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13살.
아버지는 오늘도 튀밥을 튀러 나가셨다. 아버지께서 튀기는 것은 옥수수, 쌀, 보리쌀, 떡대, 누룽지, 콩, 땅콩, 등등 못 튀기는 것이 없었다. 특히, 떡대를 튀기면 그 크기가 네 배로 불어난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아버지는 마술사처럼 보였다.
원통형 기계에 곡식을 담고 불을 지핀 다음 계속해서 돌리면, 온도계의 온도는 계속 올라갔다. 곡식이 튀겨지기 적당한 온도로 올라가면 아버지는 그 무거운 기계를 불끈 들어서 튀밥 튀는 통에 탁 걸치고 뚜껑을 힘차게 열어 젖혔다.
‘뻥…….’
우렁찬 굉음과 함께 내부와 외부의 압력 차에 의해서 곡식은 헤픈 웃음을 크게 웃으며 뿌연 수증기 안으로 사뿐사뿐 내려앉아 쌓이곤 하였다.
한 번 튀기는데 300원이었다. 큰 명절이라도 다가오는 때는 새벽 두시까지도 튀밥을 튀곤 하였다.
"덕길아! 오늘은 신월리로 갈 테니까 학교 끝나면 오너라!"
“예. 아버지.”
나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아버지한테 가야 했다. 학교가 끝나서 집에 오면 어머니는 밭에 가시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찬장 문을 열어보았다. 찬 밥 한 공기가 남아있었다. 얼른 찬장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생 멸치에다 고추장을 찍어서 찬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딱 맞았다. 그 조차 없을 때는 솥에 고구마를 쪄 놓고 어머니는 밭에 나가셨다. 약간 눌어붙은 고구마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두어 개를 먹으면 금세 배가 불렀다.
용돈이란 것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처절했던 가난 속에서도 가난이 가난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더 큰 부자의 상황에 처해보지 않았기에 당연히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려니 했던 것이다. 부자였던 사람이 망해서 가난해지면 더 살기 힘들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나는 키가 나보다 큰 짐 자전거를 끌고 아버지한테 갔다. 페달이 닫지 않아서 한번 크게 굴린 다음, 한 바퀴 돌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페달이 위로 올라올 때 페달을 밟아야 했다. 한번은 언덕을 내려오는데, 내려오다가 다시 오르막길이 있고, 그 위에서 좌회전을 해야 하는 길이 있었다. 오르막길을 오르기 위해서는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늦추지 말고 달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정없이 달렸다.
오르막길을 단숨에 올라갔는데, 자전거의 원심력을 계산에 넣지 못하고 달려서 나의 자전거는 언덕에서 좌회전을 하지 못하고 수로로 그냥 첨벙 하고 말았다. 물 높이가 목덜미까지 차는 깊은 개울에 자전거까지 처박고 말았다. 연거푸 물을 마셨다. 수영도 하지 못하는데 살긴 살아야 하겠고, 자전거도 끌고 나와야 하겠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난, 살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 하여 수로 가의 풀을 잡고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그 후 그 내리막길만 나오면 긴장부터 하게 되었다. 지금도 차를 몰고 가다가 커브길만 나오면 그 때 일을 떠올리며 조심운전을 한다.
서산에 땅거미가 꾸역꾸역 내려오는 늦은 저녁까지도 아버지는 연신 기계를 돌리고 계셨다. 무척이나 반가우신 듯 껄껄 웃으시는 아버지 옆에 나도 쪼그리고 앉아 기계를 돌렸다. 기계를 돌리면서 단순히 기계만 돌린 것은 아니었으리라. 세월도 돌리고, 추억도 돌리고, 아련한 일상의 단면까지 돌리고 또 돌렸으리라.
아버지는 나무를 잘게 자르고, 사람들이 가져온 곡식을 일일이 정리를 하셨다. 튀밥을 튀기러 오신 분들이 많으면 그만큼 집에 돌아갈 시간도 길어졌다. 그러다, 같은 반 여학생이 튀밥이라도 튀기러 올 때는 왜 그리 창피하던지 그 여학생이 돌아갈 때까지 나는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동네를 놀러 가면 나의 별명은 튀밥장사 아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동네를 가기 싫었지만.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 관계로 할 수 없이 동네를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정이 되어서야 달을 태우고 오는 길에 아버지는 판소리 한 대목을 부르면서 집에 가셨다. 몸은 피곤해도 방바닥에 오늘 번 돈을 펼쳐 놓으시며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보면서, 막연하게 장사의 의미를 체험했었는지도 모른다.
그 아버지가 지금은 안 계신다.
세월도 변하고 강산도 변하고 또한 장사도 변했다. 내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튀밥장사도 그만 두셨다. 세월이 변하니까 튀밥을 튀러 오는 사람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기계는 녹이 슬 대로 슬어 마루 아래에 뎅그러니 널브러져 있었다.
그 기계가 녹이 슬어 가는 두께만큼이나 아버지를 보낸 세월도 늘어만 갔다.
내 아버지…….
첫댓글해피도 지금 옥수수 뻥튀기 먹고 있습니다..입이 궁금할때마다 군것질 거리고 먹는데 물려서인지 이젠 정말 맛 없어요..어쩌다 유혹을 못 이기고 뚱뚱이 간식인(?) 냉동실에 있는 커피맛 위즐이나 와플을 하나 꺼내 먹으면 어찌나 맛이 좋던지..ㅎㅎㅎ 어릴적 우리동네에도 뻥튀기 아저씨가 자주 오셨었답니다..학교갔다 돌
첫댓글 해피도 지금 옥수수 뻥튀기 먹고 있습니다..입이 궁금할때마다 군것질 거리고 먹는데 물려서인지 이젠 정말 맛 없어요..어쩌다 유혹을 못 이기고 뚱뚱이 간식인(?) 냉동실에 있는 커피맛 위즐이나 와플을 하나 꺼내 먹으면 어찌나 맛이 좋던지..ㅎㅎㅎ 어릴적 우리동네에도 뻥튀기 아저씨가 자주 오셨었답니다..학교갔다 돌
아 오는길에 동네한복판에서 아이들이 왁자지껄 모여 있으면 그날은 틀림없이 뻥튀기 아저씨가 와 계시는 날이었지요..기계를 돌리던 아저씨가 온도계를 들여다보고 기계 손잡이를 하늘로 올리면 우리들은 꺅꺅 거리며 친구와 서로 귀를 막아주곤 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