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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우석 고등학교 3학년 서현동 (접수번호 : 운문 - 31)
장 마
거친 능선 따라 기지개 펴는 먹구름
물총새떼들이 나래깃 부비며 날아온다
발 뻗을 공간뿐인 화성댁 쪽방으로
흥건하게 스며들던 물총새 울음소리가
화투치던 할머니들 떠나가 버린
노인정의 창가를 툭툭 두드리고 있다
어젯밤 가재도구 떠내려간 흔적들 명명한
마을언덕 언저리마다 날아드는 물총새,
부리로 쪼아댄 너와지붕위로
촘촘한 구멍들 수북이 내려 앉아
촉촉한 물총새 울음소리
자꾸만 스며들어간다
. .
빗물이 발목까지 차오르는 마당 안에
물총새들 잠시 둥지를 틀었을까
밤새 요란하던 날갯짓이 고요해진 마을
애써 삽자루로 퍼내는 마을이장의 얼굴엔
짙은 안개가 깔려 있다
또다시 시작된 물총새들의 이궁동성,
유난히 따갑게 스며드는 빗소리는
부리 안 가득 마을을 삼켜버렸다
남제초교 강당 대피소로 모여드는 사람들
물총새가 천장을 마구 쪼아댈 무렵
눅눅해진 앵커 목소리에 귀기울여 본다
‘호우경보’ 자막만 깜박이는 브라운관
물총새떼가 희망 한 줌 송신하던
안테나마저 쪼아댄 그 해 여름,
그들의 울음소리
강당 깊숙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차상 1
부산 남일 고등학교 3학년 황진호 (접수번호 : 운문 - 2)
장 마
나는 욕하지 않겠다.
당신이 우리의 활력소를 묻어버려도
나는 미워하지 않겠다.
피땀 묻어 엉긴 저 들판의 넓은 들
당신이 모조리 삼켜버려도
나는 결코 당신을 증오하지 않겠다.
당신이 노오란 섬광 맺힌
비명을 지를 때
우리는 오만과 야욕으로 뭉친
더러운 비명을 지르는데
당신의 고통에 찬 눈물이
온 세상을 찔러 부술 때
우리는 온갖 오물과 쓰레기로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내는데
당신이 마침내
모든것을 눈물안에 가두었을 때에도
우리는 동정의 가면을 쓴 채
속은 위선으로 뭉친 쓰레기로 변하는데
우리들 중 그 누가
당신을 증오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긴긴 시간동안 참았던 그 무언가를
그에 비하면 짧지만 긴 시간동안
풀어놓고 가는 당신
이 세상의 어느 누구가
당신의 그것처럼
메말랐던 대지의 갈라진 목을
축여줄 수 있는가?
어느 누구가
썩은 대지의 더러운 오물을 씻어내고
새 생명을 싹트게 하는가
재앙이지만 재앙일 수 없는 당신
그렇기에
나는 당신을 욕하지 않는다.
미워하지도 않는다.
증오하지도 않는다...
차하 3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김혜수 (접수번호: 운문 - 13)
장 마
폐가에 들린 마지막 소리는 빛소리다
혼이 나간 거죽
언제나 죽음 곁엔 벌레가 꼬이지만
물고 ㅏ함께 흘러간 삶은
아무것도 다가오지 않는다
장마가 끝나면
폐가는 성대를 잃고
고요히 잠든다
장마 끝에 남은 것,
침묵이 서 있다
햇빛이 장마처럼 쏟아지는 오후
고요한 곳엔 빗소리의 지문도
남지 않았다
소리를 잃은 날들이 지나간다
참방 1
서울 금옥여자고등학교 3학년 송현정 (접수번호: 운문 - 77)
장 마
잿빛 하늘이 내려앉은 검푸른 바다 위
먹구름이 뱉어내는 한여름의 울먹임은
기울어진 수평선을 따라
거센 장대비를 쏟아 붓고 있다
마당 한 편에 서서
노을빛에 젖은 삼촌의 헐거운 그물을 알리는 할머니,
빗방울을 머금고 축 늘어진
주인 잃은 장화 한 켤레 훈장처럼 찍혀
방 안으로 들여놓으며
할머니는 서랍 깊숙이 숨겨놓은
빛바랜 사진 속 바다로 떠난 삼촌을 떠올린다.
몇 년 전 다 헤진 낡은 꿈을 싣고 떠난
세평 남짓한 삼촌의 배 한 척,
둥실대며 떠다니는 나무판자들과 황소들을 따라 수몰 속으로 사라지고
장마철만 되면 삼촌이 오는 것 같다며
매년 여름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할머니
눈물로 젖어 불은 발을 찰박이며
폭풍우 몰아치는 바닷가를 서성이고 있다
할머니의 가슴 깊이 불어닥친
한여름의 장마는 언제쯤 끝나는 걸까
푸른 멍빛으로 수놓은 하늘 아래
밤새 울분들을 토해내는 할머니,
겹겹이 진 파도자락에
일렁이는 그리움을 풀어넣으며
빗줄기 사이로 질척한 상처들 애써 실어보내고 있다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이
하나 둘 수평선 너머로 숨어들어가는
늦여름의 파도자락 위로
물살에 휩쓸려온 삼촌의 잃어버린 장화 한 짝이
할머니의 굽을 그림자를 뒤쫓고 있을 무렵
잠시, 장마가 그치는 것도 같았다.
참방 2
김해 중앙여자고등학교 2학년 정은진 (접수번호: 운문 - 59)
장 마
한줄기 희망에 목마른 넓은 대지위로
굵은 빗방울이 무심히 떨어져
조용히 스며들 적
그 땅의 중심에 위태로이 서있는
유리나무의 양팔을
꺾어 조각내버릴 듯이 내리치는
물의 빗살을 갈라놓았다.
그 순간
유리나무는 짧게 반짝거리다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다시
끊임없이 쏟아내리는 장마에
유리나무의 조각은
흔적도 없이 쓸려나갈 뿐이었다.
하지만
미처 씻겨내려가지 못하고
깊이 베인 상처와 아픔의 유리조각은
고인 물과 함께
점점 썩어가는 퀴퀴한 냄새를 냈다.
차상 2
신도 고등학교 3학년 장세빈 (접수번호 - 산문 31)
제목 : 잠시나마
경남 진주의 한 시골마을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이구, 딸이여 딸.”
하는 동네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사람들의 축복속에서 6남매 중의 막내로 태어났다.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왔던 엄마는 고3이 되던해 병으로 아버지를 잃고 원하던 대학진학을 포기한 채 아빠와 결혼을 하셨고, 그렇게 정든 시골을 떠나야했다. 조금의 설렘과 기대를 안고 시작한 도시생활이었지만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가정형편은 어려워졌고 엄마는 자연스레 시골에 있는 가족과의 연락이 뜸해졌다.
“요즘 장맛은 다 가공되서 옛날 장맛이 안난다. 그땐 정말 장에 상추만 있어도 밥이 꿀떡꿀떡 잘 넘어갔는데.”
이렇게 사소한 음식거리 하나에서부터 소 키우고 뱀 잡던 일담까지, 엄마는 가족들과 옛 일들을 말씀 하시면서 그리움에 눈시울을 붉히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중 밀양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이모와 연락이 닿았고, 가족들의 안부와 고향 이야기를 물으시며 기뻐하시던 엄마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6월 초의 어느 날, 푸른색 무성한 철길을 한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밀양역. 오랜만에 뵙는 까맣게 그을린 피부의 이모는 우리 모녀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밀양역 맞은편에 위치한 비닐하우스로 안내했다. 매끈한 초록빛 물에 길고 탄탄하게 뻗은 자태를 뽐내는 고추를 따면서 두 분은 옛 이야기를 꺼내 회상에 잠기는데 여념이 없으셨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지만, 고추따느라 힘든것도 모르시고 끊이지 않는 웃음을 보이시는 엄마를 보면서 시골생활과 그 속에서의 가족들이 엄마에겐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내리쬐는 햇빛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시는 두 분의 모습이 옛 시골마을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한 편의 흑백영화가 떠오르는듯 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일을 하고, 비닐하우스에서 먹는 저녁밥도 처음이라 당황하는 나와 달리 엄마는 갖은 나물들과 그렇게 그리시던 시골 장에 밥을 비벼드시며 오랜만에 밥을 맛있게 그리고 많이 드셨다. 온통 나물이라 난 뭘 먹어야 할지 도통 손을 대지 못했지만, 행복한 모습으로 이모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저녁을 드시는 엄마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옴을 느꼈다. 땅거미가 내려앉는 어스름한 해질 무렵, 엄마와 난 이모에게 다음을 약속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몇 발을 옮겼을 때, 뒤에서 허겁지겁 달려나오신 이모께서 양 팔 가득 무거운 짐을 엄마 손에 들려주셨다.
“영화야, 장 떠서 조금 담은거랑 밭에서 직접 키운 고추랑 상추, 그리고 또 이건 나물 반찬 몇 가지 담은거다. 단디 챙겨가서 밥이랑 먹어라잉, 밥맛 없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아까 저녁을 먹으면서 지나가는 말로 요즘 밥맛이 없어 이렇게 맛있게 밥 먹은게 오랜만이라고 하셨던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이모는 한 가득 반찬을 챙겨주시면서 끝까지 엄마 걱정을 하셨다. 눈시울이 붉어진 엄마는 서둘러 짐을 받아들며 조만간 꼭 들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뒤돌아섰다.
“너한텐 먹을거 하나 없는 저녁이었지만 엄마한텐 진짜 최고의 저녁이었어. 몇 시간 동안 앉아서 고추 따는것도 힘든 줄 모르고, 잠시나마였지만 옛날 어렸을적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어. 온가족이 행복하게 살던 그 시골에서 어리광 부리던 막내딸이 된 것 같았거든.”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걸 느꼈단말이야? 우리 엄마 명상가야 완전.”
“그러게, 단 몇 시간이었는데 왜 그런 느낌 있잖아. 타임머신 타고 몇 십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 오늘 겪은 건 정말 잠시나마였지만 엄만 평생 잊지 못할거야. 언니가 준 이것들까지도.”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어둑한 시골길을 걸으면서 나 역시 잠시나마 생각에 잠기었다. 지금은 비록 엄마가 잠시나마의 추억을 그리워 하겠지만, 머지않아 멋진 시골길을 가족들과 걸으며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엄마를 만들어 드리겠다고…. 그 때는 잠시나마가 아닌 평생의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 있게 해드리겠다고….
차하 1
양산여자고등학교 1학년 소가영 (접수번호 : 산문 - 3)
제목 : 아빠의 휴식이 담긴 별장
“정말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결국 아빠는 걱정스런 마음을 가득 담아 보는 가족들의 눈길을 뒤로한 채 옷가지만 들고 고향으로 떠나셨다.
회사 택시 운전사인 아빠가 무사고 10년째로 연말이면 개인택시를 받을 수 있는 2006년 8월이였다. 약6개월 뒤면 개인택시를 운전할 수 있는데 혹시 사고라도나 도로아미타불 될까 일을 놓고 고향으로 가시는 것이였다. 집에 일이 생기면 돌아오겠다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무도 살지도 손대지도 않은 빈집으로 가시는 아빠를 보며 우리는 내기를 했다.
“일주일!”
“에이~. 밥도 없이 일주일을 어떻게 살아? 한 3일이면 오실걸?”
“맞다! 똥도 길에다 눠야하는데!”
모두가 금방 아빠가 돌아오실꺼라 믿었다. 어딘지 모르게 횡한 집도 곧 아빠의 웃음소리로 찰꺼라 생각했다.
아빠의 인생에 있어 마지막 긴 휴가일지 모르는 6개월을 핸드폰을 제외한 어떤 문명의 것도 없는 폐가나 다름없는 곳에서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상상도 못했던 것이였다.
그러나 몇일 뒤, 아빠에게서 온 첫 전화를 내가 받았다.
“여보세요.”
“가영이니?”
“아…… 잘 지내고 계시죠?”
“그럼. 오늘 산에서 오미자를 봐서 좀 땃다. 느이 할머니집도 허물고 새로 짓고 있고.”
TV도 컴퓨터도 없는 곳이라 심심해서 낡은 집을 허물고 그 재료를 이용해 새로 집을 짓기 시작하셨다고 했다.
9월초, 아직은 뜨거운 금빛의 태양 아래서 어느 일이 힘에 안 부치겠냐마는 전문 일꾼들도 여럿 붙어야 할 일을 혼자 하겠다니. 처음엔 말도 안된다며 웃었다
한달이 지나고, 가족들이 추석을 맞아 시골로 올라갔을 때에는 다 허물어진 집과 재활용 할 것으로 보이는 건축자재들, 거지차림을 하곤 시커멓게 탄 아빠를 볼 수 있었다. 내가 뭐라고 했냐며 볼멘소릴 하면서 집짓기에 가담했다. 유난히 긴 추석연휴를 저주하며 뜨거운 땡볕아래서 일하고 김치뿐인 식사를 꾸역꾸역 먹었다.
연휴가 끝나고 집으로 온지 몇일이 지나자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열어보자 송이버섯 한 바구니와 오미자 10병이였다. 산에 가서 틈틈이 따서 집으로 아빠가 보낸 것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일을 쉬는 동안 돈을 쓰지 않기위해 시골에 내려가 계신 아빠에게 별로 쓰지도 않을 집은 왜짓냐며 투덜됬던 내가 미워졌다.
아빠의 인생에서 아주 짧은 몇 개월, 아니 어쩌면 아주 길었을 그 기간을 휴식에 썼다면 잠시나마 편안했을 텐데……. 그 ‘잠시나마의 휴식’을 우리가족의 편안함과 바꿔주신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멋진 황토집이 된 아빠의 휴식이 우리 가족의 별장 역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그 황토집의 이름을 ‘잠시나마’라고 붙이는 건 어떨까? 잠시나마 편안히 머무르는 곳, 아빠의 잠시나마 달콤했을 휴식을 바친 곳이라는 의미에서…….
차하 2
신도 고등하교 3학년 박서언 (접수번호 : 산문 - 1)
제목 : 잠시나마
사방은 창문하나 없이 꽉 막혀있었다. 조그만 공간 안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향은 빠져나갈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천장에 부딪혀 허무하게 흩어졌다. 그 모습을 멍하게 지켜보는 내 옆에서 엄마는 통곡하고 있었다. 매케한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눈물 때문인지 나는 몇 번이나, 따가움에 눈을 깜박였다. 하얀 국화 꽃으로 둘러쌓인 사진속에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환하게 미소짓고 계셨다.
화창했던 일요일 아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쓰러지던 엄마와 급히 부축하는 아빠를 보면서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 통을 떨어트렸다. 그 안엔 외할머니께 가져다 드리기 위해 새벽부터 정성스레 쌌던 김밥이 들어 있었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뚜껑이 열리고 안에 있던 내용물들이 쏟아져 나와 바닥을 굴렀다. 옆구리가 터진 김밥을 보며 나는 사정없이 그것들을 짓뭉게 버렸다. 그리고 그 날, 두달이나 소식이 없던 생리가 터지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온 몸으로 통곡했다.
상을 치르는 내내 엄마는 한마디 말도 없이 한 숨도 주무시지 않으셨다. 울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던 내가 가끔씩 눈을 뜨면 엄마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멍하게 영정을 응시하곤 하셨다. 엄마가 너무 우셔서 이러다 몸 속의 모든 수분이 메마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엄마는 흐느끼고 또 흐느끼셨다.
마지막 날, 관을 닫기 전 시신을 보여주기 위해 가족들을 불렀다. 붉은 조명이 소름끼치던 시체실 안으로 들어가자 하얀 꽃들을 이불처럼 두르고선 하얀 얼굴로 누워있는 외할머니가 보였다. 마치 좋은 꾸는 듯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외할머니의 얼굴을 보고나온 뒤, 그동안 밀랍인형처럼 말이 없던 엄마가 나를 내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서언아, 엄마는 사실 할머니가 원망스러웠어. 그거 아니? 몇일 전 내가 찾아 갔을 때, 화장실에서 변기를 막 닦고 계시는 거야. 그래서 내가 뭐를 그렇게 열심히 닦느냐고 물으니까 막 화를 내면서 못 보게 하시는 거야. 알고봤더니 할머니는 검을 똥을 누시고나서 흔적을 지우려 하셨던거야. 사람은 죽기 전에 먹물처럼 새카만 변을 보거든. 할머니는, 당신의 죽음이 가깝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거지. 하지만 그 때문에 임종도 못 지켜드렸잖아. 그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어.”
“……….”
“그런데 아까 마지막으로 할머니 손을 잡는게 갑자기 생각이 나더라구.”
“뭐가?
”우리 작년에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할머니가 병원에 가셨는데 의사가 그러더래. 앞으로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 준비해 두라고. 할머니 집에 티비가 없었던 이유가 왠줄 아니? 차차 물건을 정리하시려구 팔아버리신거야. 그런데 미국간 우리 생각이 나서 도저히 그냥은 못 가시겠더래. 그래서 이 악물로 죽을 힘으로 버티셨던 거야. 의사 말로는 일년 이상을 버틴게 기적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우리 돌아오고 나서 한달 동안 행복하게 지내셨잖아? 진심으로 너희들 보는데 그 순간만큼은 고통이 싹 가시더래……. 그 한달을 위해서, 그 딱 한달을 위해서 일년이 넘게 정신력으로 버티신거야. 아버지가 그러시더라. 느이 엄마가 눈 감기전 이 말을 꼭 전해달라 했다구.. 잠시나마 너무 행복했었다고.. 여태 살아오면서 그 한달만큼 행복했었던 적이 없었다고.. 이제는 얼굴로 봤으니 정말 한이 없다고, 그 말을 듣는데 어떻게 감히 내가 엄마를 원망하겠어…….“
참방 3
연제고등학교 2학년 박지은 (접수번호: 산문 - 28)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았다. 책을 보며 의미를 파악한다. 그러다 어떤 단어를 찾거나 그 내용을 그려본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면 전혀 다른 생각에 희죽희죽 웃고 있고, 시계는 벌써 한 바퀴가 금새 돌아가 있다. 이것은 나의 일과 중 일부분에 해당한다.
나의 삶은 행복한 삶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나의 상상력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상상을 한다던지, 개와 대화하는 상상을 한다던지 하는 창의적이고 참신하지 않지만 중간중간 잠시하는 많은 생각들. 바로 이런 것들이 사람을 여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아침 일찍 등교해서 수업을 하고 밥을 먹고 자습을 하면서 우린 얼마나 많이 잠시동안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수업후 주어지는 10분 마저도 단어를 외우거나 신문을 보거나, 문제를 푼다. 물론, 치열한 입시 결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자투리 시간까지 알차게 보내야 하겠지만 너무나 우리의 삶을 조여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최대의 목표가 좋은 대학에 진학 하는 것인 나를 포함한 고등학생. 삶을 좀더 깊이 있게 살기 위한 생각들은 전혀 없이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획일적인 삶이 괴로운 입시지옥 보다도 숨을 조여 올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도 빨리 지우고 공부에만 전념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에서 문학작품을 배우는 문학시간. 우리는 시, 소설, 수필, 희곡 등을 배운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배울때에도 감상에 젖거나, 감동을 느낄만한 잠시동안의 여유도 없이 선생님께서는 판서를 하시고 우리는 어느 누구 할 것도 없이 펜을 들고 받아적는다. 그러던 어느 날 수필 작품을 배우면서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 이라는 작품을 배웠다. 그 때 또한 밑줄을 긋고 주제와 문체 등을 받아 적으면서도 이 작가가 무얼말하고자 했는지 잠시나마 생각해 보았다. 느긋하게 방망이를 깎던 노인을 통해 “빨리빨리”를 외치던 자신을 포함한 현대인을 비판하고자 했었던 작가. 나는 문득 내 자신을 떠올렸다. 항상 내 안의 여유로움을 찾고 싶어 하면서도 ‘고등학생이니까 이런 바쁜 삶이라도 어쩔 수 없잖아’ 하고는 자신을 위로해 오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더욱 와닿는 작품이었고, 일부분만 배우는게 아쉬운 작품이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하루하루 바쁘게 공부하며 살아가는 고등학생. 나중에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일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샐러리맨들등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너무도 여유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소탐대실’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말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삶을 혹사시키고 있는 우리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버리고 있다.
그러나 작은 것도 탐내지 못하면서 큰 것을 얻길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현재의 삶도 잠시나마의 여유를 갖지 못하면서 미래의 삶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초조한 사람은 불행 하듯이 여유로운 사람은 행복하다. 조여오는 시계와 넥타이는 풀어버리고 공상하기, 창문을 열고 바람마시기 등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참방 4
김해중앙여자고등학교 2학년 송해영
제목 : 잠시나마
작년 봄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높이 걸린 하늘은 유리구슬처럼 빛났고, 활짝 핀 꽃의 자태는 요염하다싶을 정도였다. 길을 가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에 겨워 주체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나를 빼고는. 중학교를 졸업한 나는 봄이 다 지나도록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여러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혼자가 되면 중학교 때 친구들을 그리워했다. 작년 봄이 그리도 아름다웠던 것은, 구겨져버린 내 가슴에 작년 봄이 황홀할 정도로 어지러이 비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봄날의 일이었다. 나는 늦잠을 자서 평소보다 버스를 10분정도 늦게 타게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중학교 때 유난히 친했던 친구가 맞은 편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그 때와 다름없는 남자애같이 짧은 머리는 그동안 전혀 길지 않았다. 게다가 치마를 싫어해 교복도 바지를 입고 있는 것 역시 여전했다. 중학교 때와 다를 바 없는 그 모습에 나는 울컥 눈물을 쏟을 정도로 반가운 마음을 느꼈다. 우리는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보였고, 그 친구 역시 크게 웃으며 손 흔들어 주었다. 너무 뿌듯해, 가슴에서부터 무언가 공같은 것이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뒤로부터 나는 일부러 10분 늦게 버스를 타게 되었고, 그 친구와도 몇 번이나 마주쳤다. 그러면 우리는 그 때마다 조금은 어색하게 인사 나누었다.
그렇게 마주친 적은 많았지만, 약속을 잡아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둘 다 새로운 고등학교 생활이 바빠 중학교 때를 여유롭게 곱씹을만한 여유조차 없었다. 그리고 봄이 다 지나가서 전화기를 들기에는 어색한 감이 들기도 했다.
울산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 친구와 만나고 싶지만 대화거리가 떨어져 어색한 분위기가 되는 것이 두려워 만나지 못하겠다고. 답장은 금방 도착했다. 편지에는 놀라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다니. 걔는 그렇게 생각 안하던데. 너랑 올해 들어 몇 번은 만났다고 하던데.’
그 편지를 읽은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태껏 분명 만난 적은 없었다. 한참이나 생각하던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몇 번이나 마주치며 나누었던 ‘인사’를 그 친구는 만남이라 생각하고 기억의 책갈피 속에 고이 갈무리해 두었던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가슴 한 켠이 싸해졌다.
잠깐의 스침, 다시 그 친구와 마주치면 그 순간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졌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시계를 10분 늦게 맞춰두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참방 5
문현여자고등학교 3학년 정도영 (접수번호: 산문 - 80)
제목 : 잠시나마 그리고
이른 저녁, 거실 한 가운데서 텔레비전이 빛을 발한다. 그 속엔 살구빛이 감도는 두더지가 땅을 파고 있다. 화면 속 두더지는 낭랑한 나레이션과 함께 사냥도 하고 새끼들에게 젖도 물린다. 눈과 귀가 퇴화되어 눈 앞에 있는 먹잇감을 이리저리 놓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짤막한 다리로 굴을 파는 모습이 그렇게 미련해 보일 수 없었다. 엄마, 엄마, 이것 좀 봐! 이런 생물체를 혼자 보기 아까운 생각이 들어 안방에 있는 엄마를 불렀다. 하지만 안방에선 응답이 없었다. 나는 눈을 화면 속에 둔 채 슬그머니 안방으로 걸어갔다.
안방 문을 열자 거울 앞에 서 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상위를 다 벗은 채 둥근 가슴을 내고 있었다. 엄마, 뭐해? 한 쪽 가슴이 이상해. 엄마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린 채 말했다. 뭐가 이상해? 무언가가 만져져. 나도 따라 엄마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물렁물렁 해야할 가슴 속에 딱딱한 무언가가 잡혔다. 불안에 떨리는 엄마를 보자 갑자기 겁이란 놈이 내 목구멍에 올라왔다. 엄마, 병언 가 보자. 엄마는 곧 울 것만 같았다. 엄마의 둥근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건너 편 텔레비전에서 두더지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 했다.
의사가 엑스레이 판에 반들거리는 필름들을 한장한장 끼었다. 하얗게 빛을 뿜는 필름속엔 엄마의 폐부와 앙상한 골격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유방암 초기입니다. 의사는 하얀 막대기로 엄마의 가슴팍을 가리키며 말했다. 의사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잎처럼 들려왔다. 우리 모녀는 멍하니 엑스레이 판에만 시선을 두고 이었다. 왼쪽 가슴 한켠에 새하얀 돌멩이들. 가끔 엄마가 가슴팍을 치며 답답하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의사의 녹음네잎같은 말은 계속 이어졌다. 환자분 같은 경우는 수술이 필요합니다. 종양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 그나마 빨리 발견하셔서 다행입니다. 수술 하면 우리 엄마 낫을 수 있었다. 말이 불쑥 튀어 나왔다. 재발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만…. 유방 제거 수술이 필요 할 지도 모릅니다. 제거라니……. 아랫입술을 악물었다. 옆에 앉은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릎 위에 올려진 엄마의 손이 덜덜 떨렸다. 사시나무 같은 엄마의 손을 꽉 잡았따. 고개를 올려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동자가 벌걯다.
진료실을 빠져나와 하얀 복도를 걸었다. 갈수록 엄마의 걸음이 뒤쳐졌다. 이내 잠시만, 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엄마는 숨을 헐떡이며 새하얀 벽에 몸을 기댔다. 그 모습은 마치 엄마가 둥근 몸을 숨기려고 벽을 파는 듯 해 보였다. 잠시나마 어제 저녁에 보았던 두더지가 생각났다. 퇴화되어 백태가 서린 눈, 너무 작아 살에 뭍힌 귀, 앙상하게 뼈가 튀어 나온 작은 발, 까막 눈으로 몇 번이나 먹잇감을 놓치며 사냥하는 두더지, 그 것을 글 속에 새끼들의 입에 물리는 두더지, 잠시나마 우습고 미련하게만 여겼던 두더지가 내 앞에 있었다. 두더지는 숲의 신성한 생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 작은 몸으로 숲의 토양에 산소를 만들고 보금자리를 만드는 두더지라고 나는 들었다. 가만히 엄마에게 다가가 양 팔로 엄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엄마는 나의 목에 얼굴을 묻고 울먹였다. 내 딸 미안해. 엄마가 이렇게 아파서 정말 미안해. 나는 엄마를 더 쎄게 끌어 안았다. 괜찮아. 엄마한텐 내가 있잖아.
잠시나마 여지껏 잊고 살았던 것을 생각한다. 두더지의 은혜를 모르고 살았었더라고…. 작은 두더지에게 나는 너무나 큰 산 흉내를 내느라 두더지를 몰랐었던 것을 후회한다. 이제는 내가 두더지를 보듬고 지켜 줄 차례이다.
두더지가 몸 속 곳곳 스며든다.
2007년 부경대 문예백일장 심사결과
2007년도 부경대 고교생 백일장에는 모두 235명의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부문별 참여 학생수는 운문부가 103명, 산문부가 132명이었다. 운문부의 글제는 ‘장마’였으며, 산문부의 글제는 ‘잠시나마’였다. 운문부에서는 장원, 차상 1명, 차하 1명, 참방 2명이, 산문부에서는 차상 1명, 차하 2명, 참방 3명이 각각 입상하였다.
<운문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14편이었다. 이들 중 장마란 주제를 제대로 풀어낸 작품이 있는가 하면, 주제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주어진 주제와 거리가 있는 작품을 먼저 제외시켰다. 백일장은 주어진 주제를 어느 정도 개성 있게 잘 다루고 있느냐가 우선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남은 작품이 8편이었다. 이들을 놓고, 시어를 다루는 솜씨와 이미지 조형력 그리고 리듬감각과 한 편의 시로서의 구성력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는지를 살펴 작품의 우열을 가렸다. 장원으로 뽑힌 작품은 장마의 모습을 물총새떼들의 이미지를 통해 간접화하고 있는 발상이 돋보였으며, 무리 없는 시의 구성력도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이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차상의 작품은 세계를 인식하는 감성은 뚜렷하지만, 좀 더 이미지화 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차하는 시가 지녀야 할 응축미는 지니고 있지만, 주제의식이 약했다. 참방에 입선한 작품들은 이미지화의 작업에 계속 정진한다면, 앞으로 가능성을 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입선한 모든 학생들이 앞으로 꾸준히 노력하여 시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빈다.
본심 심사위원 : 남송우, 조동구
<산문부>
산문부의 차상을 차지한 장세빈(신도고 3) 양의 글은 문장이 차분하며, 발단에서 결말까지의 구성력이 안정감을 갖고 전개되었다. 결코 쉽지 않았을 글제를 무난하게 소화한 능력이 뛰어났다. 차하를 차지한 소가영(양산여고 1) 양의 작품도 짧은 시간 동안에 글제를 잘 소화하여 좋은 글을 써냈다. 차하를 차지한 박서언(신도고 3) 양의 글은 짧은 글 속에 갈등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지만 글의 완결성이 다소 떨어진다. 참방의 박지은(연제고 2) 양의 글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이 공감을 자아냈다. 참방의 송해영(김해중앙여고 2) 양의 글은 문장력은 있지만 구성력이 약한 점을 보완해야 할 것 같다. 참방의 정도영(문현여고 3)은 극적인 소재를 선택했지만 두더지에 대한 부적절한 비유로 인해서 글의 긴장감이 떨어졌다. 적절한 비유는 글의 상징적 힘을 더 발하게 해주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백일장에 참여해준 모든 학생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부득이 정해준 숫자만을 수상하게 된 점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학생들이 짧은 동안에도 글제를 잘 소화한 좋은 글들을 제출해 주었다. 문학에 뜻을 두는 학생들이라면 꾸준히 글을 쓰는 습관을 길러 자기 표현력을 기르고,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할 일이다.
본심 심사위원 : 송명희, 김남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