길이 2.45m 친근하고 토속적인 고려시대의 地方化된 불상.
"高麗宣宗(1084-1094) 王后에게 後嗣가 없어 元信宮主 仁川李氏를 맞음 - 후사없어 걱정. 元信宮主의 꿈에 두 道僧이 나타나 우리는 파평군 汾水院 張芝山 8/36 남쪽 기슭 암벽사이에 사는 사람들이다. 배가고프니 밥을 달라고. 元信宮主가 王에게 고하니 왕이 사람을 보내 탐색. 장엄무비한 巖石이 雙立. 宮主가 불상조성. 두 道僧이 나타나 왼쪽 바위는 彌勒佛로 오른쪽 바위는 彌勒菩薩로 造成하라고. 造成後 후사를 빌었더니 漢山侯 균을 탄생하였다고" -> 지금까지 生男의 靈驗. 기도 끊이지 않는다
宣宗은 文宗과 인예태후 仁州李氏 사이에 탄생. 인예태후는 李子淵의 長女. 문종왕비가된 다음 순종 선종 숙종 대각국사의천등 10男 2女 출산 -> 外戚 仁州李氏 세도의 기틀을 마련. 선종왕비 사숙태후도 친정 조카딸이며 元信宮主도 조카딸. 南京 (현재서울) 세력을 대표하는 친정 仁州李氏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남경길목에 조성. (벽제관을 지나 고양 파주를 경계짓는 혜음령을 넘어 개성으로 가는 正路)
숲 속의 화석정엔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나그네 생각은 이것저것 끝이 없어라 멀리 흐르는 물은 하늘에 닿아 파아랗고 서리맞은 단풍은 햇빛을 받아 더욱 새빨갛네 산은 외로이 둥근 달을 토해 놓고 강물은 만리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구나 변방의 기러기 떼, 어디로 날아가는가 울음 소리 황혼녘 구름 속에 끊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