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은이 한국, 일본, 유럽을 거쳐 세계 최고의 무대인 미국남자프로골프(PGA)투어에서 정상을 밟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건 역시 가족이었다.
골프에 몰두하기 어려웠던 경제적 사정, 남들보다 7,8년 늦게 시작한 운동 등 양용은에게는 적지않은 핸디캡이 있었다. 그러나 10년간 곁에서 묵묵히 내조해준 아내 박영주씨(35)와 현우, 이수, 경민 등 든든한 세 아들은 그에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할 수 있는 힘이었다.
양용은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고, 그의 가족들은 그의 꿈을 믿어줬다. 이제는 유명한 일화가 된 신혼시절. 경기도 용인에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 방에 살던 2000년대 초반 양용은은 한국 투어에서는 톱10에 들어봐야 월급쟁이보다 못한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부양해야 할 가족에게 면목이 없었지만, 더 큰 물에서 놀아야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린 오픈에 처음 나섰을 때 18위를 차지한 양용은은 꽤 두둑한 상금을 받았다. 이때 돌아오면서 마스터스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골프장 클럽하우스 사진을 사왔다.
친구인 박경구 프로와 함께 아내가 차려준 밥상을 받으며 양용은은 저걸 왜 샀느냐는 말에 "멋있잖아? 언제 한번 나가봐야지"라며 흐뭇해했다. 이 때만 해도 미국 진출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시기지만 그의 도전정신이 살아있었던 증거다. 하지만 이 사진의 가격은 당시 돈으로 80만원. 5개월치 방세가 넘는 큰 돈이었다. 양용은은 아내에게 2만원 주고 샀다고 거짓말을 했다. 또 얼마 뒤에는 역대 마스터스 우승자 리스트 사진을 한데 모아놓은 걸 또 사들였다. 이 사진은 용인의 셋방을 거쳐 지금 미국 댈러스의 집에도 걸려있다.
2006년은 양용은이 도약하는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산토리오픈에서 우승한 양용은은 막내아들 경민의 돌잔치때문에 국내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이때 한국오픈 초청을 받았고, 별 기대없이 "귀국하는 김에 나가지 뭐"라며 출전 결정을 내렸는데 우승을 했다. 이 해에는 HSBC 챔피언십까지 휩쓸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 때문에 양용은은 막내아들을 복덩이라고 부른다.
당시 양용은의 아내 박영주씨는 "일본투어에서 2승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어떻게 견뎠냐"는 질문에 "한때 용은씨가 그만둘까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가족들에게 미안했던 거다. 하지만 당신이 하고 싶을 때까지 해보라 우리는 괜찮다"고 격려했다고 밝혔다. 그 남편에 그 아내가 있었기에 오늘날 메이저 챔피언 양용은이 탄생할 수 있었다.
김성진 기자/withyj2@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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