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럴 어드벤처 -유아영-
글쓴이 위한
아영과 레이언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서로 얼굴 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건 처음이다. 아영이 레이언을 살짝 훔쳐보니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고 있는 그가 보였다.
'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까는 무슨 베짱으로 그렇게 손을 잡고 낯간지러운 소리를 내뱉은 거지? 연예경험도 거의 없었는데 그렇게 대범한 짓을 했다니, 부끄러웠다.
"부산에는 언제까지 있을 작정이지?"
"……."
"유아영."
"네, 네?"
망상은 거기까지. 레이언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깨어난 정신이 서툰 반응을 보인다. 남들에게는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자신이 왠지 푼수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뭐,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왠지 모르게 나오는 극존칭. 그러고보면 레이언은 처음 봤을때부터 아영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 기분 나쁘다거나 신경에 거슬리지 않으니, 신기한 일이었다.
"부산에는 언제까지 머물 거냐고 물었다."
"아, 글쎄요. 기분 전환하러 내려온 거라서. 아, 혹시 제가 내려오는 와중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아세요?"
레이언은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모르겠는가? 그 사건으로 인해 릭이 죽었는데. 다시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의 무기인 엑셀리온 역시 실종되었고 그 사건의 목격자였던 세계특무연합의 요원들 역시 모두 사망했다.
"괜찮으세요?"
아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레이언은 그 모습을 보며 쓰게 웃었다. 숨길 수가 없군. 귀찮은 능력이다. 표정 관리를 한다고 해도 심장의 고동만큼은 마음대로 되질 않으니. 아주 미세한 소리도 놓치지 않는 유아영의 절대 청각은 사람의 감정마저 읽어낼 수 있었다.
"별 거 아니니 걱정하지 마. 그리고 서울에는 빨리 올라가는 게 좋아."
"어, 왜요?"
"부산에서는 널 지켜주기 힘들어."
세계특무연합의 한국 본사는 서울이다. 부산 역시 지점이 있긴 하지만 그 활용도에 있어서는 서울 본사보다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소유하고 있는 화기나 능력자의 수에 있어서도 비교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신속한 연락망이 구축되어 있지 않아 민첩한 대응이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널 찾아온 거야. 너에 대한 정확한 정보 입수가 힘들기 때문에 너와 함께 있을 수밖에 없어. 그러니 부산에 올라갈 때까지는 힘들더라도 참아주길 바라."
아, 그렇군. 아영의 고개가 알았다는 듯 끄덕여졌다. 그와 동시에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부산에서 한 달 정도 쉬어 버릴까?'
그럼 계속 함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아영은 또 다시 부끄러워져 레이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혹시라도 그가 자신의 얼굴을 보면 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는지 물어볼 것 같아서.
"집에 바래다주지."
"아뇨! 금방 올라갈 거예요!"
레이언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멀뚱한 표정으로 아영을 바라보았다. 순간 완전 당황해버린 아영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 이 봐?"
"조, 좀 부끄러워서……."
레이언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나 싶어 아영을 만나고 나서부터의 행동을 하나하나 떠올려봤지만 그녀가 민망해하거나 부끄러워 할만한 일을 한 기억은 없었다.
아영은 그렇게 10분 넘게 쭈그리고 앉아서 얼굴의 열을 식히고 있었다.
◈
현재 자신의 차량이 수리소에 있는 아영은 차가 없는 상태. 부모님댁은 부산 시내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야 했다. 그렇기에 레이언은 자신의 차로 아영을 바래다주려 한 것이다.
"우와."
아영은 레이언의 차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아니, 아영 뿐만이 아니었다. 주위를 지나는 사람들 모두 아영과 레이언 앞에 있는 차량을 힐끔힐끔 훔쳐보거나 아예 가까이 와서 살펴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사진촬영을 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사진에는 안 나오겠지만.'
과연 그런 건지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확인하는 사람들 중에는 의아한 듯 카메라를 살펴보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보안을 위해 인식장애 술법이 걸려 있는 레이언의 차량은 일반 디지털 카메라는 물론, 도로의 과속방지 카메라 등에도 인식되지 않는 차량이었다. 다만 필름으로 현상되는 아날로그 방식에는 그 술법이 적용되지 않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흔한 건 아니니까.
새까만 바디에 본네트 중앙으로는 거대한 로터가 솟아올라 있었다. 상어를 연상시키는 외형이 특히 인상적인 차량이었다. 그 크기 역시 대형 세단보다 훨씬 크게 느껴질 정도라 아영은 이거 혹시 법에 접촉되지는 않을까 걱정 될 정도였다.
"어, 어느 회사 거에요?"
"내 전용으로 만들어진 거라서."
"아, 네."
아영은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차량의 이름은 클리버(Cleaver). 세계특무연합에서 레이언을 위해 제작된 전용 차량이었다. 최대 시속 700km. 1500마력의 막강한 파워와 각종 특수장비를 갖추고 있는 이 차량의 제작비만 해도 약 120억 원에 가까울 정도로 첨단 기술이 집약된 물건이었다.
"타지."
레이언이 말하자 아무런 작동도 하지 않았음에도 클리버의 라이트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낮은 기계음과 함께 운전석과 보조석의 문이 개폐되었다. 날개식으로 열리는 차량의 문에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영 역시 멍하게 그걸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안 탈텐가?"
어느 새 운전석에 앉은 레이언이 아영을 바라보며 묻자 아영은 다시 화들짝 멍한 상태에서 깨어나며 쪼르르 달려가 조수석에 앉았다. 그러자 쉬익- 하고 기계가 구동되는 소리와 함께 운전석과 조수석의 문이 닫혔다.
"우와."
감탄을 터트리는 아영. 생각보다 편안한 시트와 보통 차량과는 풍경 자체가 다른 운전석과 조수석의 각종 시스템을 본 그녀의 감상이었다. 레이언이 클리버의 시스템을 가동시키자 정면 유리가 마치 컴퓨터 모니터를 보듯 각종 기계어와 그래프 등이 나타났다. 밖에서 볼 때는 썬팅한 듯 그저 검게만 보였었는데…….
[클리버. 시스템 가동 중입니다.]
"왁!"
아영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음성은 일반 네비게이션에서도 지원하는 기능이거늘. 오늘 너무 많이 놀라는 아영이다.
"지, 진짜 사람 같았어요."
"그래?"
붉게 물든 얼굴을 감추려는 듯 궁색한 변명을 하는 아영과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언.
"부모님 댁으로 가지."
우우우웅- 결코 평범한 차량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고급스러운 진동과 엔진음이 아영의 전신을 타고 흐른다. 이런 미묘한 기계음까지 분석해내는 아영의 초감각이지만 그녀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오늘 너무 많이 놀란 탓이다.
◈
"못 가겠군."
한참 도로를 달리던 레이언이 느닷없이 내뱉은 말이다. 차량 내부를 한참 구경하다가 이제 더 볼 것이 없는지 멍하게 앉아 있던 아영이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하게 레이언을 바라보았다.
"클리버. 가속 모드로 변형."
[가속 모드로 변형합니다.]
그 순간 달리는 와중에 기이잉- 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차량의 높이가 낮아졌다. 아영은 화들짝 놀라며 매고 있던 안전벨트를 손으로 꽉 쥐었다.
"뭐, 뭐죠?"
"미행이 붙었어."
"네?"
"바로 서울로 올라가야겠어. 부모님께는 나중에 전화로 말씀드려."
"이, 이봐요?"
"간다."
그 순간 엄청난 가속력으로 앞으로 쑤욱- 나아가는 클리버. 그리고 어느새 클리버의 뒤로 4대의 바이크가 따라붙고 있었다. 이 바이크들 역시 보통 물건이 아닌 듯 200km가 넘어가고 있는 클리버의 뒤를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본부에 연결해."
[본부에 연결합니다.]
그리고 전면 유리에 떠오르는 작은 스크린. 잠시 스크럼블이 일던 화면에서 짙은 회색 머리카락의 중년이 떠오르는 건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우아영을 보호하던 도중 미행이 붙었습니다. 정체는 아직 미정, 캐니보어는 아닌 듯 합니다."
[그래? 아, 옆의 아가씨가 아영양인가 보군. 안녕하시오?]
"아, 안녕하세요."
[레이언 녀석이 무뚝뚝해서 잘 해줬나 모르겠군요. 요즘 좀 신경이 날카로워질…….]
"본부장님."
[알았네, 알았어. 지금 위치는 가만보자… 부산이군? 바로 서울로 올라 올 예정인가?]
"네."
[그럼 일단 자네가 올라 올 루트로 요원 몇을 급파하고 교통정리를 해놓도록 하지.]
"부탁드립니다."
[올라와서 보자고.]
그리고 스크린은 닫혔다. 레이언은 곧바로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엄청난 가속에 따른 압력이 레이언과 아영을 덮쳤다.
"아악!"
그야말로 시트로 들어갈 듯 파뭍힌 아영과는 별개로 아무런 압력을 받지 않는 듯 고요한 표정의 레이언. 유리에 나타나는 후방의 모니터에는 여전히 클리버에 뒤지지 않는 속도로 따라붙고 있는 4대의 바이크가 있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따라붙고 있는 바이크들이었다. 현재 속도는 430km까지 올라간 상태. 저들 역시 오버 테크놀러지를 지닌 조직이라는 판단이 섰다. 물론 430km의 압력을 바이크를 탄 상태로 버텨내고 있다는 점에서 저 바이크에 탄 라이더들도 일반인은 아니겠지.
그 순간 모니터에 비치는 라이더들이 총을 꺼내들고 클리버를 향해 겨누었다. 파바바박! 하고 뭔가가 후미를 때리는 느낌이 들었다.
일반탄이 클리버에 미치는 타격은 흠집 이상을 주기 어렵다. 느긋한 마음이었다. 그 순간 전면을 가로막고 있는 한 차량과 차에서 내려서 있는 남자. 속도가 속도이니 만큼 단숨에 충동할 듯한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다만, 레이언의 눈에 남자가 자신들을 향해 겨누고 있는 게 신경 쓰일 뿐이다.
"RPG?"
대전차 로켓탄 발사기 RPG-7(Rocket Propeller Grenade-7). 레이언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가 이쪽을 향해 겨누고 있는 건 틀림없이 그 물건이다.
"제길."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는 순간 RPG 탄이 발사되었다. 로켓이 연기를 뿌리며 순식간에 클리버를 향해 달려들고 레이언은 단숨에 핸들을 옆으로 꺾었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클리버를 뒤흔드는 충격! 아영의 고함이 레이언의 고막을 때린다.
[장갑의 파손도는 약 3% 내외입니다. 자체 복구 가능합니다. 복구하겠습니다.]
클리버의 안내음이 들려온다. 순식간에 RPG-7을 발사한 남자를 지나치는 클리버와 RPG-7이 일으킨 폭염을 뚫고서 4대의 바이크 역시 그런 클리버의 뒤를 바짝 쫓았다.
"괜찮아?"
"괘, 괜찮은 것 같아요."
정신은 어떨 지 몰라도 몸은 아직 아픈데 없이 괜찮은 것 같다. 이 덜덜 떨리는 떨림만 빼면 말이지. 아영은 이를 악물었다.
"저것들도 날 노리는 거예요?"
"……."
"대, 대체 내가 뭐라고?"
"나도 묻고 싶군."
레이언 역시 궁금한 사항이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유아영에 대한 보호임무가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그녀를 습격하는 캐니보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캐니보어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모종의 단체까지. 그녀의 능력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그녀를 제거해야 할 필요성까지는 느끼지 못하는 레이언이었다.
"악! 여, 옆에! 옆을 좀 봐요!"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시간이 5초나 되었을까? 바이크는 어느새 클리버의 옆을 포위하고 있었다. 권총을 꺼내들고 클리버의 유리창을 향해 발사해보지만 클리버의 유리창은 총격 파흔만 일으키고는 깨지지 않는다. 하지만 차량 안에서 그걸 보는 아영은 죽을 맛이었다.
유리가 깨지지 않자 라이더들은 등에 메고 있던 일본도를 뽑아들었다. 그 순간 레이언의 눈에 불이 켜졌다. 그가 핸들 옆에 달려 있던 버튼을 누르자 차량 옆면으로 발사구가 돌출되었다.
그와 동시에 레이언의 디센티그레잇 능력이 발동되었다.
"Shot!"
파직- 하고 양 옆에 있던 라이더들의 상반신이 부셔져 떨어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바이크 역시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바닥을 나뒹굴었고 운나쁘게 뒤를 쫓던 바이크 한 대를 덮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폭발! 콰앙- 하는 소리가 뒤로 들려왔다.
"앞으로 한 대인가."
맹렬한 엔진음을 일으키며 클리버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한 대의 바이크가 어느새 클리버의 꼬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는 뽑아들고 있던 일본도로 클리버의 뒤를 베어내자 총탄에도 끄떡하지 않던 클리버의 바디가 베어지며 범퍼가 떨어져 나갔다.
[후미 파손. 파손률은 20%. 자체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레이언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 중 하나인 이 클리버. 물론 차량이야 수리하면 그만이지만 아끼는 물건이 파손되었다는 건 화나는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니트로!"
클리버의 배출구에서 불꽃이 일며 클리버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 순간 최대 가속도가 시속 900km에 달하는 이 니트로 부스터였지만 사용하고 난 후 약 5분간 클리버는 가속모드로서 사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스피드를 자랑했다.
그 순간 레이언은 브레이크를 밟으며 급감속을 했다. 끼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클리버의 회전이 멈추고 레이언은 핸들을 크게 돌렸다. 클리버의 꼬리를 따라 그려지는 스키드 마크. 클리버는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 순간 뒤따라오는 라이더의 헬멧에 비쳐지는 모습은 어느새 운전석의 유리창을 내린 채 자신을 향해 데저트 이글을 겨누고 있는 레이언의 모습이었다. 무표정한 얼굴. 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불꽃같은 분노가 일고 있었다.
거대한 총성과 함께 라이더가 허공을 날았다. 주인 잃은 바이크는 쓰려져 바닥을 나뒹굴었고, 라이더 역시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마, 앞으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리라.
피서를 좀 길게 다녀왔습니다. 몇 년만에 즐거웠어요. 앞으로 이제 피서란 걸 갈 수 없겠다- 라는 생각을 하니 서글픈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어쨌든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의 업데이트네요. 앞으로는 좀 자주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사용된 설정은
히어로 캐릭터 - 블러디스트 레이언
입니다. 잘못된 점이나 지적사항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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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너무 빠르지 않나요...후덜덜...;;;
사람이 살 수 있는 우주정거장을 띄우고 사는 세상인걸요. 일단은...
아니.... 그거.. 전차입니까?
내구력 좀 짱 쎄고, 속도 좀 짱 빠릅니다. 아마 총도 쏠 수 있을지 몰라요. 전차 맞네요.
호..혹시.. 배트카!!
거기에 대해선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요;ㅁ; 확실히 다크 나이트를 보고 왔더니 영향을 좀 받았나 싶기도 합니다...OTL