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앞이 안보인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대로 주저않지 말고 한단계 상승해야 한다.
이상한 나라 엘리스를 따라가지 말고
세계에서 반듯하게 대접받는 나라가 되자.
싱가포르를 따라가고
마침내 일본을 따라잡자.
기억을 더음어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우리가 1960연대에 박정희가 들어와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1, 2차에 걸쳐 세웠다.
그 이전에도 무슨 경제부흥 계획이 있었지만 난 그 땐 모른다.
1964년인가 한일국교 정상화가 있었다.
거기서 일본으로부터 대일배상금 받아가지고 비료공장 세우고
월남에 파병하여 미국으로부터 받은 파월장병 월급을 삥땅하여
경부고속도로 놓는데 썼다.
1968년 시작하여 2년만인 1970년도에 완공된 것으로 안다.
2년만에 4차선 고속도로 놓았다.
그 때 쯤 중동 해외건설에 나가 현대건설을 비롯한 우리의 건설사들은 많은 돈을 벌었다.
이명박도 그 때 쯤 해외에 나가 건설현장을 누볐다.
1970연도 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통일벼 등이 보급되어 농촌이 깨어났다.
초가지붕이 없어지고 스레트집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왠 만한 도로는 다 포장하고 골목길도 늘렸다.
경제는 벌려놓았고,
대통령 임기는 3선개헌을 했지만 1974년까지 밖에 안되니
한국적 민주주의를 한다고 1972년 10월유신을 단행하여 연임제한을 없앴다.
난 그 때 고등학생이었지만 세상에 뭐 이런 요상한 유신이 있나 해따.
1974. 8. 15,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쓰러지니
아무리 독재자 박정희지만 마음이 안됬더라.
1975년 월남이 패망하고 나니 우리도 북한에 적화통일 되는거 아녀.
암울한 시대에 대학생활을 보내고
1979년 10. 26. 박대통령마져 총탄에 가니
시원한 면도 있었지만 아쉬운 면도 있었다.
1980년 서울의 봄에 3김이 각축을 하다가
난데없이 전두환 소장이 판을갈아 엎고 싹쓸이를 했다.
이게 또 무슨 변고인가.
부정축재자, 3청교육대, 이런 초법적인 조치를 취하여
국민들의 원성은 샀지만 사회기강하나는 끝내줬다.
인플레이션을 잡아 물가도 안정시켰다.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을 계기로 소위 좌파 운동권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다.
그 뒤 무수한 자생적 운동권이 생겨났지만 전두환의 우직한
철권정치에 당해내지 못했다.
노태우란 물렁한 대통령이 나와 3당합당이 되고
1988년 올림픽이 개최되고 우리는 또한번 도약한다.
세계에 우리는 더이상 후진국이 아니고
어느새 중진국 중에서도 상위에 올라가고 있었다.
1990년을 전후하여 땅값이 올라가고 마이카 시대가 오고 있었다.
너도 나도 땅 투기를 하고 은행 빚 내어 사업을 벌이다가 보니 은행이자 갚기도 어렵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돈이 떼일지도 모르고 어떨 때는 대출자와 짜고 대출해 준다.
1992년경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의 기치를 내걸고 군부를 숙청했다.
정치적으로는 상당한 긍적적인 면이 있었지만 경제는 서툴었다.
인기정책을 남발하여 효율성은 떨어졌다.
개인이나 회사나 국가 모두 경제의 내실을 다지지는 않고 투기에 골목한다.
되는 일이 없다.
경부고속철은 1995년경 시작하여 10년만에 대구까지만 되고 아직 언제 완공될 지 모른다.
미국등 국제 자본은 한국에 투자를 해 놓았는데 한국이 너무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좀 손봐야 겠다고 하면서 큰손들이 달러를 한국에서 철수시키니
1997년 하반기에 3개월만에 달러 보유고가 바닥났다.
북한은 달러러 없어도 살지만 우리는 석유를 비롯해 달러가 없으면 1달을 버티기 힘들다.
IMF에 두손 들고 1997. 12. 깡드쉬가 우리나라 경제대통령이 되었다.
그 와중에 김대중은 오랜 숙원을 이루어 1998. 2.경 대통령에 취임한다.
달러가 부족하니 달러를 벌어 오기 위하여는 우선 기업을 외국에 매각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금도 모아서 외국에 내다 팔았다.
그 때 수많은 기업이 외국에 넘어갔다.
통째로 경영권이 넘어간 대기업도 있고 대기업 주식은 절반이 외국자본이었다.
그래서 달러는 상당히 늘어 IMF를 졸업하게 된다.
그 때쯤 모바일 산업을 비롯한 IT산업, 벤쳐기업이 전통적인 굴뚝 산업을 밀어내고 있었다.
굴뚝은 더이상 한국에 버티지 못하고 중국으로 도피한다.
우리가 그 때 부터 중국과의 무역이 늘어
현재는 미국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지리적으로는 가까워
교역이 미, 일, 중이 엇비슷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2002년경 노무현 정부가 탄생하였다.
참여정부는 디제이 정부보다 더 좌익적인 정책을 폈다.
종합부동산세 등등 각종 증세정책을 통해
세금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공무원의 조직은 늘고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큰정부를 지향하고
복지예산은 대폭 증액되었다.
국민들은 카드깡을 이용하여 자기 소득 이상으로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강남을 제외한 전국에서는 재개발, 재건축 열풍이 불었다.
2003년 까지 1달라에 1300원 하던 원화는 점차 절상되어 2007.에 900원까지 떨어지니
실질성장으로 5000달러, 원화절상으로 5000달러를 벌어
우리는 어느새 국민소득 2만달러 가까이 가게 되었다.
2007. 하반기부터 우리는 10년간의 좌익 정권에 몸살을 앓아
일찌감치 보수정권의 탄생은 기정사실화되었다.
살얼음 판을 걷기는 하였지만 이명박이 과거 현대건설의 신화,
서울시장으로서의 추진력을 인정받아 49%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된다.
인제는 우리가 경제회복이 되겠지 했는데
취임도 하기 전에 유가가 올라 6개월만에 거의 2배나 올랐다.
경제성장은 커녕 후퇴를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다시 한번 도약을 해야 한다.
도약을 하지 않으면 후퇴를 한다.
개인도 국가도 꿈이 없으면 망한다.
건축도 설계도가 없으면 안되드시
나라도 꿈이,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꿈, 어떤 설계를 하고 있는가.
어떤 모델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
가계는 절약하고 세금은 쥐어짜서 경제를 돌리면
후퇴 내지는 정체된다.
IT산업은 한계점에 다다랐다.
강북재개발도 안된다.
대운하도 안된다.
쇠고기 개방을 해서 미국과 한판 붙는 것도 안된다.
공기업 구조조정도 안된다.
건설시장은 올해 이래로 거의 신규사업이 정지되었다.
그렇다고 해외건설에 나서봐야 현지인을 쓰지 우리나라 노동자 안쓴다.
대운하, 쇠고기 파동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어떤 꿈을 꾸는지 알 수 없다.
단순 과반수가 싫어한다니 할말은 없지만 다시한번 냉정히 생각해 보시는 것이 어떨지.
첫댓글 글을 읽으니 감동의 대하드라마 한편을 보는것 같습니다. 서민경제가 어렵고 정부의 실정이 두드려지지만 국내외적으로 악재 요인도 많고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못한 정부를 자꾸만 채찍만 가할게 아니라 기다림의 미덕도 필요한 시점인것 같습니다. 현호오빠의 충정어린 절규처럼 도약하지 않으면 나락으로 도퇴되는 현실에서 금반지빼서 파는 심정으로 온국민들의 한마음으로 구국의 길로 걸어야할 것입니다. 오라버니들의 애국심 깊이 되새기겠습니다.
전 무슨 일이 있으면, 가만히 잇지를 못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법원에 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사석에 앉으면 전부 나라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자기는 나서지 않고 숨어버립니다. 떳떳하게 말하지 않고 뒤에서 불만을 아무리 하면 뭘합니까. 님은 적극적인 성격이 저와 닮았어요. ㅎㅎㅎ
선배님,,한편의 대하드라마 저작권없이 스크랩해감을 용서바랍니다...
좋은 글, 좋은 생각들...뒤 늦게 들어와서 읽었네. 많은 생각이, 만감이 교차한다 그러나, 하여튼 좌우간 마음이 울적했네.이제, 정말 이런 나이가 되었나보네. 나 보다는, 내 자손들이 살아 갈 나라... 그 나라 걱정이 앞서는 그런 나이가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