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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 소설
사람들(7) - 봉태리 원족
부녀회 총무 나길자는 검정비닐봉지를 무릎 팍에 올려놓은 채 쪼그려 앉아 종이박스에 가득 담긴 것들을 골고루 넣기에 바쁘다. 껌 한통, 캔음료 두개, 방울토마토 한 줌, 초코파이 2개, 사탕 5개, 양념 오징어 한줌, 알미늄 호일에 싼 김밥 한줄. 한 가지도 빠뜨리지 않으려는 듯 나길자는 일렬로 박스를 늘어놓고 빠른 손놀림으로 불룩한 봉지 하나씩을 만들었다.
봉태리 마을 사람들이 이른 새벽 하나 둘 마을회관 앞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재를 넘어 오는 김갑수의 몸이 한쪽으로 자꾸 기운다. 트랙터를 몰다 넘어진 김갑수는 오른발이 아직 채 낫지도 않았는데 절름절름 걸어오는 폼은 가벼워 보였다.
제일 먼저 마을회관에 도착하여 이것저것 엽렵하게 준비하는 박이장의 날선 콧날이 새벽녘 햇살 때문인지 더 높고 싸늘하다. 모내기가 끝나고 더 덥기 전에 한 번 놀러가자고 지난번 마을회의에서 결정 된 후 박이장은 전국 지도를 펴놓고 새벽에 떠나 밤에 돌아올 수 있는 하루코스를 찾느라 며칠을 고민하고 대부도로 결정하였다.
마을회관에 모여 나온 의견은 대부도 보다는 더 먼 군산을 원했으나 몇 시간 더 버스 안에서 권하는 술에 시달릴 생각에 내심 걱정이 앞섰던 박이장은 군산보다는 대부도가 좋은 이유에 대해서 자세하게 주민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이장으로서 짧은 소견이지만, 제 생각으로는 칠순이 넘은 분들도 일곱 분이나 되시니 이번에는 가까운 대부도로 하시면 좋을 듯 허네요.
지난번 진도에 갔다가 얼매나 힘들었습니까. 너무 무리하시면 앞으로 땡볕에서 일들 허실 노인 양반들 건강문제도 생각 안할 수가 없는 고로...“
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총무 정득주가 나서 한마디 한다.
“요즘 땡볕에 일 허는 노인 있습디까 봉태리에서...”
못마땅한 내심을 꾹 참으며 박이장은 말을 이어간다.
“흠..크흠... 그런 이유도 이유지만 요즘 여기가 돈이 좀 흐르고는 있지만 다른 큰 도시는 불경기에다가, 분위기도 좋지 않다고들 합니다... 마,,그런고로...이번에는 조금 짧은 거리로 선택하시는 것이 좋을 듯 헙니다. 대부도 회도 군산 만큼이나 맛있다고 허니, 맛있는 회 잘 드시고, 바다 구경 두 허시고, 오시다가 뭐냐...거기 잘 허는 조개 칼국수 집에서 저녁도 드시구요...허허 좋으시죠.“
사방에서 박수소리가 마지못해 나는 듯 했으나 부녀회 총무의 요란한 박수소리에 묻혀 분위기는 찬성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박이장은 겉으로는 군산회가 아쉽지만 연로하신 분들도 많고 하니 그보다 반 거리인 대부도로 결정하자고 은근슬쩍 말의 주도권을 잡았다. 박이장의 말이 그럴 듯 한지 모두들 대부도의 너른 모래사장과 맛있는 횟감에 군침이 도는 표정들로 회의는 기대로 끝이 났다.
새벽녘 어둑함을 갈라내고 초여름 해가 마을회관 위로 환하게 비추기 시작하자 삼삼오오 모였던 사람들이 관광버스에 오르기 시작한다. 모두가 들뜬 표정으로 차에 오르는데 한 사람도 빠짐이 없는지, 먹을 것은 제대로 됐는지 남자총무 정득주는 관광버스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나길자가 싸놓은 간식봉지를 각각 좌석에 놓느라고 분주하다.
“아이고 이씨네 할머님도 가시네요. 조반은 드셨나요? :”
“안 먹었지. 뭐 먹을 것 줄 것 아녀. 참 박이장댁 안사람은 안 가시는겨?”
“그런가 뵙디다.”
정득주는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이씨 할머니는 밝은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기역자로 구부러진 허리가 펴질 듯 당당하고 신이났다.
“쿵쿵 짜리 짜리 쿵쿵 짜 쿵쿵 짜”
버스가 시동을 걸자마자 반복적인 트롯 반주가 흐드러지게 시작되었다.
벌써부터 남자총무 정득주는 소주병을 겨드랑이에 끼고 술잔 돌리기에 바쁘다. 나길자가 밤 새 준비한 개고기 수육 접시를 손에 들고 기우뚱 기우뚱 버스 움직임에 몸을 맡긴 채 마을사람들이 술잔의 술을 털어 넣기가 무섭게 나무젓가락에 고기 점을 집어 일일이 사람들 입에 넣어주는 서비스가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흥겹게 볼만하다.
“아이구 잘생긴 남정네가 주니께 더 맛있네 그려. 누가 무쳤길래 이렇게 맛있디야. 입에서 살살녹네 .”
새새거리는 눈으로 정순엄마는 볼우물을 패며 웃는다.
“누구긴 누구여. 나길자지. 누구겄어. 부녀회장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나길자가 며칠전 부텀 얼매나 고생이 많어. 정순엄마는 말로만 했지 어제 개고기 삶을 때도 안나와 보대”
부녀회 일에 언제나 입만 갖고 나불대는 정순엄마가 미웠는지 이씨할머니가 샐죽 하니 나선다.
관광버스 안은 저마다 들뜬 마을사람들의 목소리가 웅얼웅얼 음악소리와 섞여 버스라는 화분 속에 갇힌 식물처럼 나른해 보인다. 한 자락 뽑고 있는 정득주의 목소리는 소음에 묻혀 버리고 입만 벙긋대는 벙어리처럼 보였다.
박이장은 잠깐이었지만 버스 속 풍경에 넋을 놓았다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마이크를 잡는다.
“ 여러분들 이렇게 마...날씨도 우리 덜을 도와주고, 오늘하루 즐겁고, 재미난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원족에 도움을 주신 면장님께도 대표로 인사했으니까, 나중에 면장님 뵙걸랑 꼭 감사하다고 인사하십시오. 그럼 이만 줄이겄습니다. 노래들일랑 하시구요.”
기우뚱 몸을 다잡으며 마이크를 정득주에게 넘긴다.
정득주는 벌써 불콰하게 얼굴이 붉어졌다. 검붉게 탄 팔뚝 근육이 그의 건장함을 새삼스레 돋보이게 만든다.
“한 잔 하소. 박이장 여기는 서울이 아니어라. 그렇게 술 도 잘 안받아먹고, 춤도 안 추고 그러면 같이 가는 봉태리 사람들 기분 허접해지지 안 그렇소.”
한 살 아래인 정득주는 술좌석에 오면 은근히 박이장에게 말을 놓으며 이장의 앞에 서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가 자기처럼 봉태리에서 태어나 봉태리 20리 안짝을 들며 날며 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넌지시 마을사람들에게 인지시키려는 속내가 보여 박이장의 속은 내심 불쾌해 진다.
“한 잔 주소.”
박이장은 정득주가 내민 술잔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정득주는 이장이 애썼으니까 석 잔은 기본이라며 연거푸 종이컵에 가득 소주를 따라 석 잔을 마시게 한다. 빈속에 뜨거운 액체는 불길이 되어 박이장의 가슴을 확확 들쑤셔 놓는다.
봉태리 사람들 마음 한 구석에 박이장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서울로 다시 뜰 사람이라고 인식되어있는 것 자체가 박이장의 술기운을 더욱 뜨겁게 했다.
“벌써 십년이 넘었는데 이 사람들은 아직도 날 인정해 주지 않는구나...”
올해 초 이장 선거에 박이장이 선출 된 순전한 이유는 많이 배운 것 때문이었다. 택지 개발 붐을 타서 봉태리도 택지개발지역이 된 다는 소문이 곧 현실이 될 조짐이 컸다. 이런 와중에 학식 높은 법과대학 출신의 박이장이 봉태리의 이익을 대변해 줄 사람으로 딱 이었던 것이다.
논농사 수익이 전부였던 봉태리 사람들에게 갑자기 억대의 돈이 흐를 조짐이 점점 기정사실화 되자 농사는 갑자기 그들에게는 버거운 부업이 되어버렸다. 간혹 나이 들어 농사를 평생의 업으로 알던 노인네들마저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복덕방 숫자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땅만 부쳐 먹고 살 던 사람들에게 택지개발 붐은 그야 말로 인생을 바꿔놓는 일이 라고 로또복권이 되어 그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총무 정득주만 해도 수천 평의 전답이 십수 억의 돈으로 돌아온다는 계산이 되자 뻥이 심한 평소 성격이 중소 재벌이나 되어버린 듯 목소리에 기름이 흘렀다.
박이장은 다니던 대형 건설회사가 도산한 후 원단 도매업에 손을 댔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귀농하였다.
고향에 소작농이 되어 들어 온 박이장이 그야말로 봉태리 에서도 앞으로 살길이 막막해져 버릴 것을 내심 알아버린 정득주가 자신을 없수이 여긴다는 생각이 들자 몰려오던 취기가 확 깨이고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치원에 다녔던 아이 둘이 이제는 고등학생이 되어버렸다. 박이장 아내는 아이들 학교 때문에 다시 도시로 나가길 원했다. 서울이 아니면 서울 근교로라도 가자고 떼를 쓰곤 했지만 그때마다 박이장은 자연의 혜택과 인심, 편안함을 들어 그녀의 목소리를 외면하고는 했다.
그러나 택지개발 소문이 봉태리의 현실이 되어버리자 박이장의 목줄을 쥐고 칼날이 선 목소리로 살기 싫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 요즈막의 박이장 아내 모습이었다. 그나마 가진 돈도 근교 도시까지 보내는 아이들 학원비로 이미 거덜 낸 상태라 택지개발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던 초창기에도 밭Ep기 하나도 마련하지 못한 것이 박이장 속을 쓰리게 했다.
좁은 버스 안 복도에는 사람들 엉덩이들만 보였다. 좌석에 붙박이처럼 앉아있는 박이장 얼굴을 스쳤다 말았다 커다란 물체들은 리듬 따라 흔들거린다. 버스바닥에 깔린 두 줄의 무지개 빛 조명은 음악에 맞추어 꺼졌다 켜졌다 요란하게 분위기를 띄운다. 김갑수는 절름절름 하면서도 디스코 음악에 맞추어 콧잔등에 웃음을 걸고 애교를 떠는 정순엄마의 커다란 가슴과 맞닿을 듯이 콧김을 내며 그녀와 열심히 춤을 추고 있다.
허리 꼬부라진 이씨할머니도 20살 꽃띠 아가씨처럼 화색이 발그족족하니 정득주의 손을 잡고 지루박를 멋지게 소화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흐느적흐느적 흐릿한 물체들이 그의 시야를 막고 흔들리고 있었다.
앞좌석 그물주머니에 꽂혀있던 소주병을 빼서 박이장은 병나발을 분다. 내장을 타고 흐르는 액체는 그의 가슴속을 뜨겁게 헤집어 놓는다.
“어마마 박이장님 오늘 과음하시는 것 아니여유. 어여쁜 이장댁이 오늘 같이 안와서 외로워서 그러나. 내가 마누라 해줘야 겠네. 호호 홍.”
여자총무 나길자는 좌석 팔걸이에 걸터앉아 오징어를 뜯어 박이장 입에 넣어주려 애쓰다가 차가 흔들리자 못이기는 척 그의 어깨에 흐드러지게 눌러 앉는다.
술이 많이 되었는지 박이장은 나길자의 커다란 엉덩이에 눌렸는데도 별로 무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길자의 손목이 어느새 박이장의 손목을 끌어 잡아 일으켜 세운다.
“춤 좀 추세요. 이장님 춤추는 것 한 번 보는 게 나길자 소원 이라우.”
나길자의 손에 이끌린 박이장은 좁은 복도 중간쯤에 엉거주춤 선 채 나길자가 흔드는 데로 두 손목을 그대로 맡겨둔다. 한 참을 그렇게 허수아비처럼 흔들리다가 반복적인 리듬에 맞추어 몸을 서서히 움직였다.
예상외로 몸은 가벼운 깃털처럼 날아갈 것 같았다. 그렇게 듣기 싫었던 반복적인 디스코 리듬도 뽕짝리듬도 신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들렸다. 관광버스를 타고 봉태리 사람들이 원족을 갈 때 마다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저렇게 부비고 춤을 출까 10여년 적응 안 되던 모습이 이제는 그의 것이 되어 박이장의 온몸을 들뜨고 뜨겁게 했다.
박이장은 가슴속에서부터 쿵.쾅. 커다란 울림을 듣는다.
선무당이 신이 내리는 듯 박이장의 눈빛이 허공에 박히어 움직이지 않는다. 내림굿에 처음 들어선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떠는 듯 하더니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이는 폼이 서늘한 귀기마저 느끼게 한다. 버스 바닥의 라이트가 붉은빛 점멸등에서 푸른 빛으로 바뀐다.
박이장의 눈에 두 줄로 나란히 선 작두날이 보였다. 두 줄 작두는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박이장의 가슴에 신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듯 번쩍번쩍 푸른빛을 냈다.
박이장은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작두날을 탔다. 하늘로 손을 올리고 신을 부르듯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는 춤을 추어댔다.
박이장의 선연한 기에 눌려서 인지 봉태리 사람들은 어느 틈엔가 좌석에 전부 앉아 있고 긴 관광버스 복도에는 박이장 혼자 춤을 추며 주위사람에게 공수를 주듯 넋두리하는 소리만이 메아리친다.
“봉태리 사람들, 봉태리 사람들...나도 봉태리 사람이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나더니 관광버스가 천천히 갓길에 멈춰선다.
“고속도로 순찰대입니다.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음주가무 행위는
도로교통법... ”
박이장의 신들린 춤은 경찰의 제지에도 한동안 멈춰지지 않았다.
그의 빰 위로 번진 눈물이 푸른 조명에 반사된 채 얼어붙어 있었다.
첫댓글 우와. 사무국장님. 다재다능.신출귀몰. 도대체 못하시는 게 뭐예요? 시에 수필에 소설에 컴에 행정에 MC에---.나, 이제 기 죽어서 더 이상 글밭 향기 못 마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