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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둥근건물이 등잔박물관임을 알려주는
진입로에 있는 등잔 모양의 대형조형물
《등잔박물관, 마가박물관 관람 후기(창덕19 카페 펌:글쓴 이-이원금)》
오늘은 용인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등잔박물관을 탐방했다.
13기 최혜자선배님부부가 운영하시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등잔박물관이라는 자랑스런 곳이다.
12시에 에덴힐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1시에 해설사가 예약되어 있어
등잔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우선
1호차는 경복궁역에서 유풍형회장이,
2호차는 양재역에서 이원묘총회장이,
3호차는 서현역에서 최연식부회장이 ,
4호차는 우부형 총무가
그리고 수지에 사는 김양숙이 따로 와서 12시에 모였다.
6월 30일이 표영희(주연)이 생일이라고 본인모르게 우부형총무가 케익을 사와
(최연식부회장, 홍옥림도 일조했다고함) 모두 기쁘게 생일축하를 해 주었다.
우리는 맥주만 사라고 했는데 주연이는 오히려 감동을 받았다고
자기가 오늘 점심을 살 수 있게 해 주어 고맙다며 굳이 전액 쏘겠다고 하면서
거금의 식사비를 냈다.
(불고기 23인분, 맥주 6병 막걸리 1병 약251,000원 , 불고기23 만원 , 술 21,000원)
정말 고맙고도 미안했다.
주연아 ! 고마워!!
맛있게 잘 먹었어 .
그리고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이원묘총회장이 주연이가 식사비를 내기 전, 당일회비로는 돈이 부족할 것 같으니 내가 입장료를 부담하겠다며 42,000원 슬며시 쥐어 주었다. 모든면에 신경써 준
이원묘총회장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과 박수를 보냅니다.
원묘야!!! 고마워.
1시에 등잔박물관에 도착하니 관장님이 반갑게 우리를 반겨 주셨다.
관장님의 유머와 등잔의 유래와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를 미리 듣고
해설사가 해설을 해줬다.
전기가 없던 시절 인류는 모두 등잔을 썼지만 등잔박물관은
'세계에 단하나뿐'이라는 자부심과 '경기도에 박물관을 기증하셨다'는
박물관장님의 말씀에 모두 큰 박수를 보내며 감동했고
선배님 부부가 한없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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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탐방은 농기구를 구경했다.
대부분 내가 자랄때 본 것들이 많아 더 정겹게 느껴졌다.
연자방아, 마차, 절구, 체, 광주리, 맷돌, 맷방석 등등....
하지만 기름짜는 틀과 소량의 곡식을 찧는 기구 2가지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기름짜는 틀은 유럽에서도 거의 똑같은 것을 본적이 있다는 관장님 말씀,
큰 통나무 가운데 구멍을 뚫어 콩,깨등을 넣고 그 틀위에 무거운 돌과 물건들을
올려 놓는다고 했다.
신기하면서도 조상의 슬기에 또 한 번 놀랐다.
박물관 정원에 있는 24명이 둘러 앉아도 될 정도로 큰 정자에서 수박, 자몽(신영숙), 방울토마토 파티가 열렸다.
최연식이 수박을 시원하게 아이스박스에 넣어와서 모두 감탄하며 맛있게 수박을
먹으며 즐거운 여유를 즐기는데, 우부형의 일품솜씨 맛있는 약식과 시원한 냉커피,
누군가가 가져온 방울 토마토, 또 수박을 잘라 왔다, 진심으로 고맙고 또 고마웠다. ( 꾸벅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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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박물관 가까운 곳에 *마가박물관이 있었다.
마가박물관은 '마가의 다락방이 작다'는 뜻과
'말의 집'(관장님이 말띠)이라는 뜻이라고 관장님이 설명해 주셨다.
관장님은 홍대교수님으로 35여년간 재직하시고 정년퇴임하신 유명한 분이시다.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로 나뉘어 있고 회화,조각, 공예, 사진, 영상, 설치등
다양한 분야를 소개한단다.
현재 소장한 타피스트리 작품은
2001년 헝거리 문화유산주최 구제타피리스트전에서 최고상을 받은 유럽에서도
인정받은 작품이라한다.
면류관과 십자가 그리고 검정바탕에 화려한 무늬로 되어 있는 작품은
한올 한올 짜가며 작품을 만드는데 열심히해서 1년이상 걸린다고 한다.
모두들 그 섬세함과 노력에 감동했다.
면류관과 십자가를 본 친구들은 감동에 감동을 더한것 같다.
어느 성당에서 면류관을 소장하고 있고 같은 작품을 다시 만들었다고 했다.
관장님의 고향공주가 태풍'셀리'로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을 표현한
'기상도'도 인상적이었다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양숙이는 본의 아니게 먼저 귀가해야하는 친구(현교,재봉,혜연,옥림과 손녀딸) 들을
차에 태워 떠나게 되어 못내 아쉬워하며 먼저 출발했다.
양숙이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하다.
며느리 생일 가족모임도 일요일로 미루고 차를 갖고 혼자왔는데 적지만 기름값도
못주고 먼저 가게 만들고..... 양숙아 , 고마워!!!
근처에 정몽주묘소에 들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왜 정몽주묘가 여기에 있을까?
궁금했는데 여러가지 설을 설명해 주었다.
포은 정몽주가 *선지교에서 방원에게 피살되자
그 자리에서 대나무가 자라나 다리이름이 *선죽교가 되었고
1401년에 영의정으로 복권되고, 1406년 태종의 명에 의해 천묘되어
큰아들과 증손녀 사위연안이씨 이석형선생의( 영의정?을 지냄) 묘가 있는
용인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묘소를 멀리서만 보고 대부분이 못 올라갔다. (영숙과 영한이만 올라감)
정자역 인근 혜숙이네 아파트에 차를 주차해 놓고
팥빙수와 커피를 마시고 나오며 혜숙이네 집에 간다고 했다.
나는 바빠 못가고 먼저 왔다.
친구들이 갈수록 우정이 두터워짐을 느끼며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친구들아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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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직도 소녀같으신 선배님들의 멋진나들이셨네요~ 작년에는 31회도 자주 다녔는데
올해는 제주여행이후 다들 바쁜것 같습니다.
정몽주교가 용인에 있는걸 알았을때는生居鎭川 死居龍仁 이란 말이 있어 그러려니 했었는데
진짜 선죽에서 돌아가신분이 용인으로 천묘가 되었는지 신기합니다.^^
친구들과의 문화탐방은 더 없는 즐거움었답니다.
그날은 지적 학습으로 머리 충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