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을 시작한지도 어언 1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었지만 변변한 난 한 촉 캐어보지 못하고 세월만 보낸 것 같다.
그간 길에 뿌린 기름이 얼마인고,,
하지만 좋은 선후배를 만나서 함께 산행을 한다는 즐거움 하나로 나는 오늘도 도시락 하나 메고 집을 떠난다.
그간 웃지 못할 많은 사연들을 어찌 글로 표현 할 수 있겠냐마는 2001년 2월 산행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기를 바라며...
그 날 오후에 이현재 난우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서 진도로 난 채집을 가잔다.
오래 전부터 섬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에 대답을 하고서 준비를 하여 이현재, 정남석 선생과 초면이 강소장과 인사를 나눈 후
오후 5시를 조금 넘겨 거창을 출발, 진주, 순천을 거쳐 벌교로 가는데 중간 중간 진눈깨비가 내려 걱정 속에도 우리는 진도를 향해 순조로운 운행 속에 해남과 강진 삼거리가 보일 쯤 음주 단속을 하기에 자신 있게 한번 불고서 통과, 진도 읍에 들어서니 밤 10시, 여관을 정하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하여 근처 횟집에서 회와 소주를 한잔하고 잠을 청하니 벌써 새벽 2시, 아침 8시에 배가 떠난다는 안내자 강소장의 말에 6시에 기상을 하여 부두로 출발, 페리호에 자동차를 싣고 하조도에 도착한 것이 9시경이었다.
눈 속에서는 난초만 자라는 줄 알았는데 섬 곳곳에서는 아직 무, 배추가 한창 노지에서 자라고 있는 한겨울 풍경에 놀라운 따름이었다.
현지 안내자의 집에 도착하여 따뜻한 커피를 한잔하며 섬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엽예품보다는 화물이 기대된다는 소리를 듣고, 민박집을 구하니 아주머니 왈, 몇 년 전에 아들이 집 앞 야산(약100M거리)에서 중투 4촉을 산채하여 묵은 밸브는 산에다 심어놨다는 이야기에 그 장소를 찾자고 하였지만 알 수가 있어야지...
짐을 풀자마자 산행을 하고픈 이, 정선생을 따라 나서 사람들이 찾지 않았을 것 같은 집 근처의 야산에서 산행을 시작하였으나 물틴 잎 하나 발견하지 못하고 손톱 밑에 푸른색만 돌만큼 꽃만 까보고 또 깠으나 공탕에 허벅지며 다리에는 망개가시에 할킨 상처만 안고서 돌아오니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배어있는 점심이 기다려준다.
식사 중 오후 산행을 의논한 결과 상조도로 가잔다.
상・하조도는 다리고 연결하여 자동차로 약 20여분 거리에 있는 서북방향의 산으로 산채를 시작하였으나 생각보다는 난 구경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한참을 가던 중 약 9부 능선쯤에서 무더기 난 3개를 발견하여 꽃을 까보니 역시나 같아서 무심코 던져 버리는데 눈에 하얀 색만 확 들어오기에 다시 주워 자세히 보니까 우리가 기대하던 소심이었다.
뿌리가 다칠 새라 잎이 떨어질까 조심조심하여 손에 들고서 산등성이를 넘어 현재에게 보여주고서 뿌리의 흙을 털고 보니 무려 19촉이나 되었다.
이 때 소심란 옆에 색화가 있을 가능성에 다시 그 자리를 찾아서 주위를 얼마나 헤매었는지...
시간이 되어 하산을 하니 얼마나 따뜻한지 할머니가 쑥을 캐고 있기에 5000원어치를 사 가지고 하산을 하니 강소장이 저 밑에서 기다린다하여 가니 경찰이 와서 강소장을 검문하고 갔다한다.
저녁 식사 후 현재 안내인의 집에 가서 목포에서 온 다른 산채꾼(현재 왈, 산채꾼과 애란인은 차원이 다르다고 함) 문어를 삶아서 소주 잔치를 벌이며 난에 대한 많은 조언을 듣게되고 또 내일 산행을 얘기 할 때 벌써 시간이 11시.
다음날 아침 우리는 김밥을 싸 가지고 목포에서 온 다른 일행과 배를 전세 내어서 관매도로 산채를 떠났다.
관매도에서 우리 네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산을 하였는데 꾼은 역시 달랐다.
주금화 서호반 등을 채집해 오는 것이 아닌가. 부러워서 침을 삼키고 있는데 그 일행 중 한 명이 주금화 5촉을 떼어서 나를 주는데 무어라 감사의 말도 못하고 인간의 정을 듬뿍 맛볼 수 있었다.
배가 3시에 온다고 약속을 하였는데 마침 만조시간 이어서 일행이 있는데 배를 정박할 수 없어서 우리는 해안가 절벽을 타고 넘어서 겨우 배에 오르니 선장이 하는 말, 내일은 태풍 주의보가 발령된다나. 급히 조도로 돌아와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집을 챙겨서 부두로 갈 때 민박집 아주머니가 미역을 가지고 가라면서 하나씩 선물을 하는 게 아닌가.
또 현지 안내인의 집에 가니 무우를 한 포기씩 싸주면서 육지에 가서 먹으란다.
얼마나 고마운지 어찌나 좋은 인심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온 게 얼마나 후회되는지...
처음 보는 우리에게 밤 11시까지 술상을 봐주시며, 다음 날 산채에 필요한 김밥을 산에 다니면 배가 고플까봐 양도 많이 하여 4인분이나 불평 한마디 없이 기쁜 마음으로 대하여 주던 맘씨 좋고 후덕한 아주머니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다시 만날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면서 우리는 거창으로 향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