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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가정적 갈등) |
발단 |
이시백과 박씨의 결혼. 이시백의 외면 |
전개 |
박씨가 허물을 벗고 절세가인이 됨. | |
후반부(사회적 갈등) |
절정 |
박씨가 조선을 침략한 용골대 형제를 물리침 |
결말 |
박씨와 이시백이 행복한 여생을 보냄 |
♥ 변신 모티프
변신 모티프는 작품의 구성상 사건 전개의 전환점의 구실을 하고 있다. 박씨의 변신은 신묘한 도술적 성격을 띠기도 하지만 박씨가 전생에 지은 죄로 인하여 추한 탈을 쓰고 태어났다고 하는 징벌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징벌에서 구제됨으로써 박씨는 남편을 비롯한 시집 식구들과 다른 사대부 부인들의 사회에 비로소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박씨의 변신은 ‘입사식(入社式)’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박씨가 후원의 피화당에서 3년 동안 홀로 기거하는 기간은 시집을 위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할 관문에 해당한다. 이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박씨는 명실상부한 아내와 며느리로서 당당한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다.
박씨전(朴氏傳)
-작자 미상
<전략> 용골대의 아우 용홀대 후원(後苑)에 들어가, 풍경을 두루 구경하다가 한 편을 바라보니, 담 밖에 수목이 무성한 곳에 수십 칸 초당이 정결하고, 당우(堂宇)에 한 가인(佳人)이 홍상채의(紅裳彩衣)를 선명(鮮明)히 입고, 아미(蛾眉)에 시름이 가득하야, 수삼 세 된 아이를 좌우에 앉히고 희롱하거늘, 용홀대 한 번 보매 정신이 황홀하야 생각하되, ‘장부 세상에 났다가, 저런 미인을 사랑하지 못하면, 어찌 원통하지 아니리오.’ 하고 몸을 일어, 수백 철기(鐵騎)를 거느려 그 곳에 이르러 보니, 수목이 일시에 변하야 철기 되어, 기치(旗幟) 창검(槍劍)이 벌리듯 하는지라. 점점 나아가 보니, 장중(帳中)에 한 낱 영채를 세우고, 진문(陣門) 밖에 한 미인이 앞을 향하야 크게 꾸짖어 가로되,
“네 호국 장사 용골대의 아우 용홀대 아닌다? 네 본대 오랑캐로 천의를 모르고 남의 나라를 침범하고, 또 감히 사부가(士夫家)의 규문(閨門)을 당돌히 범하니, 너 같은 놈은 죽여 후일을 징계하리라.”
하고 완완(緩緩)히 걸어 다라들며 이르되,
“네 나를 아는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광주 유수 이공의 부인 박씨의 시비 계화로소니, 네 선봉이 되었다가 나 같은 여자의 손에 목 없는 귀신이 될 터이니, 어찌 불쌍하고 잔인하지 아니리오.”
하며,
“내 칼을 받으라.”
하는 소래, 옥반(玉盤)에 진주(眞珠)를 구을리듯 한지라. 용홀대 바라보니, 그 미인이 머리에 태화관(太和冠)을 쓰고, 몸에 홍금사 화의(紅錦沙華衣)를 입고, 허리에 측금사만대를 두르고, 손에 용문자 화검(龍文字華劍)을 들고, 완연히 섰으니, 나는 제비 같은지라. 용홀대 정신이 어찔하나 분기를 참지 못하야 다시 정신을 차려 꾸짖어 가로되,
“조고마한 여자 엄연히 장부를 꾸짖는다? 내 너를 잡지 못하면 어찌 세상에 서리오.”
하고 다라들거늘, 계화 용홀대를 보니, 머리에 용봉쌍학(龍鳳雙鶴) 투구를 쓰고, 몸에 황금사 문갑(黃金紗紋甲)을 입고, 허리에 진홍 보호대(眞紅保護帶)를 두르고, 손에 삼백근 금강도(金剛刀)를 들었거늘, 서로 싸화 사십여 합에 승부를 모르더니, 계화의 칼이 번듯하며, 용홀대의 머리 검광을 좇아 마하(馬下)에 나려지니, 계화 그 머리를 칼 끝에 끼여 들고 좌우충돌하야 사방으로 달리니, 모든 장졸이 혼비백산하야 일시에 항복하니, 계화 용홀대의 머리를 박 부인께 드리니 부인이,
“그 놈의 머리를 높은 에 달아 두라. 용골대 제 아우의 머리를 보면 낙담상혼(落膽喪魂)하리라.”
하니, 계화 영을 듣고, 후원 전에 높이 달아 두니라.
그 후 여러 날만에 용골대 인마를 거느리고 호기(豪氣) 있게 승전고를 울리며, 왕십리를 지나 동대문을 들어오다가, 제 아우 용홀대가 박씨의 시비 계화에게 죽음을 듣고 분기대발(忿氣大發)하야, 즉시 박씨 있는 곳을 찾아가, 소래를 벽력(霹靂)같이 질러 가로되,
“박씨는 어떠한 여자완대 감히 대장을 죽이고, 또 그 머리를 저 에 달았으니, 어찌 당돌하지 아니리오. 바삐 나와 내 칼을 받으라.”
하고 달라드니, 박씨 분기를 참지 못하야 계화를 불러 가로되,
“네 가서 죽이지 말고, 이리이리 하야 간담을 서늘하게 하라.”
계화 응낙하고 나올새, 일월국화관(日月菊花冠)을 쓰고 몸에 홍금사 나의(紅錦紗羅衣)를 입고 손에 삼 척 비수를 들고, 문 밖에 내다라 용골대의 거동을 보니, 얼굴은 무른 대추빛 같고 눈은 번개 같아, 보기에 흉악한지라, 계화 목청을 가다듬으며 꾸짖어 가로되,
“용골대야, 네 대장으로 조선에 와 날 같은 조고마한 여자에게 욕을 보고 돌아가려 하니, 어찌 애닲지 아니리오.”<중략>
차설(且說) 울대 군중(軍中)에 영(令)하여 일시에 불을 지르니, 화약이 터지는 소리 산천이 무너지는 듯하고 불이 사면으로 일어나며 화광이 충천(衝天)하니, 부인이 계화를 명하여 부작(符作)을 던지고, 좌수에 홍화선(紅花扇)을 들고, 우수에 백화선(白花扇)을 들고, 오색실을 매어 화염(火焰)중에 던지니 문득 피화당(避禍堂)으로조차 대풍이 일어나며 도리어 호진(胡陣) 중으로 불길이 돌치며 호병(胡兵)이 화광(火光) 중에 들어 천지를 분변(分辨)치 못하며 불에 타 죽는 자가 부지기수(不知其數)라. ▶박씨 부인과 울대의 싸움
울대 대경(大驚)하여 급히 퇴진(退陣)하며 앙천 탄식(仰天歎息)하여 가로되,
“기병(起兵)하여 조선에 나온 후 병불혈인(兵不血人)하고 방포 일성(放砲一聲)에 조선을 도모(圖謀)하고 이 곳에 와 여자를 만나 불쌍한 동생을 죽이고 무슨 면목으로 임금과 귀비(貴妃)를 뵈오리오.”
통곡함을 마지 아니하거늘, 제장(諸將)이 호언(好言)으로 권위(綣威)하며 의론 왈,
“아무리 하여도 그 여자에 보수(報讐)할 수는 없사오니 퇴근(退軍)하느니만 같지 못하다.”
하고, 왕비와 세자 대군과 장안 물색(長安物色)을 거두어 행군하니, 백성의 울음 소리 산천이 움직이더라. 차시 박 부인이 계화로 하여금 적진을 대하여 크게 외쳐 왈,
“무지한 오랑캐놈아. 내 말을 들으라. 너의 왕은 우리를 모르고 너 같은 구상유취(口尙乳臭)를 보내여 조선을 침노하니 국운이 불행하여 패망(敗亡)은 당하였거니와 무슨 연고로 아국 인물을 거두어 가려 하느냐. 만일 왕비를 뫼셔 갈 뜻을 두면 너희 들을 함몰(陷沒)할 것이니 신명을 돌아보라.”
하거늘, 호장(胡將)이 차언(此言)을 듣고 소왈(笑曰),
“너의 말이 가장 녹록(碌碌)하도다. 우리 이미 조선 왕의 항서(降書)를 받았으니 데려가기와 아니 데려가기는 우리 장중(掌中)에 달렸으니 그런 말은 구차(苟且)히 말라.”
하며 능욕(凌辱)이 무수하거늘 계화가 다시 일러 왈,
“너희 등이 일향(一向) 마음을 고치지 아니하나 나의 재주를 구경하라.”
하고, 언파(言罷)에 무슨 진언(眞言)을 외오더니, 문득 공중으로 두 줄 무지개 일어나며 우박이 담아 붓듯이 오며 순식간에 급한 비와 설풍(雪風)이 내리고 얼음이 얼어 호진장졸(胡陣將卒)이며 말굽이 얼음에 붙어 떨어지지 아니하여 촌보(寸步)를 운동치 못할지라, 호장이 그제서야 깨달아 가로되,
“당초에 귀비 분부하시되 ‘조선에 신인(神人)이 있을 것이니 부디 우의정 이시백의 후원을 범치 말라.’ 하시거늘, 우리 일찍 깨닫지 못하고 또한 일시지분(一時之憤)을 생각하여 귀비의 부탁을 잊고 이 곳에 와서 도리어 앙화(殃禍)를 받아 십만 대병을 다 죽일 뿐이라. 골대도 무죄히 죽고 무슨 면목으로 귀비를 뵈오리요. 우리 여차(如此)한 일을 당하였으니 부인에게 비느니만 같지 못하다.”
하고, 호장 등이 갑주(甲冑)를 벗어 안장에 걸고 손을 묶어 팔문진(八門陣) 앞에 나아가 복지청죄(伏地請罪)하여 가로되,
“소장(小將)이 천하에 횡행(橫行)하고 조선까지 나왔으되 무릎을 한 번 꾼바 없더니 부인 장하(帳下)에 무릎을 꿇어 비나이다.”
하며 머리 조아려 애걸(哀乞)하고 또 빌어 가로되,
“왕비는 아니 뫼셔 가리이다. 소장 등으로 길을 열어 돌아가게 하옵소서.”
하고 무수히 애걸하거늘 부인이 그제야 주렴(珠簾)을 걷고 나오며 대질 왈(大叱曰),
“너희 등을 씨도 없이 함몰하자 하였더니, 내 인명을 살해(殺害)함을 좋아 아니하기로 십분 용서하나니 네 말대로 왕비는 뫼셔 가지 말며 너희 등이 부득이 세자 대군을 뫼셔 간다 하니 그도 또한 천의(天意)를 따라 거역(拒逆)지 못하거니와 부디 조심하여 뫼셔 가라. 나는 앉아서 아는 일이 있으니 불연즉 내 신장(神將)과 갑병(甲兵)을 모아 너희 등을 다 죽이고 나도 북경(北京)에 들어가 국왕을 사로잡아 설분(雪憤)하고 무죄한 백성을 남기지 아니리니 내 말을 거역지 말고 명심하라.”
한 대, 울대 다시 애걸 왈,
“소장의 아우의 머리를 내어 주시면 부인 덕택으로 고국에 돌아가겠나이다.”
부인이 대소 왈,
“옛날 조양자(趙襄子)는 지백(知伯)의 머리를 옷칠하여 술잔을 만들어 이전 원수를 갚았으니, 나도 옛날 일을 생각하여 골대(骨大) 머리를 옷칠하야 남한산성에 패한 분을 만분일이나 풀리라. 너의 정성은 지극하나 각기 그 임금 섬기기는 일반이라, 아무리 애걸하여도 그는 못 하리라.” ▶박씨 부인이 울대를 굴복시키고 꾸짖음
울대 차언을 듣고 분심(忿心)이 충천하나 골대의 머리만 보고 대곡(大哭)할 따름이요 하릴 없어 하직하고 행군하려 하니 부인이 다시 일러 왈,
“행군하되 의주(義州)로 행하여 임 장군을 보고 가라.”
울대 그 비계(秘計)를 모르고 내념(內念)에 헤오되,
‘우리가 조선 임금의 항서를 받았으니 서로 만남이 좋다.’
하고, 다시 하직하고 세자 대군과 장안물색(長安物色)을 데리고 의주로 갈 때 잡혀 가는 부인들이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여 왈,
“박 부인은 무슨 복으로 환(患)을 면하고 고국에 안한(安閑)이 있고, 우리는 무슨 죄로 만리 타국에 잡혀 가는고. 이제 가면 하일 하시(何日何時)에 고국산천을 다시 볼꼬.”
하며, 통곡유체(痛哭流涕)하는 자가 무수(無數)하더라. 부인이 계화로 하여금 외쳐 가로되,
“인간 고락은 사람의 상사(常事)라. 너무 슬퍼 말고 들어가면 삼 년지간에 세자 대군과 모든부인을 뫼셔 올 사람이 있으니 부디 안심하여 무사 득달(得達)하라.”
위로하더라.
▶박씨 부인의 계책과 잡혀가는 이들에 대한 위로
▶ 어휘 풀이
* 차설(且說) : 화제를 바꿀 때 그 첫머리에 상투적으로 쓰는 말, 각설(却說)과 같음
* 부작(符作) : 부적의 변한 말
* 구상유취(口尙乳臭) :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말로 말이나 하는 짓이 아직 유치함
* 함몰(陷沒) : 결딴을 내어 없앰
* 녹록(碌碌)하다 : 평범하고 하잘것없다, 만만하고 호락호락하다.
* 구차히 : 군색스럽고 구구하게, 가난하게
* 능욕(凌辱) : 업신여기어 욕보임
* 언파(言罷) : 말을 끝냄
* 진언(眞言 : 주문
* 횡행(橫行)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함,
* 대질(大叱) : 크게 꾸짖음
* 십분(十分 : 충분히, 넉넉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